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지나고 날이 바뀌었다.
죽은 자들이 허덕이며 울부짖는 계절도 거의 끝나 간다.
그 여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나비사는 홀쭉하게 야윈 몸으로 산에 들어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모든 나비사들이 일제히 산에 들어가는 날이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은 죽은 자들을 다같이 위로하고, 다같이 남은 꽃들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런 날에는 더 이상 나비들은 필요 없다.
사방에서 서로를 부르는 방울 소리가 들린다.
나비사들이 방울을 울리며 산에 들어갈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나비사들이 목청껏 기도를 올리자, 기도 소리와 산의 소리가 합쳐지며 숲 위에서 소용돌이쳤다.
문득 나비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년이 따라오고 있었다.
나비사는 화난 얼굴로 고개를 저었지만 소년은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한동안 노려보았지만 결국 나비사가 꺾이고 말았다. 다른 나비사들에게는 비밀로 하자는 몸짓을 보내자 소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뛰어왔다.
방울 소리와 나비사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을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나비사는 소년에게 자기 곁에 꼭 붙어 있으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산이 울고 있다. 흔들리고 있다. 아비규환에 휩싸여 떠들썩해진다. 지하로 가라앉기 싫은 죽은 자들과 가라앉히려는 나비사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기도 소리가 하늘을 쪼갤 듯이 커졌다. 목걸이를 더듬는 나비사의 손이 점점 빨라지더니 격렬해졌다. 나무들이 흔들리고 꽃이 떨어졌다. 바람인지 목소리인지 모를 돌풍이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 지나갔다.
꽃들이 사라졌다. 패배한 것이다. 가 버리는 여름이, 자신들의 계절이 아쉬워서 비명을 지르며 꽃들은 차례로 가라앉았다.
태양이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산은 차차 조용해졌다.
방울 소리도 기도 소리도 잦아들더니, 이윽고 작은 새의 속삭임처럼, 수면의 물방울처럼 사라졌다.
햇빛이 많이 약해졌다.
산은 또다시 정적을 되찾았다.
더 이상 방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저주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계속 나비사에게 매달려 있던 소년이 꿈에서 깨어난 듯 입을 열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여름은 끝났다.
나비사는 해질녘 바람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다음에도 귀에 익숙한 그 소리는 가늘게 남아 있었다.
나비사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약간 끄떡였다.
알고 있어. 나 여기 있어. 이제야 모든 게 끝났어. 지금부터 그쪽으로 갈게.
나비사는 조금 쌀쌀해진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더니 걷기 시작했다.
아까 오던 길이 아니었다. 소년은 의아한 듯 얼굴을 들고 얼른 일어나 나비사를 따라갔다.
나비사는 이제 모자를 벗고 있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디로 가는 걸까? 소년은 의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다른 나비사들의 모습이 멀리 보였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나비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소년의 존재는 잊은 것 같았다. 소년은 놓치지 않으려고 죽을 둥 살 둥 쫓아갔다.
숨을 헐떡이며 덤불을 헤치며 소년은 나비사를 따라갔다.
소년은 나비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섰다.
언제나 묶고 다녔던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한 남자가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작은 나무가 있었다. 잎사귀만 무성한 그 나무에는 작고 파르스레한 꽃이 달랑 한 송이 남아 있었다.
그는 살며시 꽃을 만지더니 천천히 입을 맞췄다.
꽃은 이미 질 시기가 지났는지,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잎이 호르르 흩어지면서 싸늘한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소년은 흩어진 꽃잎을 눈으로 쫓았지만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대로 서 있던 나비사는 그제야 생각났는지 소년을 돌아보며 싱긋 웃고는 돌아가자고 했다.
누구예요? 소년이 물었다.
나비사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은 작은 나무를 자꾸 뒤돌아보며 걸었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나비사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아직은 알 필요가 없겠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좋은 나비사가 된다는 사실은.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소년은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나비사에게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나비사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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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반쪽 2009-03-1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소년의 소중한 사람.. 이 나비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잘읽었어요.. 아직도 뭐가뭔지 잘 모르겟지만
신비롭고 따뜻한 느낌이 좋내요

뒷북치는느림뽀 2009-03-1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젤 첫회에서 나왔던 좋은 나비사가 되기위한 네번째 조건이란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거였어요..
그래서 나비사는 늘 외로운 존재였던 것이구..
흠..어쩐지 조금 슬픈데요.. 그래두 참 신비로운 이야기 였어요~~ ^^*

뒷북소녀 2009-03-1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전 갑자기 섬뜩한걸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거라니...

chucahat 2009-03-1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치는 느림뽀님의 해설후에서야 이해가 되네요...

그러고보니,,, 느림뽀님의 책읽는 솜씨가 대단하네요~
그제서야,,, 리쿠님의 소설이 훌륭하단 생각이...

파이 2009-03-1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생각했던거하곤 좀다르게 나갔네요.
짧은 단편의 온다리쿠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해서 좋네요.
드라마처럼 왠지 애달퍼지는 최종회였습니다.
그럼 다음주는.. 뱀과 무지개네요. 문득 '3월은 붉은 구렁을'이 생각나네요.
어떨까요? 두근거리며 다음주를 기약합니다.

푸른산빛 2009-03-1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으루 이 블로그를 발견해서 반가운 맘으로 그동안 연재됐던 글들 몽땅 읽었습니다.
역시 온다리쿠...ㄷㄷㄷㄷ
어서 책이 나왔음좋겠어요-

이 작품은 참 신비롭고도 끝엔 눈물이 왈칵솟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구별탐험가 2009-03-1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짧지만 여운은 오래 갈 듯...

나비사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온다 리쿠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


현지 2009-03-1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ㅡ
마음이 애잔해지네요..
ㅠㅠ
 


여름이 오고 있다.
아직도 죽은 자들의 계절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산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사를 듯이 강해지는 햇빛을 받아 산은 녹음으로 불타오르고 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발했다.
나비사는 새벽녘이면 산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시달리며 꿈을 꾼다. 봄이 지나도록 찾아오지 않는 식구들을 찾는 목소리, 무심한 가족들을 저주하는 목소리, 산에 사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목소리들이 그의 잠을 방해한다.
나비사는 대낮에도 꿈을 꾼다. 산에 들어갈 예정이 없는 날에도 몰려오는 파도처럼 그를 부르는 목소리를 언제나 느낀다.
무더위가 가신 다음에야 마지못해 산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안색이 좋지 않고 겁먹은 눈빛으로 쭈뼛거린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다 못해 두려운 마음으로 이제야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 줄 결심을 한 사람들이다.
이 시기에 산에 들어가려면 힘이 든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겁고 산을 기는 목소리에는 불온한 울림이 있다. 나비들도 지쳐서 힘없이 날아간다.
대낮의 이글거리는 햇볕이 사람들을 태울 듯 뜨겁다.
나비사는 땀을 몹시 흘렸다.
오늘은 산이 거칠다. 들려오는 목소리도 몹시 험악하다.
나비사는 끊임없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돌을 셌다.
아무래도 싸움을 하다가 실수로 목숨을 잃은 사람 같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음울했고, 산 앞에서 새파랗게 질려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나비들은 죽은 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비사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검은 냉기 같은 것이 몸을 타고 올라온 것이다. 땅이 울릴 것만 같은 저주의 목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나비사는 비틀거렸다.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뒤따라오던 가족들도 와들와들 떨며 머리를 감싸고 땅바닥에 엎드려 꼼짝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비사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 꽃을 찾아 바다에 가라앉히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산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가 점점 뜨거워졌다.
드디어 그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나무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는데, 핏빛이었다. 게다가 모양이 마치 사람 손처럼 생긴 자극적인 꽃송이들이었다.
나비사는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나무 위에서 쏟아지듯 들리는 저주의 목소리를 구슬려 가면서 긴 시간을 들여 충고를 하고, 용기를 내어 나무 줄기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겨우 손에 잡힌 꽃은 손을 태워버릴 듯이 뜨거웠다.
나비사는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필사적으로 뜨거운 것을 참고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어두운 은빛 바다에 떨어뜨렸는데도 꽃은 한동안 수면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좀처럼 꺼질 줄 모르는 꽃에게 나비사는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이제 그만 가라앉아라. 황천 으로 가거라.
그렇게 오랫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여름 끝 무렵의 불꽃놀이처럼 겨우 불은 다 타 버렸고, 꽃은 허무하게 가라앉았다.
나무 밖으로 나온 나비사는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순간적으로 자신도 다 타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밖에 있는 자신의 손을 소년이 잡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를?
소년은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산 쪽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서 쏜살같이 달려왔다고 했다.
아, 살았구나. 소년의 눈물을 보면서 나비사는 그제야 숨을 쉬었다. 영영 그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지쳐 버린 나비들을 불러들이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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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2009-03-12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비사와 봄, 그리고 '여름'이 왔군요. 보면볼수록 음양사같네요.(하는일이 좀 다르긴하지만) 한국쪽으론 영매나 무당같고.. 아직까지는 나비사의 '일'을 보여주는 정도인데, 이제부터 펼쳐지려나요. 한번붙들면 쭉보는 스타일인 저로서는 짧막하게 하나씩보니까 무지 애가타네요ㅠ

뒷북치는느림뽀 2009-03-1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자의 안식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로군요, 영혼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사람, 나비사,,
그런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나라에나 있지만, 나비와 산을 통한 의식을 치루는 나비사란 존재는 처음 듣는것 같아요
역시 재미있어요,^^
그리구 저 소년은, 아마두 나비사가 될 소질이 많은 아이인가봐요~
내일 이야기가 또 기다려집니다,^^

미니반쪽 2009-03-12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와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봤는데 잘 기억은 안나내요. 그래도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중국신화중 하나인 나비신화 양축인데.. 그게 또 자꾸 생각나면서 더 좋아지내요^^ 소년은 정말 타고났나봐요.. 나비사가 될 소질이.. 참...이름도 이쁘게 지었내요^^

카무 2009-03-1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자들을 배웅하는 사람, 나비사.
최근에 장례사를 주제로 해서 나왔던 일본영화가 생각나네요.
앞으로도 재밌게 읽겠습니다~
 


태양은 천천히 움직인다.
꽃이 피고, 꽃이 진다. 벌레들이 새들이 짐승들이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나비사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달력을 보면서 날을 잡아 산으로 간다. 나비를 풀어놓고 그 나비를 따라가 꽃을 찾아서 지하의 바다에 가라앉힌다.
온실에서 나비를 키우고 설탕물을 만들고 벌레통을 준비한다.
꽃을 달인 차를 마시며 혼자 어두운 사랑방에서 한숨을 돌린다.
그날 이후로 소년이 놀러오기 시작했다.
같이 풀을 뜯기도 하고 꽃잎을 말리기도 하고 뒤뜰에서 벌레통을 만들면서 지냈다.
나비사가 될 수 있을까요?
소년은 주저하면서 물었다.
나비사는 미소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년도 그 점을 느꼈는지 우물거리더니 고개를 수그렸다.
나비를 받으러 가자고 나비사가 권했다.
받아요?
소년은 그 말을 되물었다. 나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산한테 받으러 가자.
두 사람은 나란히 집을 나섰다.
잔잔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오늘도 산속은 방울 소리로 가득하다.
청량한 방울 소리의 잔물결이 사방에서 흘러왔다가는 멀어지고 스쳐 지나갔다가는 사라졌다.
나비사는 오늘도 그 가는 목소리를 느낀다. 그를 향해 울려오는 그 비밀스러운 목소리.
여기에 있어요. 오늘은 갈 수 없어.
나비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한숨 쉬듯 살며시 사라졌다.
구릉에는 키 높은 여름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곤충들은 여기저기에 집을 짓고 있었다. 소년은 환성을 지르며 풀 속을 뛰어다녔다.
야생 나비가 극채색 색종이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하늘이 먼 곳에서 한순간 축복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나비사는 소년의 나비를 받을 생각이었다. 나비사들은 산에 사는 야생 나비를 받아서 자신의 나비로 삼아야 한다.
소년을 나비사로 키울지 어쩔지는 아직 모르겠다. 소질은 있지만 과연 나비사가 되는 길이 소년에게 좋은 일일까. 나비사는 고민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목수나 농부처럼 평범한 일이나 하면서 살게 했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조만간에 이 아이는 나비의 길을 찾고 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겠지.
소년은 신이 나서 매미채를 휘두르고 다녔다.
나비사는 소년을 도왔다.
쏟아져 내려오는 나비 중에서 소년이 손에 넣은 것은 태양빛이 담뿍 담긴 과실 빛깔의 나비였다.
소년은 장밋빛 뺨을 반짝이며, 새로 만든 벌레통 속의 나비를 들여다보았다.
소년에게 어울리는 나비라고 나비사는 생각했다.
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두 사람은 해 저문 길을 돌아왔다.
나비사는 외로운가요?
소년이 문득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나비사는 얼굴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소년은 발밑을 내려다보며 볼멘소리를 했다.
나비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그런 일은 외로운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봄은 죽은 자들의 계절.
하늘에서 내려오는 색종이. 들판을 지나는 깃발.
마지막 조건을 갖추게 된 날이 언제였더라.
맞아, 외로운 사람이 좋은 나비사가 된다는 말이 있어.
나비사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보면서 대답했다.
왜죠?
그 편이 산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니까. 시끌벅적한 방에 있는 사람은 밖에서 비가 오거나 건너편 밭에서 개가 짖어도 잘 모르잖니. 그런 것과 마찬가지야. 조용한 방에 있으면 먼 곳에서 누가 울고 있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거든.
소년은 불안한 듯 나비사를 보았다. 나비사는 미소짓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의 말을 이해하겠지.
소년의 작은 손이 나비사의 겉옷을 잡았다.
작은 벌레통을 품에 안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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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2009-03-1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외로운 나비사.. 시끄러운 방안에 있는 사람은 먼곳의 소리를 들을수 없다.라는 문구가 맘에 드네요.

뒷북치는느림뽀 2009-03-1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림에 비해 넘 짧은 글,,아쉽기만해요~~~ 목마름이 계속 되는군요.. 아웅~~,

뒷북소녀 2009-03-1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또다시 다음회를 기다려야겠어요...ㅠ.ㅠ

미니반쪽 2009-03-12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이님의 말씀과 동감...같은 부분이 참 맘에 들었는데^^
 


길은 틀리지 않았다. 나비의 길은 하늘에 있고 목소리에 대답하고 있다.
색이 돌아왔다.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목소리에 나비사는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목소리라고 전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 정도로 마음이 싸늘해지는 느낌의 목소리도 섞여 있다.
숲 속의 완만한 오르막길로 들어섰다. 나무들을 에워싼 향기로운 꽃향기에 사람들의 표정은 추억으로 흔들렸다. 그들은 죽은 자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행여나 보일까 나뭇가지 쪽을 두리번거렸다.
산에 들어와서 나비들을 느끼는 일만 가능해지면 나머지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나비사는 눈을 거의 감은 채로 산길을 걷는다.
아까부터 그는 하나의 목소리를 느끼고 있었다. 먼 곳에서 한 가닥 실처럼 나지막하게 살며시 그에게 다가오는 목소리. 아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무시하고 있었다.
가슴 어딘가가 바늘에 찔리는 듯 아프다. 계속해서 뜨끔거리다 보니 이제는 아예 익숙해졌다.
여기예요, 여기. 지금은 갈 수 없어. 지금은 거기 못 가.
나비사는 가만히 가슴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가는 목소리는 항의라도 하듯이 또다시 나비사 안에서 울린다. 아직이야. 지금은 그곳에 갈 수 없어. 나비사는 그 목소리를 자기 안에서 몰아냈다.
소리는 사라지고 이내 조용해졌다. 나비사는 안도했다.
나비를 느낀다. 그들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다.
나비사는 윗옷 주머니에서 방울을 꺼내 딱 한 번 울렸다.
뒤따라오던 유족들이 긴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목적지에 다 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발밑의 풀들이 소리를 냈다. 새로 움튼 풀 냄새가 자욱하게 올라오면서 사람들의 땀 냄새와 섞였다.
나비사는 또 한 번 색을 느꼈다. 연한 우윳빛 레이스처럼 반짝이는 색이었다.
아름다고 기품이 있는 걸로 보아 제대로 핀 꽃임에 틀림없다.
길이 좁아지면서 가파른 비탈길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다시피 올라갔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기어 올라오던 사람들이 일제히 얼굴을 들었다.
모두의 입에서 짧은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한 그루가 시야가 좋은 산 중턱에 우뚝 솟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이 바로 그들이 찾는 곳임을 직감했다.
가느다란 외길이 그 나무 밑동까지 이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다녀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조신하게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나비사의 눈은 나뭇가지에 앉아 날개를 쉬고 있는 나비들의 모습을 쫓고 있었다. 나비들은 늘 그렇듯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모였다. 이 아름답게 핀 새하얀 꽃 중에는 작년에 돌아가신 노인의 부인도 있었다. 나비사는 엷은 빛이 꽃에서 뻗어 나와 사람들을 감싸는 것을 보았다.
아까 그 소년이 퍼뜩 얼굴을 드는 것을 나비사는 놓치지 않았다.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겁먹은 눈으로 나무를 올려보았다.
그렇다, 소년은 빛을 느낀 것이다. 나비사는 감탄했다. 틀림없이 유망한 나비사감이다.
의식이 시작되었다. 나무 앞에 막을 치고 깃발을 세웠다.
나비사가 기도를 올리면 사람들이 따라 하고, 나비사가 종을 울리면 거기에 맞춰 사람들이 노래했다.
의식은 끝나고 사람들은 돌아갔지만, 나비사는 그 자리에 남았다. 이제부터 하는 의식은 나비사 혼자 해야 한다.
나비사는 나무 아래에 서서 모자를 벗어 땅바닥에 놓았다. 눈을 감고 목걸이를 잡고 나무 줄기에 손을 댔다. 꼼짝 않고 기도를 올리는 동안 손바닥이 점점 뜨거워졌다.
나무 줄기가 물렁하게 녹는 감촉이 느껴진다. 나비사는 나무 안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줄기 속을 헤엄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꽃을 찾는다. 앞쪽에서 순백의 빛을 발하는 꽃을 발견한다. 줄기를 통해 가만히 손을 뻗어 빛을 따서 나무 뿌리 쪽으로 내려간다.
어둡고 축축한 세상. 그곳에는 죽은 자의 꽃을 모시는 장소가 있다.
나비사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빛이 보인다. 이번에는 달빛 같은 빛이다. 싸늘하고 고요한 빛을 가득 담은 바다가 그곳에 있다. 군데군데 부연 덩어리처럼 점멸하는 것들은 다른 나비사들이 가라앉힌 꽃이다.
나비사는 가만히 바다 위에 서서 천천히 꽃을 바다에 가라앉혔다. 처음에는 둥실 떠오르던 꽃이 이윽고 소리도 없이 가라앉았다.
그것을 지켜보고 기도를 올린 다음, 나비사는 조용히 떠올랐다. 은빛 바다에서 멀어져 축축한 나무 뿌리를 지나 어두운 나무 줄기에서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곳에는 목걸이를 쥔 채로 나무 줄기를 손으로 누르고 있는 자신, 열심히 기도문을 중얼거리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외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데, 다음 순간에는 완전히 일치하여 하나의 나비사가 돼 있었다.
나비사는 긴 한숨을 쉬었다. 이 순간이 가장 안도하는 시간이다.
무사히 꽃을 은빛 바다에 가라앉힌 것에 대해 감사하며 나비사는 모자를 썼다.
눈부신 듯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뭇가지에 있는 나비들을 불렀다.
가장자리에서 광채가 나는 검은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와 나비사의 벌레통 안으로 들어갔다.
나비사는 만족하고 약간은 지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은 죽은 자들의 계절.
이 계절이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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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2009-03-1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라오자 마자 읽게되다니 기쁘네요. 읽으면서 상상되는 나비사의 모습이.. 음양사같네요.
요번단편은 두려움보다는 신비로움이 가득하네요. 물론 반전이있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또 내일을 기다리려니 너무나 설레고 애가 탑니다.

뒷북치는느림뽀 2009-03-1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의식을 행하는 자 나비사, 정확히 어떤 의식인지 확 와닿지는 않지만,,은은히 느껴지는듯해요,,
나비란 단어가 주는 신비로움과 잘 어우러지는 소설일듯,,
또 내일을,, ㅎㅎ

미니반쪽 2009-03-1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아직 잘 모르겠지만 죽은 자들의 안식을 위한 일인거 같으데.. 왜 그게 하필 나비와 연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암튼 내일이 또 너무 기달려지내요^^

뒷북소녀 2009-03-10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양사요? 영화를 보지 못해서 전 제대로 그려지지가 않네요.
이러다가 불현듯 공포가 나타날까봐 두근두근거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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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2009-03-0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師-
처음 듣는. 존재의 이야기라-
더 궁금해지는 듯.

봄이. 죽은자들의 계절이라--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주춤..스러워지기도 한다
.

손님 2009-03-09 10: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작가의 관점일 뿐이죠. ^^

뒷북치는느림뽀 2009-03-09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번째 조건을 채우고 드디어 그는 나비사가 되었다,,
네번째 조건이 뭘까요~,
죽은자들의 계절, 봄,,
나비사를 따라 가는 사람들은 나비사를 통해 뭘 보려는걸까요?
나비사들은 어디로 그들을 안내하는 걸까요,,
점점 궁금증만 커지네요,,

또 내일을 기다려야는군요.. 후후,,즐거운 기다림이에요.^^

뒷북소녀 2009-03-0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은 죽은자들의 계절이라...
온다 리쿠는 마냥 따스하게 보이는 소재로도 섬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

미니반쪽 2009-03-10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내요..

파이 2009-03-10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온다리쿠가 '나비'를 보던 관점은 '굽이치는 강가에서'에서 바뀌지않았군요. 좋아하던 구절이 생각나서 미소짓게되네요. 나비사라는 생소한 소재를 가지고 앞으로 어떤 신비한 이야기를 그려나갈지 기대가됩니다.
특히 네번째 조건이라는게 신경쓰이네요.

MS45 2009-03-1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리쿠 새로운 소설 기대 되네요!

한홍주 2009-03-15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봐도 처음에요
저도 온다리쿠 새로운 소설 기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