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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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엽게도 장애인이 또 한 명 늘었군! 땀에 젖은 그의 얼굴 위로 피로와 깊은 슬픔이 드리웠다. 열 명 중 네 명은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는 절망감의 표시였다.(392쪽)


도망만이 살 길인 상황 속에서 군인들은 확립되지 않은 군체계와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기약 없는 기다림을 번번이 감당해야만 했다. 드디어 프로이센 군과 맞닥뜨린 프랑스 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자비한 죽음을 맞이한다. 죽어가는 이들의 비명과 전장의 군인들이 내뱉는 배고픔에 대한 호소는 작가 에밀 졸라의 손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된다. 전쟁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빼앗아가는지를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다.


전장의 바깥에서는 생(生)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죽어 가는 군인들을 살리겠다고 나서는 군의관 '부로슈'와 쟁기를 밀며 태연히 자신의 일을 하는 농부가 그렇다. 그런 이들의 시선에서 전쟁을 보노라면 터무니없이 비이성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땅 위에서 태어나 다행이라는 생각도 물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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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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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란 땅은 모두, 전후좌우 할 것 없이 모두 정복했지! …… 그런데 오늘은 우리가 박살 날 거라니! 왜? 어떻게? 별안간 세상이 뒤집혔나?(29쪽)


'모리스'가 들끓는 애국심으로 합류한 부대는 그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대는 정말이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힘들다는 이유로 이동 중에 식량과 군장을 내팽개치고, 병사들은 지휘관들에게 거리낌 없이 반항심을 내보인다. 게다가 적의 위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리더십의 부재가 더해져 병사들은 싸움의 목적을 상실한다. 자신들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과거 '나폴레옹'이 누리게 해주었던 영광을 잊지 못하고, 당연히 프랑스가 우세할 것이라고 믿던 프랑스인의 뿌리 깊은 자만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전쟁이나 군대에 관해서는 무지한 내가 봐도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그들의 앞날이 무척 우려스럽다. 전장에 관해서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귀한 현재가 무자비하게 낭비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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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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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쓰기 위해 쓰고 있어요, 그저 당신에게 더 많이 쓰기 위해…. 내 비둘기, 내 친근한 사람, 내 아기씨!(245쪽)


가난보다도 '마카르'나 '바르바라'에게 연이어 불어닥치는 불행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물론 누군가의 은혜로 인생이 상승곡선을 그리는 날도 있긴 하다. 하지만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신은 그들에게서 웃음을 앗아간다. 인생은 본래 불공평하고 이에 관해서라면 놀라움을 느낄 일도 없지만,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어째서 끝까지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이야기의 끝에서 '마카르'와 '바르바라'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자신이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이들이 소설 너머에서라도 그럴 만한 기회를 찾을 수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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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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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운명인가 봐요.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운명을 벗어날 순 없지요.(141쪽)


가난한 사람들의 이타적인 행동은 결국 상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선한 의지는 더 극심한 불행만을 초래할 뿐이다. '돈 버는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가 정해지는 세상에서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테면 그들은 가난으로 인해 아주 조그만 원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테두리 밖으로 조금만 벗어나려고 해도 모든 일은 '사치'로 인식되어 사람들의 비난을 사기 쉽상이다. 돈이 없으면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떳떳이 내세울 수 없는 물질 만능주의적인 현실이 '마카르'와 '바르바라'를 비참하고 외롭게 만든다. 직업의 자부심과 함께 지속되는 한 개인의 성실함은 가난한 자들을 구할 수 없다. 그건 어쩌면 몇몇 이들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평생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형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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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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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날들은 너무도 짧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불행, 언제 끝날지는 하느님만 아시는 새카만 불행이었다.(79쪽)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서신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일상을 나눈다. 극히 제한된 방식의 교류임에도 불구하고, 그 편지는 외롭고 비참한 삶 속에 놓인 그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을 제공한다.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수단만이 환영받는 시대에서 '마카르'와 '바르바라'의 교류는 생소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쩐지 애틋함마저 감각된다.

서간체 형식의 글이어서 그런지 아주 술술 읽히는 책이다. 그들이 극적으로 처절한 가난을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았는데, 편지에서 '마카르'와 '바르바라'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위해서 자꾸만 살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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