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려진 것들,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전부를 알려는 이는 많지 않다. 자신이 속한 기관과 사회에 대해서도 그렇다.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할 뿐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사는 게 속 편한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기관이 상징하는 이미지, 그것은 누가 만든 것일까. 경찰서, 법원, 변호사 사무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곳이지만 거부감이 든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방문해서는 안 될 곳처럼 여겨진다. 판사 문유석은『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그런 편견이나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대체로 법원과 판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뿐 인가, 뉴스를 통해 수없이 많이 들어온 고소, 고발, 원고, 피고라는 용어도 정확하게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화나 협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도 법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법을 잘 안다고 억울한 일이나 사건 사고에서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법 없이 산다는 건 거짓말이다. 가기 싫어도 경찰서에 갈 일도 생기고 법원의 조정을 받을 일도 생긴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니까.

 

 책은 소설 형식으로 법원의 일상을 보여준다. 법원이라는 공간에서 인간이 아닌 판사로 존재하는 사람들, 판사와 인간 사이에서 오가며 고민하고 갈등한다. 법의 틀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듯 보이지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다. 가상의 서울중앙지법 44부 합의부 재판부에서 한세상, 임바른, 박차오름 세 명의 판사가 맞는 다양한 사건은 언론을 통해 익숙한 것들이다. 술에 취한 여제자를 성추행한 교수의 사건, 의료사고로 죽은 아들에 대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어 시위를 하는 할머니, 잊힐 권리를 주장한 국회의원, 아버지의 재산으로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는 형제들의 분쟁사건,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사건.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억울하다고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누군가는 정당방위를 외친다.

 

 소설 속 사건을 읽다 보면 처음엔 원고의 편에 섰다가 피고의 말을 들으면 그쪽으로 기울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속 나의 판결과 판사의 판결이 같으면 기뻐하고 다르면 화가 나기도 했다. 하나의 사건에 딸린 기록지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은 정말 놀랐다. 양쪽의 말을 모두 정독해야 하는 일, 그리고 법률에 맞게 최선의 판결을 해야 하는 판사의 노고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등장하는 세 명의 판사는 가장 현명하고 지혜롭게 판결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밤을 새워 기록을 읽고 또 읽으며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말이다. 특히 초임 판사 박차오름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소설 속 판사의 모습은 픽션이니 진짜 판사의 모습을 소설 속 그것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법정에서 가장 강한 자는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판사야. 바로 우리지. 그리고 가장 위험한 자도 우리고. 그걸 잊으면 안 돼.”(281쪽)

 

 그럼에도 소설을 읽고 난 후 마치 거대한 성역과 군주처럼 여겨졌던 법원과 판사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작아지고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도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바라보는 법원이라는 숲은 너무 멀리 있다. 그 안의 판사라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튼튼하게 잘 자란 나무가 좋은 숲을 이루듯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실행하는 판사들이 믿음의 법원을 만들 것이다. 그리하면 법원이라는 숲은 그들만의 숲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모두의 숲으로 그 안에서 누군가는 쉼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런 숲을 희망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그 숲을 지키고 관리하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 시작은 관심이고 실천으로 『미스 함무라비』를 읽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