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아내
세라 게일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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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던 순간에 남편 '네이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에벌린'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네이선'의 행방을 묻는 이들에게 '에벌린'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 남편이 된 '네이선'은 '에벌린'에게 만족하지 못한 채 그녀의 대용품을 찾아 떠났다. '에벌린'은 '네이선'의 새로운 약혼녀 '마르틴'을 마주한 순간 적의보다도 더 강렬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마르틴'은 '에벌린'의 복제인간이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순종적이고, '네이선'의 뜻이 자신의 자유의지라고 믿는 '마르틴'을 보노라면 '에벌린'은 자신의 전 남편에게 인지 혹은 자신의 복제인간에게 인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네이선'의 요구와 희망에 좀 더 부합한 '마르틴'은 또한 '에벌린' 스스로가 실패작이라는 인상을 안겨준다.


그에게 있어, 우리 모두는 같은 시험을 위해 반복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의 꿈을 실어 나르는 운송 수단일 뿐이었다.(324쪽)

본래 복제인간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창조되고, 목적이 달성되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마르틴'은 애초에 '에벌린'이 세워놓은 규칙과 질서에 철저하게 대항하는 존재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명의 사람처럼 기능하는 '마르틴'을 지켜보며 '에벌린'은 '마르틴'이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입한다. '마르틴'의 결점과 자신이 나은 점을 찾아내려 애쓰면서 스스로를 실패작으로 느끼게 만드는 복제인간에게 반감을 보인다. 그러나 '네이선'이라는 남성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고하면 '마르틴'이 '에벌린'보다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곧 '네이선'의 목적 충족을 위해서라면 개선된 '일회용품 아내'가 몇 명씩 생산되어도 괜찮다는 뜻이고, '마르틴'뿐만 아니라 여성 전체가 남성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로 무한대로 복제 가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에벌린'은 끝없는 외로움을 감각한다. 자신을 특정된 개인으로서 인식해 줄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느낀 것이다.




작가 '세라 게일리'와 '에벌린'은 자신들만의 속도로 '네이선'의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들은 '마르틴' 또한 개별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든 복제인간이든 관계없이 각각의 삶과 죽음이 똑같은 도덕적 무게를 지닌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누구든 누군가의 대용품이 될 수 없고, 한 절대적인 존재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만은 아님을 배운다. '네이선'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여성들이 각자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상호보완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행보는 『일회용 아내』에서 가장 놀랍고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그들 공동체의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할 이들에게 '에벌린'은 이렇게 말한다 : "이렇게 사는 게 더 낫다.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게 더 낫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으니까. / 생각하면 할수록, 이 모든 것들을 바꿀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게 확실해진다.(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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