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 보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읽지 않았던가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소재가 비슷했던 소설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야기는 많고 많으니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할 수 있는 전생에 관한 이야기도 그러하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호기심으로 전생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었던 시절도 있었다. 전생이 있다면, 혹은 환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전의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까? 사토 쇼고 장편소설 『달의 영휴』를 읽은 후의 생각이다.


 소설은 기이한 만남으로 시작한다. 화자라 할 수 있는 오사나이 앞에 죽은 딸의 기억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아이와 어머니가 있다.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본격적인 이야기는 오사나이의 과거로 이어진다. 학교 선후배로 만난 아내 고즈에와 딸 ‘루리​’의 이야기. 평범했던 일상이 흔들린 건 루리가 일곱 살 되던 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후 건강을 찾는 루리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인형에게 남자 이름을 붙여주고 동요가 아닌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가장 중요한 것 딸의 눈빛이다. 아내는 딸을 걱정했지만 오사나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돌아보면 모든 시작은 그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고즈에가 딸에 대해 걱정할 때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딸과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혼자 남은 오사나이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어머니와 지내던 중 딸이 남긴 그림을 발견한다. 딸이 그린 그림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 모녀가 바로 또 다른 루리와 어머니다.

 

 같은 이름은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딸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여자아이와 그림 속 남자의 이야기는 너무도 놀라웠다. ​소설은 이제 더욱 흥미롭게 흘러간다. 그림 속 남자 미스미의 사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작소설인 것처럼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 집중시킨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미스미와 유부녀 루리의 만남은 사랑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알면서 미스미와 루리는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무기력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루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묘한 말을 남긴다. 달처럼 죽었다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택할 거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미스미 앞에 나타날 거라고. 그리고 마치 그것을 증명하듯 갑자기 사고로 죽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죽은 루리가 환생하여 미스미를 그리워하며 어떻게든 그와 닿기를 원했던 안타까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환생한 루리는 모두 오사나이의 딸이 겪은 과정을 겪는다. 일곱 살에 열병을 앓고 다른 아이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차례대로 청의 미스미, 중년의 미스미를 만나기를 원한다. 만약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죽은 가족이나 연인이 다른 몸으로 환생하여 내 앞에 나타나 있다면 말이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환생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소설은 지독한 사랑 이야기이며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운명으로 이어진 끊을 수 없는 고리 같은 것. ​지극히 뻔한 소재와 진부한 결말이 아닌 놀라운 감동을 선물한다.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루리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182쪽)

 

 사토 쇼고 장편소설 『달의 영휴』를 읽고 난 후 누군가는 주변을 둘러볼지도 모른다. 영원한 이별을 한 누군가가 다시 내 곁을 맴도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달의 영휴』에서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면 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에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렵지 않는 사랑을 만난다.  미리 살짝 힌트를 주자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달의 영휴』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도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하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편지다.

 1년 후의 나에게 보낸 편지가 엉뚱한 곳에 배달되었다. 재혼을 앞두고 친한 아빠 연습을 하는 아빠의 제안으로 쓴 편지가 현재가 아닌 과거 1982년 은유에게 배달된 것이다. 2016년, 미래에서 보낸 편지를 받은 은유는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열다섯 은유에게 답장을 한다. 마법처럼 과거에서 온 편지는 아빠의 재혼 후 독립을 꿈꾸는 언니 은유에게 도착한다. 신기한 건 과거의 은유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고 현재의 은유의 것은 천천히 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미래의 은유가 언니였지만 나중에는 과거의 은유가 언니가 되는 것이다. 편지로 인해 미래의 은유는 과거의 은유가 알지 못하는 사건을 알려주고 아빠의 재혼으로 인해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미래의 은유는 엄마의 존재를 모르며 아무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아빠는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처음에 사춘기 소녀의 반항 비슷한 것으로 이해한 과거의 은유는 어린 은유를 달래며 자신도 항상 언니와 비교당하며 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점차 은유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과거에서 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은유의 엄마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것. 은유 아빠의 인적 사항을 통해 과거의 은유가 아빠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드디어 만난 은유의 아빠는 자신과 동갑이었고 어린 은유의 말처럼 무뚝뚝하고 무서운 사람이 아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과거의 은유는 적극적으로 은유 아빠의 주변을 맴돌며 은유의 엄마가 될 것 같은 여자를 주시한다. 그리고 과거의 은유를 통해 은유는 조금씩 아빠를 알아가고 아빠도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빠랑 내가 같은 일직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달리기를 멈춰 버린 거야. 그러곤 투덜거리는 거지. 아빠는 왜 더 빨리 달려오지 않는 거야.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나는 투덜대기만 하고 달리기를 멈춰 버렸어. 아빠는 내가 달리지 않는 만큼 더 많이 달려와야 했어. 길이 그렇게 멀어졌는데 한 번도 투덜대지 않고 나만 보면서 묵묵히. (219쪽)

 

 편지가 오가면서 더욱 궁금해진다. 정말 은유의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아빠가 왜 엄마의 이야기를 함구하는지 알 수 있을까. 누가 은유의 엄마일까, 미래의 은유와 과거의 은유는 서로 만날 수 있을까. 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가 진한 여운을 남기는 건 편지라는 아날로그의 소통 방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진심을 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빠가 은유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것도 역시나 편지였으니까. 사랑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자신이 죽음과 맞바꾼 귀한 생명, 엄마와 딸.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맹세를 한 적이 있었던가. 그 맹세가 얼마나 연약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오직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때때로 이런 소설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가 내린 탓에 한낮의 이 시각이 저녁의 어스름 같다. 비는 그쳤지만 비는 우리 곁에 머문다. 봄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아직 패딩 조끼를 벗지 못하고 겨울 이불을 빨면서도 잠 잘 때마다 수면 양말을 챙긴다. 내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게 맞나? 이곳에 올 때는 돌아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곳이 중심이다. 이곳에 있을 때도 나의 모든 것은 그곳을 향하고 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리스트를 작성하지만 이번에는 꽝이다. 챙겨온 책은 정직한 자세로 소파를 지키고 컴퓨터를 켜고도 메일 확인만 할 뿐이다. 생각 가운데 잡념을 걸러내는 시간, 설명할 수 없는 다짐을 다지는 시간이라고 해두자.

 

 그렇다고 내일 이후의 시간이 무언가로 촘촘히 채워지는 건 아니다. 다시 어떤 흐름을 찾는 것, 다시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 다시 산책으로 계획하는 것, 그뿐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 신발장에서 꺼 내놓은 신발을 신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것. 그 사이 달라진 주변처럼 나도 달라졌기를 바란다.

 

 비가 그쳤고 조금 서늘하다. 그러니 달고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택배 상자 속 이런 책을 기대한다. 신간 구매를 자제하는데 표지 분위기만 보고도 그 작가라는 걸 알아버려서 이곳으로 주문했어야 했다고 자책한 책과 모르는 분야에 대한 무모한 호기심으로 궁금한 책, 두 권이다. 신간 광고메일을 과감히 삭제하고 책장에 있는 책만 생각하기로 한다.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지 않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해, 현 상태를 지속해야 해, 중얼거리는 오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8-03-1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는 그쳤지만 비는 우리 곁에 머문다. 이 문장, 여운이 있네요.

자목련 2018-03-21 11:14   좋아요 0 | URL
지금 살포시 내리는 봄눈도 그러할 것 같아요^^*
 

 

 아름다운 문장을 읽고 감동하는 건 쉽다. 그 뒤에 감춰진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가늠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이기에 섣불리 안다고 할 수 없고 안다고 해서도 안된다.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읽은 경우 특히 그러하다.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우리는 이미 그 전쟁을 알고 있지 않은가.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일상과 광기의 역사를 글로 읽어내는 일은 힘겹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거기 있기에 말이다.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읽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주인공 도리고가 최초의 기억 속 빛을 떠올리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전쟁과 함께 살아가는 지독히 아픈 삶을 들려준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생생한 전쟁의 현장을 중계하는가 하면 전쟁의 모든 기억은 잊은 듯 살아가는 전후 생존자의 현재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마치 전쟁은 꿈이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도리고를 비롯한 모두는 자신의 몸과 영혼이 기억하는 전쟁이라는 꿈을 꾸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도리고 앞에 나타난 동백꽃의 여인 에이미와의 만남만이 꿈이 아닌 현실은 아니었을까. 도리고에게는 약혼자 엘라가 있었고 에이미에게는 남편 키스가 있었다. 비밀스럽게 만남을 유지하는 도리고와 에이미의 사랑은 전쟁이라는 배경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죽음으로 채워진 전쟁터였다.

 

 도리고의 부대는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고 타이-미얀마 간의 철도 건설의 노역에 투입되었다. 의사였던 그는 직접 노역 현장에 동원되지 않았고 환자를 돌봤다. 콜레라와 괴질과 각기병으로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 병사를 살리기 위해 그들을 현장으로 내모는 일본 장교 나카무라와 대치한다. 무조건 철도(라인)를 건설해야 한다는 일본군에게 폭력은 의지와 실천이었다. 다치고 병든 포로를 철로로 이끌어내야만 했다. 포로들에게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며 동료의 죽음을 목도하는 일은 삶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도 동료의 죽음이었다. 함께 살아남아서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한 이들의 환영이 그들 곁을 맴돌았다.  

 

 인간은 많은 것 중 하나에 불과하며, 이 모든 것이 살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삶의 가장 고귀한 형태는 자유다. 인간이 인간답게, 구름이 구름답게, 대나무가 대나무답게 사는 것. (375쪽)


 라인은 망가졌다. 모든 선은 궁극적으로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모든 노고가 허사로 돌아갔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 의미와 희망을 갈망했지만, 과거 기록은 오로지 혼란만이 가득한 흐릿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375쪽)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자의 삶을 어떻게 지속되었을까. 도리고를 비롯한 포로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물과 진흙탕에서 어떻게 견뎌냈는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동료의 죽음에 나팔을 부는 것으로 애도하며 지낸 시절은 절대 기억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었다. 일본인 나카무라는 전범 재판에 회부될까 두려워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착한 아내를 만나 딸을 낳고 좋은 아빠가 되기로 한다. 고타 대령을 만나 도움을 받았지만 가족에게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일본 장교로 포로를 학대하던 그 시절은 그게 선(善)이었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것만이 나카무라를 살 수 있게 만든 힘이었을 것이다.    


 그가 무엇보다도 사랑한 것이 바로 시詩인데, 천황 폐하는 그 자체로서 시였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시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는 우주를 모두 포함했으며, 모든 도덕과 고통을 초월했다. 위대한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천황 폐하라는 시 또한 선과 악 너머에 있었다. (478쪽)


 나카무라가 그렇게 자신을 지키며 살았듯 도리고 역시 그러했다. 완벽한 아내와 가정, 성공한 외과의사이자 전쟁영웅으로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며 살았다. 에이미를 가슴에 품고 살면서도 아닌 척 연기했다.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났지만 사랑이 아닌 단순한 유희였다고 자신했다. 현재의 고독과 허무의 허기를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지난 삶을 회상하는 것뿐이었다. 전쟁이라는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게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생각한다. 전쟁에 휩싸인 삶, 전쟁이라는 감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읽으면서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과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문학상 수상작이다. 풀리처 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전쟁, 언제 폐허가 될지 모르는 순간을 견디는 인물을 그렸다. 리처드 플래너건과 헤르타 뮐러의 소설에는 포로의 시간이 겹친다. 앤서니 도어와 헤르타 뮐러의 소설에는 소년과 소녀가 등장한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속 도리고에 비하면 아이들이 감당할 공포는 우주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속 주인공은 눈먼 소녀 마리로르와 고아 소년 베르너다.


 전쟁이라는 가장 참혹함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들을 위로할 누군가(무엇)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고에게는 병사들이, 마리로르에게는 라디오(소리)였고 레오에게는 손수건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는 일. 도리고가 가슴에 품은 여인 에이미, 눈이 보이지 않는 딸을 위해 집과 거리를 모형으로 만든 아버지, 레오를 기다리는 가족. 세 권의 소설 모두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하다. 너무도 섬세하고 생생하게 담아냈다. 아름답지만 너무도 아픈 소설들이다. 소설이면서도 소설이 아니라서 독자는 읽으면서 고통을 느낀다. 누군가의 가족이 전쟁의 현장에 있었다는 걸 알기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선을 그리며 흘러나온다. 침대 겸용 소파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 따뜻하게 있으면서 배불리 먹는 것,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는 문장들을 만끽하는 기분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권, 207쪽)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거야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숨그네』, 17쪽)

 

 전쟁은 끝났다고 이제는 그저 과거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일상을 지배한다. 피할 수 있었으면 피하고 싶었을 삶이었을 것이다. 숨 막힐 듯 호흡을 흔드는 문장 속으로 빠져들다가도 문득 그들을 생각한다. 내가 누리는 이 안온함, 내가 보는 세상의 빛, 깊게 잠드는 밤을 알지 못하는 그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에는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떡국을 먹었다. 굴을 넣고 끓인 시원한 떡국이었다. 굴을 좋아하지 않은 나는 굴을 골라내어 동생의 그릇에 옮겼다. 점심은 먹은 후 근처에 사시는 고모 댁으로 향했다. 신선하고 큼직한 굴을 전해드리기 위함이다. 언제나 그렇듯 집안은 정결했고 기어코 깍두기를 담가 주시겠다는 고모의 말씀에 저녁까지 먹고 돌아왔다. 작년과 다르지 않았다. 평창 동계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는 것으로 밤은 채워졌다.


 낮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과 나누는 대화와 고모 댁에서 사촌 오빠와 나누는 이야기는 모두 과거의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를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달랐다. 언니와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한 번도 욕을 하거나 매를 들지 않았는데 남동생은 엄마한테 많이 혼나고 매도 맞았다고 기억했다. 딸 셋을 낳고 얻은 막내아들이라서(오빠가 있지만 아들을 하나 더 원했기에)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지만 그래서 떼도 많이 부렸다. 우리는 자주 울었던 동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엄마 살아 계실 때는 하지 않았던 말들을 엄마가 돌아가시니 하고 있네, 엄마 보고 싶네”로 끝이 났다. 엄마의 삶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시간, 명절이라 그랬을까.


 ‘엄마’라는 말 때문인지 잠깐 시청한 드라마 <마더>속 엄마들이 생각난다. 딸을 살리기 위해 딸을 버려야만 했던 엄마, 정성을 다해 딸을 키운 엄마, 엄마가 되지 않겠다던 다짐을 깨고 엄마가 된 엄마까지. 엄마를 닮은 시라고 하면 억지일지도 모르겠다. 김소연의 「너를 이루는 말들」을 옮기고 읽는다.

 


 

한숨이라고 하자

그것은 스스로 빛을 발할 재간이 없어

지구 바깥으로 맴돌며 평생토록 야간 노동을 하는

달빛의 오래된 근육


약속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한 번을 잘 감추기 위해서 아흔아홉을 들키는

구름의 한심한 눈물


약속이 범람하자 눈물이 고인다 눈물은 통곡이 된다

통곡으로 우리의 간격을 메우려는 너를 위해

벼락보다 먼저 천둥이 도착하고 있다

나는 이 별의 첫번째 귀머거리가 된다

한 도시가 우리의 손끝에 빠르게 녹슬어간다


너의 선물이라도 해두자

그것은 상아에게 물어뜯긴 인어의 따끔따끔한 걸음걸이

반짝이는 비늘을 번번이 바닷가에 흘리고야 마는

너의 오래된 실수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고통은 슬며시 우리 곁을 떠난다


소원이라고 하자

그것은 두 발 없는 짐승으로 태어나 울울대는

발 대신 팔로써 가 닿는 나무의 유일한 전술

나무들의 앙상한 포옹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상처

나무 밑둥을 깨문 독사의 이빨 자국이라 하자

동면에서 깨어나 허기진 첫 식사라 하자

우리 발목이 그래서 이토록 욱신욱신한 거라 해두자



 

 어제 통화를 한 친구와는 건강과 나잇살이 붙는다고 말하면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다가도 알 수 없으니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고 그저 오늘을 잘 살자고 웃으며 안부를 나눴다. 반가운 한귀은의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이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이상하게 이원의 『최소의 발견』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원의 산문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단정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할까. 어쩌면 밤에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좋다는 말이다. 한귀은의 에세이도 그럴 것이다. 언제나 그러했듯, 그녀의 문장을 나는 기대하고 흠모하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8-02-1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글도 읽으면 늘 마음이 정리정돈 되는 느낌인데 고모님댁도 정결하단 문장이 퍽 와닿습니다^^
형제분이 많으시네요?
전 제 밑으로 두 남동생만 있어 늘 엄마 대행을 해야만 하는 심적 의무감이 생기곤 하더라구요.
그래서 늘 잔소리만 해대곤 합니다.
나이가 잔소리를 늘게 하는건지,
원래 그랬었던 건지......
암튼, 올 한 해는 더 멋지게 살아볼 일입니다.^^

자목련 2018-02-20 11:21   좋아요 0 | URL
5남매라서 어린 시절에는 정말 싫었어요. 근데 자라고 보니 다섯도 많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큰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니 더욱 그러해요.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있어서 저도 종종 잔소리를 해요, ㅎ
책읽는나무 님의 멋진 한 해 응원할게요, 더불어 저도 멋지게 살고 싶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우리가 어떻게 가까워졌을까. 아니,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안다고 해서 아는 게 아니고 모른다고 모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한 사람과의 사귐, 그리고 그것을 오래 지속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도 되는 게 아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이 같은 듯 다르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알고 있기에 때로 조심하고 알고 있기에 때로 기다린다.

 

 ‘너를 좋아하고 있어, 너를 사랑하고 있어.’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우리는 그 말에 담긴 사랑을 그 말의 무게를 재려 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게 너를 생각한다. ​너를 생각하면 그림자가 생각나고 너를 생각하면 공기가 떠올라.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 너를 좋아하고 있어, 온전히 너를 사랑하기를 바라.

 

 하나의 대상을 향한 마음이 커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사물이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되는 일,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마음이 장착되는 일.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사랑받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어떤 빛이 될까.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일,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 그 사랑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 그 사랑이 나를 완전하게 만들고 있다는걸, 기억해 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8-01-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좋은거죠^^? 흐흐흐~ 좋아서 혼자 웃네요. 글이 너무 너무 다정해서 ...

자목련 2018-01-31 17:10   좋아요 1 | URL
그장소 님의 다정한 웃음이 저는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