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고 있다.
아직도 죽은 자들의 계절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산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사를 듯이 강해지는 햇빛을 받아 산은 녹음으로 불타오르고 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발했다.
나비사는 새벽녘이면 산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시달리며 꿈을 꾼다. 봄이 지나도록 찾아오지 않는 식구들을 찾는 목소리, 무심한 가족들을 저주하는 목소리, 산에 사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목소리들이 그의 잠을 방해한다.
나비사는 대낮에도 꿈을 꾼다. 산에 들어갈 예정이 없는 날에도 몰려오는 파도처럼 그를 부르는 목소리를 언제나 느낀다.
무더위가 가신 다음에야 마지못해 산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안색이 좋지 않고 겁먹은 눈빛으로 쭈뼛거린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다 못해 두려운 마음으로 이제야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 줄 결심을 한 사람들이다.
이 시기에 산에 들어가려면 힘이 든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겁고 산을 기는 목소리에는 불온한 울림이 있다. 나비들도 지쳐서 힘없이 날아간다.
대낮의 이글거리는 햇볕이 사람들을 태울 듯 뜨겁다.
나비사는 땀을 몹시 흘렸다.
오늘은 산이 거칠다. 들려오는 목소리도 몹시 험악하다.
나비사는 끊임없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돌을 셌다.
아무래도 싸움을 하다가 실수로 목숨을 잃은 사람 같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음울했고, 산 앞에서 새파랗게 질려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나비들은 죽은 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비사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검은 냉기 같은 것이 몸을 타고 올라온 것이다. 땅이 울릴 것만 같은 저주의 목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나비사는 비틀거렸다.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뒤따라오던 가족들도 와들와들 떨며 머리를 감싸고 땅바닥에 엎드려 꼼짝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비사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 꽃을 찾아 바다에 가라앉히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산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가 점점 뜨거워졌다.
드디어 그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나무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는데, 핏빛이었다. 게다가 모양이 마치 사람 손처럼 생긴 자극적인 꽃송이들이었다.
나비사는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나무 위에서 쏟아지듯 들리는 저주의 목소리를 구슬려 가면서 긴 시간을 들여 충고를 하고, 용기를 내어 나무 줄기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겨우 손에 잡힌 꽃은 손을 태워버릴 듯이 뜨거웠다.
나비사는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필사적으로 뜨거운 것을 참고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어두운 은빛 바다에 떨어뜨렸는데도 꽃은 한동안 수면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좀처럼 꺼질 줄 모르는 꽃에게 나비사는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이제 그만 가라앉아라. 황천 으로 가거라.
그렇게 오랫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여름 끝 무렵의 불꽃놀이처럼 겨우 불은 다 타 버렸고, 꽃은 허무하게 가라앉았다.
나무 밖으로 나온 나비사는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순간적으로 자신도 다 타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밖에 있는 자신의 손을 소년이 잡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를?
소년은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산 쪽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서 쏜살같이 달려왔다고 했다.
아, 살았구나. 소년의 눈물을 보면서 나비사는 그제야 숨을 쉬었다. 영영 그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지쳐 버린 나비들을 불러들이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산을 내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