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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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나만 아는 고통이며 통증이기에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다. 간헐적인 통증, 불안, 견디다 못해 먹는 진통제. 통증이 일상이 되면 무뎌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떨까? 죽음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누구나 시기는 다를 뿐 죽는 게 사실이니까.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 역시 개별적인 것이다. 공포나 두려움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는 저마다 다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는 화자가 암 진단으로 죽음을 곁에 둔 친구와 일상을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소설이다. 사실 암이라는 소재만으로도 큰언니와 보낸 시간이 떠올랐다. 수술을 시작으로 다수의 화학요법과 요양, 마지막엔 표적치료까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지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어쩌면 가족이라서 그 느낌이 강했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화자는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 방문하기 위해 근처에 숙소를 구한다. 친구를 만나는 시간 외에 그 도시에서 옛 연인의 강의를 듣는다. 인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기에 아이를 낳지 말라는 연인의 까칠하고도 이상한 강의. 오롯이 친구와 화자의 이야기만으로 채워진 게 아니라서 얼핏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산문이나 에세이처럼 다가온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철학적 문장은 유려하고 아름답다. 화자가 들려주는 일상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모두 노년의 그들이다. 한때 아름다웠던 외모의 소유자, 유일한 방문자인 아들을 둔 노인. 화자 역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어 혼자 지낸다. 사는 동안 딸과 불화하며 끝내 화해하지 못하는 친구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어떤 과거를 보냈듯 결국엔 혼자가 되는 게 삶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친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화자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약을 준비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그곳에서 모든 걸 실행하겠다는 친구. 너무도 차분하고 담담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여행이나 다름없다. 친구와 화자는 그곳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휴식을 취한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의 식용은 떨어지고 활동반경도 줄어든다. 죽음을 말하고 그와 동반한 고통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인데 이상하게 편안하다. 친구가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딸에 대한 아쉬움과 속상함은 삶의 마지막이라는 전제가 아닌 그냥 보통의 이야기다. 나를 아는, 나의 모든 걸 아는 친구와 나누는 수다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자가 느끼는 불안과 죄의식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항상 문을 열어두는 친구의 문이 닫혔을 때, 오늘이 그날일까 하는 공포감. 죽음은 친구와 화자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때때로 친구에게 불어오는 절망의 기운을 화자는 볼 수 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놓는다. (149쪽)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주한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니까. 큰언니는 내게 그 순간을 부탁했었다. 마지막 순간에 병원이 아닌 집에서 보내고 싶다고. 큰언니의 임종은 내가 아닌 작은언니가 지켰다. 큰언니가 떠나고 한동안 죽음이 삶을 지배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조그마한 일에도 두렵고 불안은 커졌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경험한 순간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고 작지만 도움이 되었다. 죽음은 이렇게 삶을 단련시킨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삶.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166쪽)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겨운 날들,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은 가만히 위로를 전한다.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나의 지인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전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심한 듯 내뱉는 말, 어떻게 지내요? 괜찮아요? 란 말이 필요한 시대라는걸. 늦지 않게 안부를 전하는 일,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전하며 살피는 게 살아가는 동안 소중하다고. 지금 우리가 읽고 느끼면 더 좋을 그런 소설이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Quel est ton tourmemt?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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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1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꺼려하는 주제!
주변에 아픈 사람이 많아서...
질문은 다가 오네요
껠레똥뚜르망?

자목련 2021-09-14 11:18   좋아요 1 | URL
아, 아픈 분들이 많으시군요.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어요.
죽음을 다루는데 제게는 그 과정이 편안한 일상을 들려주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레이스 님,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초란공 2021-09-13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병원신세를 져본 사람이라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지 새삼 놀라기도하고 절망스러운 기분마져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인듯 싶네요..

자목련 2021-09-14 11:16   좋아요 2 | URL
병원이라는 공간이 그렇지요. 말씀처럼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안도의 기운을 전해주는 곳도 병원이지 싶어요. 작가의 통찰과 사유가 놀라웠어요.초란공 님, 맑은 하루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1-10-0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10-11 10:17   좋아요 1 | URL
이곳에도 감사해요^^*

새파랑 2021-10-08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당선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0-11 10:18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0-0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0-11 10:1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향기로운 가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