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정리할 때마다 주저하는 몇 권의 책이 있다. 바로 동화책이다. 책등이 낡고 누렇게 변했지만 차마 버릴 수 없다. 책을 버리면 그 시절의 나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동화를 읽으면서 느꼈던 어떤 감정들, 그러니까 주인공과 내가 하나가 되어 울고 웃던 마음까지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라는 게 맞겠다. 그냥 저기 저 책이 있으니 혼탁해진 내 마음도 책을 펼치는 순간 맑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이서희의 책 제목처럼 어쩌면 동화를 읽어야 할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바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공감하고 저자가 소개한 책과 구절을 따라 읽고 밑줄을 긋게 된다. 목차를 통해 만난 반가운 제목의 동화들, 아, 이 동화를 내가 읽었고 만화로 보고 매일 기대하고 기다렸던 그 책들이다. 동화가 전하는 일종의 교훈적인 메시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모르는 어떤 나만의 마음을 동화 속 주인공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할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동화책은 어린 시절이 아닌 사춘기와 청소년기에 읽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고 최근에 만난 동화도 있다. 저자가 분류한 대로 5가지 키워드(잃어버린 가치를 찾아, 불안한 시간을 위하여, 모험과 불확실함 속에서, 특별한 세상을 마주하며,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를 차례대로 읽어도 좋고 반가움의 크기대로 만나도 좋다. 저자가 소개하고 알려주는 동화 속 명언 320가지는 모두 다 감동적이다. 이미 우리는 메마른 감성의 어른이니 그 어떤 동화라도 사실상 필요하다는 걸 잘 안다. 매일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모두 필요한 마음이니까.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속 남매가 찾은 파랑새는 결국 집에서 키우던 멧비둘기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항상 먼 곳에서 타인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다. 코로나로 인해 행복은커녕 작은 웃음조차 잃어버렸다고 믿는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묻는 시간이다.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걸. 어쩌면 이 시기가 지나면 또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소박한 행복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요. (30쪽)


여전히 가장 사랑하는 동화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 머리 앤」이 주는 희망과 긍정의 힘은 항상 우리는 웃게 만든다. 어려운 현실을 잊기 위한 상상의 나래가 다소 엉뚱하고 어른들의 눈에는 괴상해 보이지만 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무엇 하나 쉽게 얻을 수 없었던 앤의 인생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아침은 언제나 흥미로워요.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상상할 거리도 아주 많으니까요. (75쪽)


이제 저는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그 모퉁이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을 거예요. 길모퉁이는 매력이 있어요,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하거든요. (78쪽)


사실 어른이 되고 모퉁이는 기대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피할 수 없으니 우리는 삶이라는 모퉁이를 돌 수밖에 없다. 어떤 모퉁이가 나오더라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그러니 스물일곱 번의 수술을 한 R.J. 팔라시오의 「아름다운 아이」의 주인공 어기에게 삶은 얼마나 힘들까.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무도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173쪽)


친절이란, 참으로 간단한 일. 누군가 필요로 할 때 던져줄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우정 어린 행동. 지나치다 한 번 웃어주기. (176쪽)


가장 최근에 만난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나 누구에게라도 추천하는 루리의 「긴긴밤」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같이의 삶을 생각한다. 여성, 외국인, 장애인, 노인 등 사회 약자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극심한 개인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팽창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바로 연대의 가치라는 걸 알려주는 아름다운 동화다.


와니니 무리는 그리 용맹하지 않았지만, 늘 함께해 왔다. 강해서 함께하는 게 아니었다. 약하고 부족하니까 서로 도우며 함께하는 거였다. 그게 친구였다. 힘들고 지칠 때 서로 돌봐 주는 것, 와니니들은 그것이 무리 지어 사는 이유라고 믿고 있었다. (157쪽)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 없고 잘 할 수 없다. 계획은 언제나 실패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좌절한다. 어디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놓친 마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320개의 문장으로 만나는 동화를 통해 깨우친다. 지치고 찌든 일상을 일으켜 세우고 펴줄 것들은 때로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우리 곁을 지키는 이 동화책들처럼.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속 주디의 말처럼.


저는 행복의 참된 비법을 찾았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한없이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만 꿈꾸는 거도 아니에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에요. (210쪽)


순수했던 마음까지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한없이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벅찬 감동과 환한 미소를 안겨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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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11-03 14: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책 내보낼 때 갈등 고조시키는 장르가 그림책이더라고요. 반가우세요

[푸른 사자 와니니」 「긴긴밤」을 추천해주시니, 찾아보겠습니다^^

자목련 2021-11-04 13:58   좋아요 2 | URL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책은 정말 떠나보내기 어려워요. ㅎㅎ
와니니와 긴긴밤은 참 좋은 동화라고 말씀드려요. 기회가 닿으면 만나보세요^^

그레이스 2021-12-09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리하셔도 아깝진 않으실듯 이 페이퍼 고이 간직하시면...^^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2-10 10:35   좋아요 2 | URL
넵!!
좋은 동화는 계속 이어지니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요^^

mini74 2021-12-0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강 머리 앤 ㅎㅎ저도 넘 좋아요.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1-12-10 10:35   좋아요 2 | URL
앤은 볼 때마다 새롭고 좋아요^^

서니데이 2021-12-09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12-10 10:36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 님, 건강하고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