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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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writing) 클럽’. 두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 글쓰는 일을 지망하고 갈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책읽기를 좋아하던 나는 별 생각없이 끄적거린 글이 글짓기상을 타면서 ‘아, 내게 글솜씨가 있구나’ 깨닫게 됐고, 그 후부터 본격적으로 글이란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클럽활동을 정할 때는 문예부에 들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글짓기, 시, 소설 등 장르는 다르지만 글을 쓰는 일은 똑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학 진학도 국문과와 문예창작과를 이중전공하여 수학했다. 그렇게 이십년이 넘는 세월을 글을 쓰며 자라왔다. 그러면서 막연히 작가가 되겠다고 꿈을 가졌다. 그 글이 시든 소설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글을 써야겠다고, 즉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결정한 건 대학생 때였던 것 같다. 학과 공부를 마치고 본격적인 드라마작가 지망생으로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소설 ‘라이팅 클럽’ 속 주인공은 곧 나의 이야기와 같았다. 완벽히 감정이입이 되어 읽은 책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영인이란 여자로, 작가 지망생으로 수십 년째 별 볼일없는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싱글맘을 엄마로 두었다. 계동이란 동네에서 글짓기교실을 열어 초등학생들의 받아쓰기와 간단한 글짓기를 가르쳐주는 일을 하는 영인의 엄마는, 김작가로 통한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데뷔도 안 한 작가지망생에 불과하지만 문예잡지에 실린 에세이 한 편으로 마치 잡지 한권을 다 쓴 것처럼 명함과 포스터를 파서 돌리는 통에 사람들은 그녀를 자연스레 김작가로 부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자라는 영인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글쓰는 행위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 아니, 어쩌면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영인은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아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캐릭터였는데, 연애 한번 못해본 영인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겐 그 누구가 됐건 과감하게 다가가 대쉬를 하고, 곧바로 거절을 당하고 돌아와 마음을 접고 또다른 상대를 찾는, 다소 4차원인 여자다. 남자에게 오죽 많이 차여봤으면 같은 여자가 짝인가 싶어 같은 반의 날라리 여고생에게 대쉬를 하기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거칠게 욕을 하면서도 친구가 된 부잣집 딸 R. 영인에게 직접 다가와 사귀자고 하는 여자친구도 있다. (이 여자친구와는 키스까지 한다.) 이 모든 인물들이 고교시절 한번쯤 봐왔던, 상상해봤던 캐릭터들이라 친근한 느낌이었다.

이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틈이 나는대로,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들때마다 영인은 소설을 쓴다. 그리고 그 소설을 엄마 김작가가 아닌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쓰는, 비교적 유명한 작가인 J에게 들고 가 보여준다. 다음날 빨간줄, 즉 고칠 것 투성인 소설을 돌려받고 묘사하라고, 거기다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넣어 글을 쓰면 좀 더 나아질거라는 충고를 받는다. 그렇게 소설 한 편, 두 편, 세 편을 쓰면서 영인의 글솜씨는 점점 나아진다. 그러는 와중에 먹고 살기 위한 취업을 하려고 영인은 무궁무진 애를 쓰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회사는 피라미드 회사가 전부다. 나 역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작가 생활에 고달파 취업을 생각해본적이 있고, 소설 속 영인과 같이, 나의 꿈과 점점 멀어져가는 상황에 정신이 퍼뜩 들어 다시 글쓰기로 돌아온 적이 있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김작가와 영인은 나이를 먹어가고 그 세월 속에 글은 항상 함께 한다. 그리고 김작가는 노년이 다되어서야 비로소 문예상을 수상하고 마침내 등단하여 진짜 ‘김작가’가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글을 써가는 영인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영인의 모습이, 김작가의 모습이 내 모습인 것만 같아 속에서 왈칵 치솟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도 지금의 작가 지망생 신분이, 세상에 제대로 발표도 해보지 못하고 나만의 글을 써야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가지 느낀 것은 나도 영인과 김작가처럼 글쓰는 행위를 좋아하고 갈망하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은 나의 작가 생활을 지탱해줄 힘이 될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더없이 크게 와닿을 작품으로, 꼭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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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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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단편소설 모음집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다. 대개가 겉멋에 흠뻑 빠져 이해할 수 없는 예술세계를 논한다거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들로 골치만 아프게 할뿐, 웬만큼 강렬한 인상의 소설이 아니면 도통 기억에 남질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재익 소설집을 선택하고 읽게 된 이유는 첫 번째로 강렬한 표지. 빨아들일 것만 같은 소녀의 눈망울이 이 소설집을 한번 봐봐도 좋다고 유혹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재익이라는 작가. 배꼽잡게 웃기는 라디오 프로그램 ‘컬투쇼’의 책임자인 이재익 피디가 글을 쓰는 작가인 줄은 정말 몰랐다. 또한 입소문에 의하면 이재익 피디, 아니 이재익 작가의 글이 그렇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도록 흡입력 있는 필력을 자랑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소설집, <카시오페아 공주>는 어릴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옛날이야기마냥 재미난 소설집이었다.

이 책에는 총 5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는데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책제목과 같은 ‘카시오페아 공주’였다. 아내와 사별하고 딸아이를 키우는 남자가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여교사를 엉뚱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어 대화를 나누는데, 이 여자의 황당한 말 한마디, “저 사실 외계인이에요.” 사뭇 진지한 이 여자의 정체와 함께 이 남자의 숨겨진 사연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섬집아기’.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이는 한 남자. 예쁜 아내와 아빠에게 무신경한 아들이 있다. 이 가정에 거지꼴을 한 한 남자가 남자의 친구라며 집으로 찾아와 눌러앉는다. 싫다는 아내의 말에도 친구를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는 이 남자... 친구 사이인 이 둘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어릴 적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여름밤, 등골이 오싹해지는 호러물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레몬’. 레코드 가게를 하며 소설을 쓰면서 살고 싶은 게 꿈인 한 남자에게 아나운서인 여자친구가 있다. 낭만가인 이 남자와는 반대로 현실적인 삶을 꿈꾸는 여자는 남자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이 와중에 몇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친해진 아르바이트녀와 진솔한 속얘기를 나누며 우정을 가장한 풋풋한 플라토닉 사랑을 나눈다. 잔잔한 이야기 속에 왠지 울컥해졌던 소설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좋은 사람’. 기자로 일을 하는 주인공 여자는 회사 동료의 소개로 소개팅을 나가고 꺼림칙한 인상의 남자를 만난다.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오는 이 남자를 여자는 스토커로 의심을 하고, 어릴적 쌍둥이 동생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던 여자는 병원의 의사와 상담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선배. 과연 정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 다소 잔인하여 인상을 찌푸리게도 만드는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이야기는 ‘중독자의 키스’. 언니와 형부의 집에 얹혀사는 주인공 여자는 언젠가부터 자신을 따라다니고 훔쳐보는 스토커의 존재를 눈치채고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녀에겐 동성친구보다 더 가까운 이성친구가 있는데, 이 남자는 치료할 수 있는 암에 걸렸음에도 스스로 비관적인 생각을 하며 병을 키우고 급기야 죽음에까지 이른다. 한편 여자에게 마지막 이별이라며 편지를 보내오는 스토커는 만나자는 제안을 하는데....묘한 매력을 가진 소설이다.

다섯가지의 맛, 오미자차를 마시는 듯한 느낌의 재미난 단편소설로, 왠지 모르게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러브바이러스 가득한,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같은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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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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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아리’는 86년 생으로,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 문학특기자 전형을 노리고 대학입시를 준비했던 학생이거나, 그 시기 각 대학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가해 본 사람들 사이에선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신’급인 백일장 천재, 문학천재로 불리는, 지금은 어엿한 작가가 된 그녀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 시기 문학을 꿈꾸던 소녀여서 그녀와 함께 백일장을 치른 적이 있고, 그녀가 상을 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렇게 질투심 반, 열등감 반으로 그녀의 문학적 성장을 마치 스토커처럼 추격하며 따라다녔고, 따라다니는 사이 어느새 전아리란 작가의 팬이 되어있었다. 그녀의 글이라면 어떤 글이 됐건 사서읽고, 얻어서 읽고, 빌려서 읽었다. 모조리 읽었다. 그녀에겐 분명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토록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그녀의 신작, ‘팬이야’ 역시 달달한 로맨스로 무장해 나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아이돌의 팬이 된 직장여성이란 컨셉만 보고서 ‘노팅힐’같은 스토리가 아닐까 대충 예상해봤는데,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한낱 연예인 나부랭이와의 로맨스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현대여성이 한번쯤은 꿈꿔봤음직한 알콩달콩 연애담을 담은 소설이었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혹시 짤리지나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며 팍팍하게 살아가는 여성, 김정운은 연애 경험이 있긴 하지만 모두 짝사랑이거나 불완전하게 끝나버렸기 때문에 결론적으론 한번도 제대로된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쑥맥이다. 이 연애쑥맥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졌으니, 이벤트장에서 엉겁결에 이벤트에 참가하게 된 정운은, 이벤트 당첨선물로 인기 아이돌 가수 시리우스 멤버들의 포옹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포옹과 함께 시리우스의 팬이 되고, 그 중에서도 현우라는 멤버의 팬이 되어 팬클럽 가입은 물론이고, 방송국 스케쥴까지 그를 따라다니는 소녀팬이 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맹랑한 여고생 차주희와 알게 되는데, 차주희의 소개로 방송국 녹화현장에까지 난입하게 되는 정운. 결국 방송 스텝들에게 걸려 망신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주희의 사촌오빠이자 그 방송의 조연출을 맡고 있던 우연과 인연을 맺는데, 정운보다 나이가 적은 이 연하남 우연은 적극적으로 정운에게 들이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 방송의 피디인 형민과도 알게 되어 얼키고 설키는데, 이 형민이란 남자는 나쁜남자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시니컬하고 독설을 내뱉지만 가끔씩 다정한 면모를 보여 여자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정운은 시리우스 멤버 현우의 팬이 되어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이들과 끊임없이 부딪히게 되는데....

정운은 짝사랑의 고수였다. 대학선배를 좋아하고, 결혼을 해서 아내까지 있는 유부남이 곧 이혼할 거라며 자신을 잡아달라는 소리에 갈팡질팡하는 멍청한 짝사랑쟁이. 시리우스 현우의 팬이 된 것 또한 짝사랑의 조금 다른 방식일 뿐 결국 짝사랑인 것이다. 이 짝사랑만 하는 여자에게 연하남 우연은 사랑의 조언자가 되어주고, 나쁜남자 현우와의 진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스토리다. 이야기는 단순할지 모르겠지만 이 정운이란 여자의 심리를 따라가며 사랑을 느끼고 시작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마치 내가 연애를 하고 있는 듯한 설렘을 준다. 이 능력 또한 작가 전아리의 능력일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그녀의 재미난 이야기보따리에 홀려 정신을 팔고 앉아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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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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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작가님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 문학잡지를 통해서 읽게 된 ‘곰팡이꽃’이란 작품으로 알게 된 뒤, 팬이 되어 출판사로 ‘부디 작가님께 전해주세요-’라는 글귀와 함께 팬레터를 써보내기도 한, 나의 완소작가님이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이 뭘 얼마나 안다고 하성란 작가님의 작품세계에 감명을 받고 팬까지 됐는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때 직접 친필로 보내주신 편지는 가보로 간직하려고 고이고이 보관중이다.)오랫동안 신작을 발표하지 않으셔서 무슨 일이 있으신가, 걱정도 했었는데 이번에 신작 ‘A'가 나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비밀 가득한 집단의 이야기라니... ’A'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이 작품을 읽게 하는 중요한 핵이다.

책 소개 글에 의하면 이 작품은 ‘오대양 사건’을 소재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우선 금시초문인 ‘오대양 사건’부터 알아봐야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짧은 시간 내에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1987년, 8월 29일에 일어난 사건으로(내 나이 3살 때 일어난 사건이니 금시초문일만도 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해 있던 주식회사 ‘오대양’ 공예품 공장의 식당 천장에서 32구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숨진 사람들은 ‘오대양’의 대표 박순자와 가족, 종업원 등을 포함한 신도들로, 박순자는 종말론을 주장한 사이비 교주였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던 신도들과 그의 가족들을 집단 시설에 가둬둔 뒤 신도들로부터 170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사채로 빌렸으며, 이후 3명의 신도를 살해하고 자신의 범행과 조직의 전모가 밝혀질 것을 염려해 집단 자살극을 벌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밖에 세세한 사건의 전모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그대로 모티브를 따온 소설 'A' 역시 비밀과 의문으로 가득해, 긴장감 속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시멘트 공장과 서울의 공예공장을 기반으로 ‘신신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여성은 집단 내에서 ‘어머니’로 불린다. 그러던 어느날, 쓰레기 시멘트 파동과, 무리한 공장확장으로 신신상회는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는데, 공장 다락방에서‘어머니’를 포함한 24명의 사람들이 시체로 발견된다. ‘어머니’를 따르던 7명의 젊은 여자들 또한 죽었는데, 그 여자들이 낳은 자녀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다시 모인다. 소설의 서술자인 ‘나’ 역시 살아남았는데,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살 수 있었던 듯하다.

3년이 지난 후, 이 살아남은 자녀들이 모여 시멘트 공장에 모이고 시멘트공장을 예정처럼 되살리기 위해 힘을 합친다. 그리고 이 자녀들 중 한 명을 제외한 6명의 아이들은 모두 여자였는데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어머니와 똑같은 삶의 방식으로 살고자 한다.

한편, 남자연예인들이 ‘A’라는 발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이를 추적하던 연예부기자 최영주는 ‘신신상회’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 ‘A'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아무런 단서도 없다. 주홍색으로 인쇄된 이 ‘A’는 소설 ‘주홍글자’에서와 같이 ‘간통’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끝까지 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마지막에 가서는 허탈해질지도 모른다. 작가는 끝까지 이를 밝혀내거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오대양 사건’과 마찬가지로 의문과 추측만 무성하게 남겨놓은 채 작품은 끝이 나버린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비밀’, 그들만이 알고 있는 ‘그 무엇’.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에 취해 그녀를 죽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갈구했던 왕처럼, 우리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비밀에 대한 목마름과 갈증으로, 이 작품을 오래도록 소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성란 작가님, '성란라자데'는 이번에도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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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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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감우성·손예진 주연의 <연애시대>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본방,재방에 요즘에도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해주는 방송분까지 거의 6번은 본 듯하다. 원작이 있다는 소리에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구입했고, 그래서 알게 된 작가가 ‘노자와 히사시’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감성적인 문체로 당연히 여자작가라고 생각했던 그가 남자라는 점, 2004년에 44살이란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여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작가가 일찍 사라져버렸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연애시대> 외에 그의 다른 작품이 빨리 출간되기를 바랐었는데, <심홍>이란 작품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두 말할 것 없이 선택하여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연애시대>와 함께 <연인이여>란 작품까지, 주로 남녀간의 연애 이야기만 다루는 작품을 쓰는 작가라 생각했었는데,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도 유명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가 쓰는 미스테리 스릴러 소설을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어내렸다.

이야기는 가나코라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애가 수학여행을 즐기고 있다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받고는 챙겨서 택시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가족들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구나.. 어린 아이였던 가나코도 느낌으로 눈치를 챈다. 교통사고라도 일어난 것일까? 원래 잘 안 나가는 우리 가족이었는데... 동생 두 명과 함께 엄마 아빠가 외식이라도 하고 오는 길이었나?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추리를 해보지만, 가나코가 직면해야할 사실은 너무나 참혹하고 충격적이다. 어떤 남자에게서 원한을 산 가나코의 아빠. 그 남자는 가나코의 아빠를 살해하기 위해 가나코의 집으로 쳐들어갔고, 우발적으로 가나코의 아빠는 물론 엄마, 동생 둘까지 죽였고, 죽이고 나서도 그들의 얼굴을 향해 해머로 내리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뭉개놓았다. 가나코 역시 죽을 수 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학여행 중이어서 혼자 살아남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가나코는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정신병까지 앓으며 스무살, 대학생이 된다. 스무살이 된 가나코는 그때까지도 자신을 벌한다는 의미로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강간당한다는 심정으로 섹스를 나누며 지낸다.

매스컴을 통해 알게 되는, 가족들을 죽인 남자에 대한 소식, 사형이 내려졌다는 소리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이 드는 가나코는 그 즈음 그 살인자에게도 자기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인자의 딸로 낙인 찍혀 살아갈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벌을 주고 괴롭혀주고 싶은 마음이 든 가나코는, 그녀, 미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미호의 친구가 된 가나코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관찰하며 그녀가 사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데, 복수해주리라 마음먹었던 가나코는 미호 역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인자이자 사형수인 자기 아빠의 벌을 대신 받는다는 생각으로 폭력을 쓰는 남자와 동거하며 맞고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 연민의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임신한 자신의 배를 두들겨 패 유산을 시킨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그 남자를 살인하기로 했다고, 가나코에게 도움은 요청한다. 가나코는 미호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친구로서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미호의 살인 계획에 동조하기로 하는데...피해자의 딸과 가해자의 딸이라는 서로 상반된 입장의 두 여성의 복잡미묘한 심경을 긴장감있게 묘사하여 풀어내는 노자와 히사시의 필력은 아주 탁월했다. 감성적인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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