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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언니. 핏빛 석양이 잠기고 있어.
우리는 저런 빛깔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두 번밖에 보지 못했어.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지? 어려서 꾸었던 꿈이 또다시 나를 찾아왔나? 우리가 쓴 시로도, 즐거운 연기를 하며 무대에 올렸던 우리들의 대사로도 이 두근거림이 지워지질 않아.
우리는 무엇을 지켜 왔지? 붉은 뱀은 어디로 갔을까?
더 이상 그 뱀은 나의 무릎을 찾아오지 않아. 비늘을 번들거리며 왼발 쪽으로 기어올라오지도 않아. 언제나 찾아왔던 나의 뱀은 결국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가 버렸어.
사랑하는 내 동생아, 뱀은 이제 없어.
왜냐하면 밤무지개와 함께 암흑 속으로 추락해 버렸거든. 색채를 잃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어. 뱀은 자기가 무지개를 옥죄는 이유를 몰라. 사랑인지 미움인지, 그걸 확인할 방법이 뱀에게는 없어.
뱀은 그냥 혼신의 힘을 다해 계속 무지개를 옥죄었을 뿐이야. 양쪽 모두 힘이 빠져서 암흑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그 순간까지.
아아, 사랑스러운 아이야,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네가 그런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나는 왠지 불안해져. 머릿속이 부옇게 흐려지고 먼 곳에서 검은 현이 울려.
나는 이제 네가 새벽녘에 꾼 꿈을 몰라.
작은 제비꽃 자수가 놓인 베개에서 꿈꾸는 일도 없어.
더 이상 나는 너의 꿈을 밝은 결말로 이끌어갈 수 없단다. 나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 버렸어.
우리는 색채와 점액을 잃고 이렇게 여기서 조용히 썩어 갈 거야.
아아, 핏빛 같은 석양이 잠기고 있어.
언니, 누가 오고 있어.
핏빛 같은 노을 속을, 누군가가 이쪽으로 우리를 향해 오고 있어.
왜지? 무척 낯이 익어. 저 사람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느낌이야. 저 사람이 우리가 지켜 온 것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아. 저 사람이라면 내 뱀을 찾아줄지도 몰라. 어쩌면 언니의 무지개도 다시 한 번 찾아줄지도.
아아, 언니. 핏빛 같은 노을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그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어…….
“저길 봐, 노을이 왠지 으스스한걸.”
“바람이 차네요. 이제 안으로 들어가요.”
무섭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베란다에 서 있던 남녀는 저녁 바람에 몸을 가볍게 떨더니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나, 뭐라고 옹알대고 있어요. 말이 되지는 않지만.”
여자가 생긋 웃었다.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작은 침대 안에는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쌍둥이 자매가 거품 같은 옹알이를 번갈아 하고 있었다.
남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큼지막한 손으로 딸들을 안아 올렸다.
뭔가 옹알거리는 딸들을 안고 그는 황혼의 빛 속을 걷기 시작했다.
“자, 보렴.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단다. 이 석양에 약속하마. 이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 너희들에게 주겠다.”
딸들은 작은 눈을 크게 뜨고 무시무시한 노을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과거와 미래의 꿈이 눈앞에 스치는 것을 느끼면서. |
지난 3주간 진행해 온 온다 리쿠의 <나비> 온라인 독점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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