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본 도쿄, 도쿄가 본 서울 - 2000년대 서울.도쿄 도시공간정책 비교
양재섭 외 지음 / 서울연구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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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주축을 담당하며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두 도시, 서울과 도쿄는 서로에게 선의의 경쟁자이자 상호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도시의 비교 연구는 도쿄도립대학 아이바 신 교수의 연구팀이 제안하여 시작되었다. 본 책은 각각 제 나라의 도시의 현상과 정책을 설명한 뒤 서울이 도쿄에게, 도쿄가 서울에게 편지를 쓰듯 마무리된다. 객관적인 지표나 풍부한 이미지 자료를 통해 우리는 서울과 도쿄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서울을 분석한 글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도시의 역사를 떠올리기도 하고,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방향성을 좀 더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고 자란 도시를 정책적 혹은 현상적으로 접근하는 일은 무척 새로웠다.


『서울이 본 도쿄, 도쿄가 본 서울』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2000년대에 서울과 도쿄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도시개발, 지역 간 불균형, 고령화, 그리고 대중교통 등의 6가지 이슈를 정하여 놓고 두 도시를 상호 비교한다. 이는 각 도시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가는 서로에게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동일한 이슈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도시는 각자에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서로 다른 선택으로 현재에 이르렀다. 기능성과 민간 주도를 중시하는 도쿄와 공평성과 정부 주도의 방식으로 이슈에 대응해 온 서울 양쪽에게서 단점을 찾아내려 혈안이 되기보다 잘된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기반 삼아 어떤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를 도모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슈의 양상은 분명 다르더라도 양측의 경험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서울은 도쿄에게 도시계획의 공공성을 강조하였으며, 도쿄는 서울에게 민간개발과 시민조직의 적극적인 참여 기반 마련을 조언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양측에 극적인 방향 수정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겪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서로의 경험이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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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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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화재로 인한 유독성 화학물질 유출로 폐허가 된 도시 '므레모사'. 일찍이 폐허가 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를 연상시키는 그곳은 내가 알았던 작가 김초엽의 세계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SF라는 낭만이 아닌 '다크 투어리즘'을 바탕으로 구축된 소설 『므레모사』는 비참하고 짧지만 강렬한 서사로 우리를 문장 안에 붙들어 놓는다. 쫓기듯 다음 페이지를 찾아 헤맨 손가락이 마침내 '므레모사'의 실체에 도달했을 때에는 거대한 신성함마저 감지한다. 누군가는 그곳을 파헤쳐야 할 진실이자 지옥으로 묘사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평안이자 위로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안 너는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13쪽)" '한나'는 '유안'에게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무용수였던 '유안'은 재활 치료사이자 연인이었던 '한나'의 열정적인 응원에 힘입어 다시 사람들 앞에 서고, 춤을 출 수 있게 된다. 사람들에게 '유안'은 바닥을 딛고 다시 날아오른 하나의 희망이다. 그러나 '유안' 스스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다리'를 감각한다. 사람들의 환호와 기대 속에 묻혀버린 '그림자 다리'는 '유안'에게만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느닷없는 고통을 선사한다. '유안'은 더 이상 무용수로서 받던 관심과 박수 소리가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끝도 없는 적막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평온함을 갈망할 뿐이다. 그러던 와중에 폐허가 된 도시 '므레모사'에 갈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유안'을 제외한 여행자들은 '므레모사'에 "도움을 베풀러 왔고, 구경하러 왔고, 비극을 목격하러 왔고, 또 회복을 목격하러 왔(179쪽)"다. 그들에게 '므레모사'는 스쳐가는 정류장이지 영구적으로 머무르기 위한 정주지가 아니다. 목적을 이룬 후에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을 여행지에 불과하다. 오로지 '유안'만이 '므레모사'의 우울과 절망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안으로 침잠할 줄 안다. '유안'에게 '므레모사'는 개선되어야 할 음지가 아니다. 도리어 그곳은 자신의 방식대로 숨을 쉬는 또 다른 선택지다. 그러니까 『므레모사』는 우리가 옳다고 믿어왔던 결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면서 기존의 질서에 일격을 가한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마이너스의 세계에 발을 딛는 작가를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시대가 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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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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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지오'와 '푸르지오'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 간의 경계를 뚜렷하게 묘사하면서 작가는 독자가 현실을 마주하고, 그 앞에서 무너지도록 만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경계 밖에 놓인 사람들에게 "거짓말 아니야. 정말 이 정도면 충분해.(75쪽)"라고 다독인다. 그러니까 『겨울방학』은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작품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런 식의 구분은 "광활한 허무(81쪽)" 앞에서 종종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우리는 '푸르지오'로부터 우주 밖으로 밀려나 누군가의 한쪽 면밖에 이해하지 못한 채로 서서히 멀어진다. 그제야 스스로가 얼마나 사무치게 외로웠는지를 깨닫는다.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유일한 희망이 결국 걱정과 불안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소설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순간들에 "괜찮겠지,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42쪽)" 자신을 기만하는 주문을 거는 대신 '나'는 지금보다 더 나빠진 '언젠가'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돌 하나를 쌓는다. 내 입만 다물면 앞으로도 영원히 별다를 것 없이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일 테지만, 남 일이 아닌 내 일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나대기를 멈추지 않는다. '죄책감' 다음에 오는 단어를 찾아내기 위해 헤맨다.


"나는 여전히 희망을 모르지만 사람을 믿지 않을 수는 없다.(294쪽)" 작가의 말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한다. "혼자 사는 좁은 방마저 너무 크게 느껴(247쪽)"지는 외로움을 포착하면서도, "우주가 생기고 없어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해도 우린 영영 같이 있을 거라고(231쪽)" 서로를 단단히 껴안는다. 울타리의 안과 밖, 그 경계가 무심하도록 먼지만큼 작은 존재에 불과했던 우리는 서로가 있기에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은 "편하지는 않지만 잠시 앉아 쉬기에는 좋은 의자(165쪽)" 같다. 현실의 비참함과 나 자신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만들고는 커피 한 잔으로 온몸의 긴장이 녹아내리도록 위안을 건넨다. "멀리서도 사랑한다고 말할게.(138쪽)" 이 책이 말하려던 그 말을 나는 믿고 싶었다. 쓸쓸하고 축축한 문장들 안에서 나 자신의 속도대로 1초가 흐른다. 걷다 보면 나온다고 했다. 이 길의 끝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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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아내
세라 게일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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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던 순간에 남편 '네이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에벌린'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네이선'의 행방을 묻는 이들에게 '에벌린'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 남편이 된 '네이선'은 '에벌린'에게 만족하지 못한 채 그녀의 대용품을 찾아 떠났다. '에벌린'은 '네이선'의 새로운 약혼녀 '마르틴'을 마주한 순간 적의보다도 더 강렬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마르틴'은 '에벌린'의 복제인간이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순종적이고, '네이선'의 뜻이 자신의 자유의지라고 믿는 '마르틴'을 보노라면 '에벌린'은 자신의 전 남편에게 인지 혹은 자신의 복제인간에게 인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네이선'의 요구와 희망에 좀 더 부합한 '마르틴'은 또한 '에벌린' 스스로가 실패작이라는 인상을 안겨준다.


그에게 있어, 우리 모두는 같은 시험을 위해 반복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의 꿈을 실어 나르는 운송 수단일 뿐이었다.(324쪽)

본래 복제인간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창조되고, 목적이 달성되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마르틴'은 애초에 '에벌린'이 세워놓은 규칙과 질서에 철저하게 대항하는 존재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명의 사람처럼 기능하는 '마르틴'을 지켜보며 '에벌린'은 '마르틴'이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입한다. '마르틴'의 결점과 자신이 나은 점을 찾아내려 애쓰면서 스스로를 실패작으로 느끼게 만드는 복제인간에게 반감을 보인다. 그러나 '네이선'이라는 남성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고하면 '마르틴'이 '에벌린'보다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곧 '네이선'의 목적 충족을 위해서라면 개선된 '일회용품 아내'가 몇 명씩 생산되어도 괜찮다는 뜻이고, '마르틴'뿐만 아니라 여성 전체가 남성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로 무한대로 복제 가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에벌린'은 끝없는 외로움을 감각한다. 자신을 특정된 개인으로서 인식해 줄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느낀 것이다.




작가 '세라 게일리'와 '에벌린'은 자신들만의 속도로 '네이선'의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들은 '마르틴' 또한 개별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든 복제인간이든 관계없이 각각의 삶과 죽음이 똑같은 도덕적 무게를 지닌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누구든 누군가의 대용품이 될 수 없고, 한 절대적인 존재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만은 아님을 배운다. '네이선'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여성들이 각자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상호보완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행보는 『일회용 아내』에서 가장 놀랍고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그들 공동체의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할 이들에게 '에벌린'은 이렇게 말한다 : "이렇게 사는 게 더 낫다.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게 더 낫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으니까. / 생각하면 할수록, 이 모든 것들을 바꿀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게 확실해진다.(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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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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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완서를 떠올리면 어쩐지 엄마, 하고 부르고 싶어진다. 엄마, 하면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와 작가 박완서는 닮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박완서의 문학을 이제 영영 잃어버렸다는 것이 이토록 독자들의 마음을 울적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타계 10주년 즈음하여 출간되었던 작가의 에세이 결정판이 새로운 표지로 단장해 여우눈 에디션으로 재출간되었다. 사람 안에서 좋은 점을 보고,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문학과 참 잘 어울리는 표지라는 생각이 든다. 숱한 고민으로 짓눌렸던 나의 마지막 20대는 작가 박완서의 문학 앞에서 눈 녹듯이 녹아내린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작가는 깊숙한 내면까지 파고드는 글쓰기를 선보인다. 하루빨리 죽음에 다가서고 싶던 시절부터 세상 사람들 안에 내재된 선과 그로 인한 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던 나날들까지 일상 속의 감상을 기록하여 독자들을 울고 웃게 만든다. "예사로운 아름다움도(118쪽)" 작가의 손을 거쳐 "깜짝 놀랄 빼어남(118쪽)"으로 빛이 난다. 밤새 꼭꼭 씹은 문장들은 그 다음날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노후의 자신을 가만히 그려보는 계기가 되곤 한다.


2021년, 작가 박완서의 타계 10주기라는 소식을 듣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싶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21C는 야속하게도 마지막 숫자를 또 한 번 갈아치웠다. 세상은 전례 없이 팍팍하고, 개인적인 삶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런 시기에 작가 박완서의 글 안에서 "어머니들의 진지한 노력과 간절한 소망(202쪽)"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작지 않은 축복이었다. 삶을 이만치 버틸 수 있는 건 완전히 나쁜 삶이나 완전히 좋은 삶은 없다고, 세상의 선함을 믿고 살다 보면 얼마든지 신기한 발견을 하게 된다고 말해주는 작가 박완서를 비롯한 문인들의 글이 있기 때문 아닐까.


생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자신이 듣게 될 것이라 예감했던 말을 결국 듣게 되었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247쪽)"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똑같이 눈물이 날 것 같다.


(출판사 지원도서)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 P151

악인과 성인, 빈자와 부자를 층하하지 않고 동시에 얼싸안을 수 있는 게 문학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다. 작가의 이런 보는 눈은 인간 개개인에게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나 제도를 보는 데도 결코 달라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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