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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가을비와 함께 왔다.   

다시 알라딘 신간평가단(소설)이 되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과 스티븐 킹이 추천한 소설을 포함하여 스릴러 소설이 많이 보이고

다양한 나라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이 눈에 띈다.

시선을 끄는 한국소설이 없는 건 애정이 식었기 때문일까.

이런 책들을 골랐다. 

    

 

 

 

돌의 연대기

 

내가 기억하는 알바니아 작가는 <알바니아의 사랑>의 수사나 포르테스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읽은 알바니아 작가의 소설 또한 <알바니아의 사랑> 뿐이다. 아직 독서 전이지만,  이스마일 카다레는 내가 아는 두 번째 알바니아 작가가 되었다. 소설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기존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과는 다르다. 소설은 '순진문구한 소년의 시선으로 본 전쟁'다룬다.

책 소개를 보면 '낯선 관점'으로 본 이야기는 '유쾌하고 희극적인 양상'을 띄기도 한다고 한다.

 

 

  

 

 

리틀 스트레인저

 

스티븐 킹은 “단언컨대 이 소설과 더불어 불면의 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라고 했다.

세라 워터스는 2016년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년 개봉 예정. 하정우, 김민희 주연)의 원작 『핑거스미스』의 작가다. 700페이지 넘는 책의 두께와 내용을 보니 숙면의 밤으로 안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한다. 책 소개를 보면 '2차대전 직후 서서히 몰락하는 영국 귀족 가문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레즈비언 소설의 총아’로 불린 작가가 유일하게 레즈비언 이야기를 하지 않은 소설이라고 하지만, 다른 시선을 가진 작가인 만큼 첫 번째로 소개한 <돌의 연대기>와 마찬가지로 낯선 관점으로 본 이야기일 것 같아 기대된다.  

 

   

 

 

술라

 

토니 모리슨은 궁금했던 작가임에도 읽은 작품은 아직 없다.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술라>는 사회적 약자인 흑인과 여성이라는 두 카테고리에 담긴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책 소개에 나온, 책 속의 문장으로 보이는 “거기에는 바닥도 없고 꼭대기도 없고, 그저 원을 그리며 돌고 또 도는 슬픔뿐이었다.“ 라는 문장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떤 날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아직 읽지 못했는데 신작이 나왔다. 더딘 독서 탓에 읽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다. <어떤 날들>은 앤드루 포터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사실 대충 읽은 책 소개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미국 중산층 이야기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썼다면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별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라는 뜻이고, 나도 경험한 이야기라는 뜻이지만 그것보단 앤드루 포터의 특별한 시선이 담겨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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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15년 7월의 마지막 날, 폭염의 시간을 살고 있다.

지난 6개월, 겨울의 끝에서 봄을 지나 여름의 시작까지, 세 계절을 15기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했다.

만난 책은 모두 12권이다.

어떤 책은 읽는 도중 길을 잃었고 어떤 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읽었고 어떤 책은 현재 삶을 반성하게 했다. 

 

 

  

 

 

  

좋았던 책 5권은 『지평』, 『그것이 나만이 아니기를』,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1,2』,『용감한 친구들1,2』, 『네메시스』이다.

소설에 대한 기대가 줄었었음에도 이 책들은 여전히 내가 소설을 읽어야함을 알려 줬다.

    

 

 

12권의 책 중에서 5권, 그 중에서 한 권을 다시 꼽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12권의 책을 읽으며 많은 좋은 문장을 만났지만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이 문장이다. “아름다운 것은 기억밖에 없어.” 베스트는 이 문장이 나오는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1,2』를 골랐다. 이 외에도 내 마음을 건드린 문장이 많았다. 비 온다고, 세상이 싫다고, 사람이 무섭다고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하는 내 마음을 툭툭 건드렸다. 불행과 불운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지속 가능한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 할 때 가능함을 알려준 책이었다.

    

 

 

 

 

 

(*)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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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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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아래아한글 프로그램에서 국민학교를 치니 초등학교로 자동 교정되는데 내가 다닌 곳은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이므로 국민학교로 적었다.)때 둘째 작은아버지 식구들은 미국에 이민을 갔다. 작은아버지는 한국에서 사는 것 보다 훨씬 잘 살 거라고 확신하셨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비디오테이프가 도착했다. 그 속엔 외국 영화 속에서 봤던 푸른 잔디가 있는 넓은 마당과 차고가 있는 이층집이 있었다. 비디오테이프 속 작은아버지네 세 식구는 행복해 보였다. 나만의 방이 없었던 나는 넒은 방을 혼자 쓰는 사촌이 부러웠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10쪽)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나’ 계나는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갔다. 유학이나 여행이 아닌 살기 위해. 한국이 싫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진 않은 건 그래도 말이 통하는 내 나라에서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서가 아니다. 용기 부족도 한 이유이지만 작은아버지네 가족의 영향이 크다. 할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잠시 한국에 들어오신 작은아버지의 추레한 형색은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음을 방증했다. 작은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의 대화 속에서 떠난 걸 후회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작은아버지를 보면서 어느 곳에 살든 불행은 비집고 들어온다고, 그러니 어디서 살든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한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런 거대한 톱니바퀴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거야, 아마...... (28쪽)

 

계나는 시드니 도착 다음 날 차에 치여 죽을 뻔했고 재기 불능 직전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계나, 너는 그런 거대한 톱니바퀴에 저항할 수 있었을 거야.”하고 말하려고 보니 편혜영의 『선의 법칙』의 ‘그들’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거대한 톱니바퀴에 낀 채 달렸던, 그리고 달리고 있는 그들, 톱니바퀴에서 벗어났어도 벗어났다고 확신할 수 없는 그들 말이다.

 

재기 불능 직전 상태에 이르렀다가도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한국이 아닌 호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왔다. 소설 속 글을 인용하자면 빌딩(Building)이나 안테나(Antenna), 교각(span), 절벽(Earth)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걸 베이스(BASE) 점프라고 한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낮은 데서 떨어지는 것이 위험한 건 추락하는 시간이 짧아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높이 올라갈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은 지상에 나를 구해줄 사람이 있다고 자기 암시를 걸고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상에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다. 그대로 추락이다.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152쪽)

 

『한국이 싫어서』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7번째 책이다.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이고 겉모양새가 책장에 꽂아 진열하기 딱 좋다. 행복한 삶을 원하면서 점점 더 불행하게 사는 청춘을 포함한 우리들의 모습이 담긴 소설이었다. 불편한 진실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그 속에서 청춘들의 통쾌한 한 방이 있는 소설을 바랐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이 두렵다. 실패의 경험은 도전을 가로막았다. 행복해지기 위해 길을 나선 계나의 용기가 부러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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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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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의 6월을 상징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는다면 메르스일 것이다. 그것은 내 발밑까지 왔었다. 내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진찰과 검사를 받는 외래환자시다. 아버지는 확진환자가 나오기 직전 병원을 다녀오셨다. 우리 집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 병원에선 확진 환자가 나왔다. 그 환자는 내가 산책을 가는 공원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았다.

 

1944년 뉴어크의 6월은 폴리오가 지배했다. 『네메시스』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다. 1933년 생, 올해 나이는 만82세인 필립 로스는 몇 년 전, 더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적어도 작가라면, 글을 그만 써야 하는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쓴다고 다 글은 아니다.

 

‘네메시스’를 『후-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에서 찾아보면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근거하여 ‘밤의 딸로 정의로운 복수의 여신’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 책에는 뒤러의 동판화 《네메시스》가 실려 있는데 설명은 이렇다.

 

네메시스는 세상의 정의를 심판한다는 신탁의 모습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데, 왼손에든 쇠사슬로 연결된 가죽끈은 심판자의 엄격함과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메르스와 폴리오를 퍼뜨린 신의 뜻은 무엇일까. 제대로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고일까?

 

“앨런한테 옮아서 이제 자기들도 폴리오에 걸릴 거라고 겁을 먹고 있는 거요. 부모들은 히스테리에 걸렸소. 아무도 어째야 할지를 몰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거요? 나는 머리를 쥐어짜고 있소. 우리보다 깨끗한 가족이 있을 수 있소? 아이들의 행복에 그녀보다 관심을 쏟는 어머니가 있을 수 있었겠소? 앨런보다 자기 방과 옷과 몸을 잘 돌보는 아이가 있을 수 있었겠소? 그애는 뭘 하든 처음부터 제대로 했소. 그리고 늘 행복했고. 늘 농담을 했고. 그런데 왜 그 애가 죽은 거요? 이게 어디가 공정한 거요?”

“전혀 공정하지 않습니다.” 캔터 선생님이 말했다.

“오직 옳은 일, 옳은 일, 옳은 일, 옳은 일만 해.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사려 깊은 사람, 합리적인 사람, 남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 인생 어디에서 양식良識을 찾아야 하는 거요?”

“찾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캔터 선생님이 대답했다.

“정의의 저울은 어디 있는 거요?” 가련한 남자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마이클씨.”

“왜 비극은 늘 그것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덮치는 거요?”

“저도 답을 모르겠습니다.” 캔터 선생님이 대답했다.

“왜 내가 아니라 그 애인 거요?”

캔터 선생님은 그런 질문에는 전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52~53쪽)

 

제대로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주는 경고라면 마이클스의 말대로 왜 비극은 늘 그것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덮치는 걸까. 신의 심술 앞에 인간은 그저 인생은 복불복이라 여기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 답은 아마도 메르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계속 생각한다. 초기 대응을 잘 했더라면? 물론 지나간 삶에 가정법은 무의미하다.

 

『네메시스』는 폴리오의 시간을 견딘 두 남자 버키 캔터와 아널드 메스니코프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같은 비극을 겪었지만 삶을 지속하는 방식은 달랐다. 버키는 폴리오가 자신의 책임이라 여기며 긴 시간을 고통 속에서 살았고 아널드는 새로운 삶을 찾았다.

 

두려움이 덜할수록 좋아.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게 자네 일이고 내 일이야.(110쪽)

 

사실 이 말은 제삼자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두려움이 자신을 타락시킬 것을 알지만 당사자가 됐을 때 벗어나기 쉽지 않다. 내 아이에게 메르스를 옮겼다고 생각해 보자.

 

폴리오에 걸린 버키는 자신이 학생들에게 폴리오를 전염시켰고 죽었다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폴리오의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라고 생각해 평생을 지옥에서 살았다. 지나친 면이 있지만, 비극의 늪에서도 삶의 끈을 놓친 않고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는 일인데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자신의 늪으로 사랑하는 이를 데리고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다. 세상에는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책임이 분명한데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지 않던가. 그가 삶의 가치로 여긴 것은 '양심'이었다.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구요.”(273쪽)

 

네메시스는 행복과 불행을 분배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뒤가 아주 구린 인물’인 아버지와 그에게 물려받은 나쁜 시력, 그리고 폴리오에 걸려 불구가 되고 또 폴리오를 옮긴 것 등 언뜻 버키는 불행이 많이 분배된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불굴의 정신을 심어준 할아버지, 그의 불구까지 감내하려 했던 마샤, 그리고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아널드가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폴리오에 걸렸던 당시 버키의 나이는 고작 스물세 살이었다. 나는 바란다. 남은 그의 생은 행복하길. 이젠 책임의 돌을 내려놓길.

 

지난 6월에는 짐작조차 못 했던 일이 훅 들어 와 비틀거렸다. 비극의 생을 살다 바다가 가까운 남쪽 도시 중 한 곳에서 서른셋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내게는 가깝지만 먼 한 사람의 죽음이었다. ‘가깝지만 먼’ 이란 문장의 모순을 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몸은 아팠지만 병원은 두려웠고 마음이 힘들었지만 책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날들로 기억되길 바랐던 6월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6월에 비하면 7월은 고요한데 폭염을 핑계 대며 게으름을 피운다. 6월의 혼란 속에 미뤄뒀던 일들이 산적한데 하고 싶지가 않다. 다행인 건 그래도 책은 읽고 싶다는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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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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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보고 싶어한다.(1권, 11쪽)

 

『용감한 친구들』의 첫 문장이자 ‘아서’의 첫 문장이다. 소설은 아서, 조지, 아서&조지 등의 인물별 이야기로 나뉘어 전개된다. 이런 방식은 인물별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첫 문장의 ‘아이’는 ‘아서’다. 첫 문장에는 ‘무엇을’이 빠져 있다. 어린 아서는 ‘커튼이 드리운 방’에서 ‘희고 창백한 그 무엇’ 할머니 캐서린 팩의 죽은 몸을 보았다. 아서에게 그 경험은 기억의 시작, ‘최초의 기억’이었다.

 

조지에게 최초의 기억이 없다.(1권, 12쪽)

 

‘조지’의 첫 문장이다. 목사였던 조지의 아버지는 “나는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기억이 없다는 건 뇌를 강타하는 강렬한 무엇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지의 평생의 삶을 지배한 것은 ‘진실’이었다.

 

아서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먼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상상력을 키웠고 옮고 그름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조지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은 바깥 세계는 나쁜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머물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집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그들이 바깥 세계를 경험하며 느낀 것은 ‘부당함’이었다. ‘보고 싶어 했던’ 아서는 안과의가 되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심을 받던 조지는 사무 변호사가 되기로 한다.

 

『용감한 친구들』의 원제는 ‘아서와 조지(Arthur & George')’이다. 다른 듯 보이는 두 인물은 ‘조지의 가축 훼손 사건 혐의’라는 한 지점에서 만난다. 조지가 내민 손을 아서가 잡은 결과다. 아서는 안과의이자 ‘셜록 홈스’라는 뛰어난 탐정을 창조한 작가였다. 아서는 바로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다. 이 사건은 실제 아서 코난 도일이 겪은 사건이다. 아서(와 아서 코난 도일)는 사건의 보이지 않았던 빈틈을 밝힘으로써 조지가 편견에 희생됐음을 밝혔다.

 

무죄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게 아니고 전 당신이 무죄라는 걸 압니다.(2권, 31쪽)

 

조지는 가축 훼손 혐의를 받는데 그의 법정 변호사 베이첼은 범인이라는 증거도, 범죄를 저지를 동기도, 범죄를 저지를 기회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유죄 선고 받고 복역한다. 그러다 결백하지만 의심을 받은 것도 유죄라며 그는 특별사면을 받는다. 이 결과는 조지에게도 아서에게도 정당하지 못한 판결이었다. 범죄자는 죄를 지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으로 만들어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론은 사실 확인 없이 확정 짓는다. 조지의 경우처럼. 불확실한 증거가 명백한 증거로 조작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이기 전, 들리기 전 상황은 배제한 채 보고 들었다고 진실이라고 믿는 건 위험하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분명 다르다. 앎이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면 믿음은 희망의 반영이다. 희망은 때로 그릇된 판단을 일으킨다.

 

처음엔 원제『아서와 조지(Arthur & George')』가 아닌 왜 『용감한 친구들』이란 제목을 썼을까 궁금했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진실이 밝혀져 조지가 다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진실을 끝까지 밝히려 했던 조지 자신과 조지가 내민 손을 잡아준 아서,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 사람들 때문이었기에.

 

이 일은 실제 사건으로 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실제 겪은 사건이라고 한다. 줄리언 반스는 실존 인물 아서 코난 도일과 조지 에들지의 실제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했다. 소설이긴 하지만 아서 코난 도일의 이야기는 셜록 홈스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시한부였던 첫 번째 아내 투이와 두 번째 아내 진 레키와의 사랑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사랑이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것.

 

그는 무엇을 보는가?

그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는 무엇을 볼 것인가?(2권, 301쪽)

 

할머니의 죽은 몸을 본 이후 아서는 눈으로 보는 것 이외의 것이 있음을 알았다. 최초의 기억은 환자, 아버지의 죽음과 맞물리면서 심령학에 관심을 갖게 했다. 아서는 안과의이자 추리 소설가였고 조지는 사무 변호사였다. 본 것은 진실이 아닐 수 있으며 잘못된 말(글)은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메르스 때문에 기사들을 자주 클릭하게 된다. 들리는 얘기는 메르스가 주를 이룬다. 보고 듣는 것이 많은 시대, 주목받기 위해 말을 쏟아내는 시대를 보며 신중함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을 모두 믿는 건 어리석다. 무조건 의심하라는 말이 아니라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가 쏟아내야 할 말은 진실과 사과뿐이다. 죽음, 믿음, 편견, 사랑 등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 책이다.

 

       

(*) 『용감한 친구들』 1·2권 통합 리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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