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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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는 독일의 오래된 도시 이름이다.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 5번째는 허수경 시인의 뮌스터 이야기, 『너 없이 걸었다』이다. 뮌스터(Münster)는 독일어로 ‘대성당’이라는 뜻이지만 겨울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 한 해의 마지막 달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 ‘겨울(winter)’과 ‘괴물(monster)’이 떠올랐다.

 

시인의 안내를 받아 눈으로 걷고 입으로 걸었다. 느릿느릿. 쉬엄쉬엄. 여행자에게 낯선 도시는 펑펑 내리는 첫눈과 같다.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느껴진다. 뮌스터는 처음 알게 된 도시인데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도시 같았다. 아마도 그건 뮌스터가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위압감이 드는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도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게 느낀 또 하나는 뮌스터에 대한 시인의 깊은 애정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들려준 뮌스터는 깊은 슬픔과 투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였다.

 

사는 게 너무 추하다, 서럽다 싶을 때 트라클을 읽으면서 걸어보는 게 어떨는지. 그의 영혼을 우리가 위로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로할까. 그는, 혹은 그의 시들은 우리를 참 많이도 챙겨주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우리가 위로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로할까. 그는, 혹은 그의 시들은 우리를 참 많이도 챙겨주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우리가 위로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로할까. 미우나 고우나 우리의 도시들은 우리를 안아주지 않았던가. 뮌스터는 그대 없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였다. 이 도시를 그대 없이 참 오랫동안 걸어왔다. 모든 평범한 이 세계의 도시, 혹은 저 하늘의 별들이 걷는 것처럼.(33쪽)

 

지금 사는 도시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도시는 나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다. 이곳에선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어느 곳을 걸어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사실은 안도가 된다. 도시는 처음과 많이 달라졌지만, 사는 동네는 처음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많이 달라졌다. 하천은 사라졌고 전철역이 생겼다. 개발을 갈망하는 목소리에 누군가는 떠났고 어떤 것들은 사라졌다. 언젠가 이 도시는 나에게 기억을 의심하게 할 것이다. 추억은 땅 아래로 묻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그 자리에 누군가의 기쁨이 터를 잡을지라도.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은 따뜻하지만 나쁜 것을 기억하는 것은 새록새록 아프다. 그 아픔을 견뎌내어야만 하는 것도 기억의 일이다. 기억하지 않고 묻어버린 공동체의 과거는 언젠가는 그 공동체에게 비수를 들이댄다.(86쪽)

 

뮌스터는 어느 시절 독일 전체가 그랬던 것처럼 나치 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괴물의 시대였다. 건물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사라졌다.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을 잃고 살았다. 폐허의 시간을 살았다. 뮌스터는 그 시절을, 그들을 잊지 않았다. 이름과 태어난 해, 사망한 해, 끌려간 장소를 기록한 거리 바닥에 박힌 ‘걸림돌’이 그 증거다. 독일어로 뎅크말과 만말은 각각 긍정적인 의미로 무언가를 기리는 기념물과 부정적인 사건을 경고하는 기념물을 뜻한다고 한다. 긍정적인 과거도, 부정적인 과거도 역사다. 역사는 삶의 흔적들이 쌓여 이어지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희생된 이들에게 잊히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잊음을 독촉하는 사회가 비인간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군가의 억울한 일을 잊어버리면서 인간은 짐승이 되어간다. 그 짐승은 인간을 다시 억울한 구석으로 몰고 가면서도 자신이 어떤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관찰하려고 한다. 잊음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성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몸짓이다.(92쪽)

 

허수경 시인 덕에 독일의 작가들을 알게 됐다. 27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간 시인 트라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끌려가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을 맞은 콜마르, 열여덟 나이에 나치에게 죽임을 당한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계 소녀 젤마 메르바움 아이징어 등이 그들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지키고 사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어느 시절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는? 그들의 시대보단 양호한데 크게 위안이 되진 않는다.

 

허수경이 안내한 뮌스터는 시시한 내 일상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켰다. 시인이 들려준 뮌스터 이야기는 바쁘다는 이유로, 삶이 지친다는 이유로 잊고 있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뮌스터를 통해 폐허의 시간을 견디면, 잊지 않으면 아름다운 시간이 온다는 걸 알았다.

 

뮌스터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가려면 15~16시간이 걸린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들이 길어지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책 표지를 펼치면 뮌스터 산책 코스가 그려진 지도를 만날 수 있다. 이 지도를 들고 뮌스터를 느릿느릿 걷고 싶어졌다. 같이 걸을 ‘너’가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 걸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뮌스터라면. 일단은 내가 사는 도시를, 동네를 걸어볼 일이다. 걷는 것은 이 도시를 잊지 않는, 기억하는 한 방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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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을 좋아했었다.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이다.

지금은 모르겠다.

수많은 책들 속에서 한국소설에 눈이 멎는 걸 보면 여전히 좋아하는 것 같기도.

 

 

 

신간을 살피니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두 도시 이야기]를 쓴 찰스 디킨스의 [오래된 골동품 상점], 

이름은 익히 아는 그러나 한 권도 읽지 않은 기욤 뮈소의 조금은 뻔한 제목의 [지금 이 순간],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낭만 픽션 [범죄자의 탄생],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을 증명하는 스티븐 킹의 생애 첫 장편소설 [롱 워크] 등이 눈에 띈다.

      

 

 

작은 출판사 아작에서 출간한 차이나 미에빌의 [이중도시],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고통을 그린 헤닝 만켈의 [불안한 낙원],

방영 중인 드라마 [마을]이 떠오르는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의 [밧줄],

이름이 낯설어 신인 작가인 줄 알았는데 이미 많은 작품을 출간한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는

관심이 가는 책들이다.

 

출간된 많은 책 중에서 이번 달엔 한국소설을 추천할까 한다.

한동안 한국소설을 멀리 했더니 우리말로 쓴 글이 그리웠다. 

 

 

 

 

  

 1. 이승우 [에리직톤의 초상]

어느 시절 이승우의 소설을 좋아했었다.  

부지런히 책을 사서 읽었는데 이 책은 구하지 못했었다. 

그동안의 경험상 만만치 않은 독서가 될 것을 알지만

이번엔 읽어보고 싶다. 

[이승우 컬렉션]의 첫 번째 작품으로 출간됐다.

 

2. 오한기 [의인법]

낯선 작가임에도 기성 작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인 작가였다.

[의인법]은 그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후장사실주의'라는 그룹의 멤버라는데 

그(들)가 지향하는 글쓰기가 궁금하다.

 

3. 김엄지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김엄지의 첫번째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와

첫 장편소설[주말, 출근, 산책 : 어둠과 비]이 출간됐다.

오한기와 더불어 80년대에 출간한 작가다.

그들의 건투를 빈다.

 

4. 진연주 [코케인]

문학동네 작가상으로 수상되지 못했음에도 출간된 작품이다.

행복하진 않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코케인]은 진연주의 첫 장편소설이다. 

 

5. 진보경 [게스트 하우스]

진보경 역시 신인 작가다. [게스트하우스]는 첫번째 소설집이다.

출생연도는 나와 있지 않지만 등단연도와 소설 내용으로 보아

오한기, 김엄지와 더불어 80년대생 작가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들의 작품들을 비교해 읽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가 될 듯 싶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쓰고 보니 모두 첫 번째, 라는 공통점이 있다.

마지막 달, 새로운 시작을 앞둔 시간,

작가들의 첫 작품을 읽는 일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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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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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란 시에서 이 세상에서 사는 일은 소풍이라고 했다. 잠시 놀러 와선 많은 것을 누리며 산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면서 부족하다 생각해 계속 욕심을 부린다. 정민의 『책벌레와 메모광』에 의하면 어떤 장서인은 자기 이름을 넣고 그 끝에 ‘차람借覽’ 또는 차관借觀‘이란 도장을 찍어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중국 책은 줄줄이 찍은 장서인으로 그 책이 어떻게 유전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 책은 내 것이다, 가 아니라 그 책을 가졌었다, 는 것 자체로도 의미를 두었던 그들이 존경스럽다.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몇 번의 경험으로 웬만해서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받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준다. 약간의 못된 심리인데 장서인이라도 찍어 빌려줄 걸 했다는 생각이 든다. 빌려 간 사람이 내 책이라는 걸 기억하게. 다른 사람이 그 책을 봤을 때 그 사람이 내 책을 빌려 간 사실을 알게. 최석정은 어느 책에도 장서인을 찍지 않았고 남에게 빌려줄 때도 다시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서적이란 공공의 물건이니 사사로이 지키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마침 책을 모을 힘이 있었기에 책에 내게 모인 것이고 다른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26쪽)라고 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직은 책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물욕은 많지 않은데 책은 예외다. 서점에 가면 사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 책들을 보면 내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다 읽는 것과 무관하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지 않는다. 집중해서 읽는 것이 어렵다. 아마도 내 책이 아니라는, 기간 내에 반납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다. 겨우 집중에 읽고 반납하고 나면, 그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내내 떠나질 않는다. 아, 이 끝없는 책 욕심이여!

    

이덕무는 열 손가락이 모두 동상에 걸려 손가락 끝이 밤톨만하게 부어올라 피가 터질 지경인데도 하루에 수천 자씩 베껴 썼다고 한다. 책을 구하기 힘든 시대, 거기에 가난했던 그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베껴 쓰면 눈으로 읽는 것보다 오래 기억되고 생각이 명료해지기 때문이었다. 그가 책을 베껴 쓴 것은 욕망이 아닌 열정이었다. 그는 진정한 책벌레였다.

 

지금은 책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지만(대신 독서 기록은 한다,)한때는 책을 산 날짜와 서점도 적고 밑줄도 치고 감상도 적어놓곤 했었다. 오래된 책들을 펼치다 그런 흔적들을 만나면 그날로 타임머신을 타게 된다. 참 행복한 기억이다. 몰론 박제가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나는 이렇게 훌쩍 커버렸구나.’(33쪽)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타인의 오류는 지적하지만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못한다. 타인에겐 엄격하고 나에겐 관대하다. 다산은 잘못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잘못 적은 메모에 대해 메모를 덧붙여 바로 잡았다. 메모는 하지만 별도로 정리하지 않은 터라 흩어지고 사라지기 일쑤다. 그나마 요즘은 휴대폰 메모 기능을 활용하는 까닭에 사라지는 일은 드물어졌다. 다산과 저자 정민 덕에 메모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계합은 ‘지금까지 무의미하던 사물이나 대상이 나와 새롭게 만나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이다.’(220쪽) 계합은 메모에서 비롯된다는 저자 정민의 말에 동감한다. 메모는 기억을 되살려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아름다운 기억이든 아픈 기억이든 모두.

 

조금씩이라도 매일 책을 읽지만 전에 비해 스마트폰에 의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흩어질 이야기에 빠져 책을 읽지 못했다. 책에 집중할 수 없는 날이 많았다고 생각했지만 핑계였다. 『책벌레와 메모광』는 나의 독서 습관을 돌아보게 했다. 올해 세웠던 독서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빨리 보단 느리고 깊게 읽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 적게 읽었다. 리뷰도 많이 쓰지 못했다. 내년에는 부지런한 독서와 성실한 메모를 꿈꿔본다. 그것은 좀더 나은 나를 만드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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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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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 비는 중간에 잠시 멎긴 했지만 오전까지 내렸다. 비 내리는 금요일 저녁 K를 만나 곱창에 소주를 마셨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가 시작했다. 본방은 못 보고 늦은 밤 재방송으로 봤다. 1988년 K를 만났다. 그러니깐 우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셈이다. 어떤 기억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랬었나, 할 뿐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문득 J가 그리웠다. 비와 곱창과 소주 때문이다. 그러다 생각했다. J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내일은 J의 회사가 있던 시청역에서 약속이 있다. 은행나무 사이를 걸어 뛰어왔던 J가 떠오른다.

 

안개로 뒤덮인 영국의 어느 마을에는 ‘고립된 삶’을 사는 액슬과 비어트리스라는 노부부가 있었다. 노부부와 마을 사람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의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왜 헤어져야 했는지도 기억 안 나는 아들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들은 안개가 걷히는 방법을 알아 기억을 되찾고 싶었고 아들을 만나길 원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남아 있는 나날』로 만났다. 기억이 희미해 작성했던 리뷰를 읽어보니 두 소설은 공통점이 있었다. 두 소설 모두 인생의 저녁을 사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길을 떠났고 기억을 만났다.

 

“난 그 애 얼굴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요.” 액슬이 말했다. “분명 모든 게 이 안개 때문일 거예요, 사라져서 좋은 것도 많지만 이렇게 소중한 걸 기억 못하는 건 잔인한 일이오.”(49쪽)

 

기억은 언젠가 소멸한다. 그렇다 해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상황들이 기억을 지운다면,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는 아주 많이 슬플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액슬에게 비어트리스가, 비어트리스에겐 액슬이 있었다.

 

두 사람은 바싹 붙어서 걸었고 액슬이 비어트리스의 바로 뒤에 있었다. 그런데도 평원을 지나는 동안 비어트리스는 대여섯 걸음마다 한 번씩 위령 기도를 올리듯 “지금도 거기 있나요. 액슬?”이라고 물었고, 이에 액슬은 “지금도 여기 있어요, 공주.”라고 대답하곤 했다.(52쪽) 

 

그들은 길을 가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후에도 자주 등장한다. 안갯속 갇혔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은 공포였다. 공포를 견디게 하는 것은 다정한 목소리,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있으면 어때? 그들은 지금 함께 있는데. 그들이 인정하듯 그들의 사랑은 강한데. 이렇게 생각하며 읽는데 이 질문을 만났다.

 

‘함께 나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과 당신 남편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거예요?’(71쪽)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옆 사람이 목소리가 다정한 것은, 그의 손이 위로가 되는 것은 내가 그를 알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인, 당신은 이 안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확신하나요? 우리가 알지 못하게 감춰져 있는 편이 더 좋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어떤 이들에겐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신부님. 액슬과 저는 함께했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되찾고 싶어요. 그런 순간들을 빼앗긴다는 건 밤중에 도둑이 들어와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것과 같아요.”

“하지만 안개는 좋은 기억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까지 모두 덮고 있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부인?”

“우리에게 나쁜 기억도 되살아나겠지요. 그 기억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몸을 떨기도 할 거고요. 그래도 그건 우리가 함께했던 삶 때문에 그런 거 잖아요?”

“그럼, 나쁜 기억은 두렵지 않은가요, 부인?”

“뭐가 두려워요, 신부님? 오늘 액슬과 제가 각자 마음속으로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아무리 이 안개가 위험을 숨기고 있더라도 기억을 되찾는 길이 우리에게는 어떤 위험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건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이전까지 아무리 우여곡절이 많았더라도 두려워할 게 없다는 건, 어린아이라 해도 알 거예요, 액슬과 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더라도 함께 기억할 거예요. 그건 우리에게 소중한 거니까요.”(234-235쪽)

 

나와 K 사이에, 나와 J 사이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K를 만나는 건, 그럼에도 J를 그리워하는 건 27년 그리고 12년의 쌓인 시간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동일 아빠는 설움 많은 둘째 딸 덕선에게 “아빠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런다.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지금의 나는 나쁜 기억에 대해 그들이, 그리고 내가 처음 겪는 일이라 서툴러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간은 때로 아량을 선물한다.    

 

길을 떠난 사람들은 노부부뿐이 아니었다. 위스턴과 에드윈, 말 호레이스와 길을 떠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있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기억을 찾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복수하기 위해 암용을 없애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암용이 있는 거인의 돌무덤으로 가야 했다.

 

암용을 죽이느냐 마느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암용이 악이라면 지금 죽여도 필요한 이들이 존재하는 한 언제고 다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억을 지울 능력이 있어도 그는 그저 한낮 짐승일 뿐이다. 비극의 상징인 거인의 돌무덤에 갇힌 암용의 삶도 비극이었다. 암용은 악한 존재이지만 아니기도 하다. 가웨인의 말처럼 그는 사람들이 서로 싸웠던 기억을 잃게 함으로써 평화를 주었다. 무서운 존재는 평화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말라고, 싸우지 않으면 삶을 지킬 수 없다고, 싸우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세뇌한다.

 

몸의 변화로 잊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잊거나 잘못 기억하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비어트리스의 말처럼 삶은 어떤 모습이든 소중하기에. 비극의 기억은 떠올랐고 아들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실하진 않지만, 남아 있는 나날이 해피엔드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길을 가는 노부부의 사랑은 아름다웠다. 내게 『파묻힌 거인』은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11월을 닮은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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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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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헌드레즈홀을 본 것은 열 살 때였다.(첫 문장, 11쪽)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은 오랜 시간 뇌리에 남아 생을 지배한다. 『리틀 스트레인저』의 ‘나’에겐 헌드레즈홀에 대한 기억이 그랬다.

 

에어즈 부인은 스물넷이나 스물다섯쯤이었고, 남편은 그녀보다 몇 살 더 많았으며, 딸 수전은 여섯 살쯤이었을 것이다. 분명 무척 보기 좋은 가족이었겠지만, 그들에 관한 내 기억은 희미하다.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건 그 집 자체다. 내게는 천하에 둘도 없는 완전무결한 대저택으로 보였다. 근사하게 낡은 그 집 구석구석이 생각난다. 빛바랜 붉은 벽돌, 물결 모양으로 굴곡진 창유리, 풍화된 사암 가두리. 덕분에 집은 약간 흐릿하고 불분명해 보였다. 이제 막 햇볕에 녹기 시작한 얼음 같다고 생각했다.(11-12쪽)

 

메이드가 살며시 복도 한쪽으로 사라지자 나는 대담하게 그 반대쪽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엄청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단순히 몰래 침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집 자체에 대한 전율이었다. 집의 외양 하나하나가 기가 막혔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바닥, 목제 의자와 장식장에 흐르는 고색창연한 빛, 비스듬히 뒤로 젖혀진 거울, 창들의 소용돌이 장식. 나는 먼지 하나 없는 새하얀 벽 쪽으로 뭔가에 끌리듯 나가갔다. 회반죽으로 도토리와 나뭇잎 모양을 본떠 가장자리를 장식한 벽이었다. 그런 건 교회의 외관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도토리 하나를 꽉 그러쥐고 틀에서 억지로 비틀어 떼어내려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꽉 그러쥐고 틀에서 억지로 떼어내려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주머니칼로 그 도토리를 파냈던 것이다. 망가뜨릴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짓궂거나 뭔가 때려 부수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단지 그 집을 숭배하는 마음에서 집의 일부를 갖고 싶었을 뿐이다. 아니, 그토록 숭배하니까. 물론 좀더 평범한 아이였다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내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사랑에 눈이 멀어 상대의 머리카락 몇 올을 갖고 싶어하는 남자의 심정이랄까.(13-14쪽)  

 

그 집엔 수전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지만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상은 여자아이가 아닌 집 자체였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순전히 우연’으로 에어즈 가를 방문하게 된다. 소설의 화자인 ‘나’ 패러데이는 에어즈 가의 주치의인 데이비드 그레이엄에게 응급환자가 생겨 대신 갔다고 말했다.

 

“어머님께는 제발 말하지 말아주세요. 기억 못하실 겁니다. 그때 저는 쉰 명쯤 되는 무릎까지고 지저분한 꼬마 중 하나였는걸요.”

“하지만 그때도 이 집을 좋아했던 거네요?”

“망가뜨려서라도 갖고 싶을 만큼요.”(99쪽)

 

‘나’가 우연히 헌드레즈홀를 방문했다는 말을 믿었다. 헌드레즈홀을 욕망했던 어린 시절, ‘리틀 스트레인저’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면서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왜? 그는 소설의 화자였으니까. 에어즈가에 불운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른 ‘리틀 스트레인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어린 나이에 죽은 에어즈가 무남독녀 수전이 혼령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고 다음엔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에어즈가 사람들의 나약한 마음이 환청이나 이상한 흔적들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러다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에어즈 부인의 장례를 앞둔 ‘나’의 행동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캐롤라인을 위로하지 않고 지인들에게 캐롤라인과 결혼할 사이라고 밝히는 것에 급급했다. ‘나’의 목표는 사랑하는 캐롤라인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캘롤라인과 결혼해 헌드레즈홀에 사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가졌던 헌드레즈홀에 대한 욕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결국은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의 집요함이 두렵다. 그렇다면 그가 ‘리틀 스트레인저’일까? 대답은 ‘그렇다.’와 ‘아니다.’ 둘 다이다.

 

소설은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한 영국 귀족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랜 시간 안락을 보장했던 성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성 밖의 세상을 만나는 일은 두려움이다. 그들에겐 용기가 없었다. 그들을 몰락으로 이끈 ‘리틀 스트레인저’는 과거의 영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둠과 슬픔 속에 살았던 그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불안의 씨앗은 점점 커져 결국 그들을 잠식한 것이다. 어떤 면에선 친절한 의사를 조심하라, 그도 낯선 사람이다, 로 읽히기도 한다. 읽고 난 후 서늘함이 온몸을 감쌌다.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제목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서 인용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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