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끔찍한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7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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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늙어서 찬밥 신세가 되었고 세상도 다 틀렸지만. 만약에 사회가 이렇게 될 줄을 미리 알았다면 아예 자식을 안 낳았을 겁니다.(279쪽)"


전쟁 이후의 사회는 폭력에 도취되었다.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태도가 팽배해 있던 시절의 한 경찰이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피해자는 살아생전에 저질렀던 일들로 보나 살해된 방식으로 보나 말 그대로 끔찍했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시리즈 내내 스웨덴 사회를 종종 비판하곤 했고, 이번 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분명하게 경찰이라는 집단이 가진 약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군대에서 경찰로 넘어온 그 시절의 경찰들은 무자비하게 폭력적으로 시민들을 다뤘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이 가진 공권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폐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서로의 잘잘못을 감춰주며 결속력을 강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옴부즈맨'이라는 좋은 제도를 통해 공권력에 대항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돌아오는 답은 늘 똑같았다. "진정인을 기억하지 못함." 혹은 "필요한 것 이상의 무력은 쓰지 않았다고 함."(147쪽)


"세상에, 대체 왜 안 쐈습니까? 이해가 안 되는......"

"이해 안 해도 됩니다." (343쪽)


주요 가치가 무너진 채로 어찌어찌 집단을 지탱해 온 경찰에게 이번 사건은 불가피했다. 경찰이 피해자가 되었지만, 가해자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점을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강경하고 고압적인 경찰이 돼기를 바라는 일부 동료를 비판하기도 했다. '군발드 라르손'이 가해자와 마침내 마주했을 때 저격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점에서도 그들이 이번 사건에서 어떤 바를 느끼고 있는지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스웨덴 경찰에게든 누구에게든 나아질 여지가 있기 때문에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다.

(도서=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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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폴리스, 포타티스모스! 마르틴 베크 시리즈 6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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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크고 나서도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을 즐겨 봤다. 에피소드마다 용의자의 동기가 공개될 때 가끔은 좀 허망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좀만 참지, 그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코난’ 또한 범인을 호되게 꾸짖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살해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뭐 그런 식으로.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겠다 싶은 것은 아니다.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싶고. 『폴리스, 폴리스, 포타티스모스!』에서 갑부인 ‘팔름그렌’을 살해한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원한을 마음에 담아두다가 갑자기 그것이 행동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 감옥에 가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다. 어차피 자기 인생은 망했고 다시 시작할 힘은 없다고 했다.(385쪽)“


이전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수히 많은 우연이 겹쳐져 사건은 무사히 해결되었다. 하지만 ”마르틴 베크 경감은 기분이 전혀 좋지 않았다.(397쪽)“ 이 글을 읽는 나의 기분 또한 그랬다. 범인이 겨냥하고 싶어 했던 계급의 사람들은 이 일을 불행하고 기이한 한날의 우연쯤으로 기억할 테다. 이 범죄는 신호탄이 아니라 단지 ‘내가 아니어서 다행인‘ 사소한 분풀이로 남겨졌다. 외국인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바카르나’에 대해서 그들은 여전히 모른 채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나갈 것이다. 하지만 범인은 그가 죽어서 기쁘다고 답했다. 자신을 괴롭힌 거대한 시스템 중에서 개미만 한 일부를 덜어냈을 뿐인데, 거기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좀 더 교묘하고 치밀하기를,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며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었기를 바란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글 가운데 『폴리스, 폴리스, 포타티스모스!』가 가장 사회적인 글이었던 것 같다. ‘복지국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다양한 범죄를 적당히 눈감아주는 조국의 모습을 번번이 드러내려고 해서 누군가는 꽤 속을 끓여야 했을 테지만. 문득 좀 더 어렵긴 하지만 우리 자신을 겨냥하는 글쓰기가 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글도 많이 찾아서 읽어야겠다.


(도서=출판사 제공)

그리고 경찰관인 이상, 가급적 좋은 경찰관이 되려고 애쓰는 걸 그만둘 수 없었다. 꼭 천성에 그런 충동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왜인지는 몰라도 그가 감당해야 하는 짐이었다. - P182

한참 뒤, 잠자리에 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오려면 아직 먼 듯했지만 이르든 늦든 언젠가는 자야 했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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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방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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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범행은 유독 대범하다. 집 한 채가 하는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타올랐다. 그것도 경찰관의 눈앞에서. 경찰관 두 명이 이 집을 교대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눈을 피해 쥐도 새도 모르게 집 안으로 잠입해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앞으로 뒤로 시간을 돌려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지만 물샐틈없는 타임라인만 떠오른다. 그래도 희망적인 면은 그 집을 감시하고 있던 게 거구의 경찰관 군발드 라르손이었다는 점이다. ‘라르손의 대처 덕분에 희생자는 3명으로 줄었다.

 

함마르도 지적했듯 이번만큼 어쩌면, 혹시, 만약에등의 추상적인 표현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건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마지막 장에 이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던 이전 작들과는 달리, 사라진 소방차는 찝찝함만을 남긴다.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 나였다면 업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사건에 관한 생각밖에 안 났을 것 같다. 사건이 마무리되던 시점에 콜베리스카케가 겪었던 혼란을 생각하면 사건을 되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을 테지만.

 

, 이런 쪽이 좀 더 경찰이 일상적으로 겪는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명확한 성과와 그에 따른 보수. 그러니까 현대의 직장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기 부여가 제공되지 않는 삶 말이다. 그보다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쌓여가는 업무와 당신 말고는 일을 해결할 경찰이 없어?’ 라는 가족의 의문이 그들의 삶을 채운다. 물론 마르틴 베크20세기의 경찰이니까 21세기는 조금 다르려나.

 

(도서=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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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경관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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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은…… 도살장 같습니다."

()

"그렇군. 도살장이군. 라르손은 차분했다."

(31쪽)

큰일이 벌어지기 전엔 늘 고요한 법이다. 스톡홀름에서 이례적인 대량살인이 발생하기 전의 살인수사과도 그랬다. ‘마르틴 베크를 비롯한 수사 인원이 험난한 상황을 겪지 않은 적은 없지만, 이번의 경우엔 차원이 달랐다. 범인을 특정할 만한 실마리가 조금도 없었고, 사건의 거대한 잔혹성은 세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평화롭던 일상은 총기를 사용한 여덟 건의 살인과 한 건의 살인미수로 처참히 깨졌다. 개중에 한 명은 신원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으며, 경찰관 한 명도 희생양이 되었다(그간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살인수사과에 정이 든 터라 살해당한 경찰관이 밝혀지기까지의 몇 페이지가 평생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온 스톡홀름 시민이 경찰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는 어김없이 난항을 겪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피해자들의 주변인을 탐문조사하는 일뿐이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까. 역시나 모른다거나 겉도는 대답만이 돌아온다. 상황을 타개하고자 각 지역에서 지원인력이 배치된다.


남은 책장은 점점 얇아져가는데 사건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다. 다른 시간대 다른 공간의 독자인 나까지도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다 마르틴 베크시리즈를 읽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미제 사건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걱정까지 들었다. 하지만 사건은 앞에 살살 뿌려두었던 떡밥을 회수하면서 어찌어찌 마무리를 짓게 된다. ’베크는 지난봄 이래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숨겨두었던 웃음을 터뜨린다. 이번 사건이 주었던 압박과 긴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비록 정의 구현을 위한 행위는 아니었으나 하나의 발자취가 잘못된 상태로 묻혀가던 사건을 수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이유 없이 희생된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물론 아쉬운 면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번 일로 조금 더 성장할 살인수사과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도서=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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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 선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3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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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 선 남자』에서는 겉으로는 일상적인 우연이 사건 해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 통의 신고전화와 한 대의 순찰차량이 없었다면 스톡홀름을 패닉에 빠트린 이 사건은 영영 해결될 수 없었다. 앞서 읽었던 어떤 사건과도 비교되지 않는 잔혹함을 고려한다면, 사소한 발견이 더없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토록 잔악하고 무의미한 죽음 앞에서 그들은 범행의 장본인보다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320쪽)"


이번 사건은 '마르틴 베크'를 비롯한 경찰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두려움과 절망감, 그리고 무력감을 안겼다.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수사 기법까지 생겨났지만 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멀끔한 모습을 한 범인은 처음부터 특정하기조차 어려웠고, 의도하지 않으면서도 미꾸라지처럼 경찰의 수사망을 번번이 벗어났다. 거듭되는 실패에 시민들은 경찰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자경단을 조직하는 데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막연한 추적'을 지속해 나간다. '사생활'이나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한 끝에 받는 평가가 그저 '요행'이라는 시선일지라도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범인을 찾기 위한 더 좋은 방식을 고민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는 이처럼 경찰 조직에 대한 이해나 존경심이 두텁게 깔려 있다.


『발코니에 선 남자』는 두 가지 포인트가 눈에 띄었다. 우선, 범죄와 범죄가 면밀하게 닿아있다. 경찰들은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범죄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그리고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다. 복지 국가라는 허물에 가려져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거나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른바 '사회의 찌꺼기 구성원'들에 주목한다. 이 점에서 『로재나』부터 『발코니에 선 남자』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의 시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동안은 재빠르게 문제를 캐치하고 해결해 나가는 식의 범죄 만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하나의 범죄를 깊고 넓게 분석하면서 사회라는 숲을 바라보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후루룩 넘어가는 책장 속에서 알게 모르게 더 큰 문제를 의식하도록 만들다니 놀라운 글 솜씨다.


(도서=출판사 제공)


그에게는 더이상 사생활이 없었다. 쉬는 시간도 없었다. 임무와 책임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살인범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이상, 날이 밝은 이상, 공원이 존재하는 이상, 공원에서 노는 아이가 있는 이상, 오로지 수사만이 중요했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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