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런거리는 유산들
리디아 플렘 지음, 신성림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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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쁜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가족이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는 말도 맞지만 말이다. 어제는 작은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사촌 동생의 한의사 합격에 대한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친밀하게 교류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강한 줄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명절에 아버지 형제를 만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당연한 일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설이 다가오는 시기라 그런지 식탁 위에 놓인 사진을 들여다본다. 많지 않은 식구들, 봄날의 햇살 아래서 다들 환하게 웃고 있다. 아버지를 보내고 찍은 사진이다.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껏 그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 안에 계속 존재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 쪽에서는 우리를 더는 생각할 수 없다. 대화는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이어진다. 그들에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40~41쪽)

 

 아버지를 기억할 물건은 거의 없다. 반대로 큰언니의 흔적이 남은 물건은 아주 많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큰언니와 함께 산다. 다만 곁에 없을 뿐이다. 사라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가끔 생각한다.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것, 다시는 만질 수 없는 것, 대화를 나룰 수 없는 것, 특유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 소소한 것들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건 때로 비통함을 몰고 온다. 곧 첫눈이 올 것이다. 나는 그 소식을 큰언니에게 전할 수 없다. 아니, 전할 수 있다. 눈이 온다는 걸 말하면 그것을 큰언니가 듣는다는 걸 믿으니까. 사촌동생의 한의사 합격 소식을 마음으로 전하면서 함께 기뻐한다.

 

 사라져서 곁에 없다는 것, 그것이 죽음의 실체일까. 죽음에 대해 말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주인을 잃고 남겨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하면 맞을까. 주기적으로 큰언니 집에서 일정의 시간을 보낸다. 그것엔 나를 기다리는 나무들이 있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윙윙 거리는 커다란 냉장고가 있다. 계절마다 이불장을 환기 키시고 이불을 꺼내 소독한다. 큰언니를 증명하는 신분증, 여권, 일기장, 영수증은 아직도 그곳에 남았다. 천천히 정리해도 괜찮다는 이유로, 미뤄둔 일이다. 유산을 정리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럴 때마다 리디아 플렘의 『수런거리는 유산들』 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책은 부모님의 유산으로 남겨진 집을 정리하면서 상실의 슬픔과 애도를 기록한 책이다.

 

 부모님의 공간은 그들의 부재를 증명한다. 병원에 계시다고 믿고 싶어도 현실은 거짓을 곧 드러낸다. 저자는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는 게 싫고 두렵다. 왜 자신이 그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화가 난다. 남겨진 자의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주저한다. 건강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잡다한 것들, 어머니가 소중하게 간직한 손수 만든 옷들, 외가와 자신이 태어났을 상황에 대한 기록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에게 보낸 750통의 편지. 저자의 부모는 젊은 시절 나치 수용소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잔인한 고통의 시절을 살아온 그들의 연애편지를 읽기가 겁나는 건 당연하다. 외동딸에게 그 경험을 들려주고 싶지 않다. 털끝만큼도 그 시절에 닿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한 번도 그 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영원히 봉인되어야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부모님을 만나는 건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인 일인가. 사랑을 담아, 서로를 그리워하며 안타까워하는 편지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더 사랑할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삶을 향한 의지와 자신을 향했던 사랑도 함께. 큰언니의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 나의 기분도 그러했다. 내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어느 해의 일기장을 펼쳤다가 낯익은 글씨체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행의 흔적이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큰언니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곳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죽음은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허전함과 결핍함, 동요의 순간들과 함께. 상냥함이 깃든 슬픔이 퍼지는 것은 더 나중이다. 부드러운 아픔이 떠난 사람의 이미지를 둘러싼다. 죽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그 흐름에는 지름길이 없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죽음은 삶에 속하며, 삶은 죽음을 껴안는다. (119~120쪽)

 

 그러니 부모님의 죽음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들의 공간과 물건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한꺼번에 정리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당연한 게 아니다. 사라졌다고 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는 크면 클수록 그들의 존재감도 커진다는 걸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애도의 기록이자 죽음에 대한 『수런거리는 유산들』이 증명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군가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음과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죽음은 그렇게 우리 삶에 존재한다. 동시에 부재한다. 며칠 후 명절에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또 대화를 통해 떠난 가족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움의 두께가 얼음처럼 단단해진다.

 

 무의식이 과연 죽음을 아는지, 단지 이별만 아는 건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영원히 헤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 영원히라는 건 또 무슨 뜻일까? 사는 법을 배우려면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부어야 할까? 우리는 성인이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어린아이로 남을 수 있을까? 몸속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간직하는 나무들처럼?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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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1-26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17-01-30 11:58   좋아요 1 | URL
건강하고 행복한 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포근한 날들이어서 편하게 지낸 것 같아요.
항상 다정한 서니데이 님의 인사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