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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
장미셸 게나시아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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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태양이 찬란하게 빛난다. 뜨거운 날씨는 때로 짜증을 유발한다. 삶엔 기쁨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들리는 이야기는 불안하다. 메르스처럼 짐작조차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전조가 있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던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들린 병원에서 죽음의 위기에 놓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 전 해당 병원 들린 사실을 떠올리며 안도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멀리서 봤을 땐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발밑까지 다가오니 두려움이 실감 난다.『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를 읽는데 ‘진실은 부메랑의 속도로 돌아온다’(1권, 320쪽)의 문장이 뒷부분을 읽는데도 계속 머리에 남았다. 도망간다고 해서 진실이 감춰지진 않는다. 불안과 희생만 늘어날 뿐이다. 진실은 빨리 밝힐수록 좋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이란 제목 때문에 책 소개를 읽었음에도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눈물 나게 웃긴다는 의미다. 소설은 눈물 나게 웃기지 않았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그래서 떠돌아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눈물 나게 웃기는 소설일 거로 생각했던 건 나의 바람이 빚은 착각이었다. 프랑스어로 말하면 ‘메프리즈’였다.

 

오늘 우리는 한 작가를 땅에 묻는다. 시위를 하듯이, 그 작가와 함께 마지막으로 한번 더 시위를 벌이듯이.(1권, 13쪽)

 

소설은 위 문장으로 시작한다. 1980년 4월 화자인 미셸이 영웅이었으나 학대자들을 지지했던 사르트르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돌아가는 길, 미셀은 추억 속의 인물 파벨을 만난다. 파벨은 체코슬로바키아를 탈출해 프랑스에서 불안정하게 산 인물이다. 미셀은 파벨을 만나면서 과거(1959년 10월~1964년 7월)를 추억한다. 샤르트르의 장례식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사샤의 장례식으로, 죽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이 났다. 시간상으로 하면 사샤의 장례식이 먼저고 사르트르의 장례식은 15년이 지난 시간이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은 프랑스에 정착했으나 흩어져 살게 된 미셸 가족의 이야기와 체스 클럽에 모인 사샤와 이고르, 레오니트를 비롯한 망명객들의 이야기가 날실과 씨실로 엮이면서 펼쳐진다. 그들은 사샤가 미셸에게 남긴 편지에 나오는 ‘살아 있는 채로 각자의 묘지를 지키고 있는’(2권, 460쪽) 사람들이었다.

 

어떤 남자도 상상조차 못한 것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들, 인생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울리는 것, 그녀를 거칠게 뿌리쳐야 하는 것, 매달리는 그녀를 떼어내야 하는 것, 그녀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돌아보지 않는 것, 눈길에서 무너져내리는 것. 그녀의 외침과 울음소리는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고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그의 귓가에 울리는 것은 바로 그 소리들이었다.(2권, 435쪽)

 

미셸은 카미유에게 시인이라고 거짓말을 해 그녀를 속인 일에 대해 ‘메프리즈’와 ‘메프리’ 사이에서 방황했다고 했다. ‘오해나 착각’과 ‘무시와 경멸’ 사이에 서 있는 건 미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도망자의 삶을 선택한 형 프랑크도, 이혼을 결심한 미셸 부모도 ‘메프리즈’와 ‘메프리’ 사이에 있었다. 선의의 선택이 결과마저 좋은 건 아니다. 의도와는 달리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평생을 가슴에 돌을 얹고 살아간다. 사샤처럼. 상상조차 못한 것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은 남자들에게만 있는 것도, 어른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파벨은 ‘나는 내 진영을 선택한 게 아니야. 그냥 내 진영 안에서 태어난 거지.’(1권. 18쪽)‘라고 했고 미셸 할아버지는 ‘노동자로 태어나면 공산당 지지자가 되고 부르주아로 태어나면 우파가 되는 것’(1권, 51쪽)이라고 했다. 확신과 열정으로 행한 일이 존재마저 부인하게 된 상황, 그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간다. 희망을 품으며. 살아갈 힘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파벨에겐 케셀과 사르트르가, 레오니트에겐 이고르가, 미셸에겐 사샤가 있었다.

 

우리의 기억이란 나쁜 일들을 지워버리고 되도록 좋은 일들만 간직하려고 한다. 이십 년이 지나서 아버지와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아버지가 그 일에 대해 내게 물었다. 그 말다툼의 이유가 뭔지 잊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애를 쓴 끝에 그것을 기억해냈다. 만약 그때 어머니와 형이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타협을 했을 테지만,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앞일을 예상하고 요모조모 따져서 계획을 세웠지만, 그것들은 가소롭고 허황된 것으로 드러났다. 어머니의 자잘한 계산은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 개업식은 우리 가족에게 축제와 희망의 날이 되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아름다운 건축물에 금이 가는 날이 되고 말았다.(1권, 187족)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겠지만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타인이 보기엔 어리석은 선택일지라도 그 사람에겐 최고의 선택일 수 있다. 선택의 결과는 나쁜 쪽이 많다. 실제 나쁜 쪽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쁜 쪽이 심적 타격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은 네가 새로운 세대의 일원이기 때문이야. 너희 세대는 우리가 겪은 끔찍한 일들을 경험하지 않았어. 우리는 끔찍한 일들을 피할지 몰랐고, 그것들을 겪으며 죄를 지었지만 너는 달라. 망각에서 구원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너는 알아낼 거야. 아름다운 것은 기억 밖에 없어. 나머지는 먼지고 바람이야.(2권, 465쪽)

 

기억은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다. 경험이 많을수록 두려움이 커 용기를 내기 쉽지 않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겪어본 적이 없기에 두려움의 강도는 약하다. 젊은이들은 경험한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그렇게 역사는 이어지는 것이리라. 

 

“너는 살아 있잖아. 불평하지 마. 너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해.”(2권, 470쪽)

 

이런저런 일들로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순간순간 정신을 차리자 다짐하지만 쉽지가 않다. 비가 내리지 않아 메마른 땅만큼이나 계속 갈증이 인다. 잠을 자고 난 아침엔 좋은 소식들을 들렸으면 좋겠다. 훗날 이 계절이 지독한 날들로만 기억되지 않길, 조금은 아름다웠던 날들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무릇 추억은 아름다워야 하기에.

 

 

 

*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2권 통합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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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메시스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다.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작가가 많은 것에 비하면 필립 로스의 책은 많이 읽은 편에 속한다. '마지막 소설'만 아니었어도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만 만나면 허우적대는 습관이 있다. [네메시스]는 비극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2. 오베라는 남자

책 소개를 보면 오베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무엇이든 발길질을 하며 상태를 확인하는 남자. BMW 운전자와는 말도 섞지 않는 남자. 키보드 없는 아이패드에 분노하는 남자. 가장 싫어하는 광고 문구는 "건전지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까칠한 이웃 남자, 오베.
현실에선 만난다면 길을 돌아갈지 모르지만 소설에선 만나고 싶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마음 한편엔 저런 심리가 있기 때문인지도. 개인적으로 짜증 나는 일들이 좀 있는데 날까지 더우니 자꾸 화가 난다. 알라딘 소설 MD는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소설을 집어 든다면 이 책이 좋은 선택이 될 거라고 했다 . 그 말을 믿어보고 싶다.

 

3. 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여섯 편의 장편을 모은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어쩌다 보니 아직 한 작품도 읽지 못했다. 사랑은 나이를 먹는다고 경험이 많다고 해서 잘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살아갈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살면서 계속 배워가야 하는지도.

 

4. 게걸음으로

귄터 그라스의 '독일 사회의 침묵 속에 잊혔던 참사, 구스틀로프호 피란선 침몰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각자 알아서 자신을 구하라.” 책 소개를 이 문장이 각인돼 떠나질 않는다. “우리 삶에 거대하고 결정적인 힘을 행사하는 정치에 대해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문학은 변화를 가져올 힘이 있다.” 그가 썼으니 우린 읽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5. 작가들이 사는 동네1,2

유명 작가들이 한동네에 산다면?, 이라는 상상이 구현된 소설이다. 아는 작가는 아는 만큼, 모르는 작가는 모르는 대로 관심을 두게 될 것 같다. 독특한 시도로 인해 재미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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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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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고 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은 다수 있을 것이다. 불길한 경우는 더 잘 들어맞는다. 오에 겐자부로의 『익사』에 대한 나의 예감도 틀리지 않았다. 책 정보를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지금 읽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역시 지금 읽는 건 아니었어, 생각했다. 책 정보를 접하기 이전, ‘익사’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시작했지만 무시했었다.

 

초록의 계절에 ‘죽음’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아름다운 애나벨 리 싸늘하게 죽다』가 있다. 다른 소설이 한 권 더 있는 건 같은데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두 권의 책 모두 제목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하면 ‘죽음’이란 단어로 고정되기 전 다른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한편으론 소멸의 계절에 이 책을 읽는 것보단 지금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리뷰를 읽는 누군가는 굉장히 우울한 소설인가 보군, 하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노년의 삶을 사는 작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울하다는 감정은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노작가는 현재나 미래의 행복을 바라기보단 기억에 남아있는, 마무리하지 못한 삶을 잘 마무리하길 원하는 사람이었다.

 

스토리가 강한 이야기가 아니라 읽기는 쉽지 않았다. 한정된 공간, 소수의 등장인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고 이야기 중심에는 ‘만년의 작업’으로 익사한 아버지, 그를 따라나서진 못한 죄책감을 소설로 쓰려 했지만 ‘붉은 가죽 트렁크’의 비밀을 알고 나서 소설 쓰기를 포기한 사연이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열어본 ‘붉은 가죽 트렁크’에는 그가 생각했던 소설 재료는 없었고 『황금가지』만 있었다.

 

『익사』의 ‘나’ 코기토는 소설가이다. 그가 소설가가 된 건은 어머니의 ‘농담’에서 비롯됐다.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은 대학에 들어간 그가 문학부 전공이라는 사실에 실망하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취직이 안 되면 저 아이는 소설가가 될걸요!” 이 말에서 끝났다면 그야말로 상황은 어색했을 것이다. 말을 듣고 비웃는다면, 사람들이 웃지 않는다면 그 말은 농담이 아니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은 이랬다. “소설 재료는 ‘붉은 가죽 트렁크’에 한가득 들어 있거든요.” 어머니의 농담은 그를 소설가로 이끌었고 아버지의 익사는 노작가에게 만년의 작업으로 남았다.

 

‘나’는 장애인 아들 아카리에게 ‘넌 바보구나.’라고 노골적으로 내뱉어 상처를 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있던 ‘나’는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 그는 아버지를 잘 몰랐던 것처럼 아들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알려고 하는 마음조차 없었다. 자신의 소설을 연극으로 준비하는 <혈거인> 사람들과 아버지를 알았던 다이오를 통해 상처의 회복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아들과의 관계도 나아졌다.

 

‘나’를 소설가로 이끌었던 생전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남편을 모욕하는 일이 될까봐 소설로 쓰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머니의 시대 여자들(그 이전 시대의 여자들도 마찬가지)은 약자 중에서도 약자였다.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살이에서 배제되었다. 진실의 일부만 겨우 알았던 어머니의 시선에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코기토는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과 수난>의 이야기를 <죽은 개를 던지다>의 연극 방식으로 시안을 쓰게 된다. 여자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 앞장서서 봉기에 나섰던 과거 인물과 큰아버지에게 상처 받은 우나이코의 삶이 연결된 이야기로 『익사』는 권력이 없는 남자들보다 더 약자였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기도 했다. 짐작했던 대로 연극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공연은 무산됐고 우나이코의 불행을 만든 사람은 총을 맞았다. 총을 쏜 사람은.....,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재미있으라고 한 이야기라도 상대가 웃지 않는다면 그것은 농담(弄談)이 아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는 팍팍한 삶의 위로가 된다. 아카리는 아버지의 소설 속 대사를 인용해 말하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 “괜찮습니다. 아빠가 싸울 테니까요!” 제3부의 제목은 ‘이런 글 조각 하나로 나는 나의 붕괴를 지탱해 왔다’이다. 소설에 의하면 후카세 번역 엘리엇의 글이라고 한다. 소설가가 될 거라는 어머니의 말이 익사 직전 상횡의 ‘나’를 지탱시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농담(濃淡)은 그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소설은 농담(濃淡), 짙은 이야기 혹은 옅은 이야기를 담는다. 간혹 동시에 두 가지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짙은 이야기와 옅은 이야기는 무거운 이야기 혹은 가벼운 이야기, 읽고 나서 마음이 무거운 이야기 혹은 개운한 이야기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익사』는 어떤 방향을 향해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소설이었지만 비극적 결말 때문에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소설 속 ‘나’는 어머니의 농담(弄談)에서 소설가가 되었지만, 『익사』는 짙은 삶의 이야기, 농담(濃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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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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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단편집의 제목은 실려 있는 단편 중 하나를 선택한다. 짐작도 못한 일이 발생해 삶이 무너지거나 빛나는 일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듯 -사실 빛나는 일보다 무너지는 일이 더 많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처럼 단편집의 제목을 실려 있는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 아닌 어딘가에서 가져와 쓰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반복은 때로 일상이 되는 마법을 부린다. 슬픔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감정이 무뎌져 눈물도 나지 않는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 순간인데 한 방울의 눈물도 흐르지 않아 당혹감에 빠지는 날들이 생겨난다. 때론 감정조절이 안 돼 엉뚱한 일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괴물이 되어 간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은 책에 실린 단편들과 무관한 제목이 아닌 단편들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위기의 순간을 앞두고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외쳤었다. ‘나만 아니면 돼.’와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은 불행의 주인이 내가 아니면 상관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언뜻 같은 말로 들리지만 두 문장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나만 아니면 돼.’ 에서 이기심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선 간절함이 느껴진다. 간절함은 욕심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에서 나온 것이다.

 

점점 소설을 읽는 일들이 버겁다. ‘점점’과 ‘소설을 읽는 일이 버겁다.’ 사이에는 ‘불행으로 점철된 현실을 그린’ 문장이 빠져 있다. 소설을 읽는 일이 버거운 것은 현실이 시궁창인데 소설 속에서까지 ‘불행으로 점철된 현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판타지에 빠지는 건 그렇게라도 잠시 현실을 잊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에 무게를 측정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사람들은 그 행위를 너무나 쉽게 했고, 종종 재단에까지 이르렀다. 타인의 절실함을 허명에 대한 갈망으로 단정 짓기도 쉬웠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허명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좇을 것이다.(11-12쪽,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나의 잣대와 타인의 잣대는 같지 않다. 타인에겐 엄격하고 나에게 관대한 사고가 세상이 공정하지 못하게 된 것에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했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하면 만사 편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그의 삶이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얼마 전 A의 사정이 어렵다며 편의를 봐주라는 말을 들었다. 말한 사람은 A에게 편의를 봐주는 일이 내 부모가 손해를 보는 일임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듣고 싶은 대답을 정한 사람과의 대화는 피곤하다.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에는 친구들이 보기엔 제일 나아보이지만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 ‘나’가 등장한다. 그는 모친이 추락사한 기억을 가진 친구 하이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떨어지길 반복하다 거리인지 불능증에 걸리고도 다시 높은 곳에 올랐다가 죽음을 맞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청춘의 시간을 지나면 삶의 불확실함은 해결될지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여기와 저기, 거기 사이에서 오늘도 길을 헤맨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의 단편들은 주로 ‘민생고와 생애 의례(13쪽,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로 고단한 인물들이 주인공인데 「이창(裏窓)」의 인물은 예외다. ‘나’는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녀 스스로 인정하듯 오지라퍼다.

 

당신, 몸은 여기 살면서, 정작 버릴 수 있는 거 이중 한 가지도 없는 주제에 그 빛 갚음 하느라고 혼자 깨어 있는 척 치열한 척 하지 마,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으니까.(124쪽, 「이창(裏窓)」)

 

각자에겐 각각의 삶의 무게가 있기에 누군가를 위한다는 신념은 위험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타인의 무관심은 안타까운 생명을 죽음으로 몰기도 하기에-그것이 나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하다고 할지라도-그녀의 선의만큼은 왜곡하고 싶진 않다. 한편으론 ‘민생고와 생애 의례’로 고민하지 않고 타인의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그녀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이창(裏窓)」의 아이 엄마의 입장에선 무례한 급습을 한 ‘나’는 침입자이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의 불행의 원인은 침입자들 때문이기도 했다. 「식우(蝕雨) 」에선 부식 성질을 지닌 비가, 「이물(異物)」에선 털뭉치가 침입자였다. 「파르마코스」의 사람들은 내리지 않는 비로 고통을 겪었는데 「식우(蝕雨) 」의 사람들은 내리는 비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이물(異物)」의 침입자는 어떤 사건을 일으키진 않았음에도 불행의 기운이 감도는 건 초대받은 손님이 아닌 침입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은 분명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현실감은 강했다. 비극을 겪어도 그때뿐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슬픔을 잊고 살아가는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관통」의 주인공 이름은 미온이다. ‘아직 평온하지 않다’의 뜻인 미온(未穩)일 것이다. ‘아직’이란 말에는 언젠가 평온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포함하지만 그녀의 삶을 보면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미온은 미온(微溫), 온도나 태도가 미지근하다의 뜻이다.『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의 표지는 루조 폰타나의 ‘공간개념’ 연작이다. 소설에서 미온은 모사한 그림을 봤다. 미온은 미지근한 삶과도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그녀의 삶은 똑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적고 나니 생이 서글퍼진다. 현재의 불행은 과거의 어느 순간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맞은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갔을 때 사람은 자신의 심연에서 가장 단순하며 온전한 것 하나를 발견하고 비로소 되돌아 온 여지를 찾을 수 있거나, 아니면 되돌아 올 길이 없어 그대로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게 되는 걸까요?(270쪽, 「어디까지를 묻다.」)

 

미온의 삶에서 온전한 삶, 아니 온전한 거 하나라도 있는 삶으로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고, 내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삶은 달라질 거라고, 그러니 견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말은 입안에서만 맴돈다.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편할 텐데 왜 자꾸 감정이입을 하고 헤매는 건지.

 

    

 

꿈을 꾼 것처럼 세상을 분홍으로 뒤덮었던 철쭉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걷는데 싱그러운 초록들이 눈에 들어 왔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이번 여름을 잘 나는 것만 생각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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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뜨거운 햇살로 시작했다. 낮은 한여름 같았다.

머지않아 봄은 사라질 것이고 그 자리를 여름이 채울 것이다.     

 

4월엔 많은 책을 읽지 못했지만 신간을 둘러보는 일은 늘 즐겁다.

 

4월에 출간한 소설들을 살펴보니 장르 소설과 독특한 제목의 소설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론 아는 작가들보단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1.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2

 

일단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자주 비관의 늪에서 허우적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역자를 보고 열린책들 출판사라고 생각했는데 문학동네였다.

이세욱 번역가하면 열린책들이 떠오른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

그 어떤 것도 낙관할 수 없는 시대에
낙천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열정!

소제목 혹은 문구가 나온다.  

낙관할 수 없는 시대에 낙천주의자로 사는 일이 어려움을 알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2. 용감한 친구들 1,2

 

줄리언 반스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 상반된 삶을 산 두 남자 조지와 아서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아서는 아서 코난 도일이다.

코난 도일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한유주 소설가는 어떻게 번역할지 궁금하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 나오는 

“그는 무엇을 보는가. 그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는 무엇을 볼 것인가” 

이 문장이 시선을 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보이지 않는 곳을 보는 눈일지도 모른다.

 

3.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그랬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만큼이나 재미있는 제목이다. 

소설은 현재 상태가 좋지 않은 두 남자, 심리 치료사 야콥과 자칭 신이라는 남자 아벨의 만남을 그렸다.

이야기는 아벨이 야콥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면 시작한다.

야콥은 정말 신일지 궁금하고, 그가 아벨을 찾아온 이유도 궁금하다.

 

4.  사바나의 개미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3권으로 알라딘에는 자세한 책 소개가 나와 있지 않다.

작가는 치누아 아체베로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이다. 

이 책에 관심이 간 건 아프리카 문학에 대해 아는 바 없기 때문이다.

타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소개 글을 보니

'정의와 희망의 나라를 키워 나가는 데 있어

생명을 품고 상생하는 역할로서의 여성의 이미지를 제시하며 소설의 의미를 다진다. ' 고 한다.

정의를 위해 싸우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5. 뱀이 깨어나는 마을

 

추천 글 중에 '잠자기 전에 읽지 말고, 캠핑장에서도 읽지 마시길.'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읽지 마라니까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더 읽고 싶다.

사람들은 불의의 사고로 얼굴에 흉터 입은 클래라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녀는 관계를 거부하고 살았다.

클래라의 성장담인 건 확실한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이 되질 않아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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