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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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지오'와 '푸르지오'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 간의 경계를 뚜렷하게 묘사하면서 작가는 독자가 현실을 마주하고, 그 앞에서 무너지도록 만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경계 밖에 놓인 사람들에게 "거짓말 아니야. 정말 이 정도면 충분해.(75쪽)"라고 다독인다. 그러니까 『겨울방학』은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작품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런 식의 구분은 "광활한 허무(81쪽)" 앞에서 종종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우리는 '푸르지오'로부터 우주 밖으로 밀려나 누군가의 한쪽 면밖에 이해하지 못한 채로 서서히 멀어진다. 그제야 스스로가 얼마나 사무치게 외로웠는지를 깨닫는다.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유일한 희망이 결국 걱정과 불안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소설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순간들에 "괜찮겠지,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42쪽)" 자신을 기만하는 주문을 거는 대신 '나'는 지금보다 더 나빠진 '언젠가'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돌 하나를 쌓는다. 내 입만 다물면 앞으로도 영원히 별다를 것 없이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일 테지만, 남 일이 아닌 내 일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나대기를 멈추지 않는다. '죄책감' 다음에 오는 단어를 찾아내기 위해 헤맨다.


"나는 여전히 희망을 모르지만 사람을 믿지 않을 수는 없다.(294쪽)" 작가의 말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한다. "혼자 사는 좁은 방마저 너무 크게 느껴(247쪽)"지는 외로움을 포착하면서도, "우주가 생기고 없어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해도 우린 영영 같이 있을 거라고(231쪽)" 서로를 단단히 껴안는다. 울타리의 안과 밖, 그 경계가 무심하도록 먼지만큼 작은 존재에 불과했던 우리는 서로가 있기에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은 "편하지는 않지만 잠시 앉아 쉬기에는 좋은 의자(165쪽)" 같다. 현실의 비참함과 나 자신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만들고는 커피 한 잔으로 온몸의 긴장이 녹아내리도록 위안을 건넨다. "멀리서도 사랑한다고 말할게.(138쪽)" 이 책이 말하려던 그 말을 나는 믿고 싶었다. 쓸쓸하고 축축한 문장들 안에서 나 자신의 속도대로 1초가 흐른다. 걷다 보면 나온다고 했다. 이 길의 끝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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