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창문 -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호텔 창문>과 수상 후보작들이 실려 있는 책이다. 수상작이기 때문에 <호텔 창문>을 위주로 편집되었고, 뒤표지에도 <호텔 창문>의 간략한 줄거리만이 소개되었을 뿐이다. <호텔 창문>만이 주인공인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이 작품집에 수록된 후보작들도 전부 훌륭했고, 눈여겨볼 만했다. 애초에 작가들 라인업이 빵빵해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다른 수상작품집과 좀 달랐던 점이 있다면, 심사평이나 수상소감이 수상작보다 앞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해설을 들으려니까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굳이 작품을 모두 읽은 후에 앞으로 돌아와서 심사평을 살폈다. 우선적으로 <호텔 창문>을 읽게 된 건, 며칠 전에 관람했던 영화 <호흡>과 소재-죄-가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호흡>에서는 죄가 있는 가해자가 그 죄를 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했다면, <호텔 창문>은 띠지에 쓰여있듯이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해 고찰하는 작품이다.

◆작가 편혜영, <호텔 창문>

며칠 전 관람했던 영화 <호흡>처럼 편혜영 작가의 작품도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작품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영화 <호흡>에서 '정주'가 유괴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건 아들의 수술비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에서는 결이 같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 <호흡>의 '정주'와 달리 소설 <호텔 창문>의 '운오'가 한 행동은 죄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운오'가 형의 도움으로 생존한다. 큰어머니는 그것만으로 '운오'에게 죄가 있다고 봤다. 평소 행실이 나쁘고, '운오'를 주기적으로 괴롭히기도 했던 형은 의로운 죽음을 맞은 것처럼 평가되었고, '운오'는 살아남아 큰어머니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며, 자신이 누구 덕에 살았는지를 자꾸만 되새겨야 했다. 삶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운오가 형의 제사에 강제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 호텔에서 일어난 화재를 목격한다. 가끔 야릇한 상상을 하며 호텔 창문을 바라보기도 했던 곳이다. 그리고 형의 친구들 중 한 명에게서 그의 직장에서 발생했던 화재 사건에 대해 듣는다. 형의 친구는 자신이 저지른 짓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정말로 방화를 저지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공장장이 그를 계속해서 몰아세우니까 자신이 알고 있던 진실과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범죄자라고 규정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기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편혜영 작가는 죄와 죄의식에 대해 묻는다. 누구의 죄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오'는 그리고 형의 친구는 큰어머니와 공장 사장을 통해 강압적으로 죄를 떠안는다. 그리고 자신의 책임이 없음에도 깊은 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게 누군가를 책망하면 안 좋은 일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큰어머니는 공장 사장은 그들을 몰아세웠다. 이 부분에서 의구심이 생겨났다. 정말 자신의 아들이 '운오' 살렸다면, 왜 큰어머니는 아들이 살려낸 생명을 온전히 지켜주지 않고, 자신의 슬픔만을 강요하는 것일까. 자연발화로 판명이 났음에도, 왜 공장 사장은 형의 친구를 몰아세워 책임을 전가했을까. 왜 엉뚱한 사람에게 죄가 성립되고 죄의식을 안고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자신이 아들을 혹은 공장을 잘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들은 누군가를 타겟으로 정해야만 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을 원망하면 마음은 편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잘못은 아닌 거니까. 그렇다면 죄는 생사람을 잡은 큰어머니와 공장주에게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편혜영 작가의 <호텔 창문>은 얼떨결에 가해자라는 택을 달고, 인생을 살아가게 된 이들의 삶을 고찰하여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작가 김금희, <기괴의 탄생>

'기괴의 탄생'은 소설 속 작가 '돈수'의 작품 이름으로 등장한다. '기괴의 탄생'이라는 작품에서 '돈수'는 침까지 흘려가며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는 우량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괴의 탄생>은 이처럼 불타는 듯한 열정을 쏟아붓지만, 결국엔 알싸한 맛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릴 사랑들에 대해서 묘사한 작품이다. 이런 사랑의 과정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어 버리는 사랑의 무결함도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김금희' 작가의 <기괴의 탄생>은 역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위트 있는 문체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저자의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똑같은 상황을 두고 이런 문장들을 떠올릴 수 있는 걸까, 부러운 마음이 솟아난다.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기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기괴'는 소설 속 주축인 '윤령'의 직장 동료인 '리애'씨가 말하는" 참으면 미워하게 돼"라는 문장에서 영감을 받았다. 말하지 않고 참으면서 누군가의 상황을 열의를 가지고 탐구하다가 만들어 내고야 마는 그 거짓된 진실을 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리애'씨에게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리애' 씨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추측하는 '윤령'의 모습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억측에서 탄생한 거짓된 진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다 못해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으므로, 충분히 '기괴'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작가가 생각한 '기괴'라는 건, 예측해 보건대, 한 쪽이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대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균형이 무너져 내려버리는 그 상황을 말하려던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위에서 언급한 우량아가 손가락을 침을 흘려가며 빨던 그 장면처럼 말이다. 공평한 관계가 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유지되는 사랑은 지속되기가 어렵고, 마침내 그 한 쪽을 무너뜨려버린다. 이런 면에서 작가가 '기괴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윤령'이 존경하던 선생 '진은파'의 사랑이 <기괴의 탄생>에서 중심된 화제인데, '은파'는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 관계는 아주 당연하게도 무너졌고, 애초의 순수함은 사라진 채 '기괴'로 추락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작가 김사과,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이수영'의 삶은 '한비'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에는 자신의 삶에 온통 불만을 품고 있었고, 도통 나아지지 않는 인생을 주변의 탓으로 돌리곤 했었다. 하지만 공강인 줄 모르고 학교에 간 날, 그녀는 우연히 '한비'와 마주친다. 다른 동기들도 멀리하고, '수영'으로서도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타입이었던 '한비'와의 뜻밖의 만남은 '이수영'의 삶을 뒤집어 놓는다. '한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이수영이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이수영'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고, 그녀는 시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수영'에게 있어서 '한비'는 큰 전환점이었지만, 그녀는 비밀도 많고, '이수영'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신비롭기 짝이 없던 보헤미안 친구('한비')의 비밀과 급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면서 예술가 친구('이수영')는 상실감을 경험하고, 이후 '한비'가 없는 삶을 상상하며 절망하게 된다.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친구에게서 깊은 애정을 느끼고,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인간이라는 건 종국에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야 하니까 헤어짐을 겪을 수밖에 없다. '김사과' 작가의 이번 작품은 친구 사이의 우정과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잃어버리고야 말았을 때에 찾아오는 막막함을 그린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김혜진, <자정 무렵>

친한 친구였던 '유리'의 사무실에서 파티가 열린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지껄인다. "점진적으로 그런 사람들도 우리가, 사회가 끌어안아야 한다"거나, 한국은 이런 면에서 발전하려면 아직 멀었다느니 하는 종류의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관계도 사실은 아주 보통의 것이라고 말한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계기로 이어져서, 소소한 이야기들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그런 사이 말이다.

소설 속 '너'와 '나'는 동성 연인으로 보였다. 아마 김혜진 작가는 이런 관계도 특별하게 여겨질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다. 소설 속 사람들처럼 배려한답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어대면서, 정작 그들과 "나란히 서 있는 건 해본 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들이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면, 우리가 좀 더 나은 정책과 사람들의 시선 변화를 위해 나서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끝없이 자신들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사회가 어떤 식으로 움직여서 그들의 관계를 도와야 하는지 들어야 한다면 무척 진이 빠지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가족,연인 등-의 결합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지 간에, 제3자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 말을 얹던 사람들도 사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당황스러움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그들을 위하고 싶은 호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려나 순수한 걱정이라고 부르는 건 우리의 일방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김혜진' 작가의 <자정 무렵>을 통해 또 이렇게 새로운 시선에서 세상을 본다.

◆작가 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죽은 언니를 대신해서 '조지영' 씨는 '송이'라는 조카를 돌본다. 가진 게 별로 없는 가족이지만, 서로를 위한 마음만은 가득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였다. '송이'라는 한 사람만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할머니와 이모의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져서 울컥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크게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으나, 잔잔함과 애틋함이 매력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소장해 두고 싶은 소설이었다.

◆작가 조남주, <여자아이는 자라서>

가정폭력상담소를 운영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여성들의 인권을 수호하고, 도망쳐 온 여성들을 보호해주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성의 딸은 자라서 여성주의 문학을 읽는 독서모임을 대학에 개설한다. 그녀의 딸인 '주하'라는 여자아이는 자라서, 상습적으로 같은 반 여자아이들을 성희롱하던 남자아이들을 처벌할 방안을 마련해 낸다.

더 이상 당하기만 하는 여성들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주목할만하다. 그들은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여성을 보호하는 일에 나서기도 한다. 가정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어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모를 수 없었던 할머니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놀랍다. 이렇게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자 어른을 보고 자라면, 자연스레 앞으로 여성으로서 맞닥뜨릴 문제들을 해결할 용기와 실질적인 방안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하'의 어머니는 당연하게도 성교육 캠프에 수시로 참가하고, 대학교 때는 여성주의 책 모임을 자발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성장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해져 '주하'라는 딸은 남자아이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증거를 남기려고, 그들을 유인해낼 계획까지 세운다. 이처럼 할머니 엄마 딸로 이어지는 수 세대에 걸친 여성들은 개별적으로 분리될 수 없으며, 그들이 각자의 시간 속에서 애쓴 일들은 축적되어 강렬한 힘이 되고, 뒤 세대의 여성들의 인권 향상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 즉 한 세대의 여자아이의 성장은 다음 세대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여자아이들이 자라서 서로의 삶에 어떻게 보탬이 되는지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조남주 작가가 만들어낸 또 다른 페미니즘 소설이다.

◆작가 최은미, <보내는 이>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의 마음을 묘사하는 소설이다.

아이를 매개체로 친해진 관계는 위험하기 때문에 사적인 감정들이 개입되면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아' 씨와 '영지'씨는 가깝게 지냈다. 둘 다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살고 있고, 아이들 이름의 끝자가 윤이라는 것도 같았기 때문에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헛헛함을 '진아'씨와의 관계에서 메꿔 보려던 '영지'씨는 사소한 일들에도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애정을 쏟던 관계이기에 '진아' 씨에게서 자신은 모르는 비밀이 발견될 때 그녀는 서운함을 느낀다. 그리고 종국에 '진아'씨가 떠나고야 말았을 때에 큰 슬픔을 느낀다.

꼭 이성과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친구 사이에도 이런 깊은 애정이 생겨나곤 한다. 나만큼의 정성을 쏟아붓지 않는 상대에게서 상처를 입는다. 모든 관계에는 바람이 들 만큼의 공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 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 선을 긋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밀도 높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을 접하면, 당연히 상실감은 그만큼 깊어진다. 특히 '진아'씨와 '영지'씨는 육아나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는 힘듦과 외로움을 공유하는 사이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공통적인 분모를 가진 상대를 찾아내기란 꽤 어려운 일이니까. 소설 <보내는 이>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관계에는 늘 끝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마음을 절제하는 일이 중요한데, '보내는 이'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면서도, 우리는 또 그렇게 어둠이 밀려오지 않을 관계인 것처럼 모든 걸 내주고야 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이 내려오다 -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
김동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겨울 만큼 평범한 나날들 속에서 사람들은 도피 방법으로 가장 먼저 여행을 떠올린다. 하지만 시간적, 물질적 제약으로 인해 원할 때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삶의 권태로움을 맛볼 때마다 여행 에세이나 가이드북을 집어 든다. 그리고는 마치 내일 당장 여행을 갈 것처럼 가고 싶은 지역들을 정해 놓는다. <천국이 내려오다>는 지금 당장 집을 박차고 싶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면만을 예쁜 사진으로 선보인다기보다 자신이 얻은 깨달음들을 차분히 적어 내려간 일기에 가깝다. 여행지만의 특색이 담겼다거나 너무 매혹적이어서 빨려 들어가고 싶을 만큼의 사진들이 없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어디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일상적인 순간들이 가득하다. 작가가 만난 '천국'들을 함께 공감하기엔 시각적 자료가 부족했다. '천국'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소확행에 더 가까웠다. '천국'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평생 벗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황홀하고, 아름다운 곳이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국이라는 공간의 이상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을 테니까, 하고 마음을 바꾸니 책을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이외에 기이하게 여겼던 부분이 또 있는데, 바로 각 장마다 끝에 '천국'이라는 단어가 담긴 문장이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참 제목에 걸맞은 문장들이다 싶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꼭 이런 문장들이 들어가야만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모든 여행에 좋고 나쁨이 있듯, <천국이 내려오다>에도 매력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일단 작가가 여행한 지역이 무척 다양하고 많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통의 여행객들이 자주 찾지 않는 장소들을 다녀왔다. 게다가 가는 장소마다 사건이 터지기 일쑤였다. 우크라이나에 갔는데 마침 러시아랑 전쟁이 발발했다거나,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걸 지켜본 적도 있었다. 마치 여행 작가라는 직업에 온 우주가 나서서 보탬이라도 되려는 듯 에피소드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불안정하고, 지쳐 쓰러질 만한 상황들 속에서도 '천국'을 발견해내는 작가의 긍정적인 에너지란 분명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성격이었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 동안 작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이 겪어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모든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천국을 찾아냈다. 물론 그것이 '여행'에서 그쳤기 때문이리라. 어찌 됐든 흔하지 않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남긴 이 기록들은 읽을만한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모험하는 저자의 모습은 내게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날 열정을 제공해주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원하던 행복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일깨워주었다.

작가는 <천국이 내려오다>에 일상적인 즐거움들을 기록해 두었다. 특별한 모험을 하는 경우보다 한국에서도 할 법한 일들을 하고, 느긋하게 여유를 누리는 때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소소한 일들도 독특한 여행지라는 배경 덕분에, 때로는 '여행'이라는 단어 때문에 훨씬 특별해졌다. 그리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정한 배려와 한국에서는 좀처럼 누리기 힘들었던 여유도 작가의 여행에 한몫 거들었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에스프레소에 크루아상을 곁들일 때, '김동영'작가에게 진짜 커피 맛을 알려주려고 열의를 보이는 프랑스 남성분들로 인해 보통의 하루가 한층 애틋한 추억으로 변할 수 있었다. 이 밖에 러시아 올혼섬에서 작가를 쫓아다니며 도움을 주던 검은 개도 일상적인 소재('개')가 '천국'이라는 상위 단계로 변모한 케이스다. 이처럼 별것 아닌 소재들이 여행이라는 효과를 입고 좀 더 각별해지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새겨진다.

이 책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다른 책들과 달리 함께 더 넓은 곳으로 떠나자!라고 외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이 지내고 있는 한국의 포근한 집이 '천국'이었다고 말한다. 집 밖을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늑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역시 사람은 '천국'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멀리 떠나보고서야 알아차리게 된다. <천국이 내려오다>는 그렇게 끝까지 뽐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내고 있는 이 공간과 주변에 놓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일상적이지 않지만, 작가를 따라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을 꼽는다면 히말라야 산맥을 오토바이를 타고 넘던 장면이었다. 아직 멀리 항해해 보지 않아서 다른 곳에 '천국'이 있으리라고 믿는 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또 여행이 떠나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내가 의심받는가. 어째서 내가 증거를 대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설명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사라져야 하나.p133"

'이제야'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자신의 당숙에게 강간을 당했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부당한 일을 겪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차고 넘친다. 누군가는 여자들이 당하는 모습은 이제 지겹다고, 그만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가슴은 아프고, 그만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하지만, 이런 소재를 다룬 책들이 싫지는 않다. 같은 여성으로서 누군가가 힘겹게 꺼내 놓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82년생 김지영>은 단번에 읽을 수가 없는 소설이라고들 했다. 책장을 덮고 자꾸만 숨을 골라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책을 몇 시간만에 다 읽었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도 분명 분노가 일었다. 내가 차별이라고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살아왔던 것을 저자가 콕콕 집어냈다. 소설 속 '김지영' 씨가 겪는 일들은 내가 흔하게 맞닥뜨린 사건들이기도 했다. 그동안 여성이 받아온 시련들에 무감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당혹감으로, 또는 너무도 당연하게 잘못된 생각들을 수용해온 내 자신에게 절망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김지영'씨에 대한 동정보다는 새로운 시각의 획득으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단숨에 완독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언니에게>는 어른같지도 않은 어른들의 모습에 화를 내다가, 점점 자신의 탓일지도 모른다고 자책하는 '제야'로 인해 책상을 내리치며 울다가 몇 번이나 책을 덮어 버렸다. 아직도 아이를 보호하는 데 이토록 서툰 세상이라니. 게다가 내가 그런 무력한 어른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니. 책을 읽는 내내 오래도록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주변에서 '제야'를 본 일이 없다. 아마 '제야'와 같은 일을 겪었더라도 털어놓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들었다고 해도 무슨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당사자가 직접 증명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서 나는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 속 '제야'는 강간을 당한 이후에도 부모에게 혼날 일을 먼저 걱정하는 아이였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녀의 친척들은 어느 누구도 '제야'의 입장에 서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침묵을 강요했다. 아니 이게 2019년에 일어날 법한 일이란 말인가? 이 소설은 2019년 9월에 출판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그 말인 즉슨, <이제야 언니에게>가 현실과 무척 가깝다는 소리다. 내가 사는 세상이 나아지지를 못하고 자꾸 뒤로 물러난다. 또한, 피해자가 사건 당시의 상황을 증명해야 하는 사법 체계에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일들을 기록하라니. 공포스럽고,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항을 해야 한다니. 여성들은 약하니까 이런 힘든 일들은 못할 거라고, 그러니 물러나 있으라고, 남자 어른들은 말했다. 살면서 남자들에게 이런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중요한 순간이 되면, 여성들이 강해져야 한다고 태도를 바꾼다. '육아와 가사 노동'이라는 육체노동을 24시간 내내 해낼 만큼의 힘이 있지 않느냐고, 나를 덮치려는 남자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고 거기에서 벗어날 만큼 강하지 않냐고, 사회는 마치 늘 그렇게 여성들을 대접했던 것처럼 말을 바꾼다.

'제야'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구인 '은비'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도 사람들은 지나치게 입방아를 찧고, 루머를 확대 재생산했다. 이 과정 속에서 미안해야 할 사람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피해자인 '은비'와 '제야'가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간다.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확인되지도 않은 말들이 퍼져나가고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건 강간 사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일이 터지면 침묵해야 할 사람들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소문을 퍼뜨려야 자신들의 잘못이 지워지는 것처럼 마구 말을 해댄다. 그렇게 하면 그 순간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피해자를 구해내지 못했던 자신의 무력함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진짜 어른이 되자. 어른이 되어보자. 그런 생각 했어.

이모는 제야의 손을 잡고 가만히 말했다.

어른으로서 미안해, 제야야. 정말 미안해."

사실 책에 등장한 '제야'의 친척들에게 손가락질 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동안 적절한 때에 나설 줄 아는 어른이었던가, 자문해 봐야 한다. 이제까지 나도 '진짜 어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것은 전부 배제하고, 아이의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지켜줄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회에서 '성인'으로 분류되면서, 그에 걸맞는 힘과 배짱은 없다는게 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잘못이 없는 아이들의 든든한 빽이 되어줄 결심을 해본다. 개개인의 힘은 역부족이겠지만,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어른들이 팔짱을 끼고 촘촘히 붙어 서 있으면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약한 어른들을 아이들이 너무 미워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다들 한 번 사는 인생이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뿐이라는 걸 알아 주었으면 싶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이 닥치면, 그 사람들이 너희를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서줄 거라는 것도.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어른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온 몸을 내던질 거라는 사실을 '제야'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고, 세상에는 좋은 어른이, 좋은 남자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부탁을 하고자 한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그런 건 전혀 나쁜 짓이 아니다. 나쁜 짓의 끄트머리도 차지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성폭행도 나쁜 짓이라고 말하나?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재수 없는 일, 여자가 먼저 여지를 주니까 생기는 일, 남자가 술에 취하면 할 수도 있는 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한 잣대로 이상한 판단을 한다.

제야는 혼자 울었다. 남들 앞에서는 울지 않고,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잘못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했어요.

경찰이 제야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학생 말하고 행동하는 거 보면 전혀 피해자 같지 않아.
피해자 같은 게 뭔데.

내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 입장이 되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나와 같은 일을 자기들은 겪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 P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복수해 기억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섀넌 커크'의 <복수해 기억해>. 이 책의 소개 글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주저 없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영화나 책에서 납치극이 벌어지면, 대부분의 경우에 연약한 여성 피해자와 강력한 남성 가해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갖은 애를 써도 결국엔 자신의 한계만 깨닫고 만다. 그 피해자가 정부기관의 정예요원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복수해 기억해>는 이 모든 설정을 뒤집었다. 임신을 한 17살 소녀가 등굣길에 납치를 당했지만, 범인들은 그녀의 비상한 두뇌와 침착한 성격을 간과했다. 더군다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증거를 흘리고 다니는 멍청한 가해자마저 여타 스릴러 소설들과 다르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임신부들을 납치해 아기를 적출하고 판매하는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에게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철저한 복수를 감행하는 '리사'의 모습이 <복수해 기억해>의 관전 포인트다. 해군 특수부대 출신에 물리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와 승률이 높은 변호사인 어머니를 둔 '리사'는 오만하지만, 그것을 눈감아 주고도 남을 만큼의 지적 능력을 가졌다. 마냥 경찰들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두뇌를 활용해 범죄자들에게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리사'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짜릿함을 제공한다. 변호사이자 작가인 '섀넌 커크'는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해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마음껏 유괴범들을 징벌한다. 적절한 때에 딱딱 맞아드는 우연들과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또 급작스럽게 조성되는 긴박감이 스토리에 흥미를 배가시킨다. 읽는 내내 영화로 만들기에 정말 딱인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구글링을 해보니까 2016년에 영화화에 관한 논의가 오가긴 했지만, imdb 사이트에는 정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로 보면 정말 끝내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리사'라는 캐릭터가 비현실적인 구석이 많기는 하다. 현실에서 스위치를 껐다 켜며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나 폐쇄된 공간에서 온갖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가해자들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게다가 '리사'를 납치한 범인은 너무나도 허술했고, 그녀에게 주짓수를 가르쳐준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된다. 하지만 이런 흔치 않은 성격을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 매력 있고, 자꾸 빨려 든다. 개인적으로 범죄 영화를 보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자주 상상해 보는 편이다. 물론 영화관에서 편하게 앉아 눈으로만 그들의 움직임을 좇으니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불가능한 상황 설정이라 할지라도, 납치된 장소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어쨌든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작가 '섀넌 커크'는 질문으로만 가득했던 내 상상력에 '리사'라는 가상의 인물을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탈출하면 좋을지를 보여준다.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만 늘 그쳤었는데, 저자의 탈출 방법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복수해 기억해>는 유괴범죄의 피해자들에게 통쾌함을 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릴 때 유괴를 당한 이후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동생을 둔 FBI 요원 '리우'가 등장하고, 임신한 몸으로 감금생활을 해야 했던 '리사'와 '도로시'를 비롯한 3명의 피해자들이 더 있었다. '리우'는 뛰어난 시력과 기억력을 가진 유괴범죄 전문 요원이다. '리우'와 '리사'처럼 비상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가하는 것은 단 한 번의 처벌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지는 고통이다. 항상 트라우마를 떠안고 살아야만 하는 피해자들을 떠올리면, 이것만이 정당한 징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리사'는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변호사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적절히 거짓말까지 섞어가며 연루된 모든 가해자들에게 최고형을 받게 하도록 애쓴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피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변호사 어머니나 그녀에게서 보고 배운 법률 지식을 활용할 만한 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에게 '리우'와 '롤라'같은 전문 인력들이 제때에 당도해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이 '리우'와 '리사'의 존재는 범죄의 종류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제공한다. 또한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복수해서 범죄자들의 싹을 잘라 버리려는 '리사'가 정의 실현을 향한 하나의 도화선이 되어준다. 최근에는 연쇄적인 유괴 범죄에 관한 소식을 다행스

럽게도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복수해 기억해>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의 가족('리우' 요원), 아무것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피해자('도로시')의 모습은 모든 범죄에서 발견되는 장면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피해자들이 받은 만큼의 징벌이 가해자들에게도 내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당분간은 이토록 지적이고,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우며, 잔인하도록 통쾌한 소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한결같이 무심하다는 이유로 나를 소시오패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만약 누군가가 당신 아기에게 총을 들이대고 쏘겠다고 위협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싶다. 내 과학적 사고와 용기가 부럽지 않겠는가? 물론 당신도 당신만의 도구들이 있을 테고, 나름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그러니 당신도 내 방법을 존중해주길 바란다.

현실의 끔찍함을 뇌리에서 차단하고, 오로지 육체로만 움직이는 것. 참전 군인들에게 물어보라. 다 나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무언가를 기다릴 땐 만반의 준비를 하라." 무언가 기다릴 때는 정말로 넋 놓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벽돌 한 장, 모르타르 한 겹, 또 벽돌 한 장, 이렇게 차근차근 피라미드를 쌓아가면서 목표물이 내게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 좌우명을 되새기면서, 내가 기다리는 목표는 반드시 실현된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그 어떤 의심이나 물리학 법칙, 심지어는 시간이 나를 가로막는다고 하더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쓰메 소세키 - 인생의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시와서 출판사가 진행한 이벤트를 통해 받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데, 나는 그의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었다.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본 작가를 알게 되었으면 한다,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이름은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다. 늘 둘러보는 신착도서 칸에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한 작가의 작품이 그렇게 많이 꽂혀 있는 경우는 드물어서, 도대체 나쓰메 소세키가 누구인걸까,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내 무지로 인해 꼭 읽어 봐야할 작가의 작품을 놓쳤다는 생각에 절망스럽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작가를 알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는 뜻 밖에 기회를 얻어서 이렇게 하나 또 배울 수 있었으니 다행스럽다.

<나쓰메 소세키-인생의 이야기>는 기고, 수필, 담화, 강연, 서간의 목차로 구분된다. <도련님>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같이 소설 작품들을 제외하고,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세상에 남긴 글이나 생각들을 정리해 모아놓은 책이다.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을 사랑했던 독자들이라면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의 저작들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의외로 인생에 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기고' 파트나, '서간' 파트에 적힌 여러 말들에서 위안을 얻거나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조언을 얻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과 닮은 구석이 있다(물론 어느 장을 읽던 울컥하게 만드는 '모리 교수'의 매직은 여기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내가 누구든 붙잡고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그런데 작가의 인품이나 제자들에게 삶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모리 교수'의 모습이 엿보인다. 소세키의 제자들이 그의 서재에서 목요회를 열어 토론을 하기도 했다는데, 이것마저 '미치 앨봄'의 작품과 비슷하다.

나쓰메 소세키가 했던 말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을 몇 개 소개해볼까 한다.

-마음에 안 드는 일, 분통 터지는 일, 분개해야 마땅한 일은 세상에 먼지처럼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것과 싸우기보다 그것을 용서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훌륭한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당신과 함께 그것을 수양하고 싶습니다만, 어떠십니까?

-만약 도중에 안개나 아지랑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아아, 여기구나 하는 곳을 찾을 때까지 계속 가보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이전에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도서관에서 마주쳤을 때 읽어 봤었다면,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더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고 <나쓰메 소세키-인생의 이야기>를 읽는 순서를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본 작품 자체로도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의도치 않게 헉, 하고 숨을 들이키게 되는 삶에 유용한 말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테니 읽어볼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