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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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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하면 따사로운 햇살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숲이 있고 졸졸 시냇물이 흐르며 새소리가 들리는 곳,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이 떠오른다. 종교를 떠나 천국하면 착한 사람들이 가는 곳, 행복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천국에서 만난 사람]이다. 천국에서 만났으니 죽었다는 뜻일 것이고 천국에서 만난 사람들이니 분명 좋은 사람들이겠지 생각했다. 다만 그들의 누구인지, 주인공과는 어떤 관계의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미치 앨봄의 장편소설로 신작 [8년의 동행]의 출간 기념으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함께 재출간된 책이다. 나는 이번에 세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출간 간격은 멀지만 세 권의 책이 관통하는 주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한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고민은 사치겠지만 생(生)은 먹고 사는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세 권의 책은 모두 삶과 죽음, 관계를 다루고 있다. 오늘은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이 있었다. 죽음은 태어남의 순서가 아니다. 죽음 앞에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공평하지 않은 세상, 우리가 할 일은 세상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야.”(92쪽,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타인과 자신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미치. 누구나 나처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느끼지는 못하지.”(232쪽,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미치 앨봄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노은사 모리에게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탐욕 등 열세 번의 인생 수업을 받는 내용이다.

 

[8년의 동행]에서 미치 앨봄은 성직자 앨버트 루이스로부터 추도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삶의 문제들의 답을 찾아간다. 미치 앨봄은 [8년의 동행]을 통해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 각기 다른 생을 살지만 사람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두 권의 실화에서 보여 준 ‘사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루비 가든에서 일하는, 이미 노인이 된 에디는 한 아이를 구하려다 죽음을 맞는다. 그는 천국에서 자신의 삶과 연관된 다섯 사람들을 만난다. 어린 시절 자신의 어리석은 실수로 죽음을 맞이한 파란 사내, 전쟁에서 자신의 다리에 총을 쏜 대위, 루비 가든의 이름의 주인공 루비 부인, 아내 마거릿과 전쟁에서 구하지 못한 탈라.

 

“거기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었는데요.”(261쪽,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삶에서 뭘 해내지 못해 슬펐다는, 그래서 루비 가든에 있으면 안 될 사람 같았다는 에디의 고백에 탈라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해 주니까 루비 가든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에디는 그들을 만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오래도록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나의 존재는 하찮고 보잘 것 없이 여겨지지만 보잘 것 없는 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도움 따위 필요 없다고, 나는 내 힘으로 살 거라고 자신하지만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고 누군가는 또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8년의 동행]에서 저자가 말하려는 내용들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소설[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그렇게 잘 쓴 소설은 아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던, 외면했던 문제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자신만의 섬에 갇혀 외롭지 않길,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변덕스런 봄날 탓에 봄이 되어서도 여전히 춥다. 춥지 않은 봄을 보내는 방법은 단 하나! 사람과 함께 보내는 것이다.

 

지나간 나의 인연들, 현재 만나고 있는 나의 인연들, 그리고 미래 만나게 될 나의 인연들이여! 그대들 덕에 내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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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1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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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고 내 인생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내 삶의 주인공이 정말 내가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존재이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1,2]는 1998년 여름 미국 대통령이 부적절한 관계로 위기에 처했던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버크셔 산악지대의 오두막에서 세상과 결별한 채 글을 쓰는 ‘나’ 네이선은 콜먼을 만나면서 콜먼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콜먼은 일흔일곱 살의 은퇴한 전직 아테나대학의 교수다. 드러난 정보만 보면 그는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정보에는 그가 학생들에게 유령들(spooks)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학생들은 흑인들(spooks)로 잘못 들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받고 투쟁하다 사퇴했다는 사실이 삭제되어 있다. 포니아는 서른네 살로 아테나대학의 청소부이자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여자다.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이 된 남편 레스터와 이혼하고 아이들을 질식사로 잃은, 글을 쓸 줄 모르는 여자다. ‘삶의 종착점’에 선 두 남녀는 서로에게 끌리고 ‘마지막 연애’를 한다.  


내 눈에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장점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어떤 사람은 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와 ‘나’는 각자의 비밀이 존재하지만 비밀을 애써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이는 그대로의 서로를 사랑할 뿐이다. 운명을 바꾸려고 했으나 운명 앞에 무너진 남자와 열네 살 이후 삶에서 도망치는 인생을 살아온 여자는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이 ‘가까스로 빠져 나온 세계’는 계속 그들의 뒤를 따라다닌다. 타인의 시선에서 나이, 사회적 지위 등의 차이가 존재하는 그들의 연애는 로맨스가 아니라 스캔들, 더럽고 추잡한 스캔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들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는, 오점을 가지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달의 반만 보고 달을 전부 봤다’고 말한다. 앞에선 평등을 말하고 뒤에선 차별적 행동을 일삼는다. 사람들은 내 잘못에 관대하며 남의 잘못엔 가혹하다. 사람들은 세상을 공정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중의 잣대로 본다.  


콜먼과 포니아, 콜먼의 동료 교수이자 콜먼에게 협박편지를 보냈던 델핀 루는 타향살이를 하고 포니아의 전남편 레스터는 고향을 떠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욕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운명을 위조하고, 가족을 버리고, 고향에서 도망쳤다. 분명 이치에 맞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삶의 얼룩의 1차적 책임은 진실보단 허영을 선택한 그들에게 있지만 온전히 그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는 일정 부분은 사회(작게는 가족)의 오만과 편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은 ‘나’가 아니라 ‘사회’이다.  


세상은 흑과 백, 좌와 우, 스캔들 아니면 로맨스다. 사회는 중간에 선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두 가지다. 사회의 오만과 편견에 맞서 싸워 세상을 바꾸거나 비밀을 싹 감추고 사는 것!  


필립 로스의 작품을 읽는 것은 [휴먼 스테인1,2]가 처음이다. 처음엔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젠가 퍼질 치명적 독을 몸에 품고 살아야했던 그들의 삶에 가슴이 아팠다. 타인과 함께 사는 사회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일은 어렵지만 ‘가짜의 나’로 살기 보단 많이 갖지 못해도 ‘진짜의 나’, ‘존재감이 있는 나’로 살고 싶다.  


어떤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고,
어떤 것을 보여줘선 안 되고,
어떤 것을 말해서는 안 되고,
어떤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그런 모든 것이 아니라,
싫건 좋건 있는 그대로의 나로 행동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생각하는 것.
(2권,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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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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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나지 못하고 뒤돌아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녀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던 건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 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린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32쪽)

 

그녀가 떠나지 못한 것은 저 멀리 타고 있는 ‘불’때문이다. 한때는 환희였고 한때는 고통이었던 불!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형사는 도서관에 틀어 박혀 책만 읽으며 산다. 그는 자신의 삶도 가치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책을 찾고 있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는 죽은 연인의 고향을 찾아가는 오십대 후반의 소설가와 그녀의 가이드 해피의 이야기이다. 그녀들은 가슴에 불을 안고 살아간다. 연인에 대한 그리움,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이 그것이다. 한 사람은 주름은 늘고 몸은 야위어가고, 한 사람은 몸과 기미가 늘어난다. 그녀들은 삶의 즐거움(nak)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미아(迷兒)들처럼 길을 헤맨다.  



사랑은 그와 내가 세계의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장애물들은 그와 내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끝까지 함께 가는 연인도 있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연인들처럼 메타세쿼이아가 있는 곳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연인도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은 끝이 난다. 연인은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면 사랑은 끝난 것일까?

 

사랑을 할 땐 눈이 멀어 상대가 대단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대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명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는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며 택시기사가 된다. 9·11 테러라는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던 그 일이 이별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달로 간 코미디언], 248쪽). 낭만적인 연애는 진부함으로 끝이 난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의 종현과 ‘나’처럼. 그럼에도 사랑을 해야 할까? 답은 'YES'다. 그의 택시를 탈 확률이 적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택시 한 대 쯤 있는 건 각박한 세상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 일이니까. 우린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기억으로 산다.

 

세월은 인간의 기억을 삭제시키고 잊었던 기억을 재생시키고 새로운 기억을 삽입한다. 모든 것들은 영원히 잊히지도 기억되지도 않는다. 모든 기억은 진실이다. 그것으로 삶은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한다고 해도 연인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가족이라고 해서 부모의 마음을, 자식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깨달음은 언제나 너무 늦다.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아픔을 간직한,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는 고통이 있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77쪽)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슬픔으로만 남지 않는 건 그들에겐 ‘사랑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외로운 세상, 한 시절이라도 그 혹은 그녀가 있어 행복했다면 그걸로 연애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다. 몸이 추워서 그런지 마음도 춥다. 열렬한 연애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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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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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9년 멀티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지만 제목이 주는 호기심도 컸다. 책 표지를 보면 작은 원 안에서 두려운 표정의 사람들이 빼곡히 차 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궁금했다.


“......을 조심하게 젊은이.”

지나가는 할아버지는 남자의 어깨를 스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할아버지의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남자는 서울에 살고 있고 부모는 건강하게 살아있다. 나이는 서른두 살로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결혼을 약속한 애인과 헤어지긴 했지만 나름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남자는 담배를 사러갔다가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어떤 것과 마주한다.’(13쪽) 그런데 볼링 공 같기도 하고 검은 애드벌룬 같기도 하고 금속 구슬 같은 그것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검은 구의 최초 목격자인 남자는 가족과 친구와 통화를 하고 차 안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람은 당황하면 평소 알던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남자는 같은 이유로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일까? 경찰,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신고를 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건 아닐까?


사람들은 검은 구의 특징을 알아내지만 인류의 지식으론 설명 불가능하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검은 구에 빨려 들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검은 구를 피하려다 죽는다. 검은 구는 점점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지만 자꾸 말을 바꾸는 정부나 뉴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부모와 같이 행동하기로 한 남자는 부모의 집으로 향한다.


검은 구에 대한 소문은 진실과 허구가 뒤섞여 유포된다. 검은 구는 하나에서 둘로 분리된다. 검은 구는 점점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검은 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휴대폰이 끊기고 전기가 끊기고 세상은 점점 무법천지로 변해 간다. 돈을 빼앗고 먹을 것을 빼앗고 목숨을 빼앗고. 행복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며 반으로 준다고 배웠지만 절망의 순간엔 이기심만 커진다.


남자는 종교 단체로 보이는 최선생 무리를 만난다. 그들은 검은 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방법은 협력이다. 그러나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협력을 오래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아픈 아이의 약을 구해오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다구니를 부리는 아이엄마. 약을 구하러 가서 담배를 챙기는 남자. 허리가 아프다며 게으름을 피우다 약을 구하러 가서는 돈을 훔치는 사내.


남자는 사람들이 학교에 모여 있는 이유가 검은 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아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때문이란 걸 알게 된다. 남자는 마트에서 의문의 청년을 만난다. 이 세상엔 이제 단 두 사람만 남았다.



소설에 ‘김정수’라는 남자의 이름이 나오긴 하지만 작가는 남자의 이름을 적지 않고 ‘남자’라는 익명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남자’가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리라. 검은 구가 실제로 나타날 일이야 없겠지만 이 책의 내용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비슷한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실체가 나타나야 절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요즘 부모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지 말라고, 못 본 척 지나가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고. 세상은 위험이 가득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은 진실을 감춘다. 남자와 청년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고 같이 샤워를 했지만 서로를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다가갔더라면? 그들은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었을까?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다행히 사람들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죽은 사람들만 빼고. 이제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남자’와 ‘청년’이다. 책을 읽고 나니 슬픔이 밀려온다. 세상의 멸망을 다루는 소설들을 보면 주인공들은 사랑과 가족의 힘으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절망의 구]는 사람이 희망이 아니라 개인의 힘으로 살아야한다고 말한다. 진실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진실이 ‘진실’이 아니라 ‘내가 사는 것’이 진실이다. 남자답게 사는 것, 사람답게 사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건 사치다. 어쨌든 사는 것,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도망자가 되더라도. 죽음은 의미가 없다. 혼란스럽다. 절망의 구로 빠져 들어간 사람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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