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지나고 날이 바뀌었다.
죽은 자들이 허덕이며 울부짖는 계절도 거의 끝나 간다.
그 여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나비사는 홀쭉하게 야윈 몸으로 산에 들어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모든 나비사들이 일제히 산에 들어가는 날이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은 죽은 자들을 다같이 위로하고, 다같이 남은 꽃들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런 날에는 더 이상 나비들은 필요 없다.
사방에서 서로를 부르는 방울 소리가 들린다.
나비사들이 방울을 울리며 산에 들어갈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나비사들이 목청껏 기도를 올리자, 기도 소리와 산의 소리가 합쳐지며 숲 위에서 소용돌이쳤다.
문득 나비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년이 따라오고 있었다.
나비사는 화난 얼굴로 고개를 저었지만 소년은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한동안 노려보았지만 결국 나비사가 꺾이고 말았다. 다른 나비사들에게는 비밀로 하자는 몸짓을 보내자 소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뛰어왔다.
방울 소리와 나비사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을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나비사는 소년에게 자기 곁에 꼭 붙어 있으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산이 울고 있다. 흔들리고 있다. 아비규환에 휩싸여 떠들썩해진다. 지하로 가라앉기 싫은 죽은 자들과 가라앉히려는 나비사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기도 소리가 하늘을 쪼갤 듯이 커졌다. 목걸이를 더듬는 나비사의 손이 점점 빨라지더니 격렬해졌다. 나무들이 흔들리고 꽃이 떨어졌다. 바람인지 목소리인지 모를 돌풍이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 지나갔다.
꽃들이 사라졌다. 패배한 것이다. 가 버리는 여름이, 자신들의 계절이 아쉬워서 비명을 지르며 꽃들은 차례로 가라앉았다.
태양이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산은 차차 조용해졌다.
방울 소리도 기도 소리도 잦아들더니, 이윽고 작은 새의 속삭임처럼, 수면의 물방울처럼 사라졌다.
햇빛이 많이 약해졌다.
산은 또다시 정적을 되찾았다.
더 이상 방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저주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계속 나비사에게 매달려 있던 소년이 꿈에서 깨어난 듯 입을 열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여름은 끝났다.
나비사는 해질녘 바람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다음에도 귀에 익숙한 그 소리는 가늘게 남아 있었다.
나비사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약간 끄떡였다.
알고 있어. 나 여기 있어. 이제야 모든 게 끝났어. 지금부터 그쪽으로 갈게.
나비사는 조금 쌀쌀해진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더니 걷기 시작했다.
아까 오던 길이 아니었다. 소년은 의아한 듯 얼굴을 들고 얼른 일어나 나비사를 따라갔다.
나비사는 이제 모자를 벗고 있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디로 가는 걸까? 소년은 의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다른 나비사들의 모습이 멀리 보였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나비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소년의 존재는 잊은 것 같았다. 소년은 놓치지 않으려고 죽을 둥 살 둥 쫓아갔다.
숨을 헐떡이며 덤불을 헤치며 소년은 나비사를 따라갔다.
소년은 나비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섰다.
언제나 묶고 다녔던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한 남자가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작은 나무가 있었다. 잎사귀만 무성한 그 나무에는 작고 파르스레한 꽃이 달랑 한 송이 남아 있었다.
그는 살며시 꽃을 만지더니 천천히 입을 맞췄다.
꽃은 이미 질 시기가 지났는지,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잎이 호르르 흩어지면서 싸늘한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소년은 흩어진 꽃잎을 눈으로 쫓았지만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대로 서 있던 나비사는 그제야 생각났는지 소년을 돌아보며 싱긋 웃고는 돌아가자고 했다.
누구예요? 소년이 물었다.
나비사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은 작은 나무를 자꾸 뒤돌아보며 걸었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나비사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아직은 알 필요가 없겠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좋은 나비사가 된다는 사실은.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소년은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나비사에게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나비사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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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반쪽 2009-03-1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소년의 소중한 사람.. 이 나비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잘읽었어요.. 아직도 뭐가뭔지 잘 모르겟지만
신비롭고 따뜻한 느낌이 좋내요

뒷북치는느림뽀 2009-03-1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젤 첫회에서 나왔던 좋은 나비사가 되기위한 네번째 조건이란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거였어요..
그래서 나비사는 늘 외로운 존재였던 것이구..
흠..어쩐지 조금 슬픈데요.. 그래두 참 신비로운 이야기 였어요~~ ^^*

뒷북소녀 2009-03-1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전 갑자기 섬뜩한걸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거라니...

chucahat 2009-03-1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치는 느림뽀님의 해설후에서야 이해가 되네요...

그러고보니,,, 느림뽀님의 책읽는 솜씨가 대단하네요~
그제서야,,, 리쿠님의 소설이 훌륭하단 생각이...

파이 2009-03-1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생각했던거하곤 좀다르게 나갔네요.
짧은 단편의 온다리쿠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해서 좋네요.
드라마처럼 왠지 애달퍼지는 최종회였습니다.
그럼 다음주는.. 뱀과 무지개네요. 문득 '3월은 붉은 구렁을'이 생각나네요.
어떨까요? 두근거리며 다음주를 기약합니다.

푸른산빛 2009-03-1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으루 이 블로그를 발견해서 반가운 맘으로 그동안 연재됐던 글들 몽땅 읽었습니다.
역시 온다리쿠...ㄷㄷㄷㄷ
어서 책이 나왔음좋겠어요-

이 작품은 참 신비롭고도 끝엔 눈물이 왈칵솟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구별탐험가 2009-03-1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짧지만 여운은 오래 갈 듯...

나비사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온다 리쿠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


현지 2009-03-1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ㅡ
마음이 애잔해지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