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시가 되고 시는 일기가 된다. 시를 쓰려고 한 게 아니지만 일기는 쓰다 보면 길을 잃고 차마 알아볼 수 없는 감정에 닿는다. 그런 것들이 모이고 하나하나 다듬으면 시가 될 수 있다. 하루를 마감하며 쓴 짧은 몇 줄 혹은 긴 장문의 글은 어느 날에 읽어보면 시로 변해있다. 울프의 일기와 황인찬의 시집을 두고 생각나는 대로 쓴 것이다.
일기와 시, 그 끝에 닿는 게 같은 감정일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울프 일기』는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있었다. 당장 읽겠다거나 사겠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이제 읽을 때가 된 건 아니고 사 버렸다. 그러니까 사 버린 것이다. 샀으니 됐다. 나는 뿌듯하다. 그래도 펼친다. 펼쳐서 나온 날의 일기는 이렇지 않고 짧은 일기를 찾았다.
예절 바른 편지를 보냈다. 아직 답장이 안 왔고, 또 올 리도 없다. 덕분에 나는 7월에 소설을 쓰다 말고 밖으로 나가, 머리에 모피 털이 달린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전에 없이 멋진 봄이다. 부드럽고, 파랗고, 안개가 서려 있다. (3월 28일, 화요일)
편지를 썼던 날이 언제였던가. 그러니 답장 같은 게 올 리가 없다. 새벽 어스름에 온통 뿌연 기운이 가득했다. 안개가 나를 덮치는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서서히 안개는 사라지고 아무 일 없는 듯 하루가 열렸다. (6월 16일, 금요일, 울프를 따라 써보기)
황인찬 시에 대한 기억은 첫 시집의 느낌이 좋아서 꾸준하게 읽는 건 아니지만 시집이 나오면 관심이 가고 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엔 이런 시가 있다. 여름이라서, 장미라서, 눈에 들어왔는데 슬프구나.
장미가 화병에 꽂히기로 결심했으므로
화병에 장미 한 다발이 있을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면 온 집안에 썩은 내가 가득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왜 꽃을 버리지 않느냐고 묻겠지
너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달이 지나면 장미는 완전히 마르고
너는 이 집에 없을 것이다
꽃은 묘지에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있는 법인데
화병에 장미 한 다발이 있을 것이다
목이 꺾긴 채로 말라버리기로 되어 있는 장미들
나는 너에게 장미 한 다발을 준다
그것이 장미의 결이라고 믿으면서 (「장미는 눈도 없이」, 전문)
일기를 쓰고 시를 읽는 하루를 그려보면 근사하다. 하지만 일기를 쓰고 시를 읽는 하루를 사는 일은 근사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한 것과 다르게 흐르는 일상, 생각과 똑같은 일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시 읽고 일기 쓰는 마음은 간직해 보도록 하자. 시를 쓰는 것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