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태기가 오거나 읽어야 할 책이 지루하게 느껴져 속도가 나지 않으면 추리소설을 찾는다. 재미와 동시에 온전히 책 읽기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추거나 숨겨진 복선을 찾지는 못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누구나 다 알 정도의 유명한 추리소설을 읽거나 작가를 아는 건 아니다. 셜록 홈스나 뤼팽을 소설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로 본 게 전부다. 그러니 추리소설을 쓰는 다섯 명의 작가가 필독서로 꼽은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목차에서 읽어본 소설은 손에 꽂을 정도였다. 그래도 읽은 책은 몇 권 없지만 영화로 만난 작품이 있어 반가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필독서’라는 말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현직의 작가가 추천하는 소설 정도로 여겨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일반 독자가 아닌 추리소설을 쓰고 싶거나 추리소설의 역사나 계보에 관심이 있다면 좋은 추천서가 될 것이다. 무경, 박상민, 박소해, 이지유, 조동신 작가의 선정 기준은 단순한 베스트셀러나 인기 작가의 유명 작품이 아닌 고전(발표 연도)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읽은 가치가 충분한 작품, 추리소설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 우리나라 독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
발간 연도 순서로 소개하고 있으니 그 순서대로 따라 읽어도 좋고 좋아하는 캐릭터나 작가를 먼저 읽어도 크게 상관은 없을 듯하다. 작품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작품도 소개하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났다면 목록을 목록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겠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이력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이라고 하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삶은 추리소설의 명성과는 다르게 불운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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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범인을 찾는 탐정이나 형사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그를 돕는 조력자와 함께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로 무한 변주되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셜록 홈즈와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이 그러하다.
셜록 홈즈의 이야기는 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캐릭터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셜록 홈즈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다양하게 변주되어 창작될 것이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비롯한 캐릭터들을 멋지게 창조해 냈다. 코난 도일의 가장 큰 업적은 셜롬 홈즈를 창조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41쪽)
개인적으로 추리소설보다는 장편소설이 더 매력적인 다가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지금까지 꾸준하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밀실 살인사건, 명탐정 푸아로의 활약, 소설마다 정말 대단한다.
크리스티의 작품은 현대 미스터리의 중요한 원형이 되었고, 후대에 다시 인용되거나 비틀리거나 재창조된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제시한 기법 중 아직도 미스터리와 스릴러에서 쓰이는 기법이 많다. 또한 어떤 기법은 변형되거나 부정당한다. 추리 장르는 그렇게 탄탄한 형식을 확립하고 동시에 무너뜨리며 가능성을 확장해왔다. 아서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의 캐릭터를 완성했다면,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구성을 완성했다. 현대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은 결국 이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147쪽)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이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작가와 소설 속 캐릭터에 대한 탄생 설명과 함께 줄거리를 들려주면서도 트릭이나 범인에 대한 힌트나 언급은 없다. 그런 부분은 추리소설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이미 읽었던 소설이나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도 처음 접하는 소설이라는 기분이 든다. 현직 작가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추리소설의 영역도 확장된다. 고전부터 명탐정, 형사 시리즈가 아니라 스릴러, 스파이물, 미스터리로 다양하다. 사회적 문제를 소설에 녹여 내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등장은 더욱 매력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로 기억하는 작가 김성종이 추리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국내 유일무이한 추리소설 전문 도서관을 세운 사실도 놀랍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이 대거 등장하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원제가 『수도원의 범죄 사건』이었으나 독자들이 미스터리 자체에만 관심을 둘까 봐 파기했다고 한다. 이 책의 목록에서 반가웠던 건 제프리 디버의 『본 컬렉터』였다. 재미있게 본 영화였지만 원작이 있는 줄 몰랐다.
괴팍한 성격을 지닌 점이나 한 줌의 흙과 같은 미세 증거물로부터 현장을 알아내는 마법 같은 능력을 선보이는 링컨 라임은 현대판 셜록 홈즈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소설에서는 특히 과학적인 추론이 환상적으로 구현되어 제프리 디버표 법 과학 스릴러의 모범을 보여준다. (284쪽)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고 잘 모르지만 북유럽 작가의 작품이나 최근에 만난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언급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런 이유로 필독서라는 개념은 중요하지 않지만 취향에 따라 추리소설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로 충분하다. 추리소설 입문서로도 나쁘지 않다. CSI 과학 수사대를 좋아하고 법정 드라마를 좋아하며 추리소설 작가로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만 알고 있는 나와 비슷한 독자라면 반갑고 즐거운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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