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에 실린 「얼음 나비」에는 ‘류큐아사기마다’라는 겨울 나비가 등장한다. 검색했지만 정확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고 ‘모나크 나비’라는 겨울 나비와 비슷한 것 같다는 정보를 만났다. 모나크 나비는 매년 겨울이 되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약 4,800km의 거리를 무리 지어 이동한다고 한다. 아는 것이 다가 아니며 보지 못한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라는 진실을 또다시 만난다. 

 

개정판으로 나오는 책들을 속속 만난다. 새로 나온 『꽃밥』은 같은 번역자의 재번역으로 출판사가 바뀌어 출간됐다. 꽃밥 도시락이 있었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은 다시 읽는 것. 두껍지 않은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 조금씩 내용이 떠올랐다.

 

『꽃밥』에는 여섯 편의 묘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직접 겪어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 오사카 태생의 작가는 회상의 방식을 통해 1960년 말에서 1970년대 초 오사카를 배경으로 초등학생 눈에 비친 기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전생을 기억하는 동생(「꽃밥」), 마을을 맴도는 소년 귀신(「도까비의 밤」), 기묘한 생물(「요정 생물」), 화장터로 떠나지 않은 영구차(「참 묘한 세상」, 조용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주는 ‘오쿠린바’라는 직업(「오쿠린바」), 나비를 죽은 동생이라고 믿는 여자(「얼음 나비」)가 등장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죽음이 등장한다. 인생에서 삶과 죽음은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꽃밥」은 오빠가 동생을, 딸이 아버지를 대하는 따뜻함이 느껴졌고, 「도까비의 밤」은 소년의 진심을 왜곡해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소년은 그저 자유롭게 놀고 싶었을 뿐이었다. 『꽃밥』은 환상을 통해 차별과 왕따, 코인 로커, 가난 등 사회문제들을 녹여냈다. 혼자만의 세상을 놓여 있는 아이들은 기묘한 이들을 경험함으로써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 말대로 요정 생물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다만 엄마에게만이다. 그리고 엄마의 행운은 나를 포함한 우리 식구의 불행이었다.

세상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고루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행복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불행이 있다. 행복이란 대개가 어딘가 뒤틀려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생물을 원망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160쪽, 「요정 생물」)

 

“식으면 아무 맛도 없잖아. 뜨거울 때 먹으면 입안이 데고. 인생도 그런 거야. 너도 얼마 안 있어 알게 될 거다.”(「187쪽」, 「참 묘한 세상」)

 

슈카와 미나토는 말한다. 인생은 묘하다고. 어제 존재했던 사람이 오늘 존재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시시때때로 일어난다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인간은 때로 약하지만 또 강한 존재이기도 하다고. 먼 훗날 지금을 추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어제는 소한이었고 오늘은 어제 이어 춥다. 다행이라면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따뜻하다는 것. 새해의 다짐들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먼 훗날엔 오늘을 어떤 날로 기억할까. 그러다 생각한다. 아직은 과거를 추억하고 싶지 않다고. 지금은 현재를 살아야 할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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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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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었던 이야기, 겪은 이야기,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한자를 잘못 옮겨 적은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로 남자 이름을 갖게 된 겨울이면 늘 만두를 만드시는 어머니, 언니와 나와 동생의 생일을 전부 잘못 기억해 생일과 다른 주민등록번호를 갖게 한(나는 호적에는 맞게 올리는 바람에 훗날 주민등록번호를 정정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층을 달리해 같은 집에도 살았으나 특별한 기억은 없는 할아버지(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키워드로 표시한다면 중절모, 고서, 솔담배, 요구르트이다. 평생 담배를 피우셨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었음에도 80세를 넘게 사신 이유가 요구르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떡볶이 같은 건 함께 먹어본 적 없는 단지 편지만 주고받았던 친구 H, 아버지가 다른 학교의 악명 높은 교사였던 부모가 애지중지하는 외동딸이었으나 혼자 남겨질까 두려움을 갖고 있던 또 다른 H, 건물청소를 한 후 작은 평의 지하 공간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과 건물에서 집까지 걸어가고 오는 시간이 좋다는 M의 어머니, 술 때문에 가족들의 속을 끓이고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신 M의 아버지 그리고 무너져버린 J의 어머니…….

 

2.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어린 시절을 공유한 소라, 나나, 나기의 현재 이야기이다. 소라는 ‘나’라는 부족으로 살며, 나나는 ‘그 정도’의 사랑을 하고 있고, 나기는 그 시절의 ‘너’를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나쁜 듯 보이지만, 딱히 좋다고 말할 순 없긴 해도 나쁘지 않은 시절이었다. 소라와 나나가 나기와 순자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을 알아본 것이다. 소라와 나기는, 나나와 나기는, 소라와 순자는, 나나와 순자는 피를 나누지 않았으나 가족이었다. 애자씨의 말대로 인생의 본질은 허망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3.

그 정도였던 것입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씨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 라고 결심해두었습니다.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나나는 경계하고 있습니다.(104쪽)

 

여전히 혼자의 삶을 살고 보니 사랑은 ‘그 정도’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만큼만 사랑해야지, 하는 일이 가능할 것 같진 않다. 어쩌겠는가. 난 그렇게 생겨버린 것을.

모세씨, 그리고 그 가족 재수 없어, 생각했다가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엄마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만났다. 젠장!

 

4.

나는 말했다.

공룡이 사라졌잖아.

어.

멸종했잖아.

멸종했지.

멸종이라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실은 천만년이 걸렸대.

그랬대?

천만년에 걸쳐 서서히 사라진 거야.

꽤 기네.

길지.

……

그렇게 금방 망하지 않아.

세계는, 하고 덧붙이자 나나가 말했다.

그렇게 길게 망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단번에 망하는 게 좋아?

아니.

그럼 길게 망해가자.

망해야 돼?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야.(221-222쪽)

 

느리게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하찮은 삶이란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희생에 무심한 것일지도 모른다. 끝이 보인다고 미리 생의 의지를 놓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삶이 소중하다면 ‘너’의 삶도 소중한 것이다. 끝에 직면하지 않은 이상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황정은은 하찮은, 물론 절대 하찮지 않은, 멸을 향해 가는 그들을 통해 생의 의지에 대해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이 ‘아직 많이 남은’으로 변한 시각을 살고 있다. 올해는 아직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새삼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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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동유럽 작가하면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가 떠오른다. 분명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읽었을 텐데 말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밀란 쿤데라와 때때로 비교되는 작가라고 한다. 대체 어떤 작가이기에 밀란 쿤데라와 비교될까. 확인하고 싶어졌다. 지젝과 김연수의 추천이 눈에 들어온다. 절판되어 읽지 못해 아쉬웠는데 개정판으로 나왔다.

 

지평

 

문학동네에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세 권이 출간됐다. 『청춘시절』, 『잃어버린 청춘의 카페에서』 그리고 『지평』. 가장 읽고 싶은 건 『지평』이다. 책소개 중 ‘<지평>은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의 끝에 미래로 향하는 출구가 열린다는 점에서 여타 작품들과 차별화된다.’는 문장 때문이다. 내일이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라도 새해엔 미래로 향하는 출구가 열리길 기대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붉은 밤의 도시들

 

윌리엄 버로스는 비트 제네레이션의 리더였던 노먼 메일러로부터 '신들린 천재성을 지닌 유일한 미국 작가'라는 칭송을 들었다고 한다. ‘신들린 천재성’은 몰라도 읽고 나면 굉장히 신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소개 중에선 ‘일탈적인 소재와 다양한 장르의 결합, 기이하고 신비로운 전대미문의 유토피아를 꿈꾸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정복자들

 

아직 앙드레 말로의 책을 읽지 못했다. 책 소개 페이지에 대한 샤를 드골의 추천글은 ‘말로에 이르러, 마침내 나는 ‘인간’을 만났다.’이다. 인간 존엄이라는 심오한 주제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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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흉내를 낼 수 없지, 그런 것은

그저 도시락이지만.

도시락이되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

그것을 맛본 경험이, 그런 것을 꾸준히 맛볼 기회가 나나와 내게 있었다는 것을 나는 요즘도 골똘하게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게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가장하고 생각해보는 것은 조금 두렵다. 순자씨는 그 도시락으로 나나와 내 뼈를 키웠으니까. 그게 빠져나간 뼈란 보잘 것 없을 것이다. 구조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허전하고 보잘것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대단하지 않아? 보잘것없을 게 뻔한 것을 보잘것없지는 않도록 길러낸 것.

무엇보다도 나나와 내가 오로지 애자의 세계만 맛보고 자라지는 않도록 해준 것.

그게 그녀의 도시락이었어.

다만 도시락.

그뿐이었고 그 정도나 되었으므로 대단히 대단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43-44쪽.

 

 

 

2015년이 시작됐다.

2014년 마지막 날엔 소장하고 있던, 오래전 선물 받은, 검색해 보니 국내에는 없는  만다라북을 꺼내 색을 칠했다. 컬러링북을 하나 살까 하다 이 책이 떠올랐고 약속도 없고 TV는 시시하던 차에 색을 칠했다. 색을 칠하는 동안 어떤 색을 칠할지 외에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좋은 생각도 나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 이어 오늘도 읽고 있는 책은 계속해보겠습니다』.   

12월 29일을 갑자기 읽고 싶어져 부랴부랴 사들인 책이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일 것이다. 2015년도에도 꿈꾸는 일들을 계속해보겠다는 생각 말이다.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엄마랑 같이 살고 있음에도 '엄마'라는 단어가 쿵, 내려앉는다.

그 시절, 엄마는 네다섯 개의 도시락을 쌌고, 지금도 틈만 나면 만두를 만드신다. 만두를 좋아하는 딸내미 그리고 사위, 손주들을 위해.  고작 빗기만 하면서 만두 만들기를 지겨워한 내가 부끄러웠다. 만두에는  '새끼를 먹여본 손맛'이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2015년은 한파와 함께 시작됐다. 

앞으로 어떤 날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나는 그 날들 중 여러 날을 흔들릴 것이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뿐이다. 

 

계속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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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칠드런 - 2014 제8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6
장은선 지음 / 비룡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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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 대부분은 학교생활을 거친다. 학교는 크게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두 부류로 나뉜다. 가르침과 배움 사이 교집합으로 묶이는 단어는 공부다. 공부는 학문과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학문하면 지식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지식과 기술은 학원에서도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는? 학문(學問), 배우고 질문하는 것이다. 학교는 묻고 또 묻는, 반복적인 질문을 통해 인생의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보단 선생과 제자가 존재하는 곳이어야 한다.

 

교사들은 아버지의 지위와 성적으로 학생들을 판단하고, 학생들은 교사들을 불신한다. 교사와 학생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교사와 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은 자연계 현상만이 아니다. 성과주의 사회와 잘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욕망은 불안한 학교를 만드는데 한몫했다. 

   

 『밀레니얼 칠드런』은 자식이 사치의 상징이 되는 암울한 미래를 사는 비(非)성년 청소년들이 학교와 교사들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 속 학교는 ‘정부에서 허가받지 않고 태어난 아이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국가기관’이다. 그야말로 미생들이 머무는 곳이다. 학교라기보단 시설이란 단어가 적절해 보인다. ‘정부에서 허가받지 않고 태어난’만 생략하면 현실의 학교 역시 ‘아이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국가기관’과 다를 바 없다. 비성년이란 표현은 책 띠지의 문구를 따랐다. 미성년자는 만 스무 살이 지나면 자연스레 성인이 되지만 비성년자는 만 스무 살이 지나도 성적과 등급이 낮으면 성인의 삶을 살 수 없다.

 

부모님이 부자였던 덕분에 등록아동이었던 새벽은 부모님의 사고사로 무일푼 천애고아가 되어 학교로 보내진다. 새벽이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헤이즈와 넘버즈였다. 헤이즈는 자식세를 내지 않고 몰래 기르다 적발당한 아이들이었고, 넘버즈는 자식세를 낼 수 없어 버려진 아이들로 등록번호의 마지막 두 자리로 불리는 이름조차 없는 아이들이었다. 하루아침에 신분이 추락한 사람들이 그렇듯 새벽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새벽이 본 학교는 이상한 나라였다. 학생들은 정보를 외우기에 급급했고 성적에 따라 차별을 받았으며 개성은 존중되지 않았다. 교사들은 학교라는 감옥의 간수였다. 소설 속 미래의 학교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현실의 학교였다. 성적이 좋지 못하면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세상 말이다.  

 

새벽이 우릴 어떻게 하려고 ‘모든 사람을 한 줄로 세우는’ 제도를 만들었을까, 묻자 창우는 “우리가 세상에 나갔을 때, 반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반대나 저항을 하지 못하는 세상은 독재사회와 같다. 어른들은 어렵게 자유를 얻었음에도 아이들에겐 독재를 강요하는 모순을 저지른다.  

 

새벽은 운명에 좌절하지 않았으며 불공평한 세상에 침묵하지 않았다. 잊고 있었다. 우리가 매일 맞는 아침은 분주한 새벽이 만들었음을. 학교와 교사들을 향한 새벽의 행동은 현실감이 없었지만 성공하길 응원했다. 새벽이 원한 것은 사육당하기보단 인정받는 것이었고 그것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였으므로.

 

생명을 유지하는 일은 숭고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비성년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껍질 속 생명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태어나지 못한 상태라 그런지 미생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악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는 부당함을 보고 학생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낼 때 후련함을 느꼈다고 했다. 후련함은 세상을 비상하는 바탕이 되어 줄 것이다. 암울한 소재임에도 속도감 있는 전개와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청소년들 덕분에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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