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천천히 움직인다.
꽃이 피고, 꽃이 진다. 벌레들이 새들이 짐승들이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나비사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달력을 보면서 날을 잡아 산으로 간다. 나비를 풀어놓고 그 나비를 따라가 꽃을 찾아서 지하의 바다에 가라앉힌다.
온실에서 나비를 키우고 설탕물을 만들고 벌레통을 준비한다.
꽃을 달인 차를 마시며 혼자 어두운 사랑방에서 한숨을 돌린다.
그날 이후로 소년이 놀러오기 시작했다.
같이 풀을 뜯기도 하고 꽃잎을 말리기도 하고 뒤뜰에서 벌레통을 만들면서 지냈다.
나비사가 될 수 있을까요?
소년은 주저하면서 물었다.
나비사는 미소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년도 그 점을 느꼈는지 우물거리더니 고개를 수그렸다.
나비를 받으러 가자고 나비사가 권했다.
받아요?
소년은 그 말을 되물었다. 나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산한테 받으러 가자.
두 사람은 나란히 집을 나섰다.
잔잔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오늘도 산속은 방울 소리로 가득하다.
청량한 방울 소리의 잔물결이 사방에서 흘러왔다가는 멀어지고 스쳐 지나갔다가는 사라졌다.
나비사는 오늘도 그 가는 목소리를 느낀다. 그를 향해 울려오는 그 비밀스러운 목소리.
여기에 있어요. 오늘은 갈 수 없어.
나비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한숨 쉬듯 살며시 사라졌다.
구릉에는 키 높은 여름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곤충들은 여기저기에 집을 짓고 있었다. 소년은 환성을 지르며 풀 속을 뛰어다녔다.
야생 나비가 극채색 색종이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하늘이 먼 곳에서 한순간 축복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나비사는 소년의 나비를 받을 생각이었다. 나비사들은 산에 사는 야생 나비를 받아서 자신의 나비로 삼아야 한다.
소년을 나비사로 키울지 어쩔지는 아직 모르겠다. 소질은 있지만 과연 나비사가 되는 길이 소년에게 좋은 일일까. 나비사는 고민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목수나 농부처럼 평범한 일이나 하면서 살게 했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조만간에 이 아이는 나비의 길을 찾고 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겠지.
소년은 신이 나서 매미채를 휘두르고 다녔다.
나비사는 소년을 도왔다.
쏟아져 내려오는 나비 중에서 소년이 손에 넣은 것은 태양빛이 담뿍 담긴 과실 빛깔의 나비였다.
소년은 장밋빛 뺨을 반짝이며, 새로 만든 벌레통 속의 나비를 들여다보았다.
소년에게 어울리는 나비라고 나비사는 생각했다.
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두 사람은 해 저문 길을 돌아왔다.
나비사는 외로운가요?
소년이 문득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나비사는 얼굴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소년은 발밑을 내려다보며 볼멘소리를 했다.
나비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그런 일은 외로운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봄은 죽은 자들의 계절.
하늘에서 내려오는 색종이. 들판을 지나는 깃발.
마지막 조건을 갖추게 된 날이 언제였더라.
맞아, 외로운 사람이 좋은 나비사가 된다는 말이 있어.
나비사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보면서 대답했다.
왜죠?
그 편이 산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니까. 시끌벅적한 방에 있는 사람은 밖에서 비가 오거나 건너편 밭에서 개가 짖어도 잘 모르잖니. 그런 것과 마찬가지야. 조용한 방에 있으면 먼 곳에서 누가 울고 있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거든.
소년은 불안한 듯 나비사를 보았다. 나비사는 미소짓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의 말을 이해하겠지.
소년의 작은 손이 나비사의 겉옷을 잡았다.
작은 벌레통을 품에 안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