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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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151쪽)

기차역과 포구가 공존하는 영등포는 『완벽한 생애』에 대한 완벽한 은유다. 한곳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결국엔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에 부합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윤주'와 '시징'은 각각 영등포와 홍콩을 떠나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제 나름의 이상적인 장소에 도달한다. 그들은 본래의 자리에서 상실의 아픔을 경험했다. 도망치듯이 떠나간 제주도와 영등포에서 '윤주'와 '시징'은 그러나, 사람과 장소로부터 스며나오는 "공허한 낙후(63쪽)"만을 경험한다.

『완벽한 생애』는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기로 한 곳,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도시, 언제라도 문을 열고 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입구도 출구도 없던 이상한 대기실(148쪽)"에 서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일련의 장소는 우리에게 극복할 수 없는 가난, 이룰 수 없는 꿈, 그리고 영영 잃어버린 연인을 상기시킨다. 그런 삶으로부터 도망가고, 또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임시적인 탈출은 작중 인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직간접적으로 타인과 교류함으로써 자신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한 마디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들을 수 있게 된다.

『완벽한 생애』에서 우리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나 '완벽한 생애'를 향한 희망을 완전히 접는 비관주의를 볼 수 없다. 다만, 삶이 어느 곳에서 시작되었든 "어느 시기가 지나가면 사람은 다 똑같아진다(71쪽)"는 진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니까 당신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든 간에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101쪽)"을 하기 위해 이 소설은 지금 여기에 있다. 독자로서, 작가로서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읽고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떤 인간이건 상관없이 하나의 생명으로서 태어나 이 행성에 불시착한 그 날짜는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완벽한 생애』는 말한다.


시징, 너무 혼자 있지 마. 생애의 끝을 미리 가정하지도 마. 사실은 네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어.(112쪽)

결국 가까스로 살아 있는 삶과 이런 삶이 계속되리란 불안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아픔이 "그러게, 지나고 나니 다 그냥이 되네.(50쪽)" 같은 덤덤함으로 뒤바뀔 것을 예감한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생애에서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151쪽)"이고, 적당히 버티는 삶일지라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 그런 말들이 필요한지도 알지 못했는데, 첫 장을 열고서야 내가 이 책을 기다려 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작가 조해진의 『완벽한 생애』도 그중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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