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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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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도망친 후 농작물을 헤치고 어부들을 위협한 하마는 포수의 총을 맞고 죽었다. 사람들은 운반을 쉽게 하려고 하마의 몸을 절단했다. 인간의 삶을 위협했으니 죽어 마땅했을까. 하마의 이야기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하마는 자유를 찾아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하마에겐 짝과 새끼가 있었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가 태어나고 평생은 아니지만, 지금도 사는 콜롬비아 보고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콜롬비아 현대사 속에서 삶이 추락한 남자와 그의 과거를 추적하는 젊은 법학 교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 얌마라(안토니오)는 하마의 이야기를 추적하다 리카르도 라베르데를 떠올렸다. 유사 이래 가장 악명 놓은 콜롬비아인 가운데 하나인 인물의 번영과 몰락을 상징하는 창고에 관한 뉴스가 나왔을 때 당구를 치고 있던 리카르도는 말했었다.

 

“동물들은 어떻게 처리하려나. 그 불쌍한 것들이 굶어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텐데.”(22쪽)

 

사십을 앞둔 ‘나’가 오래전 불과 며칠 동안 일어난 리카르도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는 건 ‘동화에서처럼 이미 과거에 일어났지만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16쪽)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당구장에서 다시 만난 리카르도는 ‘나’에게 카세트테이프를 건넸다. 둘은 문화센터로 변모한 카사데포에시아에 갔다. ‘나’가 실바의 시를 바리톤으로 말하는 걸 듣고 있을 때 자신의 테이프를 듣던 리카르도는 흐느꼈다. 그는 말했다. 엘레네가 비행기에 있었다고. 거리에 있던 ‘나’와 리카르도는 총을 맞았다. 나는 중상을 입었고 그는 죽었다.

 

훗날 ‘나’는 리카르도의 집을 찾아갔다가 리카르도가 들었던 테이프를 듣게 된다. 테이프엔 엘레네가 리카르도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탔던 비행기의 폭발 직전, 조종사들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휴가 보내시고, 1996년은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기장이 녹음테이프에서 말하고 있었다. “저희 항공편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종사들은 승객들에게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엘레나의 1996년 이후의 삶은 사라졌다. 마야는 어머니를 잃었다. 리카르도는 불법을 저질렀지만 그게 거리에서 총을 맞고 죽을 이유는 아니다. 20년 전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인데 20년 후 우리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수학여행 가던 배는 전복되고, 길을 걷다 낯선 사람에게 칼을 맞고 죽기도 한다.

 

이제 그 녹음은 라베르데가 그날 오후 부드러운 가죽소파에 앉아서 들은 것을 내가 들었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예전에는 결여되어 있던 밀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 경험은-우리는 그것을 경험이라 부른다-우리의 고통에 대한 재고 정리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배운 연민일 것이다.(112쪽)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나와 무관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도 또 겪는 것을 보면, 단체로 망각이란 병에 걸린 것 같다.

 

남자는 여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못할 짓을 할 때까지는 행복하지요. 일단 잘못을 저질러버리면 나중에 회복할 방법이 없어요. 좋아요, 그게 바로 내가 앞으로 며칠 동안 확인하고자 하는 거예요. 엘레나가 올 것이고 나는 과거를 회복하려고 애쓸 거예요. 엘레나는 내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여자요. 그런데 우리는 헤어졌어요.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헤어지고 말았어요. 삶이 우리를 헤어지게 했는데, 삶은 그런 짓들을 하곤 하지요. 내가 엘레나에게 못된 짓을 해버린 거예요. 내가 못된 짓을 해서 우리가 헤어져버린 거라고요.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못된 짓을 했다는 게 아니에요. 얌마라, 내 말 잘 들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엘레나에게 한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 실수를 보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요. 비록 세월이 흘렀다 해도, 수많은 해가 흘렀다 해도 자신이 깨뜨려버린 것을 고치기에는 결코 늦지 않는 법이오. 그게 바로 내가 하려는 것이요. (38쪽)

 

위 문장이 마음에 들어온 건 이 사회가 진심 어린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이 시작되기 팔 개월 전 ‘나’는 리카르도의 딸 마야가 남긴 전화 음성을 들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평생 떠나 산 적이 없는 보고타를 떠나 라스아카시아스로 갔다. 마야는 라베르데가 살았던 집주인 콘수에게 테이프를 받아 테이프를 듣고 그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녀는 계산서를 포함한 리카르도와 관련 있는 자료들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자료들을 수집한 것은 아빠의 삶을 재구성하고 아빠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나’에게 연락한 것은 아빠의 마지막 삶이 어땠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공간에서 부재할지라도 마음에선 존재한다.

 

‘나는 너를 보살피고 싶어, 두 사람을 보살피고 싶어, 우리는 함께 보호받을 것이고, 우리가 함께라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354쪽)

 

어머니를, 훗날 아버지를 잃은 마야는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리카르도, 엘레나, 마야 그리고 나와 나의 아내 아우라는 ‘특별한 시대’를 살았다. 그들의 도시 보고타는 너무 많은 폭력이 일어나는, 법이 무력한 위험의 도시였다. 결혼 전 엘레나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여했다. 언젠가부터 세상을 바꾸는 일에 회의가 든다. 그렇다 해도 무기력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도시엔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 나를 지켜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말끔히 없애는 일은 어렵겠지만 가능한 덜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와 관심도 필요함은 당연하다. 곁에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어느 곳에 살든 더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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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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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구멍이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 코너에 있는 채소가게 좌판과 가까웠다. 구멍의 크기는 예닐곱 살 아이의 발 크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멍은 점점 커졌다. 사람들은 구멍을 흘낏 보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갔다. 구멍 아래를 봤는데 아득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에 민원을 넣었다. 알게 됐다. 아무도 민원을 넣지 않았다는 것을. 구멍이 두려웠던 건 나뿐이었다. 구멍은 채워졌고 사람들은 그곳을 밟고 다녔다.

 

『홀』의 오기 씨는 아내와 짧은 여행을 떠났다가 화난 아내의 돌발 행동으로 사고를 당했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그는 의식만 깨어있는, 회복을 ‘의학이 아닌 의지’에서 찾아야 하는 상태에 놓였다. 오기 씨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그의 나이 열 살 때 그의 어머니는 자살했다. 어머니는 커져 버린 마음의 구멍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녀의 나이 마흔이었다.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고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78쪽) 나이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십 대가 돼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린 오기 씨의 마음에 첫 번째 구멍을 남겼다.

 

오기 씨는 훗날 자신과 제이의 관계로 인해 아내에게 공동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기 씨는 제이와의 이별로 생긴 공동과 상관없이 그럭저럭 굴러가리라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현실의 구멍은 보수할 수 있지만, 마음의 구멍은 보수가 어렵다. 아내의 구멍은 오기 씨의 생각보다 더 컸다. 그것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다. 오기 씨가 아내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홀』은 오기와 장모의 불안한 동거를 다룬 이야기이다. 오기 씨는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지만 ‘삶은 실패가 쌓일 분,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았’다(78쪽)고 했다. 오기의 삶은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 않았지만, 장모 역시 살수록 홀에 더 깊이 빠지는 삶이었다. 장모는 전부(whole)였던 딸을 잃었다. 그녀는 갑자기 생긴 구멍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위의 보호자가 되었다. 오기 씨가 아동기에 엄마가 없었다면 장모는 청소년기에 부모의 이혼으로 친엄마와 헤어져 살았다. 그녀는 친척에게 받은 어머니의 유골함을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구멍은 채워지는 게 아니라 다른 구멍이 생겨 시선이 옮겨간다. 장모의 삶이 그랬다. 오기가 궁금해했던 장모의 중얼거림 “다스케테쿠다시이”는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뜻의 일본어였다.

 

장모의 친척이 서울에 온 건 장모에게 어머니 유골함을 전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욘사마 때문이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은 삶의 묘미이자 슬픔이다. 누워 있는 오기 씨는 예전엔 유혹되지 않은 것들에 매혹되었다. 예를 들면 구불거리는 숱 적은 머리가 닿아 땀이 맺힌 여자의 목선 혹은 늘어지고 아무렇게나 부풀어 오른 육덕진 살집. 관심조차 두지 않은 것에 흥분하게 된다면, 그래서 낯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슬플 것 같다. 그보다 더 슬픈 건 찬란한 봄꽃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않은 날이 현실이 되는 일은 슬프다.

 

장모는 후배 에스에게 해도 잘 들고 통풍도 잘 드는 곳에 구멍을 내는 이유에 대해 물고기들이 악착같이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다른 뜻이 있었다. 구멍에서 태어나 구멍 난 가슴으로 살다 구멍으로 들어가 죽는 것, 그것은 생의 비밀 아닌 비밀이다. 삶은 그렇게 과거가 된다.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 않았다는 글에 맞다고 끄덕이다가 이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구멍(hole)과 전체(whole)의 영어발음은 같다. 알파벳 하나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한편으론 구멍을 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십 대이든 그렇지 않든 살아있다면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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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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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법’이란 제목을 단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는 법’으로 된 책 대부분은 자기계발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난 그들이 정한 성공적인 삶 자체가 공감이 가질 않는다.

 

이번에 읽은 책은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으로 원제는 ‘HOW TO GET FILTHY RICH IN RISING ASIA’이다. ‘FILTHY’는 ‘아주 더러운’을 뜻하며 ‘FILTHY RICH’는 ‘대단히 부유한’을 뜻한다. ‘아주 더럽게 부유한’이 ‘대단히 부유한’으로 해석되는 건 부자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서는 될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자기계발서 형식을 띤 소설이다. 저자 모신 하미드는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미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살았다. 이질적인 두 나라의 삶은 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시골의 어느 작은 집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당신’과 ‘당신 가족’은 도시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삶의 근거지를 도시로 옮겼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도시로 가면 나도 부자가 될 거라고 믿었던 시절. 아버지 외에 누나와 형도 일하지만 낮은 임금으론 미친 인플레이션을 감당할 수 없다.

 

사실 이 직업은 노동 강도가 그리 센 것이 아니다. 다만 지속되는 공황 상태를 견뎌낼 인내심과 용기가 필요한데, 당신의 형은 필요에 의해 두 가지를 습득했다. 이론적으로 고글과 방독면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일 뿐이어서 당신의 형도 페인트공도 걸레 같은 헝겊으로 대충 코와 입을 가리는 게 전부다. 짧게는 이것이 당신 형이 자주 기침을 하는 이유다. 길게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인트공의 조수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귀한 기술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아주 길게 보면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지 않는 직업은 없다.(39쪽)  

 

‘당신’의 형은 페인트공의 조수로 일하고 있다. 살기 위해 하는 일 때문에 죽음에 가까워진다. 일하면 마음 혹은 몸이 아파 병들어 죽고, 일하지 않으면 배고파서 죽는다.         

 

부를 향한 길에는 가끔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 향배를 좌우하는 건 선택이나 욕망, 노력 등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순전한 우연이다.(40쪽)    

 

순전한 우연인 경우도 있지만 잘난 부모의 덕에 남들보다 쉬운 길을 가기도 한다. ‘당신’의 순전한 우연도 부모의 덕도 모두 타고 남, 출생에서 시작했다. 삶의 향배를 좌우하는 것이 ‘출생’이란 사실은 씁쓸하다. ‘출생’보단 ‘노력’의 가치가 인정되는 세상을 꿈꾼다.

 

더럽게 부자가 되려면, 교육을 받고 예쁜 여자를 만나도 사랑에 빠지지 말고 이상주의자를 멀리하고 고수에게 기술을 배워야 하고 관료와 친해져야 한다. 부정한 방법도 써야 하고 남의 것에도 눈독을 들여야 한다. 폭력이 필요하다면 폭력도 써야 한다. 더러운 방법을 통하지 않고 부자가 되는 법은 없다.    

 

평생을 일한 결과는 허무하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지도 못하고 아내와의 결혼을 유지하지도 못했고 아들과는 떨어져 살아야 하고 건강하지도 못하다. 거기다 파산까지.

 

바닥으로 떨어진 삶을 통해 배운 것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과 ‘가장 중요한 일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라’는 것이다. 모신 하미드가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통해 말한 것은 부를 쫓는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이다. 자신을 위한 삶은 부정한 방법으로 타인의 삶을 빼앗아 부를 얻는 삶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삶이다.

 

예전에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요즘 들어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딸, 좋은 언니, 좋은 동생, 좋은 이모, 좋은 친구, 애서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부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부정한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부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 이 땅에서 부자가 되긴 글렀다. 4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가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4월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미혹하는 것들이 많은 세상,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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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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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두려움에서 생긴다. 가진 것을 잃게 될까 두렵고 갖고 싶은 걸 영원히 갖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 어떤 것들은 애초 내 것이 아니었음에도. 최정화는 단편집『지극히 내성적인』을 통해 일상의 불안을 감지해 바깥으로 꺼냈다.

 

「구두」에서 삼 주간 집을 비워야 하는 ‘나’는 가족들을 위해 가사도우미가 필요했다.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러 온 여자는 ‘오래되어 모서리가 다 닳아빠진 검정색 가죽 구두’를 신고 ‘뒤축의 굽이 다 닳아서 현관 바닥의 타일과 부딪치며 울리는 짜랑짜랑한 마찰음이 귀에 거슬리’(9쪽)게 걸었다. ‘나’는 여자가 ‘타인의 집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온 사람의 머뭇거림이나 위축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9쪽)고 남편, 아이들과도 스스럼없는 지내자 자신의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여자는 자신의 구두를 두고 ‘나’의 구두를 신고 돌아갔다. 여자는 남의 구두를 신고 돌아가는 내내 불안했을 것이다. 신고 나가지 못하고 내내 신발장에 모셔둘지도 모른다.

 

「홍로」의 ‘그녀’는 ‘그’의 아내 역할을 하고 돈을 받으며 살고 있다. 친구들이 독신생활에 염려하자 평범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데리고 모임에 갔다. 그녀의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친구들에게 작은 거짓말을 했는데, 친구의 질문세례에 그녀의 거짓말은 점점 커졌다. 그녀는 처음에 들킬까 불안했지만 점차 흥분했다. 급기야 그의 진짜 아내인 것처럼 행동했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의 ‘나’에겐 아무도 없었다. 경선이란 말동무가 있지만 요즘 연애 중이었다. 세 들어 온 작가 오난영에게 동질감을 느낀 ‘나’는 그녀와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밀당을 했는데 그녀는 달아나 버렸다. 난영에게 ‘나’는 불편한 존재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힐 존재였다.           

 

열정적인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팜비치」의 ‘그’는 삼십대 중반의 회사원으로 아내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떠난 팜비치 호텔에서 그가 만난 진실은 짐작대로 흐르지 않는 삶에서 인간은 얻는 건 상처뿐 이라는 것이다..

 

이혼한 후 혼자 딸을 키우며 사는「타투」의 ‘그’에게 고등학생 딸의 임신 소식은 충격이었다. 딸의 임신은 그가 다른 일상에 천착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구두」의 ‘나’가 삼 주 동안 집을 비우지 않았다면,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의 ‘나’가 오난영을 세입자로 받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불안한 일상은 달라졌을까. 딸의 허리에 그려진 타투는 나뭇가지가 새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닌 뱀이 새의 목을 조르는 그림이었다. 나뭇가지가 새의 목을 조르는 것은 주변을 살피지 않고 날아든 새의 실수지만 뱀이 새의 목을 조르는 건 방심한 새와 노려보고 있던 뱀 모두의 잘못이다. 그런데 예민하게 주변을 살피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그녀’는 불안 혹은 불행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불안은 다른 불안으로 대체되었다. 그럴 바엔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파란 책」의 ‘그녀’에게 파란 책이 필요했던 건 새 책장을 장식하기 위해서였다. 그 책이 하이데거의 책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철학을 전공한 남편의 회사 동료가 책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면 파란 책은 장식용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어떤 세상으로 들어간 것은 그 세상에 적응했음을 뜻하진 않는다. ‘그녀’의 미래는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그녀’의 미래와 같을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너무 쉽게 과거의 불행을 잊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더 낫거나 덜한 것이 있을까.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 그때 충족되지 못했던 것과 지금 충족되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대머리」, 205쪽)

 

「대머리」에서 실패한 인생인 ‘나’는 여자를 꾀어 인생 역전을 꿈꾸려고 하는데 여자의 사촌이 그들을 방해했다. ‘나’는 술김에 사촌에게 대머리라고 불렀는데, 부르고 나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타인의 약점 혹은 불안은 다른 사람에겐 웃음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알지만 너는 모르는 비밀이든, 나도 알고 너도 알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너의 비밀이든, 비밀의 누설은 당사자에겐 절망이다.

 

어머니는 틀니를 하셨다. 지병도 있고 잇몸의 상태도 좋질 않아 임플란트가 어려웠다. 틀니를 뺀 어머니의 모습은 15년 정도 이후로 건너뛴다. 거울을 본 어머니는 한동안 상실감을 느끼셨다. 「틀니」는 교통사고로 삼십 대 후반에 틀니를 하게 된 남자와 한때는 완전무결했던 남편이 틀니를 안 끼우면 해괴망측한 모습이 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밀을 지키려면 치밀해야 하거늘 부부는 결정적인 순간 깜박 잊었다. 때때로 비밀의 누설은 삶의 끝을 가져오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삶은 이어진다.

 

집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우리 동네는 재개발 지역으로 현재 분양신청을 받고 있다. 분양신청을 하든, 현금청산을 하든 동네를 떠나야 한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동네를 떠나야 하는 일은 슬픔이다.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곳은 내 동네가 아니다. 세를 살다 몇 년 후 새 아파트로 들어갈 경우 지금 집과 같은 평수로 가려면 많은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 낮게 나온 감정가론 같은 규모의 집을 살 수도 없다. 어떤 경우든 집은 좁아진다.「집이 넓어지고 있어」의 사연이 있는 세입자 ‘나’는 집이 점점 넓어지는 행운을 얻자, 좁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나’는 다섯 식구가 여섯 평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려다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된다. 『지극히 내성적인』에 실린 단편 중 가장 비현실적인 소설로 유일하게 주인공과 주변 사람이 행복한 소설이었다. 자신의 불안과 불행에 천착한 다른 작품과 달리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기울인 작품이기도 했다. 비현실에서 행복한 것은 현실에서 행복하긴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불안은 그들만의 불안이 아닌 우리도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불안이다. 어느 날, 불안이 내 앞에 서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려움이 아닌 침착함이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삶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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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시작했다.

화창한 날씨는 이어지고 꽃들이 만발할 것이다.

추운 날씨에 안을 향하던 내 마음은 밖을 향할 것이다.  

책을 읽는 날보다 읽지 않는 날이 늘어가고 있는데,

4월엔 더욱 그럴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들은 읽고 싶다.

 

 

 

 

 

 

 

 

 

 

    

 

 

1.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못생긴 여자』

 

선남선녀 밑에 태어난 못생긴 아이 레베카!

아이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외면당한다. 이 소설은 레베카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부정적 기운이 삶을 침투해 오는 요즘, 긍정의 기운이 간절한 내게 필요한 책이다.

 

2.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슬픈 일은 거짓 기억을 갖는 거예요.

‘책속에서 & 밑줄 긋기’에 등록된 문장이다. 난 이 문장만으로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책 소개를 보면,

‘마약과 폭력, 광기와 야만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현대사와 그러한 공포의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운명을 절묘하게 교차시켜 직조한 작품으로, 의문에 휩싸인 한 남자의 죽음과 그의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콜롬비아 암흑기의 잔상을 완벽하게 재현한’ 소설이라고 한다.

 

3. 차이쥔, 『생사의 강』

 

중국 추리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중국 소설을 읽은 지도 오래됐다. 차이쥔은 ‘2016년 현재 작품 전체 누계 판매부수 1000만 부를 기록했으며 9년 연속 중국 미스터리 소설 베스트셀러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복수와 환생이라는 소재의 만남이 어떤 재미를 선사할지 궁금하다.

 

4. 조성기,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책소개에 나온 문구를 인용하면, 표제작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는 ‘세월호 사건을 배경으로 ‘담당’의 윤리가 결여된 자들이 이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끔찍한 악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슬픈 일은 거짓 기억을 갖는 것, 그리고 망각이다. 읽고 싶다기보단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선택했다.

  

5. 세라 워터스, 『핑거 스미스』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아가씨> 원작이다. 새로 출간한 책은 아니고 판형과 편집을 바꿔 출간한 책이다. 읽지 않은 내겐 새로 출간한 책과 같다. 결말에 도달하려면 뒤집히는 반전을 몇 차례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고아이자 소매치기 출신의 하녀 수와 상속녀 모드, 신분이 극과 극인 두 여자의 사랑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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