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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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소설은 저주받은 집과 같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이상, 발길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모두 과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문턱을 넘어가야 한다.(346쪽)


작가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피와 유령으로 공포 소설이라는 장르에 걸맞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매력을 작품에 녹여내고자 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정치적인 현실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풍습이나 민간 신앙 등이 소설의 주요한 구성 요소로 기능한다. 또한 작가는 각 소설마다 여성의 시선을 활용해 더욱 예리하게 공포와 광기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작가 본인의 표현처럼 이 책은 저주받은 집과 같다. 호기심 때문에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을 수없고,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상 하나의 단편만 읽고 돌아서기엔 영 찝찝함이 남는다.


작가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일상적인 장면을 예고도 없이 공포스럽고 기괴한 장면으로 바꾸어 놓는 데 능숙하다. 유령은 소설 속 인물들이 이미 알고 있던 얼굴을 하고 그들 앞에 등장하고, 사소한 물건 하나가 저주처럼 들러붙기도 하며, 굳게 믿어왔던 진실들을 순식간에 거짓으로 전락시킨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원한과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안락하던 삶이 무너지고 제모습을 드러낸 도시의 광기는 때로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을 제물로 삼는다.


이 책은 총 12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작품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나아가다 돌연 불안하고 위태로운 얼굴로 독자를 향해 돌아선다. 마리아나 엔리케스가 일으킨 지각변동은 그러나, 완전한 파멸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12개의 세계는 독자를 빠른 속도로 두려움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뒤에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이전 작을 위한 증거가 남아있기라도 할 것처럼 또 다른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단편들이 유기적 구조로 결합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남아메리카적인 요소와 공포 소설의 장기들을 결합하여 단편 하나하나에서 최대의 몰입감을 선보인다.


갑작스러운 유령의 등장과 반전들은 소설에 흥미를 더한다. 원한과 악의와 함께 태어난 유령들은 뿌리 깊이 썩은 도시의 광기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평생 우리의 곁을 배회하며, 우리의 잘못을 징벌할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을 둘러싼 유령들의 악의와 원한은 우리를 끈질기게 붙잡는다. 가장 가깝고 친숙한 얼굴로 다시 태어난 유령들의 출현은 일상 속에 나타난 하나의 경고이자 계시처럼 작동한다. 이 책은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공포를 통해 어떤 비밀을 토로하고자 했을까.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유령들의 연이은 등장은 더 거대한 비밀의 폭로를 예견하게 한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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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17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이 독특해서 눈길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