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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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덕분에 어둠의 공포는 사라졌다. 밤은 더 이상 잠의 시간이 아니다. 낮엔 자고 밤에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도 밤은 낮이 될 수 없다. 자연의 법칙이 그러하다. 인위적인 빛은 자연의 빛의 주는 감동을 따라오지 못한다.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도 따뜻한 햇볕과 산들바람은 기분을 밝게 한다.

 

새벽은 낮과 밤의 경계에 존재하는 시간이다. 어둠을 뚫고 해가 나오는 시간이다.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은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시간상 하루의 시작은 자정 12시지만 실제 하루의 시작은 새로운 빛이 떠오르는 새벽이다. 기다림 끝에 빛이 떠오르던 모습을 봤었다. 하나의 단어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장관이었다. 좀 오래전 얘기다.

 

대부분의 새벽은 잠에 취해 있는 시간이다. 나의 새벽은 다이앤 애커먼처럼 자연을 만나는 시간이 아니다. 이 책을 새벽에 읽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길든 몸은 새벽에 깨어 있기를 거부했다.

 

새벽은 자기 시간대, 자기 기후로 세상을 덧칠하는, 석화된 숲과 잠자는 미녀들의 세상이다. 얼어붙은 이슬로 단단해진 마른 잎은 유령의 손이 되고, 사슴은 숲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돌아다니며 먹이가 녹기를 기다린다. 우리 삶의 거대한 괄호의 일부인 새벽은 삶과 물질세계의 깊숙한 회랑이 손짓할 때 살아서 죽음에 저항하는 세상으로 우리를 부른다. 그러고 나서, 어두운 방 안에 불을 켠 것처럼, 자연이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자신의 모습, 유령 같은 손, 지나온 세월의 고운 앙금까지도.(13쪽)

 

자연이 계절마다 다르듯 새벽도 그렇다. 다이앤 애커먼은 사계절의 새벽을, 새벽의 자연들을 관찰했다. 그 속에서 만난 것은 인간, 그리고 인간의 삶이었다. 비둘기들의 ‘창발적 행동’을 보고 ‘정신은 오로지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생겨남’을 생각했다. 내리는 비를 보고도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조용한 듯 보여도 실은 ‘나노초 단위로 변화하는 작은 움직임, 상호작용, 관계의 도가니’라는 걸. 마음의 요동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지 않던가. 인간은 자연 일부이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관찰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비는 그저 자연 현상일 뿐이다.

 

잃어버린 두루미들이 내 마음속에 저절로 생겨난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무수히 많은 상실들이 쌓인 곳이다. 한때 여기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 사라지고 있는 것, 변해버린 것, 아직 남아 있기는 하나 알아볼 수가 없는 것, 존재한 적이 없는 신화적인 것, 죽은 사람이나 짐승, 삶의 지나간 나날들…… 모든 번민을 일으키지만, 상실감과 망각 덕에 내 삶이 하나로 묶인다. 많은 것들이 오랜 부목(浮木)처럼 서서히 썩어갈 때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나를 놀라게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30년이 흐른 뒤에 다시 이어져 타오르는 대학 시절의 우정 같은 것.(51-52쪽)

 

새벽, 그리고 자연을 만나는 일은 지나온 삶, 현재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 나란 존재는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삶의 지속성을 생각하게 된다.

 

도심에서의 새벽은 한정되어 있다. 드문드문 다니는 버스,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 일터로 가기 위해 첫차를 타는 사람들 등. 다이앤 애커먼처럼 새벽을 만나는 일은 어렵다고 말하려다 그것이 핑계임을 깨닫는다.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은 곧 자연이었다. 자연을 만나는 일은 눈과 귀와 손이 향하는 것들, TV, 컴퓨터, 휴대폰을 잠시 외면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서 멀어지면 불안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는다. 편리를 위해 만들어놓곤 노예가 되어 버렸다.

 

삶의 정글 안에 있는 이들에게 7월은 뜨거운 계절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말이다. 또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나를 일깨워주는 때이기도 하다. 전에 나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했던 것들에 대해 이제는 충격을 받는다. 벌들은 더 서둘러 꿀을 모으고, 여름이 되어 무성해진 관상용 풀이 이제는 1.5미터 높이로 날카로운 창처럼 자라났고, 벌새들은 이동하기 전에 최대한 몸을 불리려고 먹이통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물론 여름이 빗물로 물든 목련의 녹갈색 나무껍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봉제선이 있는 스타킹을 신은 통통한 여자의 종아리 같은, 인도쪽풀의 부푼 씨방에 있는 것도 아니다. 여름은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 장대하게 뻗은 나뭇가지, 꿀을 모으는 벌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 7월이라는 계절, 헤아릴 때에만 숫자를 갖는 이 나날에 여름을 부여한다.(192쪽) 

 

여름, 7월에 태어났다. 오랫동안 여름에 태어난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날은 더웠고, 방학으로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골에서 여름방학을 보낼 상황도 아니었다. 책 덕분에 내가 태어난 달이 조금은 좋아졌다. 그러니까 나는 7월을 자세히 보지 않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이앤 애커먼은 고대 문화, 신화, 미술, 언어, 시, 꿀벌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 등 다방면의 지식을 통해 새벽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낯선 존재들, 같이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을 우리 삶의 이야기로 확장시켰다. 동물처럼 인간 역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새벽의 인문학』은 이해와 소통,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생명의 소중함과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구리가 놀라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다. 주말에 집 근처 작은 식물원에 갔다. 꽃은 없었다. 그곳은 여전히 겨울이었지만, 얼음이 녹고 있는 연못 사이로 개구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개구리 알이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 그렇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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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블 아이

 

연이어 두 건의 총기 사고가 있었다. 뉴스를 보는 일은 공포다. 세상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고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 출판사 책 소개 중에 ‘불안에 휘청거리다 악에 기대다/

일그러진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현재가 소설 속 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은 아직 읽지 못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읽어보고 싶다.

  

  

2. 우리 동네 아이들1·2

 

이집트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나지브 마흐푸즈의 장편소설이다. 이집트 작가의 소설은 처음(기억은 그러하다.)이라 관심이 간다. 책 소개를 보면 ‘마흐푸즈는 정치-종교적 차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으로 불안정했던 당시의 이집트 사회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대표적 종교의 일화를 엮어 선과 악이 대립하는 한 마을의 다사다난한 역사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독특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아담과 모세, 예수, 무함마드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혁명적 일화를 이슬람 문화적 배경 속에 녹여 낸 이 작품에는 오랜 세월 인류가 찾아 헤맨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 만났으나 답을 찾지 못하고 지나왔던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3. 프로테우스

 

디온 메이어는 남아공 출신의 작가이다. 이집트 작가의 소설만큼이나 남아공 작가의 소설 역시 읽은 적이 없다.(이번에도 기억은 그러하다.) 책 소개를 보면 ‘아프리칸스어라는 소수 언어의 한계를 딛고 전 세계 28개국에 번역 출간된 디온 메이어의 대표작이자, TV 시리즈로 각색되어 최고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한 걸작 스릴러’라고 한다. 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소수 언어의 한계를 딛고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 출간되었을까, 궁금증이 인다. 영웅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인지 영웅이 등장한다는 점도 관심이 간다.

  

  

4. 너는 모른다

 

정이현의 동명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프랑스 작가 카린 지에벨의 느아르 스릴러이이다. 프랑스의 한 언론은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청소년 동화 정도로 전락시킨 무시무시한 소설!’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강력한 서스펜스를 확인해 보고 싶다.

    

 

5. 캔자스의 유령

 

책 제목이기도 한 단편 「캔자스의 유령」은 “2009년 테드 창 강연 시 단 5쪽의 줄거리만으로도 SF팬들을 전율시켰던 화제의 문제작”이라고 한다. SF소설은 거의 읽지 못했는데 단편들에 대한 소개를 읽으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수상한 「잔상」이 실리지 않은 것은 아쉽긴 하지만(『캔자스의 유령』은 존 발리의 단편집 『잔상』(THE PERSISTENCE OF VISION)을 2권으로 나눈 첫 번째 책이라고 하니 아마도 「잔상」은 두 번째 책에 실릴 것이다.) 그럼에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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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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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일화를 떠올렸다는 말에는 지금의 나는 나이 먹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건 즐거운 일일까. 슬픈 일일까. 모르겠다.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어쨌든 지나온 그 시간이 오늘의 나를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그 시간을 함께했던 당신도.

 

청춘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청춘을 지난 지금도 그러하다. 언제쯤 명확해질까. 삶의 교차로에 헤매는 시기는 스무 살인지 알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교차로에서 헤맨다. 야간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완료가 아닌 진행형이다.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어떤 이야기는 증발했고 어떤 이야기는 가물거린다. 내 기억들은 오해와 착각이 만든 잘못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불명확한 기억은 답답함과 다행 사이를 오간다.

 

그는 생의 한 교차로에, 보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한 경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래. 그리고 또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91쪽)

 

파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에서 60대의 소설가 보스망스는 40년 전의 과거, 스무 살의 시간으로 ‘퍼즐의 모자란 조각’들을 찾아 떠난다. 그곳에는 ‘잘못된 만남’이었던 부아야말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녀와 고통에 빠트렸던 어머니와 환속 신부로 벗어나려던 자신이 있었다.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 없었던 두 사람이, ‘언제나 통과 중, 그리고 경계 중’이었던 그들이 그 시절에 만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때로 삶을 견디는 힘이 된다. 그것이 사랑이든 아니든.

 

그들은 새로운 지평을 찾아 파리를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고통 혹은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청춘이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경험들은 안개 뒤에 희망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지웠다.

 

점점 타인의 고통(슬픔)을 만나는 일이 겁이 난다.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때때로 지평을 기대했던 그 시간을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그 시절의 고통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 과거의 고통은 현재의 고통보다 시시하거나 가볍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과거의 고통은 때로 현재를 견디게도 한다. 그 시절도 지나왔는데 이런 일쯤이야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통과 고통이 만나 희망이 되는 것은, 혹은 슬픔과 슬픔이 만나 지평이 되는 것은 청춘에게나 가능하다. 미래라는 시간이 있는. 그땐 잘 모른다. 자신들에게 미래라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도 그랬다. 그들은 현재 속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벗어나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루한 현재에 갇힌 나이 든 어른들과 달리.

 

드라마 <힐러>에서 20대 정후가 90년대 20대를 보낸 문호에게 ‘사장님은 생각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나 역시 생각이 많다. 도대체 언제 행동할 건지. 생각하는 것, 기억하는 것만으로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보스망스가 마르가레트의 삶이 만난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그 기억은 보스망스의 삶을 지배했다.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의 미래를 현재로 사는 보스망스는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보스망스는 좀, 아니 많이 설레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가 이토록 설레니 말이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혹은 잊었다 해도 서운함보단 반가움이 들 것 같다.

 

『지평』은 두 번째 읽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이다. 그에게 기억의 퍼즐을 찾는 일은 삶을 지배하는 과제인 모양이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혹은 이것저것 재고 만나는 관계에 익숙해선지 그의 사랑이 신선했다. 아마도 그녀는 그를 알아보진 못해도 잊진 않았을 것이다. 먼 지평을 향한 탈주로를 함께 선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기에. 삶의 행로의 어느 순간 포개졌던 이들이 떠오른다. 당신들, 잘 지내고 있기를! 그땐 정말 고마웠다는 말도 함께 전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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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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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상식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이발사」의 이발사와 손님들처럼 말이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상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어찌 그들뿐일까. 「숲의 전망」의 메리 포천에게 상식은 땅을 팔아 미래를 확보하는 것이지만, 그의 손녀에게 상식은 땅을 팔지 않고 숲의 전망을 보거나 잔디밭에 송아지들이 풀을 뜯어 먹게 하는 것이다. 경청과 설득을 통한 조율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빈틈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 그들의 믿음의 벽은 너무도 단단하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작가의 이름이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만 39세(1925.3.25-1964.8.3)에 루프스 합병증인 신장 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루프스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유전병이었다.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장편 소설 2편과 단편 소설 서른두 편을 발표했는데 『플래너리 오코너』에는 서두에서 언급한「이발사」를 포함하여 서른 편이 실려 있다.

 

「이발사」의 이발사와 손님들, 그리고 일하는 흑인조차 검둥이는 부리는 대상이라는 사고를 지녔다. 「제라늄」의 더들리 영감이나 「추방자」의 매킨타이어 부인의 사고도 다르지 않다.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의 줄리언 어머니에게 흑인은 동정의 대상이었다. 세상은 변했고, 사는 곳도 달라졌지만, 검둥이는 하인이라는 사고가 뿌리박혀 있었다. 잘못된 생각일수록 더 단단히 박힌다. 줄리언 어머니의 친절은 내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사고에서 기인했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인물들이 흑인들을 대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부리는 대상으로 여겨 멸시하거나 불쌍히 여겨 친절을 베풀거나.

 

 「제라늄」의 ‘제라늄’은 떠나온 고향을 상징한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한 가지뿐이다. 흑인들과 부딪히며 사는 것 그리고 세상이 변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사는 곳은 감옥이 된다. 『플래너리 오코너』에는 자유로워진 흑인들로 인해 혼란에 빠진 백인들이 등장한다. 고용인은 피고용인의 사고를 지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매킨타이어 부인의 불행은 폴란드에서 탈출해 온 귀작을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판단은 때로 상대적이다. 흑인에게 자유는 마땅한 일이지만, 그들을 하인으로 생각했던 백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공포다. 「제라늄」의 더들리 영감이 흑인들과 부딪히는 삶을 두려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오랜 시간 그것은 그의 삶이 아니었다. 「살쾡이」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게이브리얼 영감에게 살쾡이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행운」의 루비에게 임신은 공포다. 그녀가 어머니의 임신을 보며 느낀 것은 임신은 ‘죽음을 쌓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듯 아기의 탄생은 삶의 행운이기도 하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들은 보이는 것,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작가는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이야기한다.「이녹과 고릴라」의 이녹 에머리는 스타 고릴라처럼 유명해지고 싶었다, 우연한 행운으로 고릴라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믿는, 오만 혹은 편견일지도 모른다. 이녹 에머리는 「감자 깎는 칼」, 「공원의 중심」, 「이녹과 고릴라」에 등장한다. 작가는 이녹 에머리라는 이름에 애착이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사람은 드물다」에서 할머니의 거짓말은 가족을 파국으로 몰았다. 옛집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은 잘못된 기억을 만들었고 가짜 이야기를 만들었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인물들 중엔 「당신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당신의 생명」의 루시넬 크레이터나 「강」의 해리처럼 삶의 구원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 처지에서 귀가 멀고 평생 말을 해본 적 없는 딸을 위해 선택한 거짓말이었지만 결과는 비극이었다.

 

「좋은 시골 사람들」은 「당신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당신의 생명」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장애를 가진 딸을 둔 엄마와 모녀에게 좋은 사람인 척하는 나쁜 남자가 접근한다. 모녀가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그녀들의 거짓말은 치명적이지 않았다. 남자들이 그녀들의 거짓말을 몰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들의 거짓말은 눈에 보이는 거짓말, 딸들의 나이를 대폭 속이는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당신의 생명」의 호프웰 부인은 딸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도 모르고 성경 외판원에게 순진하다고 말한다. 프리먼 부인은 “어떤 사람은 순진하게 사는 게 불가능해요. 나는 일단 불가능해요.”라고 말했다. 「가정의 안락」의 토머스의 어머니는 스타를 좋은 아이라고 믿고 선을 베풀었다가 가정의 파멸을 겪는다. 「절름발이가 올 것이다」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나의 선(善)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일 수 있다. 선한 행동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드라마 <펀치>의 인물들은 누가 더 나쁜가,를 두고 경쟁한다. 세상은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악과 더 나쁜 악의 싸움이다. 선이 악을 이기는 일은 판타지다. 현실은 더 센 악이 이긴다. 악을 이기려면 내가 괴물이 되어야 하는 현실. 순진하지 않는 세상을 살려면 순진하지 않게 살아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믿고 싶지 않지만 진실이다.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으면서 느낀 건 일종의 공포였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흑인, 종교, 질병에 관심을 가졌다.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은 ‘구원’은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혹은 행동했지만) 그(혹은 나)는 늘 좋은 사람은 아니었고, 내 선택과 행동으로 누군가(혹은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리석음이었다. 아버지에게로 이어져온 루프스라는 병, 50-60년대 미국의 시대적 혼란이 작가로 하여금 불신과 공포를 갖게 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구원’을 고민했다는 건 치열하게 삶을 고민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작가의 단편 중 「죽은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다」라는 단편이 있다. 투병생활을 하며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건 어쨌든 행운이라고.

 

내 경우 단편은 장편보다 읽기가 어렵다. 잠시 딴생각을 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31편의 단편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러 번 길을 잃었다. 비슷한 소재들이 많아 때때로 기시감도 느꼈다.

 

눈이 펑펑 내린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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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월 평가단 도서로 현대문학 세계문학단편선 중 하나인 『플래너러 오코너』가 선정되어 이번에 다시 선정될 것 같진 않지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궁금한 도서다. 그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앵무새를 데리고 다니는 외다리 해적 실버가 등장하는 『보물섬』과 처음 동화로 읽으며 상상력이 놀랐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의 작가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그 이름만으로도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다.

  

  

뿌리 이야기

 

2015년 이상문학상은 김숨의 「뿌리이야기」가 선정됐다. 2015년 이상문학상 전집 책 표지를 보고 놀랐다. 2012년에 표지가 바뀐 후 이번에 다시 바뀌었는데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등장하는 표지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예전 것도 딱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이번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표지와는 별개로 이상문학상 전집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김숨은 작가의 이름만으로, 한유주는 개인적으로 소설과 비슷한 사연이 있어 궁금하고, 손홍규와 이평재는 처음 만나는 작가들이라 궁금하다.

  

  

라운드 하우스

 

작가인 루이스 어드리크는 30년 동안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을 문학으로 표현해 왔다고 한다.

“정의가 부재한 모든 역사에는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 소개에 나온 문장이다. 어제 드라마 <힐러>를 보는데 강민재(우희진 분)는 김문호(유지태 분)에게 오너가는 건들 수 없다며 방송 어차피 못 나간다고 하자 문호는 이길 수 없다고 그만두면 애들한테 쪽 팔린다며 그건 싫다, 고 말했다.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청춘의 몫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지푸라기 여자

 

임수정, 유연석 주연의 영화 <은밀한 유혹>의 원작소설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지푸라기 여자’라는 제목이 더 끌린다. 이 책에 대한 첫 관심은 제목이었다. '지푸라기'는 여자의 어려운 상황을 상징하는 단어로도 느껴졌고, 가녀린 여자의 모습이 상상 되기도 했다. 책 소개를 보니 ‘서스펜스와 인간심리의 위험한 줄타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완전범죄소설의 고전이자 모범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한다.

    

 

영원히 사랑해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빅 브라더』와 고민하다 이 책을 선택했다. 『빅 브라더』의 ‘가족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 자신으로부터 구해 내는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쉽게 답할 수는 없는 질문이라 작가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그럼에도 『영원히 사랑해』를 선택한 건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은 읽은 적이 있지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는 독서리스트에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보단 아쉽다는 평이 있지만,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늘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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