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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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몇 권 읽으면서 점차 환해지는 기분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내게 흐릿한 막 같았다. 막은 걷힐 것 같으면서도 쉽게 걷어 내기가 어려웠다. 소설마다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의 비슷한 성격이 그러했고 결말 또한 선명했던 또렷한 기억이 없다. 다시 읽으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그렇다. 그랬던 마음이 『마음』을 읽으면서 이전보다는 선명해졌고 그의 소설이 더 좋아졌다.


사실 이 소설의 단순하다. 화자인 ‘나’가 만난 ‘선생님’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선생님은 아니다. 이름 대신 선생님일 뿐, 인생 선배 정도도 무방하다. 어쨌든 나는 우연하게 만난 선생님과 친해진다. 물론 이건 나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나에게 곁을 내주는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상할 정도로 냉정한 사람이다. 선생님을 찾아가는 나를 내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할까. 그런 무심함에 끌렸던 것일까.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고 좋아하는 데 딱히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일이니까.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손을 벌려 안아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29쪽)


선생님은 비밀스러운 사람이다. 사모님이 있고 하녀가 있지만 일은 하지 않는다. (소세키의 소설에 이런 인물은 자주 등장한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는 나는 선생님이 찾는 묘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하고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그러나 선생님은 선뜻 자신의 과거나 생각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학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세계에 속하는 사람 같다. 한 번씩 그가 던지는 말의 진의를 나는 알아차릴 수 없다. 도대체 선생님에게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토록 거리를 두고 벽을 쌓아두는 것일까.


“아무튼 날 너무 믿으면 안 되네. 곧 후회할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속은 앙갚음으로 잔혹한 복수를 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건 또 무슨 뜻이지요?”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50쪽)


나뿐만 아니라 독자는 더욱 그가 살아온 시간을 들여다보고 싶다. 물론 이제 독자인 나는 선생님의 사연을 다 앍게 되었지만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그가 그토록 조심하며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 그 복잡한 마음에 대해 나는 함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그의 것이고, 그러므로 그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그건 착각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내 마음이지만 나조차 알 수 없는 것, 이랬다저랬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릇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옅어지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하는 그런 것.


“나쁜 사람이라는 부류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세상에 그렇게 틀에 박은 듯한 나쁜 사람이 있을 리 없지.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네.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거지.” (83쪽)


그런 소세키의 진의를 단 번에 알아차리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렇게 보면 소설 속 선생님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건 소세키를 이해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소설은 선생님의 유서를 통해 그 모든 걸 알려준다. 그러나 선생님의 유서를 읽고서도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신과 동시에 아내를 사랑했던 친구 K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을 끝내는 결단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거다. 어려운 처지에 있던 친구 K를 자신의 하숙으로 데려오면서 묘하게 발생한 삼각관계. 선의를 베푼 행동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결과에 선생님의 마음을 복잡하다. 하숙집 딸(선생님의 아내)을 향한 K의 마음을 들은 선생님의 마음, 두 마음은 충돌한다. K의 고백을 들은 후 자신의 마음을 말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나는 내 과거의 선과 악 모두를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할 생각이네. 하지만 아내만은 단 하사람의 예외라고 생각해주게. 나는 아내에게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아.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 가진 기억을 되도록 순백의 상태로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이니 내가 죽은 뒤에도 아내가 살아 있는 이상은 자네에게만 털어놓은 내 비밀로 모든 것을 가슴에 묻어두게. (274쪽)


어쩌면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마음을 나를 만나 털어놓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나의 모든 걸 아는 이,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그런 마음 말이다. 마음을 말하는 일, 마음을 살피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분명 내 마음인데 주변 인물이나 상황 때문에 우리는 진짜가 아닌 가짜 마음을 내보인다. 소설 속 나의 대학 졸업을 기뻐하고 기대하는 부모님에게 진짜 마음을 보여줄 수 없는 이유다. 자리 보존하고 누운 아버지를 대하는 가족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그 마음을 끝내 말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보여 준 선생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그토록 알고 싶었던 그 마음을 모르고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끝내 알지 못한 것이다. 유서를 통해 마음의 일부는 알았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마음을 아는 일, 그 마음 주인인 인간을 아는 일, 평생을 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 알고자 하고 닿고자 애쓰는 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고 훌륭한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낳은 내 과거는 인간 경험의 한 부분으로서 나 이외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거짓 없이 써서 남기는데 내 노력은 자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인간을 아는 일에 헛수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네. (273쪽)


『마음』 을 읽는 동안 여러 모양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 마음속에 어지러운 내 마음이 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다 담고 싶고 알고 싶은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고요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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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7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걸 읽긴 했는데요....?! 완전완전 독서 초보 시절에 읽어서 기억이 하나도 안나네요. 그리고 그땐 소설 읽으면서 뭔가 느낄 줄 몰라서 감흥도 별로 없었던 듯.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입니다! 처음 읽는 책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ㅋㅋㅋ

자목련 2023-07-28 09:26   좋아요 2 | URL
은오 님은 일찍 만나셨군요. 저는 이제야 읽었습니다. 소세키 소설은 뭔가 밍밍하면서도 담백한, 그런데 자꾸 중독되는 그런 맛이 있는 듯해요. 다시 읽어보는 일, 슬그머니 추천해요!
무지 덥습니다. 시원하게 보내시고요^^

blanca 2023-07-28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저와 독서 취향이 정말 같아요...신기해요. 저도 <마음> 정말정말 좋았거든요. 별 다섯 개 완전 공감합니다.

자목련 2023-07-31 08:53   좋아요 2 | URL
마음을 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소세키의 소설이 진짜 좋구나 느끼게 된 소설이었어요!

새파랑 2023-07-28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세키 작품중에 마음이 가장 좋더라구요. 저는 두번 읽었습니다 ㅋ

정말 마음이란 뭘까 궁금할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느정도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ㅋ

자목련 2023-07-31 08:54   좋아요 2 | URL
두 번 읽는 마음!
마음이 뭘까, 마음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알게 되는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잠자냥 2023-07-31 1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 진짜 좋죠.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작품입니다. 제가 소설을 재독하는 경우는 드문데 소세키의 몇몇 작품은 그게 가능해요. 참 신기하죠!

자목련 2023-08-02 08:38   좋아요 0 | URL
소세키는 책장에 있는 책들만 읽고 끝내려고 했는데 <마음>은 구매하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더 욕심이 나지만 남은 3권만 읽고 참으려고요. ㅎ

그레이스 2023-07-3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았던 작품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것만 같은 순간이 있고, 도무지 모르겠는 순간이 있죠.
동일한 죄의식과 회환을 안고 있는 두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게 마음이란 생각도!

자목련 2023-08-02 08:38   좋아요 0 | URL
아, 마음이 이렇게 어려운 건가 생각했어요. ㅎ
같은 마음이라고 여겼던 마음도 한 순간 다르게 흘러가는 게 마음이구나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