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내려오다 -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
김동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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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울 만큼 평범한 나날들 속에서 사람들은 도피 방법으로 가장 먼저 여행을 떠올린다. 하지만 시간적, 물질적 제약으로 인해 원할 때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삶의 권태로움을 맛볼 때마다 여행 에세이나 가이드북을 집어 든다. 그리고는 마치 내일 당장 여행을 갈 것처럼 가고 싶은 지역들을 정해 놓는다. <천국이 내려오다>는 지금 당장 집을 박차고 싶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면만을 예쁜 사진으로 선보인다기보다 자신이 얻은 깨달음들을 차분히 적어 내려간 일기에 가깝다. 여행지만의 특색이 담겼다거나 너무 매혹적이어서 빨려 들어가고 싶을 만큼의 사진들이 없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어디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일상적인 순간들이 가득하다. 작가가 만난 '천국'들을 함께 공감하기엔 시각적 자료가 부족했다. '천국'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소확행에 더 가까웠다. '천국'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평생 벗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황홀하고, 아름다운 곳이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국이라는 공간의 이상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을 테니까, 하고 마음을 바꾸니 책을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이외에 기이하게 여겼던 부분이 또 있는데, 바로 각 장마다 끝에 '천국'이라는 단어가 담긴 문장이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참 제목에 걸맞은 문장들이다 싶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꼭 이런 문장들이 들어가야만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모든 여행에 좋고 나쁨이 있듯, <천국이 내려오다>에도 매력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일단 작가가 여행한 지역이 무척 다양하고 많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통의 여행객들이 자주 찾지 않는 장소들을 다녀왔다. 게다가 가는 장소마다 사건이 터지기 일쑤였다. 우크라이나에 갔는데 마침 러시아랑 전쟁이 발발했다거나,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걸 지켜본 적도 있었다. 마치 여행 작가라는 직업에 온 우주가 나서서 보탬이라도 되려는 듯 에피소드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불안정하고, 지쳐 쓰러질 만한 상황들 속에서도 '천국'을 발견해내는 작가의 긍정적인 에너지란 분명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성격이었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 동안 작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이 겪어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모든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천국을 찾아냈다. 물론 그것이 '여행'에서 그쳤기 때문이리라. 어찌 됐든 흔하지 않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남긴 이 기록들은 읽을만한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모험하는 저자의 모습은 내게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날 열정을 제공해주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원하던 행복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일깨워주었다.

작가는 <천국이 내려오다>에 일상적인 즐거움들을 기록해 두었다. 특별한 모험을 하는 경우보다 한국에서도 할 법한 일들을 하고, 느긋하게 여유를 누리는 때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소소한 일들도 독특한 여행지라는 배경 덕분에, 때로는 '여행'이라는 단어 때문에 훨씬 특별해졌다. 그리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정한 배려와 한국에서는 좀처럼 누리기 힘들었던 여유도 작가의 여행에 한몫 거들었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에스프레소에 크루아상을 곁들일 때, '김동영'작가에게 진짜 커피 맛을 알려주려고 열의를 보이는 프랑스 남성분들로 인해 보통의 하루가 한층 애틋한 추억으로 변할 수 있었다. 이 밖에 러시아 올혼섬에서 작가를 쫓아다니며 도움을 주던 검은 개도 일상적인 소재('개')가 '천국'이라는 상위 단계로 변모한 케이스다. 이처럼 별것 아닌 소재들이 여행이라는 효과를 입고 좀 더 각별해지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새겨진다.

이 책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다른 책들과 달리 함께 더 넓은 곳으로 떠나자!라고 외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이 지내고 있는 한국의 포근한 집이 '천국'이었다고 말한다. 집 밖을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늑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역시 사람은 '천국'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멀리 떠나보고서야 알아차리게 된다. <천국이 내려오다>는 그렇게 끝까지 뽐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내고 있는 이 공간과 주변에 놓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일상적이지 않지만, 작가를 따라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을 꼽는다면 히말라야 산맥을 오토바이를 타고 넘던 장면이었다. 아직 멀리 항해해 보지 않아서 다른 곳에 '천국'이 있으리라고 믿는 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또 여행이 떠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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