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절에 제일 받기 싫은 선물로 책과 음반이 뽑혔단다. 그 기사를 보면서 말도 안돼! 라는 생각을 했다. 내 주변엔 온통(!) 을 좋아하는 친구들뿐이고, 웬만하면 음악 다 듣고 살기 때문에 그것들만큼 좋아할 선물이 없기 때문이다. 성탄절이 아니라 생일에도 선물 받을 책 리스트를 적어두고 선물 받는 친구들이 수두룩한데… 제일 받기 싫은 선물이 책이라닛!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조사를 한 것일까. 하긴 취향이겠지. 고개 한번 살짝 돌려보면 책하고 담 쌓은 사람들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늘도 꿋꿋하게 책을 읽자며 리스트를 올려본다. 바야흐로 ♥발렌타인데이♥, 내가 발렌타인데이에 읽을 좋은 책들은 없을까, 친구에게 물었더니 이 친구 왈: 발렌타인에 책도 주고 받아? 하더라.ㅋㅋ 아무렴 어때. 초콜릿 주면서 도 덤으로 주면 좋지 않겠어. 해서 뽑아 봤다.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함께 주면 좋아라 책!!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나의 마음을 모르는 그대, 너무 야속하다. 초콜릿 하나 달랑 보내준다면 그가 감동을 할까. 그렇다고 먹지도 않을 게 뻔한 초콜릿 잔뜩 주긴 싫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여기 있다. 달달한 초콜릿에 어울리는, 당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책. 바로 『심장의 시계장치』이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를 가진 소설『심장의 시계장치』는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홍보 문구에도 쓰여 있듯이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인 셈이다. 운명처럼 만난 한 소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를 찾아 떠나고 마침내 그녀를 만나지만 너무나 뻔한 '진실'과 '믿음'과 '오해' 속에 갈등을 겪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잭을 보며 우리는 지나온 사랑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사랑, 앞으로 겪을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뻔하고 식상한 스토리지만 그 스토리를 이토록 상상력 넘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또한 몽환적인 내용에 어울리는 일러스트는 읽는 재미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기도 한다. 나른한 봄날, 내 마음에 자랄 작은 사랑의 씨앗을 아름답게 키우고 싶다면 심장의 시계장치를 달고 다니는 잭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길! 

 

찬란한 그대와 행복한 사랑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은 어쩌면 내 마음 같은 시집일 거다. 우연히 펼친 시집 속의 한 구절이 내 마음 같고,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시를 적어 건네지만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그에게 이런 방법은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내 맘 같은 시구에 밑줄 좍좍 그어 선물을 하는 거다. 내가 정말 아끼는 시집인데 어쩌고, 그대와 통하고 싶어 저쩌고, 시를 모르는 그라도 당신이 밑줄 그은 시구는 읽어보지 않을까? 여기 딱 좋은 시집이 있다. 이병률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 』
 
이미 여행산문집 『끌림』으로 많은 여행자에게 책을 내게끔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끌림』과 유사한 여행산문집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러나 그의 글빨(!)과  글에 맞게 제대로 포착하는 그의 사진빨(!)에는 미치질 못한다.  감성적이다 못해 마음이 오그라드는 그런 글들, 바로 시인의 감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달콤하고 감성적인 시를 한번 볼까?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봄이 꺼질까 아슬아슬해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당신이, 달빛의 여운이 걷히는 사이 흥이 나고 흥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춤을 추고,/또 결국엔 울게 된다는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간곡하게/봄날은 간다/(…)/(「당신이라는 제국」) 봄날을 보내는 마음,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 이런 시집 정말 좋다.  


그대, 우리 좀 더 옴팡지게 사랑해요!

그를 만난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를 만나는 게 점점 좋아진다. 같이 있으면 행복하고 헤어지면 보고 싶다. 그도 내 맘과 같을까? 그런 그에게 초콜릿 선물 통하기나 할까? 고민스럽다. 그런 그가 당신을 옴팡지게 사랑하게 만들 책이 있다. 책 안 읽는 그를 위해서도 장땡이다. 바로 메가쑈킹 만화가의 『애욕전선 이상없다』 - 참고로 이 책은 19금이다!(오예~!)

오래전 스포츠투데이에서 연재한 만화를 묶은 것이다. 이 책은 을 주제로 이야기를 꾸몄다. 뭔가 발칙하고 성적인 묘사가 넘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금 '연애'에 빠진 커플들의 이야기다. 어느 정도 진전이 된 커플들의 관심은 오로지 상대의 성적 매력뿐이다. 남자는 어떻게 하면 여친과 뽀뽀라도 한번 해볼까 궁리를 하고 여자들 역시 성적 접촉에 적극적이다. 뭔가 퇴폐적인 냄새가 나는 듯하지만 그런 냄새는커녕 만화를 보는 내내 킬킬거리게만 만든다. 그 재미는 만화 속 에피소드도 한몫을 하지만 주고받는 대사들이 장난아니게 웃기기 때문이다. 애욕전선 어록이 나올 정도로 능청스럽게 웃기는 대사들은 <명대사 70선>이라는 제목으로 검색이 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는 확실하게 되며 상대를 웃기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화를 낼 수가 없을 테니. 그런고로,  '믿는 순두부에 이빨 뽀개질 염려 없을 테니' '쓸데없는 걱정이랑 모공 깊숙히 숨겨두고' '옴팡지게 사랑스러운' 메가쑈킹의 대사발을 읽으며 애욕전선 이상 없음을 확인해보시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다 파멸할지라도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또한 사랑은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다.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 그 사랑은 아프다. 고통스럽다. 한데 이 책을 그에게 선물해도 괜찮은걸까? 사랑을 위한다면, 그 상처를 감내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맛보고 싶다면 눈 딱 감고 선물해보자. 어쨌든 사랑이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이 책은 화가의 눈으로 읽어낸 명화 속 사랑을 이야기 한다. 많은 그림들 중에 사랑을 시작하고, 함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다가 당신과 함께일 수 있기를 바라지만 결국 헤어지고 마는 사랑의 이야기가 그림을 통해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프랭크 딕시의 <고백>, 존 워터하우스의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라파엘로 산초의 <라 포르나리나> 등등 한번쯤 본 듯한 그림을 통해 저자는 그림 속 사랑을 들려준다. 어렵지 않은 그림의 해설과 사랑의 그림을 보노라면 내 사랑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어쩌면 당신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 서로 사랑하다 파멸할지라도, 서로 바라보고 사랑하였음에 행복하여라. 지나고 보면 그 사람이 아프겠지만 추억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 
  


프랭크 딕시(1853~1928)의 <고백>은 고백의 순간이 자아내는 고통과 희망의 양면성을 어두운 색과 밝은 색, 어둠과 빛으로 대비시켰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낭만주의 화가로서, 신화나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곤 했다. <고백>은 남자와 여자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포착했다. 이 작품은 남녀에게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가 고백이며, 그러한 고백의 목적에 불확실한 사랑의 감정을 밝히는 일이 포함된다는것을 말하고 있다. 딕시는 거칠고 무거운 붓 터치를 주로 남자 쪽에 사용함으로써 고백을 듣는 자의 고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왼쪽 그림p86) 
 
 
 
그러니 있을 때 잘해! 
 
내가 보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보는 남자. 처음 나를 만날 땐 세상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하더니 이젠 눈길이 딴 곳으로만 간다. 이런 그대에게 내가 발렌타인데이 라고 초콜릿을 선물해야 하나? 정말 주기 싫지만 그대를 사랑하나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대! 소중한 것은 항상 떠난 후에야 알게 되더라 그러니 나 떠나고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 하렴. 바냐처럼 되지 말고 말야! 『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  

완전한 사랑이란 대체 뭘까?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사람과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그런 사랑이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걸어 다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그저 땅바닥만 바라보며 걸으면서 무언가를 찾고 또 찾으니까요."

사람들은 늘 그렇다. 진실한 사랑이 옆에 있을 땐 그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다. 더구나 서로간의 믿음이 깨지면 그 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상대방을 믿어야 하고, 믿음을 주되 그 사랑을 잘 지켜나가야만 그 진실한 사랑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아름답고 예쁜 글과 깜찍한 일러스트가 매력만점인 『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작가의 동화적 상상력이 따뜻함을 전해준다. 특히 바냐에게 상처를 받아 점점 작아지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싸냐의 태도는 비록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지만 나만은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다는 진실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럼, 올해도 다들 행복한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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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라 2010-02-0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피 발렌타인데이!!!^-^ 추천 꾸욱!

readersu 2010-02-05 16:38   좋아요 0 | URL
오예! 쌩유~^^

Arch 2010-02-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데요! ^^ readersu님은 어떤 책을 누구에게 줄지 궁금해요~

readersu 2010-02-08 10:08   좋아요 0 | URL
아, 아치님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전 애욕전선을 누군가에게 줄 생각입니다만, 글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책 받을 인물이 책을 전혀 읽지 않으므로 만화라도, 보라는 차원에서;;;
누군가에게 발렌타인에 책을 선물하겠다면...<심장의 시계장치> 해주고 싶다는..ㅋㅋ(아, 그 누군가가 이번 주에 나타날까요???-.-;;)
 

창비의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미국>편을 먼저 읽게 된 이유는 「필경사 바틀비」와 「에밀리에게 장미를」때문이었다. 그 단편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친구들을 통해서 혹은 다른 책들을 통해 들어왔었던지라 매번 찾아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하고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마침, 창비에서 단편집이 나왔고 읽고 싶어하던 단편 두 개가 같이 들어있었다. 나로선 횡재맞은 기분이었다나. 

내로라 하는 다른 미국 작가들의 단편들도 수록되어 있었지만 맨 마지막에 있는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먼저 읽었다. 언젠가 친구가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어보라며 건네주고선 나중에 꼭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도 같이 읽어보라고 했다. 포크너와 함께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카슨 매컬러스의 작품이 포크너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다. 읽어보니 과연 왜 그 친구가 같이 읽어보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는데 다른 전개를 펼치지만 비슷한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에서 미국의 남부에서는 혹시 그런 일이 허다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매컬러스의 작품이나 포크너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사랑은 자폐적이다.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의 여부를 떠나 에밀리와 아밀리아(이름도 비슷하다)의 사랑은 '사랑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인데, 그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이라는 『슬픈 카페의 노래』에 나오는 글처럼 가슴 아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딱한 에밀리!" 

또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 I would prefer not to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그 내용이 너무나 독특하여 꼭 한번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책이었다. <미국>편에 나오는 다른 작품들도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지만 <미국>편에선 역시「필경사 바틀비」가 제일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코믹한 듯 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짠해지고만 이 작품은, 해피엔딩이었다 하더라도 '바틀비'라는 인물에게 동정이랄까, 도대체 왜 그가 그런 습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증이 생기면서 측은함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언젠가 곽아람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속에서 그녀가 언급한 '바틀비'는 에드워드 호퍼의 <소도시의 사무실>이라는 그림에 나오는 한 남자를 연상하게 만든다고 했다. 책을 읽다보니 정말, 희한하게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올랐는데 사무실 자기 칸막이에서 기숙을 하는 바틀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는 대답할 때 말고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이 상당히 있는데도 독서하는--아니 심지어 신문을 읽는--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 오랜 시간 동안 칸막이 뒤쪽의 어슴푸레한 창가에 서서 막다른 벽돌벽을 내다보곤 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개인적으로 「필경사 바틀비」처럼 수수께끼를 던진 듯한 글을 좋아하진 않지만 허먼 멜빌의 글솜씨 때문일까, '바틀비'라는 인물을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음이 즐거웠다. 정말, 그는 왜 그랬을까? 

이외,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와 샐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는 점점 미쳐가는(!) 화자의 긴장감 넘치는 독백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겹치면서 흥미를 돋우었다. 「검은 고양이」와는 다르게 가부장제 아래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누런 벽지」는 거의 호러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머릿속으로 그녀의 행동이 마구 상상이 되는, 으스스한!) 마지막에 '나'가 기어가면서 내뱉는 말엔 어느 누구라도 기절을 하고 말 것이라는. 더 읽을 거리에 나온 길먼의 『여자만의 나라』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문학전집이라고 하면 무겁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읽어내기에는 벅차다고도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무겁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모두 그 시대상이었다. 그 나라의 역사였다. 그 시대상을 이해하고, 역사를 알고 나면 전혀 무거운 작품들이 아니었다.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또한 대부분의 고전들은 현대 소설들의 모티프가 되었다. 단편들도 그렇고, 다른 세계문학 장편들도 그런 것 같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온 전개와 결말들, 알고 보니 모두 고전 속에 있었던 것. 아무튼 창비의 세계문학전집 덕분에 고전의 재미를 톡톡히 알게 되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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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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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 마치 내가 누경이라도 된 양 감정이입. 아, 이런.   

"너를 참고 있는 마음이 맑고 낮아서 소중해."

이제는 사랑 그 정도는 다 안다는 듯이 누경을 향해 계속 속삭였어. 잊어버려, 잊어버려, 잊어버려. 너에겐 기현이 있잖아. 근데 아뿔사! 누경의 기현에 대한 마음은 진짜였나봐. 갑자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뭐지. 누경, 너가 아니면 안 된다는 기현이 있는데, 기현을 만나야 너는 비로소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 같은데...근데, 넌 다시 또... 그래, 사랑은,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고, 기현에겐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래서 기현에게 넌 그러는 거라고. 알아, 네 맘 알아. 하지만, 하지만 말야....   

"마음속의 빈 상자들이 젖어서 모두 무너졌어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너의 마음을 흔드는 누군가 나타났다는 것은 어쩌면 '그'를 잊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는 거니깐. '그'를 평생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왠지 가슴 아픈 일이니까.  

"힘들 땐 어떻게 하세요?"
"그냥 견뎌. 끝까지 견디는 거야."
인생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 말했다. 누구나,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그럴까?


그, 누경의 일기장 속에 숨어 있는 그 남자. 그는 '답답할 만큼 자신에게 엄격하고, 까다로우면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심지어 약간 수줍어하는 내성적인 남자'였어. 누경이 가진 고통의 트라우마를 씻어준 사람이었지만 또 다른 아픔을 간직하게 만든 장본인이었지. 더 깊이 사랑한다면 그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게 과연 사랑일까? 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랑은, 그래 사랑은, 같이 나누어야 하는 거야. 마음 속에 품어두고 이 생애에서 너와 인연이 아니었다면 다음 생애를 기약하지, 따위는 말짱 필요 없는 거지. 혹은 그가 말했듯이 지금 같이 살려고 애태우지 않으려고 전생에서 같이 살아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따윈 그래, 말일 뿐이야. 현재는, 지금 바로 이곳에선 그와 누경인 같이 있지 못하니깐.   

그 환멸의 정체는 어떤 이 주일을 보냈든, 그것은 각자의 것이라는 진실이었다. 각자의 고뇌, 각자의 귀로, 각자의 그리움……
그러나 그는 알까. 다른 풍경이 또다른 풍경을 그토록 사랑해서 세상 모든 발소리를 세며 오직 그 하나만 기다리는 것을, 다른 세상이 또다른 세상을 그렇게도 생각해서 피부가 갈라지는듯 가뭄 드는 것을. 눈이 너무 깊어져 두려운 나머지 자꾸만 뒤로, 매일 뒤로 물러나야하는 것을…

주말 내내 누경의 가슴 뻐근한 사랑이 너무 절절하여 내 맘 마저 싸~하게 아파왔어. 당분간 달달하든 콕콕 쑤시든, 사랑 이야긴 안 읽으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그만 누경의 일기장을 봐 버렸고, 누경의 아픔을 알게 되었지. 주말 내내 실연 당한 여자 같았어. 어느 누구든 내게 따듯한 말 한마디로 위로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지 뭐야.  

"세상도, 삶도,우리 마음도,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심연의 외줄 위에서 안간힘을 다해 현재를 제어하려는 아둔하고 흐릿하고 가냘픈 의식의 줄타기뿐이야. 야윈 불빛 깜박이는 그가난 속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그 가난 속에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것이 젊음의 마지막에 빠져들었던 내 사랑의 이야기라 해도, 있었던 일 그대로 좋은 시간이었어. 난 괜찮아. 이렇게 가깝고도 먼 근처에서 당신을 바라볼게. 누경, 그러니 웃어. 당신은 편안하게 웃어……."

사랑이 지나가면, 또 다른 사랑이 오는 거래.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어느 순간엔 까마득하게 잊고 만다지. 그러니 사랑 앞에선 누구나 속물이어도 괜찮아. 사랑할 때, 그때 만큼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아. 남들이 뭐라 하든 그 사랑은, '내' 사랑은, 진실이니까. 누경!  

나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회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해를 덮은 달처럼 몸 가장자리가 홍염의 불꽃을 일으키며 파들파들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검게 타는데도 고통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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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내게도 파란만장한 시절이 있어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어쩌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도 필연적으로 내게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건 되돌아보면 어느 순간 곧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돌고, 돌고, 돌아 이제야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이 삶으로 곧바로 가기보다는 그 삶이 내게로 오기를 기다렸기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책에 나오는 그들만큼이나 내 삶에 대해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은지라 어찌나 공감을 하며 읽었는지. 그들에 비하면야 진짜, 별 것도 아니지만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누구라면 어느 누구의 인생인들 그들만 못하랴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구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고 또 다른 이는 피하고 피하였건만 자꾸만 다가오는 일을 뿌리치지 못해 살아가기도 한다. 또 나처럼 돌아, 돌아서 결국은 하고 싶었던 일이 이것이었구나! 생각하며 뒤늦게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았기에 그 중 어떤 것이 옳은 인생이고 제대로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나름대로 각각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기사를 하다가 뜬금없는 잡지사 발행인이 된 안건모 씨나 독일 유학을 갔다가 독일 여성과 한국 여성의 삶을 비교하는 책을 내다가 페미니즘 잡지를 출간하게 된 김신 명숙 씨, 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미술치료사가 되어 있더라는 박승숙 씨 등등 다들 자신의 삶에서 '나는 꼭 이 삶을 살고 말 거야!' 작정을 하고 덤벼든 사람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삶에 대해 꾸준하고 진지하게 궁금해하며 살아오다 보니 지금의 삶이 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의 삶에서 정답을 찾으려기보다는 공감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라고들 한댄다. 살아보니 정말 정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 앞의 삶도 잘 모른다. 그 정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불필요한 고민따위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 열심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정답이라 느껴지는 삶에 다가가는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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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내 품에 들어온 두 권의 책이다. 기다리던 두 작가의 책이다. 두 권 다 온라인 서점에서 연재를 하던 책이었고, 온라인 연재라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위로와 환대, 따뜻한 우정의 서사'를 이야기 하고 또 한 권의 책은 사랑, '예고된 위험마저 받아들인 '그 여자'와 그 여자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벌써부터 찌릿, 어느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또 어쩐다. 신간은 늘 이렇게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다. 기다렸던 책이니 일단 읽어야겠다. 미안하다. 밀린 책아! -.-;;
  

 

2008년 봄, 한 소녀가 인천공항에 도착하며 "주 템므, 마리"라며 휴대폰에 대고 첫 마디를 던지는 걸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소녀 '지오'는 열다섯 살이며 캐나다 깊은 오지마을에서 왔다. 지오는 '자연의 감각'을 가진 신비로운 소녀다.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십여 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특이한 다문화 소녀라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친구들이 지오를 맞아 서울 대탐험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 2008년 촛불 정국이 있다. 그리고 그 촛불 집회에서 소를 데리고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정체 모를 할머니를 만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과연, 어떤 사건인가? 

시인인 김선우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다. 예스24 문화웹진 <나비>에서 연재한 이 소설을 처음에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매일 들어가 찾아 읽었다. 하지만 역시 온라인 연재의 벽은 시간이 없을 때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는 거다. 결국 포기했다. 언젠가는 책이 나올 테니 나는 기다릴 테다. 작가에겐 하루하루 달리는 댓글이 힘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마침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다. 드디어! 마침내! 나오는구나!! 

김선우 작가는 시인이다. 시인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감수성이다. 전작인 『나는 춤이다』에서도 그랬지만 시인의 글은 아름답다. 시인 만의 독특한 표현과 시적 감수성이 독자를 자극한다. 읽으면 읽을 수록 되새김을 하게 만든다. 특히 김선우 작가의 문체는 더 그렇다. 다소 딱딱해보일 수도 있는 글들이 그녀의 손에서 부드럽게 바뀐다. 이 책에는 어떤 글이 그럴까? 궁금해서 펼쳐보니 이런 글이 나온다. 맞다. 바로 이런 글이다.  

"은빛 솜털날개를 단 꽃씨가 드넓은 수평 속에 스미듯이. 목적을 미리 정하지 않은, 속도감을 버린 꽃씨의 유영처럼."

"숨 쉬는 바다가 숨결처럼 파도를 일으키는 거. 생물체 같은 파도의 움직임. 물결의 감촉... 가다가 막히면 방향을 두고 의견이 나뉘고, 파도가 깨지듯이 흩어져 물보라를 날리기도 하지." 

김선우 작가는 5년쯤 전 최승희의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시나리오를 쓰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영화를 전제로 하는 시나리오보다 무제한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첫 소설을 쓰고 나자 그녀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작가는 드라마틱하고 예술적이며 문화적이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이 소설을 통해 미래 세대의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성장할 수 있을 거란다. 

 

시 사랑이다. 사랑이 뭘까,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의 본질일 것이다. 사랑의 감정, 사랑이 주는 아픔 등등 이 소설은 소설 속 인물들과 독자들 마음까지 온통 깨어지기 쉬운 유리의 그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라고 말한다. 맞다. 공감이다. 대공감. 

전경린 작가의 『풀밭 위의 식사』역시 교보문고 온라인 서점에서 연재를 했다. 그쪽 동네는 처음부터 잘 다니지 않은 곳이라 아예 읽을 생각도 못했더랬다. 간간이 전경린 작가의 소설 이야기만 전해들었다. 사랑이라니. 그것도 '내 사랑'만큼은 언제나, 어떤 이유에서건 가장 순결하고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랑이야기라니.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지만 참았다. 매일매일 그다음을 기다리기 싫어서. 이제 책이 내 앞에 있다. 사랑에 빠질 차례다. 책을 펼치니 이런 글이 나온다. 

"왜 그렇게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았나요? 눈을 감으면, 당신 눈 속의 눈동자가 내 눈 속에 고인 물처럼 흔들려요. 당신의 속눈썹이 내 속눈썹을 덮어요. 여린 속눈썹 아래서 이슬처럼 떨리는 이 집요한 시선......" 

어이쿠! 난 이제 당분간 같은(!) 이야기 안 읽으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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