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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해 기억해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작가 '섀넌 커크'의 <복수해 기억해>. 이 책의 소개 글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주저 없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영화나 책에서 납치극이 벌어지면, 대부분의 경우에 연약한 여성 피해자와 강력한 남성 가해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갖은 애를 써도 결국엔 자신의 한계만 깨닫고 만다. 그 피해자가 정부기관의 정예요원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복수해 기억해>는 이 모든 설정을 뒤집었다. 임신을 한 17살 소녀가 등굣길에 납치를 당했지만, 범인들은 그녀의 비상한 두뇌와 침착한 성격을 간과했다. 더군다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증거를 흘리고 다니는 멍청한 가해자마저 여타 스릴러 소설들과 다르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임신부들을 납치해 아기를 적출하고 판매하는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에게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철저한 복수를 감행하는 '리사'의 모습이 <복수해 기억해>의 관전 포인트다. 해군 특수부대 출신에 물리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와 승률이 높은 변호사인 어머니를 둔 '리사'는 오만하지만, 그것을 눈감아 주고도 남을 만큼의 지적 능력을 가졌다. 마냥 경찰들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두뇌를 활용해 범죄자들에게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리사'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짜릿함을 제공한다. 변호사이자 작가인 '섀넌 커크'는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해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마음껏 유괴범들을 징벌한다. 적절한 때에 딱딱 맞아드는 우연들과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또 급작스럽게 조성되는 긴박감이 스토리에 흥미를 배가시킨다. 읽는 내내 영화로 만들기에 정말 딱인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구글링을 해보니까 2016년에 영화화에 관한 논의가 오가긴 했지만, imdb 사이트에는 정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로 보면 정말 끝내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리사'라는 캐릭터가 비현실적인 구석이 많기는 하다. 현실에서 스위치를 껐다 켜며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나 폐쇄된 공간에서 온갖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가해자들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게다가 '리사'를 납치한 범인은 너무나도 허술했고, 그녀에게 주짓수를 가르쳐준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된다. 하지만 이런 흔치 않은 성격을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 매력 있고, 자꾸 빨려 든다. 개인적으로 범죄 영화를 보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자주 상상해 보는 편이다. 물론 영화관에서 편하게 앉아 눈으로만 그들의 움직임을 좇으니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불가능한 상황 설정이라 할지라도, 납치된 장소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어쨌든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작가 '섀넌 커크'는 질문으로만 가득했던 내 상상력에 '리사'라는 가상의 인물을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탈출하면 좋을지를 보여준다.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만 늘 그쳤었는데, 저자의 탈출 방법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복수해 기억해>는 유괴범죄의 피해자들에게 통쾌함을 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릴 때 유괴를 당한 이후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동생을 둔 FBI 요원 '리우'가 등장하고, 임신한 몸으로 감금생활을 해야 했던 '리사'와 '도로시'를 비롯한 3명의 피해자들이 더 있었다. '리우'는 뛰어난 시력과 기억력을 가진 유괴범죄 전문 요원이다. '리우'와 '리사'처럼 비상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가하는 것은 단 한 번의 처벌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지는 고통이다. 항상 트라우마를 떠안고 살아야만 하는 피해자들을 떠올리면, 이것만이 정당한 징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리사'는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변호사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적절히 거짓말까지 섞어가며 연루된 모든 가해자들에게 최고형을 받게 하도록 애쓴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피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변호사 어머니나 그녀에게서 보고 배운 법률 지식을 활용할 만한 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에게 '리우'와 '롤라'같은 전문 인력들이 제때에 당도해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이 '리우'와 '리사'의 존재는 범죄의 종류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제공한다. 또한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복수해서 범죄자들의 싹을 잘라 버리려는 '리사'가 정의 실현을 향한 하나의 도화선이 되어준다. 최근에는 연쇄적인 유괴 범죄에 관한 소식을 다행스
럽게도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복수해 기억해>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의 가족('리우' 요원), 아무것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피해자('도로시')의 모습은 모든 범죄에서 발견되는 장면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피해자들이 받은 만큼의 징벌이 가해자들에게도 내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당분간은 이토록 지적이고,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우며, 잔인하도록 통쾌한 소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한결같이 무심하다는 이유로 나를 소시오패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만약 누군가가 당신 아기에게 총을 들이대고 쏘겠다고 위협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싶다. 내 과학적 사고와 용기가 부럽지 않겠는가? 물론 당신도 당신만의 도구들이 있을 테고, 나름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그러니 당신도 내 방법을 존중해주길 바란다.
현실의 끔찍함을 뇌리에서 차단하고, 오로지 육체로만 움직이는 것. 참전 군인들에게 물어보라. 다 나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무언가를 기다릴 땐 만반의 준비를 하라." 무언가 기다릴 때는 정말로 넋 놓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벽돌 한 장, 모르타르 한 겹, 또 벽돌 한 장, 이렇게 차근차근 피라미드를 쌓아가면서 목표물이 내게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 좌우명을 되새기면서, 내가 기다리는 목표는 반드시 실현된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그 어떤 의심이나 물리학 법칙, 심지어는 시간이 나를 가로막는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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