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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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의 현실을 고발하고, 그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출간되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을 통해 소외되고 배제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온 작가 은유가 글을 썼다.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마주한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심란했다. 대한민국의 완벽한 주민등록제도와 의료보험 시스템은 미등록 이주아동이 한국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도록 막는 방지턱이 된다.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온 것들을 내던지는 순간 비로소 이주아동들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사실 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조금만 읽어 봐도, 내·외국인 할 것 없이 부모를 골라 태어날 수 없는 죄 없는 아이들 모두의 평등이 이 책의 최대 관심사임을 발견할 수 있다.


난민은 막 살았기 때문에 받는 형벌이 아니다. 민혁은 자기도 한국에 왔을 때는 그냥 외국인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난민이 된 경우라며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 난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18쪽)


이주아동과 그 부모들은 줄곧 자신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내국인이 꺼려 하는 직종에 생겨난 노동의 공백을 이주민이 메꾸고 있으므로 외국인의 유입이 유용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내국인 10명 중에 8명은 좋은 사람들이고, 그들에게서 아주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2명 정도의 외국인 혐오자들은 "너희 나라로 꺼져, 불법체류자가(70쪽)."라며 그들을 비난한다. 난민의 존재를 수용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려던 사람들도 그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등을 돌리기도 한다. 악화되는 경제 상황과 취업현황을 고려한다면, 내국인들의 막연한 불안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스스로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이주아동들을 보고 있으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 또한 든다.


내국인과 외국인 양쪽 모두 살아남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견이 팽배하게 대립하고, 양보의 기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모든 이들이 저마다 자신이 가장 절박한 처지에 있다고 소리치는 현 시국에서는 이주아동의 생존은 최우선 순위에서 도모될 수 없을 것이다. 이탁건 변호사는 "어느 정도는 시간과 이주민의 규모(103쪽)"로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전보다 체류 외국인을 흔하게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국인들이 호의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생성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건을 거치며 예민해진 인권 감수성을 고려한다면, 이탁건 변호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주아동 친구를 차별하지 않고, 친구의 난민인정과 체류를 위해 기꺼이 발 벗고 나서는 아이들을 보면서 번번이 놀라움을 느꼈다. 생김새를 포함해 조금만 달라도 소위 말하는 '왕따'를 시키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인권에 있어서 놀라울 만큼 성숙한 그들의 태도가 이주아동들의 미래를 긍정하게 되는 이유다. "제가 누군가를 믿어줄 때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또 믿고 반기면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배척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126쪽)" 이란에서 태어난 이주아동 '김민혁'은 이렇게 말했다. 세대의 아래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고리가 어떤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낼지, 이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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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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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151쪽)

기차역과 포구가 공존하는 영등포는 『완벽한 생애』에 대한 완벽한 은유다. 한곳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결국엔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에 부합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윤주'와 '시징'은 각각 영등포와 홍콩을 떠나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제 나름의 이상적인 장소에 도달한다. 그들은 본래의 자리에서 상실의 아픔을 경험했다. 도망치듯이 떠나간 제주도와 영등포에서 '윤주'와 '시징'은 그러나, 사람과 장소로부터 스며나오는 "공허한 낙후(63쪽)"만을 경험한다.

『완벽한 생애』는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기로 한 곳,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도시, 언제라도 문을 열고 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입구도 출구도 없던 이상한 대기실(148쪽)"에 서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일련의 장소는 우리에게 극복할 수 없는 가난, 이룰 수 없는 꿈, 그리고 영영 잃어버린 연인을 상기시킨다. 그런 삶으로부터 도망가고, 또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임시적인 탈출은 작중 인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직간접적으로 타인과 교류함으로써 자신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한 마디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들을 수 있게 된다.

『완벽한 생애』에서 우리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나 '완벽한 생애'를 향한 희망을 완전히 접는 비관주의를 볼 수 없다. 다만, 삶이 어느 곳에서 시작되었든 "어느 시기가 지나가면 사람은 다 똑같아진다(71쪽)"는 진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니까 당신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든 간에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101쪽)"을 하기 위해 이 소설은 지금 여기에 있다. 독자로서, 작가로서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읽고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떤 인간이건 상관없이 하나의 생명으로서 태어나 이 행성에 불시착한 그 날짜는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완벽한 생애』는 말한다.


시징, 너무 혼자 있지 마. 생애의 끝을 미리 가정하지도 마. 사실은 네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어.(112쪽)

결국 가까스로 살아 있는 삶과 이런 삶이 계속되리란 불안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아픔이 "그러게, 지나고 나니 다 그냥이 되네.(50쪽)" 같은 덤덤함으로 뒤바뀔 것을 예감한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생애에서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151쪽)"이고, 적당히 버티는 삶일지라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 그런 말들이 필요한지도 알지 못했는데, 첫 장을 열고서야 내가 이 책을 기다려 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작가 조해진의 『완벽한 생애』도 그중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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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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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장 가. 펠리페가 말했다.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어.(855쪽)" '펠리페'가 의미한 '가족'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집단이다. '가족'에 관한 낭만적인 정의에 적어도 '힐데브란트' 가는 속하지 않을 것 같다. 작가 '조너선 프랜즌'은 소설의 처음부터 '힐데브란트' 가를 붕괴 직전으로 가차없이 내몰고 있다. 이들의 무너짐 속에서 '크로스로드'라는 청소년 집단은 정거장 역할을 자처한다. '힐데브란트' 가의 인물은 전부 다소간 '크로스로드'와 관계되어 있고, '크로스로드'라는 단계를 지나지 않으면 그들의 인생이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기도 한 '크로스로드'는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작가는 가족이나 크로스로드 등의 집단이 아니라, 그 구성원 개개인에게 집중한다. '힐데브란트' 가의 사람들과 '크로스로드'의 지도자인 '릭 앰브로즈'까지 생생하고 면밀하게 탐구함으로써 독자들이 인간의 보편적이고 진솔한 감정이나 마약 사용, 인종차별 등의 이슈들을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크로스로드』는 삶에 대한 극적인 깨달음을 주는 책이 아니다. 그 대신에 어딘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게 하는 작중 인물들의 행태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과 삶을 새삼스레 다시 들여다 볼 기회를 얻는다.




'뉴프로스펙트' 지역에서 부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러스 힐데브란트'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작가는 가족 간의 우애를 치밀하게 구축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로 벌써부터 분열의 조짐을 내보인다. 이성에게 국한되지 않는 '러스'의 애정에 대한 욕구나 그런 아버지에게서 나약함을 감지하는 '클렘'의 반항은 극적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고,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정신적 아픔을 겪으면서도 이를 숨기며 살아온 '매리언'이나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페리', 자신이 무엇이든 가능한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베키' 등을 보노라면, 가족으로서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연결된 적이 있었는지를 되묻게 된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결합이 이토록 빈약했기 때문에 얻는 이점도 있었다. 가족이라는 집단으로부터 떼어놓고 '힐데브란트' 가의 개개인을 바라보자 그들은 후퇴하기보다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착실하게 도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나 아빠, 그리고 딸 혹은 아들로서의 굴레를 벗어던진 그들은 개인으로서의 분명한 특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서 존재하던 '매리언'은 예민하고, 집착적으로 사랑에 매달리던 개인으로서의 역사를 드러내고, 아픈 과거를 다시 직면함으로써 침묵을 깨트리고 '러스'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도덕적으로 옳든 그러지 않든 집단의 위기와 붕괴는 그들이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고, 새롭게 집단을 창조할 수 있도록 이끈다.




『크로스로드』의 인물들이 바닥으로부터 자신을 끌어올리는 과정이 특히 흥미롭다. '매리언'과 '베키'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방법으로 고통을 지우려는 시도를 하다가 신적인 환영을 접한다. 그들의 절절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은 '매리언'과 '베키'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기능한다. 보호자가 부재하는 상황 속에서 신의 존재와 계시는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주어진 것에 순응하고 용기를 내도록 부추기는 신의 구원의 실제적 작용을 목격하는 일이 무종교인 독자의 눈에는 가장 흥미로웠다. 신앙심과 신의 구원적 측면에 있어서도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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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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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내게 들려주지 않은 진실은 얼마나 많을까? 내가 네게 들려주지 않는 진실은 또 얼마나 많겠니?(169쪽)


 『마이 선샤인 어웨이』는 어떤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기억은 남부 지역을 배경으로 특수한 공간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전 미국인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었던 '챌린저호' 폭발을 묘사함으로써 보편성을 띠고 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회상의 방식을 통해 서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억은 끝내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 기억이 반쪽짜리 진실밖에 폭로할 수 없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무지함으로 인해 저지른 일들이 서술자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자신을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처럼 그려내려 하고, 그 자신도 이를 인지한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이 서술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기억 속 '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술자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려는 시도를 지속한다. 자신의 아이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보다는 더 나은 남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술자의 이러한 노력은 그의 아이는 몰라도, 독자 모두를 감동시키기엔 충분하다. 소설의 끝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진실된 애정으로 완전해진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독자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작가 M. O. 월시의 대표작을 당신이 읽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 모든 순간이 중요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받아들인다면, 언젠가 과거를 돌아보고, 이해하고, 느끼고, 후회하고, 추억하고, 또 운이 좋다면, 그 순간을 소중히 아낄 수도 있을 것이다. (...)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370~1쪽)


서술자의 회상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함께 어울려 지내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차츰 무언가를 잃어가기 시작했던 고등학생 때의 기억까지를 뒤죽박죽 가로지른다. 기억 속 무대의 중앙에는 '린디 심프슨'이 서있다. 육상부 선수이자 동네 친구인 '린디'에 대한 서술자의 사랑은 집착적이며, '린디'에 의해 그의 세상은 들썩이며, 둘로 쪼개지기도 한다. 서술자는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한껏 표현하고 싶어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녀의 삶을 훔쳐본다는 죄의식 때문에 갈등한다. 진심이 전달되지 못한 채로 '린디'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서 둘의 관계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다. 『마이 선샤인 어웨이』는 선한 사랑의 기억과 집착적인 악몽을 밑바탕으로, 혹은 때로는 기억들과 맞서 싸우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범인 추적 미스터리 스릴러의 길을 걷는 한 편의 성장소설이다. 절대 바꿀 수 없을 기억 속 유령들과 맞서 싸우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삶은 샘솟는 애정으로 충만해진다.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진실을 밝혀내려는 열의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진실에 의해 비참해지기보다는 새로운 결속과 그로부터 오는 선한 애정을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했다. 찬란하게 빛나던 과거의 태양이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도리어 이전보다 훨씬 나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기억에 대한 흔한 원망이나 죄책감으로 버티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놀라움을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어른이 된 데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서술자가 "우리 둘이 이 세상 속에서 좋은 남성으로 살아갔으면 해./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할 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네가 이해하길 간절히 바라.(423쪽)"라고 말할 때, 어쩐지 울컥하는 심정이 된다. 절망과 좌절의 순간은 결국 아이들이 서로에게 유대감을 느끼며, 비할 데 없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소설의 안과 밖의 그 모든 시간으로부터 진정한 사랑과 선한 의지를 배운 그들에게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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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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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기들은 자폐로 태어난다. 우리 모임 사람이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신경질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동의했지만, 동의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했다.(64쪽)


『어둠의 속도』는 근미래에 태어난 자폐인의 일인칭 시점에서 쓰였다. 실제로 자폐인인 아이를 둔 작가 '엘리자베스 문'은 큰 이질감 없이 '루'의 시선을 표현해 냈다. 처음엔 '루'가 이해하지 못하는 '정상인'들 특유의 행동을 설명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이전의 작품들과 다를 바 없이 밖에서 안으로 자폐인을 관찰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우리 안에서 '루'를 점점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내재되어 있던 자폐적인 특성은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경계를 쉽게 지워버린다. 특히 패턴을 분석하는 등의 문제에서 보통의 사람보다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루'를 보면서 그가 '정상인'보다 모자라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특수한 능력이나 '정상인'처럼 보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루'를 비롯한 자폐인들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 '루'와 동료들이 제안받은 '정상화 수술'이 그 증거이다. 그들은 언제나 변화하기를, '정상인'과 같아지기를 강요받았다.


'정상인'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섞여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르면서도, '루'는 끊임없이 정상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정상인'의 범주에 속해 있으면서도, '루'의 질문에 답하기란 꽤 어렵다. '루'를 지켜보고 있으면 혼란은 점차 가중된다. 소설 속에서 '루'는 자폐인이고, '비정상인'이지만, 내가 본 '루'는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정상인' 친구 정도다. '루'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잘못된 점이 없다고 믿는다. 가끔 어떤 특별한 상황에 있어서 '정상인'들의 체계를 이해할 수 없을 때의 불편함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제안한 '정상화 수술'을 '루'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자폐증이 자신의 일부에 불과하며, 자신 또한 남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처럼 자신이 이제까지 만들어 온 패턴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거될 필요는 없다고 느끼느냐, 혹은 자신의 패턴이 다른 사람과 동일해지고, 무리 안에 잘 섞일 수 있기를 바라느냐가 '정상화 수술' 논란의 핵심이다.




'루'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나아가기를, 위험을 감수하기를, 새로운 친구를 찾기를, 지금의 내가 되기를 선택했다.(501쪽)" 결과의 성패와 관계없이 '루'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이기를 바라고, 이를 지켜내려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루'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목숨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던 고정된 패턴을 버리고, 불확실한 자유낙하를 시작하는 용기를 보여 주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적극적으로 빛을 쫓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자신이 원하던 위치에 도달했다. 『어둠의 속도』는 '정상인'이 우월하기 때문에 '비정상인'이 '정상인'으로서의 삶을 획득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더 나은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라던 한 사람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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