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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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올리면 부모에 이어 형제가 떠오른다. 지금은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원래 집은 가족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낯선 세상에서 가족은 최초의 내 편이다. 가족이라도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즐거운 날도 많지만 전쟁의 날도 숱하다.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건 가족이라도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집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가족이 동상이몽 하며 지지고 볶으며 사는 곳이라고.

 

알랭 레몽의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책 제목과 같은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가 그것이다. 두 소설은 작가인 알랭 레몽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의 화자이기도 한 알랭 레몽은 오십 년이 흐른 후 가족과 함께했던, 때로 가족과 분리되어 혼자였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두 편의 소설은 정치·사회적 변화의 물결 속에 그와 가족이 살고 머물렀던 집과 꿈을 찾아 방황했던 스무 살 무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난 이야기들은 기억의 왜곡과 상실 덕에 대부분 과장되기 마련이다. 지독하게 불행하거나 그리울 만큼 아름답거나. 그의 소설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모두에겐 지나간 시절이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고 이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았던 시절이지만 오늘의 나를 만든 시간이다.         

 

그 집으로 이사 갔을 때 나는 여섯 살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그렇게 따져보니 한 이십 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십오 년도 넘었다. 그렇대도 그 집은 우리 집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니 불청객들은 나가라, 감히 어디라고! 꺼지란 말야! 그 집은 당신네 집이 아니야. 우리 집이란 말야. 그 집에 살면서 겪은 일들이 너무 많고 너무 지독하고 너무 찐해. 거기서 우린 너무나 행복했어. 그리고 때로는 여지없이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 열 명이나 되는 우리 형제들 전부. 그리고 부모님들도. 지금 나는 트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집에서 먼 곳에. 그 모든 것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러나 가끔 브르타뉴로 다시 돌아가 트랑을 지나기도 하고 거기서 걸음을 멈추는 때도 있다. 떨리는 가슴으로 그 집을 지나는 때도 있다. 모르는 체하며 슬며시 창문 저쪽으로 눈길을 던져 그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창 쪽으로 가까이 가려고 하면 꼭 화상이라도 입을 것만 같다. 쳐다볼 수가 없다. 정말이지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18-19쪽)

 

옛집에 간 적이 있다. 그 집은 새로 지어져 있었다. 태어난 집은 아니지만 여덟 살 여름부터 스무 살 봄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여러 집에서 살았지만 ‘집’이란 단어에 떠오르는 집은 그 집뿐이다. 당시에는 그 집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에선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옛집에서의 내 부모님 역시 그랬다. 그것은 나에게 슬픔을 넘어 절망이었다. 잊었던 건 아니지만 그리움 앞에 절망은 무뎌졌다. 안 좋았던 기억들은 다른 집에서도 계속됐지만 특별한 기억은 그 집에서만 유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집은 작았지만 있을 것이 다 있는 집이었다. 훗날 넓은 친구 집에 놀러 가기 전까지는 그 집이 작은지도 몰랐다. 그 집에는 마당과 옥상과 지하실과 다락방이 있었다. 그 집은 숨바꼭질하기 좋았고 보물찾기하기 좋았고 틀어박혀 책읽기 좋았다. 함께 했던 가족과 이웃들이 살지 않는 그 골목은 낯설었다. 다행이랄까. 그 골목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골목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그 골목 역시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마지막 남은 내 기억의 조각도 사라질 것이다.

 

골목이 사라지는 건 차라리 낫다. 맘에 들진 않지만 다른 집들이 세워지니까.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의 ‘나’는 샤토브리앙의 《무덤 저 너머의 회상》에서 ‘나의 모든 하루하루는 작별의 나날이었다.’라는 글을 읽었다고 했다. 살아오면서 많은 이들과 이별을 했다. 어떤 이별은 언젠가 만날 거라는 기대를 품거나 잘살고 있겠지 여기며 살았지만, 어떤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었다.

 

조금씩 잊혀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의 일부다. 산다는 건은 결국 이별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지나온 시간과. ‘나’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나의 부모님도 언젠가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노년의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지만 재작년 가을 무렵부터 작년 봄까지는 아주 나빴다. 게다가 어머니의 건강 역시 안 좋았다. 아버지를 보며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자식으로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다는 죄송함과 ‘내 속에서 나를 무섭게 하는,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어떤 존재’(93쪽)가 있어 마음이 복잡했다.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추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지독한 현실 앞에 기억은 때로 길은 잃는다. 추운 날들이 이어지는 것을 제외하면 고요하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의 ‘나’는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148쪽)고 했다. 지금의 나는 이 평화가 지속하길 바란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길 바란다. 산다는 건 결국 이별하는 것인데 이별은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녜스, 자크, 마들렌, 베르나르, 그리고 나. 커버리고 나면 아이들은 더는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녜스는 어느 날 놀이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자크도. 어느 날 문득 놀이를 할 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비밀을 잊어버린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걸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온갖 삶들을 마음속으로 지어내고 그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게 끝나버린다. 그냥 그렇게 갑자기 딱 멈춰버린 것이다. 놀이의 상실, 놀이의 망각, 나는 그게 바로 일생 중 최악의 날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그런 날을 거치게 마련이다. 어느 날 내 차례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마지막 날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남김없이 즐겼다. 내가 기록을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오랫동안 즐긴 것이다.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느 날 내 또래의 친구 하나가 나를 찾아서 마당으로 왔다가 내가 마들렌, 베르나르와 함께 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쏘아붙였다. 아니 그 나이에 아직도 이런 놀이를 하는 거야? 그렇다. 아직도 그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그런 놀이를 할 줄 모르게 된 그를 동정했다. 나중에, 그 울타리를, 그 경계를 넘어와버리면 끝이다.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결코.(「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40-41쪽)

 

파티는 끝났다. 내 몸이 겪는 고통의 여름.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의 부재. 목숨을 부지하고 견디는 일이 남았다.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깊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 사고가 나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던져놓은 것이다. 이것이 눈앞의 현실이다. 몽유병자나 자동인형같이 된 나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나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이다. 삶이 딱 소리를 내며 부러져버렸다. 사고가 나기 전의 삶과 후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생트 크롸, 나의 소명, 이런 것은 이제 다 지워져버렸다. 죽은 것이다. 끝난 것이다. 그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이 기적이다.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 발, 다시 한 발, 하루가 지나가고 다시 또 하루. 내 나이 스물두 살. 삶은 전진한다.(「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255쪽)

 

그 시절은, 우리가 트랑에 살던 그 시절은 끝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집이 팔렸다. 나 역시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간다. 나는 이제 트랑에 살지 않고 생트 크롸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물렝 베르를 떠난다. 물렝 베르에 살던 사람들 각자는 저마다의 시절을, 저마다의 시간을 마감하고 결국은 떠나버린다. 자신의 내면에서 작업이 끝났다. 다른 더 바쁜 일들이 생겼고 다른 욕구가 생겼다. 이제 나는 내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안느, 나를 사랑하는 안느와 함께. 이렇게 행복을 꿈꾸었던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생생하고 살아 있고 싶어 했던 한 젊은이가 살아서. 그러니 이젠 어서, 어서. 삶이 전진한다.(「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295쪽)

 

우리가 밭에 도착하는 바로 그 순간, 숲에서 암사슴 두 마리가 불쑥 나타나더니 바로 집이 있던 그 자리에 잠시 멈추어 선다. 정확하게 집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다. 그놈들이 바르르 떨면서 우리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빗속으로 저만큼 달아나버린다. 달려라, 달려라, 삶이 전진한다.(「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304쪽)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나’가 살아왔던 시간은 다르다. 내가 살고 머물렀던 곳과 ‘나’가 살고 머물렀던 곳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읽으면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나’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작별의 나날 혹은 잠재된 작별의 나날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랭 레몽은 말한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사라진 것들은 다시 소생하지 않지만 삶은 여전히 기적이라고.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린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 기나긴 여정의 끝에 있는 것이 작별일지라도. 파티는 끝났다. 그러나 다른 파티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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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1-2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해둔 책이라 빨간바나나님의 좋은 리뷰 더 관심있게 잘 보았습니다^^

빨간바나나 2016-01-20 11:36   좋아요 1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서에 도움에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정환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은 동기와 연애를 했다.(이후 결혼도 했다.) 정환과 택이처럼 동기와는 절친도 아닌데 난 대체 왜 고백 한 번 못하고 물러난 건지.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동기가 나보다 그를 더 사랑했던 것 같다. 사랑한다면서 나는 아무런 용기도 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때 고백하지 않길 잘했다 싶었다. 고백하지 못했던 남자(와 그 남자와 결혼한 동기)와는 인연이 끊겼고 고백했던 남자와는 여전히 친구로 지낸다. 고백했다고 해서 친구 관계가 끝나는 것도, 고백 못 했다고 해서 친구 관계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친구로라도 만나고 싶은지의 여부였다. 때때로 감정의 널을 뛸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가 주는 긍정의 기운과 삶을 반성하게 하는 자극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가난하고 연하여도 장마르크 같은 남자라면, 페리고르 아주머니의 수다를, 할아버지의 권태를 아는 남자라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고 아직은 그녀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 못 한다 해도.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하는 일은 애초 불가능한 일 아닌가. 불명확한 삶이 한 사람을 만나 좀 더 명확해진다면 그를 사랑할 이유는 충분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를 읽다 포기하고 『정체성』을 읽었다. 긴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읽은 이후 시간이 지나 의욕이 사라졌다. 간단하게 남겨둔다.)

 

 

 

 

 

“차의 앞 유리창을 닦는 윈도 브러시처럼 당신 각막을 닦는 눈꺼풀을 보고 싶었지.”(71쪽)

 

샹탈, 나는 어떤 신비한 것을 정의 내린 것 같은 그런 단순하고 평범한 표현이 참 좋더라. ‘그리고 나면 이렇게 시간이 그에게 흘러간다.’라는 말은 근본적인 문장이야. 그분들의 문제는 시간이고, 시간을 흘러가게 하고, 절로 그분들은 힘들이지 않고, 걷다가 지친 사람처럼 굳이 시간을 따라가지 않고 흘러가게 하는 것, 그게 중요한 거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아주머니는 말을 하는 거야.(89쪽)

 

며칠 동안 그분 입에서는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소리, 고통 받지 않았으니 신음도 아니고 발음을 할 수도 없을 테니 단어도 아닌 소리가 새어 나왔어. 말하는 기능을 상실한 것은 아닌데 그냥 할 말이 없었던 거야. 전달해야 할 구체적 내용도 없었지. 심지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고 누구에게도 무관심했던 할아버지는 혼자 소리를 냈지. 아아아라는 소리만 내면서 숨을 들이쉴 때만 잠깐씩 소리를 멈추곤 했어. 나는 홀린 듯 할아버지를 보았고 결코 그 모습을 잊지 못하겠어. 아주 어린 아이였던 나는 깨달았다고 믿은 거야. 나는 저것이 있는 그대로의 시간과 대면한 있는 그대로의 존재라고. 그리고 그 대면이 권태라 불린다는 것을 깨달았지. 할아버지의 권태는 그 소리, 끊임없는 아아아로 표출되었던 거야. 그 아아아가 없었다면 시간이 그분을 짓눌렀을 거야. 할아버지가 시간에 대항해서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무기, 그것은 끊임없는 아아아란 불쌍한 소리뿐이었지.(90쪽)

 

“당신을 알고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 내 하찮은 일이 예전보다 흥미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우리 대화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

“세상에서 외따로 떨어져 사랑하는 두 존재, 그건 아주 아름답지.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아무리 경멸할 만한 것일지라도 그들에겐 이 세계가 필요해.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9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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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6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6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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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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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고 의견을 피력하는, 댓글을 열심히 다는 부류는 아니어도 댓글은 자주 읽었다. 그 일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든 그렇지 않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때때로 그들의 댓글은 내 무지와 편견을 깨트렸다.  

 

‘댓글부대’라고 명칭을 정확하게 규정하진 않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돈을 받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그들에게 그런 일을 지시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상품)을 홍보하거나 상대방(의 상품)을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려야 해, 두려움과 죄의식. 백만 명, 이백만 명을 한꺼번에 공략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야.’(164쪽)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국민을 상대로 댓글부대로 활약했다는 사실, 정치 개입을 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명백한 직무유기였다.

 

제3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은 장강명의 『댓글부대』이다. 장강명은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등단한 이후 총 5권의 장편소설과 1권의 소설집을 냈다. 『댓글부대』는 『한국이 싫어서』이후 2번째 읽는 그의 책이다. 다른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라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그가 부지런한 작가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댓글부대』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확실하진 않은 어떤 사람들의 지시를 받고 댓글부대로 활동하는 (청춘으로 예상되는)세 사람의 이야기와 그 중 한 명인 찻탓캇과 기자 임상진과의 인터뷰가 번갈아 전개되는 구성이다. 9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장마다 하나의 문장을 제목으로 달고 있다. 장강명에 의하면 문장들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명확하지 않은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이라고 한다.『댓글부대』는 인터넷으로 얻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가의 창작을 버무린 소설이다. 2권의 소설을 읽고 공통으로 든 생각은 장강명은 시대를 사는 독자들이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지 잘 안다는 것이다. 그는 불편한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소설가로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나하나가 고유의 질서와 법칙을 지닌 생태계다. 그 세계들은 태어나고 성장하며, 진화하고 죽는다. 어떤 것들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어떤 섬의 숲은 산불에도 잘 버틴다.

그러나 모든 세계에는, 그 자신만의 약점이 있다. 작고 가늘지만 세계 전체를 떠받치는 중대한 고리가. 별 생각 없이 풀어놓은 쥐 몇 마리가 토착 동물들을 전부 굶어죽게 만들 수도 있고, 그 쥐를 잡으려고 뿌린 소독약이 섬의 나무를 몽땅 말려 죽일 수도 있다……(95쪽)

 

분량도 많지 않고 글자 크기나 간격도 작지 않고 인물의 수도 많지 않고 줄거리도 쉽고 어려운 문장도 없는데 단숨에 읽히지는 않았다. 읽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희망 없는 청춘을 만나는 일을 괴로웠고 여성들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들도 불편했다. 내겐 대사와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읽혔다. 결말은 딱 예상한 그대로였다. 이 땅의 진실은 사실이 아니라 힘에서 나온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말에 현혹되지 않는 냉정한 사고와 실천하는 행동이 필요하다(라고 적지만 상투적인 말을 쓸 수밖에 없는 내가 싫다).

 

올해 일곱 살이 된 조카가 가장 잘 쓰는 말은 ‘헐!’이다. 작년 하반기, 그러니까 여섯 살부터 쓰기 시작했다.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모양이다. 부모나 어른들이 은연중에 내뱉는 말을 배웠을 것이다. 조카가 아무 때나 이 말을 쓰는 건 아니다. 황당한 상황일 때만 쓴다. 단 한 번도 잘못 사용한 적이 없다. 유치원생도 말이 되는 일인지 터무니없는 일인지 구분할 줄 아는데 어른이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동치미 없이 고구마를 먹은 답답함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사이다는 어디에도 없다. ‘헐!’을 내뱉지 않는 날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건 욕심일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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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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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죽은 사람들, 살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소설이 시작하기 전 앞 페이지에 실린 플라톤의 문장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일은 살아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 모두가 바다를 항해하진 않는다. 날의 대부분은 살아 있음이 죽음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떠남은 언제나 두렵다.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냈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떠남이 두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겁이 많아진다.

 

주저앉지 않을래, 아직은.(109쪽)

 

헤닝 만켈은 ‘나는 진실에 기초한 이야기만을 쓰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불안한 낙원』은 19세기 말과 어쩌면 20세기에 실재했던 한 스웨덴 여자의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기록이 사라져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소설 속 그녀의 첫 번째 이름은 한나 렌스트룀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죽기 직전 한나에게 “꼬질꼬질한 천사. 그게 바로 너란다.”(17쪽)라고 했다. 그녀의 떠남은 네 번에 걸쳐 이루어졌고 두 번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녀를 안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와 포르스만 두 사람의 결정이었다. 두 사람은 말했다. 네게 최선의 길이라고. 사실 선택의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녀는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 중 보이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한나 렌스트룀이 항해에서 만난 것은 사랑과 죽음이었다. 바다에서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꼬질꼬질한 천사는 아프리카 도시 로우렌소 마르케스로 도망쳤다. 누구의 결정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이 죽은 바다를 항해할 힘이 없었다. 그녀의 도망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결혼으로 한나 룬드마르크가 된 그녀는 매음굴이 우선이 호텔에 머물렀다. 그녀는 단지 피부색 때문에 열등한 존재로 대접받는 흑인(여자)들을 만났다. 재혼한 남편 셰뇨르 바즈(아티밀리오)는 백인의 잘못으로 생긴 일을 흑인의 탓으로 돌렸다. 아티밀리오의 생각은 백인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흑인들 역시 백인이란 이유로 증오했다. 아프리카는 한나에게 혼란이었다.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208쪽)  

 

한나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첫 번째 남편의 죽음, 유산 그리고 두 번째 남편의 죽음, 두 번째 남편이 죽음 이후 곁에 있었던 침팬지 카를루스의 죽음까지. 삶의 비극은 계속됐지만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상을 만났다. 그것은 사람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고 불안한 세상의 책임은 피부색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살아있어요.” 그렇게 썼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살아있어요.” 두 줄에 한 번꼴로 그 문장을 반복해 썼다. 편지는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긴 간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살아있다. 스바르트만 선장의 판단처럼 죽은 것이 아니다. 슬픔에 지쳐 육지로 올라와 머물렀고 그동안 배는 호주로 항해를 계속했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있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녀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249쪽)   

 

그녀는 ‘불안한 낙원’인 아프리카를 살아가는, 약자로 살면서도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흑인 여성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같이 아파했다. 한나 렌스트룀, 한나 룬드룬드마르크, 한나 바즈였던 여자는 아나 브랑카가 되어 같은 인종인 백인들을 배반하고 흑인 여자 이사벨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것은 불합리한 사회를 향한 더 이상 꼬질꼬질하지 않은 천사의 날갯짓이었다. 같은 세상을 산다는 건 삶의 책임도 같이 지는 것이다.         

 

조만간 부두로 나가봐야겠어, 그녀는 생각했다. 느닷없이 부서져 버린 삶, 그것을 고치려는 시도. 그렇게 나는 여기로 왔어. 이제 곧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만 하겠지. 비록 지금은 그곳이 어디일지 알 수 없지만.(352쪽)

 

아나 브랑카라는 이름마저 버린 그녀는 이사벨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배를 탔다. 이사벨의 오빠 모세스는 그녀에게 ‘검은 아나’라는 의미로 아나 네그라라는 이름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못한 아나 네그라는 사라졌다. 낙원은 애초에 없는 것일까. 그녀가 머물렀던 모든 곳은 불안한 낙원이었다.

 

바다를 항해하는 일은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것이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아니라 빛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다. 그런데 항해를 하면 할수록 안갯속이다. 때로 거친 비바람이 길을 막기도 한다. 도착한 곳은 낙원이 아닌 출발지보다 더한 지옥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떠나지 말아야 할까? 한나가 첫 번째 배를 타지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녀는 떠나지 않음을 후회하며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삶의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후회는 따른다. 떠남을 통해 한 뼘 아니 일 센티미터라도 성장해 있다면 그것으로도 떠남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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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여러 일들이 있었던 2015년이 지났다. 어떤 일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고 어떤 일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어쨌거나 새해가 되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시들하던 독서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린다.

 

2015년 12월에 출간된 책들을 살펴보니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

한국소설 중엔 제21회 문학동네 수상작인 이유의 『소각의 여왕』이 눈에 띈다. 신경진의 『유희의 국경』, 손홍규의 『그 남자의 가출』, 번역가 김석희의 『하루나기』, 은행나무 노벨라 12번째 소설 강태식의 『두 얼굴의 사나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9번째 작품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등도 관심이 가는 소설이다. 2016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베를린 필』은 좋아하는 작가들의 포함되어 있어 읽고 싶은 소설집이다.

 

 

  

알다가도 모를 인생, 미스터리한 인생 때문일까. 장르소설이 눈에 들어온다. 모리 후로시의 책들이 S&M시리즈로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데 12월엔『웃지 않는 수학자』와 『시적 사적 잭』이 출간됐다. 『웃지 않는 수학자』는 기존에 출간된 적이 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재해석한 『앨리스 죽이기』 역시 관심이 가는 추리소설이다. 스티븐 킹이 마법처럼 빛나는 글을 쓴다고 한 조디 피코의 『코끼리의 무덤은 없다』는 제목이 시선을 끄는 추리소설이다.  <라데츠키 행진곡>의 작가 요제프 로트의 『거룩한 술꾼의 전설』 역시 제목이 시선을 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마라구의 『카인』,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 오래전 영화로 봤던 『벤허』, 어느새 5,6권이 출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5·6』역시 읽고 싶은 책이다. 『그들』과 『벤허』,『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5·6』는 분량으로도 도전 의식을 갖게 한다. 분량으로 도전 의식을 갖게 하는 책으로는 2권으로 출간된 우에하시 나호코의 『사슴의 왕』이 있다. 재출간된 알랭 레몽 의『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유쾌하고 수다스러우며 그러면서도 놀랍도록 매혹적인 소설로 소개된 코니 윌리스의『화재감시원』, 에스파냐 내전을 그린 리디 살베르의 『울지않기』, 아름다운 성장소설 마커스 주작의 『내 첫 번째 여자친구는』역시 관심이 가는 책이다.

    

 

 

 

 

 

 

    

 

 

 

 

새해 첫 달, 읽고 싶은 책들의 공톰점은 '도전'이다. 여러모로 읽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도전해보고 싶다.

 

1. 알베르 카뮈, 『페스트』

작년 6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중하나가 메르스다. 그때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다. 이번에는 읽고 싶다. 현재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2. 조이스 캐롤 오츠, 『그들』

관심을 두고 있는 여성 작가인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출간된 책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이 책으로 만나고 싶다. 지리멸렬한 삶의 한가운데에 놓인 젊은 엄마와 그녀의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지 궁금하다.

 

3. 루 월리스, 『벤허』

오래전 영화로 봤었다. 졸다 깨길 반복하며.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데도 강렬했던 느낌이 남아 있다. 책으로 나온 걸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4. 우헤하시 나오코, 『사슴의 왕(상, 하)』

‘진정한 판타지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 땅의 모든 생명에게 바치는 이야기!’ 이 소개 문구만으로도 읽고 싶다.

 

5. 주제 사마라구, 『카인』

위 4권의 책에 비해 분량은 많이 적지만 읽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동생을 죽이고 도망친 카인은 궁금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신의 본질과 인간의 조건에 의문을 제시하는 이 작품 읽고 싶다.

    

    

1권을 읽다 길을 잃어버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고 싶지만 아직은 용기가 서지 않는다. 신간 평가단 도서로는 어떤 책이 선정될까? 올핸 어떤 재미난 책이 출간될까? 기대되는 201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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