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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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화재로 인한 유독성 화학물질 유출로 폐허가 된 도시 '므레모사'. 일찍이 폐허가 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를 연상시키는 그곳은 내가 알았던 작가 김초엽의 세계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SF라는 낭만이 아닌 '다크 투어리즘'을 바탕으로 구축된 소설 『므레모사』는 비참하고 짧지만 강렬한 서사로 우리를 문장 안에 붙들어 놓는다. 쫓기듯 다음 페이지를 찾아 헤맨 손가락이 마침내 '므레모사'의 실체에 도달했을 때에는 거대한 신성함마저 감지한다. 누군가는 그곳을 파헤쳐야 할 진실이자 지옥으로 묘사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평안이자 위로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안 너는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13쪽)" '한나'는 '유안'에게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무용수였던 '유안'은 재활 치료사이자 연인이었던 '한나'의 열정적인 응원에 힘입어 다시 사람들 앞에 서고, 춤을 출 수 있게 된다. 사람들에게 '유안'은 바닥을 딛고 다시 날아오른 하나의 희망이다. 그러나 '유안' 스스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다리'를 감각한다. 사람들의 환호와 기대 속에 묻혀버린 '그림자 다리'는 '유안'에게만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느닷없는 고통을 선사한다. '유안'은 더 이상 무용수로서 받던 관심과 박수 소리가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끝도 없는 적막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평온함을 갈망할 뿐이다. 그러던 와중에 폐허가 된 도시 '므레모사'에 갈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유안'을 제외한 여행자들은 '므레모사'에 "도움을 베풀러 왔고, 구경하러 왔고, 비극을 목격하러 왔고, 또 회복을 목격하러 왔(179쪽)"다. 그들에게 '므레모사'는 스쳐가는 정류장이지 영구적으로 머무르기 위한 정주지가 아니다. 목적을 이룬 후에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을 여행지에 불과하다. 오로지 '유안'만이 '므레모사'의 우울과 절망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안으로 침잠할 줄 안다. '유안'에게 '므레모사'는 개선되어야 할 음지가 아니다. 도리어 그곳은 자신의 방식대로 숨을 쉬는 또 다른 선택지다. 그러니까 『므레모사』는 우리가 옳다고 믿어왔던 결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면서 기존의 질서에 일격을 가한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마이너스의 세계에 발을 딛는 작가를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시대가 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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