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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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작들과는 달리 평온한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스톡홀름과는 달리 이웃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 수 있는 작은 소도시인 안데르슬뢰브가 주 배경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원히 실종 상태로 남아있을 것 같던 피해자가 결국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을 때도 '어떡하지?' 하는 식의 긴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결국 모든 것은 잘 풀릴 것이다' 하는 알 수 없는 낙관이 작품에 흘러들고 있음을 감지한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수사팀에 대한 신뢰가 쌓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에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502쪽)


그러나 역시 '마르틴 베크'의 변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양처럼 느껴지는 건 그에게 '레아 닐센'이라는 '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찰의 부당함을 견딜 수 없던 '콜베리'또한 유일하게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경찰 살해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억울한 사람을 용의자로 몰아갔던 이번 사건은 그들에게 좌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갱스터', '무법자', 그리고 '경찰 살해자'로 오해받은 아이의 생각을 통해 작가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스웨덴을 비난한다: "카스페르는 자기 삶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또 부끄럽게 여겨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나라의 운영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경찰 조직부터 스웨덴이라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썩어버린 자신들의 집단을 작가는 가감 없이 지적한다.

항상 보고 싶고 그리운, 그리고 곪아버린 집단 안에서도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집'의 존재가 나머지 시리즈에서는 어떻게 작용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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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방 마르틴 베크 시리즈 8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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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각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누군가는 알 것이다./누가?(502쪽)”


벌써 8번째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읽고 있다. 이번엔 한 은행 강도 사건을 서술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라, 내가 이걸 알아도 되나?’ 싶어서 책에 훨씬 집중하게 된다. 똑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베크’나 그의 동료들과 함께 이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만 같다. 사건의 대략적인 부분을 인지한 상태로 이야기를 읽어 나가자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니, 제발! 그쪽이 아니라고!’ 지난 총격 사건에서 겨우 회복해 돌아온 ‘베크’도 “요즘은 수사를 시작할 때 먼저 경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부터 수사해야(69쪽)” 한다면서 사건 미해결의 모든 원인은 경찰 내부에 있음을 지적한다. 무지하고 오만한 경찰 조직은 “아무것도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소신(99쪽)” 때문에 몇몇 능력 있는 수사관들에게 더욱 두려움을 주었다.


일견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은행 강도 사건과 밀실 사건이 <잠긴 방>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사건이 완벽하게 종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서로에게 줄곧 적대적이던 ‘군발드 라르손’과 ‘콜베리’의 새로운 케미와 ‘잠긴 방’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장을 향해 나아가는 ‘마르틴 베크’(“스베르드의 잠긴 방을 열면서, 그가 자신의 잠긴 방도 연 것일까?(460쪽)”)의 안정적인 수사력이 돋보인다. 이들은 미궁으로 빠지고 있던 사건과 이처럼 지연되는 상황을 덮기 위해 쉬쉬하느라 바쁘기만 했던 ‘국가경찰위원회’를 대신해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 보인다.


여태 읽은 시리즈 중에 500여 페이지의 양은 처음이었다. 1분이라도 걷고 싶지 않은 무더위 속에서 두꺼운 책은 독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하지만, 재밌기로도 1순위다. 범죄소설 다운 범죄소설을 읽었군, 싶었다.


(도서=출판사 제공)

일류 범죄자는 별의별 활동으로 돈을 번다. 독성 물질로 자연과 사람들을 오염시킨 뒤에 부적절한 처방으로 파괴를 복구하는 척하면서 돈을 벌고, 도시의 넓은 구역을 의도적으로 슬럼화한 뒤에 건물을 죄다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 돈을 번다. 그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슬럼은 당연히 예전 슬럼보다 주민들의 건강에 훨씬 해롭다. - P149

백 명이 체포되었고, 더 많은 수가 다쳤다.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스톡홀름은 혼란에 빠졌다.
국가경찰청장은 습관대로 말했다.
"이 일은 한마디도 새어 나가서는 안 돼."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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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끔찍한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7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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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늙어서 찬밥 신세가 되었고 세상도 다 틀렸지만. 만약에 사회가 이렇게 될 줄을 미리 알았다면 아예 자식을 안 낳았을 겁니다.(279쪽)"


전쟁 이후의 사회는 폭력에 도취되었다.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태도가 팽배해 있던 시절의 한 경찰이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피해자는 살아생전에 저질렀던 일들로 보나 살해된 방식으로 보나 말 그대로 끔찍했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시리즈 내내 스웨덴 사회를 종종 비판하곤 했고, 이번 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분명하게 경찰이라는 집단이 가진 약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군대에서 경찰로 넘어온 그 시절의 경찰들은 무자비하게 폭력적으로 시민들을 다뤘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이 가진 공권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폐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서로의 잘잘못을 감춰주며 결속력을 강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옴부즈맨'이라는 좋은 제도를 통해 공권력에 대항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돌아오는 답은 늘 똑같았다. "진정인을 기억하지 못함." 혹은 "필요한 것 이상의 무력은 쓰지 않았다고 함."(147쪽)


"세상에, 대체 왜 안 쐈습니까? 이해가 안 되는......"

"이해 안 해도 됩니다." (343쪽)


주요 가치가 무너진 채로 어찌어찌 집단을 지탱해 온 경찰에게 이번 사건은 불가피했다. 경찰이 피해자가 되었지만, 가해자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점을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강경하고 고압적인 경찰이 돼기를 바라는 일부 동료를 비판하기도 했다. '군발드 라르손'이 가해자와 마침내 마주했을 때 저격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점에서도 그들이 이번 사건에서 어떤 바를 느끼고 있는지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스웨덴 경찰에게든 누구에게든 나아질 여지가 있기 때문에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다.

(도서=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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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폴리스, 포타티스모스! 마르틴 베크 시리즈 6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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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크고 나서도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을 즐겨 봤다. 에피소드마다 용의자의 동기가 공개될 때 가끔은 좀 허망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좀만 참지, 그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코난’ 또한 범인을 호되게 꾸짖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살해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뭐 그런 식으로.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겠다 싶은 것은 아니다.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싶고. 『폴리스, 폴리스, 포타티스모스!』에서 갑부인 ‘팔름그렌’을 살해한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원한을 마음에 담아두다가 갑자기 그것이 행동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 감옥에 가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다. 어차피 자기 인생은 망했고 다시 시작할 힘은 없다고 했다.(385쪽)“


이전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수히 많은 우연이 겹쳐져 사건은 무사히 해결되었다. 하지만 ”마르틴 베크 경감은 기분이 전혀 좋지 않았다.(397쪽)“ 이 글을 읽는 나의 기분 또한 그랬다. 범인이 겨냥하고 싶어 했던 계급의 사람들은 이 일을 불행하고 기이한 한날의 우연쯤으로 기억할 테다. 이 범죄는 신호탄이 아니라 단지 ‘내가 아니어서 다행인‘ 사소한 분풀이로 남겨졌다. 외국인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바카르나’에 대해서 그들은 여전히 모른 채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나갈 것이다. 하지만 범인은 그가 죽어서 기쁘다고 답했다. 자신을 괴롭힌 거대한 시스템 중에서 개미만 한 일부를 덜어냈을 뿐인데, 거기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좀 더 교묘하고 치밀하기를,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며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었기를 바란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글 가운데 『폴리스, 폴리스, 포타티스모스!』가 가장 사회적인 글이었던 것 같다. ‘복지국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다양한 범죄를 적당히 눈감아주는 조국의 모습을 번번이 드러내려고 해서 누군가는 꽤 속을 끓여야 했을 테지만. 문득 좀 더 어렵긴 하지만 우리 자신을 겨냥하는 글쓰기가 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글도 많이 찾아서 읽어야겠다.


(도서=출판사 제공)

그리고 경찰관인 이상, 가급적 좋은 경찰관이 되려고 애쓰는 걸 그만둘 수 없었다. 꼭 천성에 그런 충동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왜인지는 몰라도 그가 감당해야 하는 짐이었다. - P182

한참 뒤, 잠자리에 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오려면 아직 먼 듯했지만 이르든 늦든 언젠가는 자야 했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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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방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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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범행은 유독 대범하다. 집 한 채가 하는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타올랐다. 그것도 경찰관의 눈앞에서. 경찰관 두 명이 이 집을 교대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눈을 피해 쥐도 새도 모르게 집 안으로 잠입해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앞으로 뒤로 시간을 돌려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지만 물샐틈없는 타임라인만 떠오른다. 그래도 희망적인 면은 그 집을 감시하고 있던 게 거구의 경찰관 군발드 라르손이었다는 점이다. ‘라르손의 대처 덕분에 희생자는 3명으로 줄었다.

 

함마르도 지적했듯 이번만큼 어쩌면, 혹시, 만약에등의 추상적인 표현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건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마지막 장에 이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던 이전 작들과는 달리, 사라진 소방차는 찝찝함만을 남긴다.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 나였다면 업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사건에 관한 생각밖에 안 났을 것 같다. 사건이 마무리되던 시점에 콜베리스카케가 겪었던 혼란을 생각하면 사건을 되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을 테지만.

 

, 이런 쪽이 좀 더 경찰이 일상적으로 겪는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명확한 성과와 그에 따른 보수. 그러니까 현대의 직장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기 부여가 제공되지 않는 삶 말이다. 그보다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쌓여가는 업무와 당신 말고는 일을 해결할 경찰이 없어?’ 라는 가족의 의문이 그들의 삶을 채운다. 물론 마르틴 베크20세기의 경찰이니까 21세기는 조금 다르려나.

 

(도서=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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