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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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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생강대추차와 귤껍질차를 포함하여 다양한 차를 마셨다. 몸이 안 좋은 느낌이 들면 무조건 끓여 마셨다. 그 덕인지 쌍화탕 두어 번 마신 걸 제외하곤 약을 먹지 않고 겨울을 났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커피다. 사정이 생겨 하루 두세 잔 씩 마시는 커피를 아예 먹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 다시 하루 한 잔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두 잔을 마셨다. 눈으로 보기에 커피를 마시는 삶과 마시지 않는 삶이 다르지 않지만 커피를 마시던 시간만 되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비가 오거나 스산한 날 역시 따뜻한 커피가 그립다.

 

사람들은 55세를 즈음하여 자의 반 타의 반 하던 일에서 떠나 다른 일을 찾는다.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 라이프』엔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는 한 권 읽은 적이 있지만 소설은 처음이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55세 넘은 사람들의 안녕한 삶 혹은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공통으로 정년퇴직 후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결혼 상담소」의 나카고메 시즈코는 정년퇴직 후 불평불만으로 일삼는 남편과 이혼하고 파트타임을 전전하다 식품 매장의 판매직원으로 근무하고「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의 인도 시게오는 출판사에서 정리해고 당한 후 일하지 않으면 노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차량 안전요원으로 일한다. 세일즈맨으로 일하다 조기 퇴직한 「캠핑카」의 토미히로 타로는 중형 캠핑카를 타고 아내와 일본 전역을 여행하는 꿈을 꾸지만 아내는 시간을 낼 수 없다며 반대한다.「펫로스(pet loss)의 다카마시 요시코는 남편이 정년퇴직 후 인터넷 블로그를 시작해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자 애견 보비를 데리고 공원 산책을 즐겼다. 「여행 도우미」의 장거리 트럭 운전사 시모후사 겐이치는 해고당한 후 예전 다니던 회사에서 주는 운전 일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생은 보비에게 배웠습니다.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284쪽)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줄 대상을 만났다. 나카모메 시즈코에겐 아들뻘인 하야사카 요이치, 인도 시게오에겐 노숙자인 중학교 동창 후쿠다, 토미히로 타노에겐 대학 시절 같은 유도부에서 활동했고 오랜 시간 토미히로 타노와 고민을 나누는 고마노, 시모후사 겐이치에겐 마츠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좋아하며 난치병을 앓는 남편이 있는 호리키리 아야코가 있었다. 다카마시 요시코의 경우는 자신처럼 개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했던 요시다도 있지만 그보단 병을 앓는 보비를 보고 삶의 이유를 찾은 남편이 있었다. 주인공들과 하야사카 요이치, 후쿠다, 호리키리 아야코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주인공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때 먼저 마실 것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마음이 진정될 것이다. 그것은 의식 같은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에서 자살 뉴스를 접할 때마다 얼마나 힘든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좋아하는 음료를 천천히 마시면 마음이 진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58쪽)

 

소설 속 주인공들은 종류는 각각 마시는 음료가 있었다. 나카고메 시즈코는 얼그레이 홍차, 인도 시게오는 미네랄 워터, 토미히로 타로는 커피, 다카마시 요시코는 보이차, 시모후사 게인치는 반차를 마셨다. 차 한 잔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끓어오른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인정한다.

 

55세는 많은 나이일까, 적은 나이일까. 누군가에겐 많은 나이고, 누군가에겐 한참 어린 나이일 것이다. 토미히로 타노에게서 보듯 일하고 싶다고 일자리가 주어지진 않는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고 결과가 좋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을 만나는 일은 감동이다. 새로운 삶은 혼자 서는 불가능하다. 함께해야 하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가능하다. 내일은 비가 예보되어 있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했던 벚꽃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안녕을 고할 것이다. 다행인 건 튤립은 활짝 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벚꽃과 반갑게 재회하려면 오늘의 삶이 버겁더라도 부지런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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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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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이집트 출신의 나지브 마흐푸즈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랍 작가의 수상은 노벨문학상 제정 7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압델 나세르가 1952년 7월 혁명에 성공한 이후 들어선 새 정권에 실망해 절필을 선언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절필 선언한 그가 7년이 지나 발표한 작품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이슬람교를 신성 모독했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작품 해설에 실린 쿠웨이트 일간지《알까바스》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나는 사회와 나 사이에 간극이 생겼을 때만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의 모순에 실망해 절필을 선언했지만 작가로서, 시대를 사는 한 인간으로서 침묵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리라.

 

이어진 인터뷰에서 나지브 마흐푸즈는 『우리 동네 아이들』을 통해 혁명 지도자들이 선지자의 길과 폭력배의 길 중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이 물음은 지금의 지도자들에게도 해당하는 질문이다. 소설에서도 알 수 있듯 두 길 모두 문제가 있다. 첫 번째 길은 더디고 두 번째 길은 더 센 힘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 분명한 건 선택의 우선순위는 절대 자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익숙함과 섬뜩함을 느꼈다. 자발라위의 총애를 받아 대저택의 삶을 살던 아드함은 형 이드리스와 아내 우마이마의 유혹에 넘어가 비밀 유언장을 보려다 들켜 쫓겨났다. 이 이야기는 사탄과 이브의 유혹에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이 외에도 등장인물들은 성서 속 인물들과 겹쳐진다. 작품 해설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인데 소설 내 머리말을 제외한 장들의 숫자는 코란의 114장과 같다고 한다.

 

소설은 지도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전개된다. 소설은 아드함, 자발, 리파아, 까심, 아라파의 이야기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 동네에 망각이라는 전염병이 돌지 않았다면 그는 좋은 본보기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망각은 동네에 전염병처럼 늘 창궐한다.(1권, 304쪽)

 

그런데 왜 망각은 전염병처럼 우리 동네를 휩쓸고 지나가는 걸까.(1권, 440쪽)

 

첫 인용문은 억압에 맞서 싸운 최초의 사람이자 은둔 생활을 했던 자발라위를 최초로 만났던 자발 편 마지막 두 문장이고, 두 번째 인용문은 친구들과 함께 행복을 방해하는 악령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했던 리파아 편의 마지막 문장이다. 내가 섬뜩함을 느낀 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망각’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상실을 경험하는 건 이 세상에도 망각이라는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네의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 동네에 망각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했다면 이제 이 전염병을 퇴치할 때가, 영원히 근절할 때가 되었습니다.”(2권, 203쪽)

 

자발라위 후손들의 구역은 자발 구역, 리파아 구역, ‘사막쥐들 구역’이라 불렸던 까심 구역이었다. 세 동네 청년들을 중심으로 ‘피로 얼룩진 공포의 시대를 끝’(186쪽)낸 까심, 그의 시절에는 착취하는 관재인과 굴욕 주는 깡패 수장 대신 형제애와 사랑과 평화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희망과 달리 망각 전염병은 다시 창궐했지만, 까심의 행동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동네 사람들이 망각 전염병의 근절을 자각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행위의 시작은 자각에서 시작하기에.

 

아라파의 시절은 ‘하느님’으로 상징되는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과학의 시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신을 닮고 싶은 마음은 과학을 토대로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시간이 흘러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 건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이 희망을 품는 건 무의미한 일일까?

 

“밤이 지나면 낮이 되듯 불의는 반드시 사라져. 우리 동네에서 압제가 멸하고 기적과도 같은 날이 훤히 밝아오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거야.”(2권, 358쪽)

 

훌륭한 지도자들이 떠난 후 망각 전염병만 도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지도자들이 등장할수록 불공평한 세상에 대해 자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의 숫자는 늘었다.

 

처음엔 자발라위가 공포와 폭력을 직접 해결하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안다. 부와 권력을 지닌 자신 역시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동네 사람들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길 원했을 것이다.

 

경험은 때로 용기보단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가르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행동하지 않는 삶은 비겁하다. 포기하는 삶엔 현재도 미래도 없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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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비와 함께 시작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고심 끝에 고른 5편은,  

 

1. 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토의 단편집이다.  '작가의 한 마디'를 보니 '『아자젤』은 한번 주먹을 불끈 쥐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천진난만한 어른들을 위한 유쾌한 이야기'라고 한다. '천진난만'이 더 이상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여서일까. 호기심이 인다. 밑바닥 욕망을 들춰내 소원을 들어주는 타락천사 이야기, 내용만으로도 무척 궁금하다.         

 

2. 단지 유령일 뿐

민음사 모던 클래식 70, 71은 유디트 헤르만의 『여름 별장, 그 후』와 『단지 유령일 뿐』이다.  유디트 레르만은 내게 낯선 작가다. 소개을 읽으며 아름다운 소설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두 권의 책 중 우선 읽고 싶은 책은 『단지 유령일 뿐』이다.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알게 된 것들이 삶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잘 읽히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서도 자꾸 마음이 머물렀다.

 

3. 인생의 양식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이름으로 쓴 첫 소설로 국내 최초 완역판이다. “나이가 들면서 확신하게 됐어. 인간만큼 가련하고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고, 그러면서 그다지도 완전히 놀라운 존재는 없다는 것을.”   나이를 먹으면 사는 게 좀 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자꾸 허우적댄다. 삶에 대해, 인간으로 사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될 것 같다.

4. 던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SF라니. 미래가 현재와 동떨어진 세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곳도 분명 사람이 있을 테니까.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결괴』 와 동전의 양면처럼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했다.  『결괴』 는 이미 읽었다. 짝이라고 하니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5. 윌리엄 트레버

줌파 라히리는 "트레버의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라고 존경을 표했다고 한다.  윌리엄 트레버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작가들이 칭송하는 작가라니 궁금해졌다. 소개를 보니 '독자들은 현대 단편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서 윌리엄 트레버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하고 한다. 아일랜드 문학은 읽은 기억이 없어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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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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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는 (THE SENSET LIMITED)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시속 130킬로미터로 달리는 급행열차다. 느린 삶을 갈망하지만 한편엔 조급함이 있다. 나만 낙오자가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다.

 

『선셋 리미티드』는 ‘안전하고 않은 곳’에서 목사 일을 하는 흑인과 플랫폼으로 뛰어들려다 흑인 때문에 실패한 백인 교수의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작가인 코맥 맥카시는 이 소설에 대해 ‘극 형식의 소설’이라고 칭했다.  한 남자는 달리는 급행열차로 뛰어들려다가 또 다른 남자에 의해 구조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장면으로 표현되었을 텐데 『선셋 리미티드』에선 두 남자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전개된다. 그들의 지칭하는 단어는 이름이 아닌 ‘흑’과 ‘백’이다.

 

흑과 백은 피부 색깔,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이나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랐다. 흑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했지만 백은 사람들을 구하는 일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흑에게 신은 자신을 눈여겨보는 사람이지만 백에겐 신이란 관념 자체가 쓰레기였다. 이들의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를 보면 어떤 소설의 결론들, 누군가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말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슬픔이 느껴졌다. 이런 감정은 대화 속에서 자주 길을 잃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은 흑과 백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 흑과 백 사이 어느 지점에 있다. 가끔은 그 모호함이 질린다. 삶은 어느 쪽이든 고통이라 생각한다. 이건 백인 교수의 생각이니 나는 백의 의견에 가까운 걸까.

 

모르겠어. 그냥 기차가 어서 자기를 쳐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마음에 뭔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면 따귀나 한 대 갈겨주는 걸로 정리가 될 거야. 선생은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걸 안 믿어. 나는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절대 믿지 않아. 선생이 붙들고 있는 게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 아니면 내가 그것을 표현할 말을 모르는 거거나. 어쩌면 선생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걸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잘난 도약을 했을 때 선생은 뭔가를 붙들고 있었고 그걸 가지고 뛰어내린 거라고 믿고 싶어. 교수 선생. 말이 선생 마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말을 찾는 거야.(122쪽)

 

소설의 등장인물은 백과 흑, 선셋 리미티드에 뛰어들려는 사람과 구한 사람이지만, 흑의 말처럼 세상에는 선셋 리미티드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백이 보기에 선셋 리미티드를 타려는 사람들은 불행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지만, 흑의 말처럼 그들의 선택은 특별한 일일 수 있다. 달의 시간이 아닌 해의 시간을 살고자 한다는 건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뜻이므로.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님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114쪽)

 

백은 왜 급행열차의 플랫폼으로 뛰어들었을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절망적이게 했을까?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백은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세상이 원한 것은 습득과 경쟁이었다. 그는 삶의 회의 속에 빠졌다. 그의 선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였다. 사람마다 삶의 가치는 다른 법이니 그의 선택을 인정하지만 옹호하진 않는다. 나에겐 빛은 있는데 어둠만 본다는 흑의 말을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해가 졌고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어제의 시간은 지나갔고 오늘이 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해도 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일의 해가 뜰 것이다. 해는 뜨고 지기를 반복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지면 영원히 끝이다. 두 번은 없다.

 

사실 해가 진다는 생각은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해의 입장에서 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세상을 나의 시선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고, 어둠과 빛 한쪽만 보는 건 위험하다. 균형적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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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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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한 꿈일지도 모른다. 영웅의 삶을 꿈꾼다는 건. 영웅이고 싶었던, 영웅의 삶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에드 리모노프라 불렀다. 본명은 에두아르드 베니아미노비치 사벤코이다. 리모노프는 그가 뾰족하고 전투적인 자신의 성격을 고려해 작명한 필명이었다.

 

에두아르드는 러시아 작가이자 정치가로 실존 인물이다. 『리모노프』는 특유의 저널리즘 글쓰기로 인정받은 현대 프랑스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가 리모노프의 파란만장한 삶을 추적한 소설이다. 소설 속 ‘나’는 ‘리모노프는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던 야만과 불량 그 자체였다. 우리는 그에게 열광했다’고 했다고 했는데 그것은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보통의 우리는 도덕 혹은 윤리라는 테두리에 스스로를 억압하고 살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에두아르드의 부모는 1942년 소련이 참패를 거듭하던 참혹한 5월 그를 잉태했다. 그는 독일 제6군의 항복으로 양쪽 군대의 운명이 뒤바뀌기기 20일 전인 1943년 2월 2일 우크라이나 NKVD 하급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른들은 그에게 ‘너는 승리의 아이다. 스탈린의 이름을 딴 이 도시를 적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목숨을 바친 남녀 인민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너는 노예의 세상에 태어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드가 영웅을 꿈꾸었던 건 그의 부모가 그를 잉태했을 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비극의 도시 스탈린그라드가 아니라 사소한 시비가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고 대체로 평화로운 도시에서 그가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도시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다른 곳으로 떠났을까? 설사 그렇더라도 그가 겪은 정도의 파란만장한 삶은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이 다 겪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심했다. 

 

소설은 에두아르드의 삶과 작가인 ‘나’가 본 에두아르드의 이야기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나’가 에두아르드의 이야기를 글로 쓰려는 이유, 엠마뉘엘 카레르가 리모노프, 에두아르드의 삶을 추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리모노프는 어떤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깡패로 출발해 소비에트 언더그라운드의 아이돌, 맨해튼의 거지, 억만장자의 집사를 거쳐 파리의 인기 작가로, 발칸 반도를 헤매던 사병으로 그리고 이제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혼란기의 청년 무법자들의 당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늙은 보스로 변신해 있다. 스스로는 영웅이라고 치부하지만, 남들 눈에는 인종지말로 비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 나는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다만, 세면대에 얽힌 일화를 별생각 없이 재밌게 듣고 나서 그의 파란만장하고 위험천만한 인생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모노프, 그 자신과 러시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우리 모두의 역사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메시지가 있긴 있는데, 그게 과연 무엇일가? 그것을 찾고 싶어 나는 이 책을 시작한다.(38쪽)

 

‘나’가 평한 대로 에두아르드는 ‘질투심이 강하고 안하무인인 주인공’이고 ‘무명으로 죽는 것이 괴로울 뿐’인 사람이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소수의 편에 서서 행동하는 사람이었지 아무 곳에서나 돌출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영웅이 되는 인생 계획의 일부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가 좋아하는 에두아르드의 글 중에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어디서도 길을 헤매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타인들을 향해 가고, 타인들이 나를 향해 온다. 자연스럽게 맺어진다.>475쪽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개떡 같은 인생’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사생활은 마음에 들지 않고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선 모두 동의하진 않지만 관계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 궁금한 것은 그다음 이야기이지만 소설에선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어린 에두아르드는 흠모했던 아버지가 ‘정직하지만 다소 어리석은, 안쓰러운 존재로 비치’‘자유롭고 위험한 삶’을 살기고 결심했다. 그것이 진정 남자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에두아르드는 자신의 인터넷을 찾는 방문자의 수가 경쟁자인 카스파로프보다 많은 게 그저 좋을 뿐인 노인이 되었다. 원고료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가 애쓰며 사는 생이란 거 별거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그의 생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삶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길을 나서는 것과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기다리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려선 안 된다.

 

많은 인물이 등장한 소설이었다. 익숙한 이름과 낯선 이름이 모두 있었다. 그들은 소련 해체 후 혼란의 러시아를 살았거나 러시아 정치 중심에 있던 실존 인물들이었다. 이름 사이에서 때때로 길을 잃었다. 러시아 현대사가 궁금하거나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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