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뜨겁지 않고 따뜻한 커피다. 한낮에도 얼음을 넣지 않은 커피를 마신다. 기가 꺾인 더위는 상냥해지고 부드러워졌다. 활짝 열렸던 창문은 닫힌다. 완전히 닫히지는 않고 조금 열린다. 가을이다. 이제 가을이라 말할 수 있다. 선풍기는 아직 내 곁에 있지만 그 바람을 쐬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뭔가를 끓이는 것, 그 뜨거운 국물을 한 술 떠 식혀가면 밥을 먹는 일, 가을인 것이다.


가을이라고 말해도 될까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그런 마음은 이제 없다. 가을이 되었다. 아직 짧은 소매의 옷을 입고 있지만 여름의 옷차림이 아닌 가을의 옷차림이다. 작은언니의 가방에는 말아 쥐어 밀어 얇은 카디건이 있다. 가을인 것이다.


그런 가을이라서 그런 가을이 시작되어서 조금은 계획적이면서도 충동적인 책을 샀다. 모두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게 제일 좋으니까. 가을엔 소설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 네 권 가운데 두 권은 계획적이고 나머지 두 권은 충동적이었다.






계절의 소설로 소개할 수 있는 『소설 보다 가을 2023』은 이주혜의 단편이 궁금해서 샀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을 읽기 전 짧은 단편을 먼저 만나려고. 사실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책장에 몇 년째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근데 받고 보니 진짜 진짜 짧은 단편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마음산책 짧은 소설 같은 거라고 할까.


문지혁의 소설은 충동적인 구매였다. 적립금이 없었다면, 기대평과 편집장의 퀴즈 같은 이벤트 적립금이 없었다면 나중에 구매했을지도 모를 소설이다. 근데, 문지혁의 소설이 자꾸 궁금한 거다. 그래서 먼저 읽은 리뷰도 꼼꼼하게 읽을 수가 없다. 계획적인 충동구매가 맞겠다.


비가 온다. 가을비다. 기상 캐스터는 가을장마라고 했다. 비가 오는데도 습한 정도가 약하다. 친구의 말처럼 여름비와 가을비는 다른 것 같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매몰찬 기운이 아니라 상냥하고 부드러워졌다. 한 번에 등을 돌리며 떠나는 여름이 아니라 천천히 등을 돌리며 여름이 떠나고 있다. 가을이 그 여름을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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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09-13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름을 좋아해서 선선해 지니까 막 섭섭하고 그래요...근데 천천히 등을 돌리는 여름에 배웅하는 가을...자목련님 표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감동ㅜㅜ

자목련 2023-09-14 17:29   좋아요 1 | URL
망고 님은 여름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추운 걸 조금 더 견딜 수 있어요.
망고 님의 댓글이야말로 감동입니다. 남은 여름 안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물감 2023-09-1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쌀쌀해졌어요. 이번 장마 지나가면 본격 가을 날씨올 듯! 건강 조심하셔요🙂

자목련 2023-09-14 17:29   좋아요 1 | URL
주말 지나면 여름의 흔적은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물감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요^^

독서괭 2023-09-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 꺾인 더위는 상냥해지고” 라니 넘 멋진 제목입니다!! 비와 함께 정녕 가을이 왔네요^^

자목련 2023-09-14 17:32   좋아요 0 | URL
가을이 왔어요. 와락 달려든 가을이에요. 얼마나 빠르게 지날지 모르겠어요.

거리의화가 2023-09-1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은 정말 가을이란 느낌이 확연하네요! 주말쯤 비가 다시 온다고 하더군요. 그 후엔 정말 가을일 듯합니다^^* 자목련님의 문장 표현은 언제 봐도 아름다워요^^

자목련 2023-09-14 17:33   좋아요 0 | URL
내일부터 비가 내리고 주말이 지나면 완연한 가을과 만나겠지 싶어요. 긴 소매 옷도 챙겨야 하고. 이불 정리도 해야 하고, 계절 맞이 쉽지 않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