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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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장 가. 펠리페가 말했다.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어.(855쪽)" '펠리페'가 의미한 '가족'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집단이다. '가족'에 관한 낭만적인 정의에 적어도 '힐데브란트' 가는 속하지 않을 것 같다. 작가 '조너선 프랜즌'은 소설의 처음부터 '힐데브란트' 가를 붕괴 직전으로 가차없이 내몰고 있다. 이들의 무너짐 속에서 '크로스로드'라는 청소년 집단은 정거장 역할을 자처한다. '힐데브란트' 가의 인물은 전부 다소간 '크로스로드'와 관계되어 있고, '크로스로드'라는 단계를 지나지 않으면 그들의 인생이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기도 한 '크로스로드'는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작가는 가족이나 크로스로드 등의 집단이 아니라, 그 구성원 개개인에게 집중한다. '힐데브란트' 가의 사람들과 '크로스로드'의 지도자인 '릭 앰브로즈'까지 생생하고 면밀하게 탐구함으로써 독자들이 인간의 보편적이고 진솔한 감정이나 마약 사용, 인종차별 등의 이슈들을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크로스로드』는 삶에 대한 극적인 깨달음을 주는 책이 아니다. 그 대신에 어딘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게 하는 작중 인물들의 행태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과 삶을 새삼스레 다시 들여다 볼 기회를 얻는다.




'뉴프로스펙트' 지역에서 부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러스 힐데브란트'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작가는 가족 간의 우애를 치밀하게 구축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로 벌써부터 분열의 조짐을 내보인다. 이성에게 국한되지 않는 '러스'의 애정에 대한 욕구나 그런 아버지에게서 나약함을 감지하는 '클렘'의 반항은 극적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고,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정신적 아픔을 겪으면서도 이를 숨기며 살아온 '매리언'이나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페리', 자신이 무엇이든 가능한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베키' 등을 보노라면, 가족으로서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연결된 적이 있었는지를 되묻게 된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결합이 이토록 빈약했기 때문에 얻는 이점도 있었다. 가족이라는 집단으로부터 떼어놓고 '힐데브란트' 가의 개개인을 바라보자 그들은 후퇴하기보다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착실하게 도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나 아빠, 그리고 딸 혹은 아들로서의 굴레를 벗어던진 그들은 개인으로서의 분명한 특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서 존재하던 '매리언'은 예민하고, 집착적으로 사랑에 매달리던 개인으로서의 역사를 드러내고, 아픈 과거를 다시 직면함으로써 침묵을 깨트리고 '러스'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도덕적으로 옳든 그러지 않든 집단의 위기와 붕괴는 그들이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고, 새롭게 집단을 창조할 수 있도록 이끈다.




『크로스로드』의 인물들이 바닥으로부터 자신을 끌어올리는 과정이 특히 흥미롭다. '매리언'과 '베키'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방법으로 고통을 지우려는 시도를 하다가 신적인 환영을 접한다. 그들의 절절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은 '매리언'과 '베키'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기능한다. 보호자가 부재하는 상황 속에서 신의 존재와 계시는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주어진 것에 순응하고 용기를 내도록 부추기는 신의 구원의 실제적 작용을 목격하는 일이 무종교인 독자의 눈에는 가장 흥미로웠다. 신앙심과 신의 구원적 측면에 있어서도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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