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 그랑블루, 제주의 푸른밤, 7번 국도와 대포항, 그리고 만리포와 백도의 일몰과 거문도. 바다를 보려면 서너 시간은 차로 달려야만 하는 내륙 분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힘든 일이 생기거나 머릿속이 복잡하면 저절로 바다가 보고 싶다, 고 했으니까. 장마가 오기는 하는 건지, 며칠째 한여름 폭염처럼 푹푹 찌는 날씨를 보니 다시 또 바다가 그리워졌다. 바다 다녀온 지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그 그리움을 담아 고른 '바다'가 있는 책, '바다'를 그리워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그런 책! 


맺힌 것을 풀어내는 바다(먹고) 

이제 바다를 이야기할 때 이 책을 빼놓으면 안 된다. 사방이 바다인 섬을 배경으로 이토록 세세하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은 없기 때문이다. '갯것'을 '하고' 다루는 법과 먹는 법은 물론이고 섬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바다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바로 스스로 생계형 낚시꾼이라고 말하는 소설가 한창훈, 그가 쓴 한창훈식 '자산어보'《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가 그 책이다.  

오래 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자산어보》라는 어류학서를 쓴 손암 정약전 선생의 현대판이라고나 할까,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를 바탕으로 한창훈 작가는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거문도에서 나는 어류들로 현대판 자산어보를 써냈다. 어찌나 맛깔 나는 글과 사진을 올려두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입맛을 다시다가 책을 덮자마자 가까운 바다나 횟집으로 뛰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다. 술이 당기는 것은 당연지사. 머리말에서 그는,  

저는 당신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늘 바다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찾아가더라도 회 먹고 바닷가 조금 걷다가 돌아오지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바다란 늘 그곳에 있는, 파랗고 거대한 덩어리일 뿐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다고들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깊숙이 친해지게 되는 것, 어린아이처럼 깔깔대게 하는 것, 이윽고 뒤엉킨 매듭을 하나하나 매만지게 되는 것, 머물다보면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산은 풀어진 것을 맺게 하지만 바다는 맺힌 것을 풀어내게 하거든요." 
라고 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런 책이다. 아직도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은 바다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바다(즐기고) 

여기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달리 생각하면 용감한 남자들이 있다. 술자리에서 나눈 말이 씨가 되어 바닷길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 우리 바닷길 3000km 일주 기록기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이다. 이 모험심 강한 남자들은 무동력 돛단배를 타고 4시간이면 충분한 바닷길을 일 년씩이나 걸려 간 것이다. 항해술은커녕 바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열네 명의 중년 남자들이 '집 나가면 생고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떠난 바닷길에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는 생각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많은 중년의 남성들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항해 중 VHF 교신은 진지해야 한다. 더구나 교신 상대가 해상의 치안을 담당하는 해경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무전기 마이크에 우리 배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무전기 건너편의 교신 상대가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배 이름은 '집단가출호'였다.

그들은 바닷길을 다니며 우리나라의 바다와 섬, 해안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며 감탄을 내지른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일들, 깔따구 모기의 습격, 배에서의 배설물 처리, 추운 겨울의 비박과 끔찍한 배멀미까지. 낭만적으로만 보이던 요트 여행이 알고 보니 생고생의 길이었다는 것은 시작부터 알아본 바. '웃자'고 시작한 여행이 '죽자'고 덤벼든 꼴이었다나. 그러나 고생의 대가로 얻은 그들의 우정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선물.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무수한 중년의 남성들은 책을 덮는 순간, 생고생이든 뭐든 집 떠날 궁리부터 하게 될 것이다. 

 

 

 

이젠 우리 스스로 보호해야 할 바다(보호하기) 

이주 전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서해로는 처음이었다. 가족 여행을 서해로 정한 후에 '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 답사기'라는 부제를 단《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을 읽었다. '해양보호구역'이란 것은 바다가 더는 훼손되면 안 되겠기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전하고 있는 14곳을 말한다. 지난겨울 저자가 그곳을 직접 다니며 사진 찍고 써내려간 글이다. 일반적인 바다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바다를 어떻게 보호하고 바다 여행을 어떤 식으로 해야 가치가 있는지를 책은 알려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바다를 찾는 이유는 바다가 그곳에 있으므로,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냥, 마음대로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그렇게 드나들었대도 있는 그대로를 즐겼으면 '보호 구역'이라는 말 따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훼손되어 가는 바다에게 이젠 '보호 구역'이라는 타이틀을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읽는다면 앞으로 우리가 이 아름다운 바다를 어떻게 보호해야하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사계절 내내 색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바다, 책을 읽고 나면 바다가 주는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다. 또한 책에 나오는 바다를 저자의 여정에 따라 다니다 보면 교육적 가치와 생태여행까지 겸할 수 있다. 여름이 다가오는 요즘 바다에 갈 예정이라면 아이들과 꼭 한번은 읽어보고 가야 할 책.   

부록으로 나온 갯벌의 생물 도감은 이 책의 멋진 보너스이기도 하다. 바다로 떠날 때, 그곳의 맛집보다는 갯벌의 생물 이름을 하나라도 더 알고 간다면 아이들에게 훨씬 더 센스있고 멋진 어른으로 남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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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느낌 있다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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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모르지만 그림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하정우가 그림을 그렸댄다. 티비도 잘 안 보고 연예가십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는 지라 하정우가 그림을 그렸다는 얘긴 처음 들었다. 그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는 보았지만도. 그래도 연예인이 쓴 책이니 그렇고 그러려니 했는데, 책을 펼치면서 그 맘이 쏙 들어가버렸다. 어쩌면 그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진솔한 이야기들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돈이나 명예는 꿈이 아니라 수단일 것이다. 꿈을 향해 걸어갈 때 덜 고통스럽도록 도와주는 조건. 남의 시선에 현혹되어 이것을 꿈이라고 착각할 때 사람들은 추락한다. 진짜 꿈을 꾸는 법을 잊고 헤매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이 정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 꿈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것. 

세상에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니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었대도 그가 말하듯이 돈이나 명예 앞에서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릴 테니 또 다른 꿈을 꾸어야겠지. 하지만 그는 꿈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며 자신의 일까지도 열정적으로 해내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다니. 연예인이라는 걸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원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해낸다고 하긴 하더라마는 잘 하는 것 하나도 없는 평범한 나는 마냥 우러러보게 된다는. 한데 이젠 책까지 냈으니. 이 남자 진짜 느낌이 있네. 뭐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하정우, 느낌 있다》는 일반적인 연예인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 그가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글을 쓰고 자신의 이야길 풀어 놓아 그 기획부터 차이가 나 버렸지만 그가 말하는 그림 이야기나 자신의 직업에 관한 생각들 친구와 가족에 대한 애정 혹은 자신의 생각들을 나열한 글들을 읽으면서 사실은 무척 공감이 갔다. 밑줄이 많았다. 그건 나도 그런 마음이라는 것을 뜻한다. 

책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그의 작품들, 그가 욕심 많은 화가였다면 작품을 이런 식으로 선뜻 넣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책을 한 권 구입함으로써 어쩌면 훗날 유명 화가가 될지도 모를 하정우의 작품을 누구나 볼 수 있고 감상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호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정말 꿈을 좇는 사람이니까. 

책을 읽으며 고현정이 알려주었다는 한 화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을 많이 찾아보긴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화가가 많은데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맘에 들어 버렸다. 바로 엘리자베스 페이턴, 다른 그림도 꼭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하정우의 작품 중에 유독 맘에 든 작품. dream과 love, 광대의 그림들.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언젠가는 하정우가 그 만의 독특한 그림 세계를 이뤄낼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 남자, 진짜 느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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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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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 그녀를 모른다면 한국 소설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나온 소설집을 모두 읽었고 최근에 젊은작가상을 받은 단편도 읽었다. 한데 내 맘에 들어오진 않았다. 김애란의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난 좀 우울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소설 속에 내보이는 쓸쓸함에 공감을 했을테고 왜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아무리 희망와 이상을 은근슬쩍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왜, 우리나라 이십대들은 다들 이렇게 비루하고 우울한 거야. 세상 다 산 사람들 같잖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관심은 있으나 관심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 내게 김애란은 이번에 제대로 뒤통수를 쳐주면서 이제 좀 관심을 가져보시지? 했다.  

책도 나오기 전에 가제본을 받았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거니와(단편만 쓰던 작가들의 첫 장편은 누구든 궁금하기 마련), 제목에서 뭔가 두근거림이 있었다고나 할까, 책소개를 봐서는 어쩐지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난 눈물나게 하는 내용들 싫어 한다. 그러면서도 읽어대는 내가 더 싫지만) 내용이 담겼을 것 같았는데 그냥 끌렸다. 읽어봐야할 것 같았다. 그냥 그랬다. 가제본을 받은 날, 배가 고파 퇴근을 하자마자 가장 빨리 되는 저녁으로 라면을 먹을려고 물을 올려두고 프롤로그를 읽고(그것만으로도 콕콕)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근데 어랏,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어릴 적 처음으로 발음한 사물의 이름을 그려본다이것은 눈(雪), 저것은 밤(夜), 저쪽엔 나무, 발밑엔 땅, 당신은 당신…… 소리로 먼저 익히고 철자로 자꾸 베껴쓴 내 주위의 모든 것. 지금도 가끔, 내가 그런 것들의 이름을 안다는 게 놀랍다. "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문장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때부터였다. 저녁을 먹을려고 올려놓은 물을 내려놓았고, 사다 둔 떡을 입에 문 채 정신 없이 읽기 시작했다.  

아이의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제 부모가 어찌하여 자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팔삭둥이로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마치 그 아이가 옆에서 조곤조곤 말하듯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뭐랄까, 마치 두번 다시 말하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하지만 그런 아이의 독백과는 다르게 은근 유쾌하기까지 한 스토리를 읽으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 쿵, 쿵. 이것, 너무 두근거리잖아. 왜 이래. 하는 생각?!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소설들은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거야. 아마도 내 맘 한구석을 콕콕 쑤실 그런 것.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있잖아, 자꾸 슬픈 노래가 좋아진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는 술 먹고 듣는 노래야. 그러니까 너도 어른이 되면 발라드는 무조건 술 마시고 들어라, 알았지?" 
"네, 아빠."
나는 얼마 안 남은 이를 드러내며 상긋 웃었다.
"아빠."
"엉?"
"지금 슬퍼요?"
"응."
"나 때문에 그래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빠?"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젠장, 이럴 줄 알았다. 시작부터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했다. 하나도 슬프지 않은 척 위장하고 있었지만 읽는 문장마다 촉촉함이 배어있다. 결국 눈물 뚝뚝 흘려주었는데 이 씩씩한 소년, 오히려 날 위로해준다. 이 만한 일로 무슨 눈물을. 그리고 찾아온 소년의 사랑.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 뭔가 시작되려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도망치려 했던 '시작'이 다시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지켜야겠다는 마음도 강하게 들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하느님께서 갑자기 이렇게 잘해주시는 이유는 내게서 뭔가 빼앗아 가실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선물인지 시험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내 쪽에서 한전 더 신호를 보내야 했다. 며칠 뒤, 나는 결국 그애에게 두번째 답신을 보냈다. 편지 한 통쯤 더 쓴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을 뿐더러, 나 역시도 끄덕하지 않으리란 자신을 갖고서였다.  

아빠가 아빠가 되었던 그 나이가 된 소년은 열일곱, 사랑이 찾아올 만했다. 두근거리며 시작된 사랑. 내 마음도 덩달아 두근거렸다. 주고받는 메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진심이 통하는 '소통'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것을, 말 그대로 내가 뭔가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도 손이나 발이 아니라 '마음'을 사용해서 한 일…… 그게 또 '마음'이라, 처방할 약으로는 상대의 '마음'만한 것이 없는……" 그런 사랑.  

어느새 밤이 깊어버렸다. 다 읽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았지만 깜빡 졸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새벽부터 눈물 뚝뚝 흘리고, 출근길 버스 안에서 고인 눈물 어찌하지 못하여 차창만 바라보고. 우씨,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욕을 해대며 읽었다. 결국, 끝까지.  

왜 이렇게 이 책에 홀릭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취향이거나 내 감정이 이 책과 잘 맞았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가장 늙은 자식이 된 씩씩한 소년(아프면 어른스러워진다더니 마치, 그런 것처럼)과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바로 늙어버린(!) 가장 어린 부모, 엄마와 아빠, 나이가 들었으나 아이 같은 장씨 할아버지와 어쩌면 소년에게 행복을 주었을지도 모를 빌어먹을(!) 소녀까지 날 웃기고 울렸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실린 <두근두근 그 여름>을 읽으면서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맘 먹었다.  

열일곱, 한창 들뜨고 행복할 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상처 혹은 사랑이 찾아올 나이, 세상 모든 것에 '두근두근'거릴 그 아름다운 나이의 소년을 만난 것은, 내게도 두근거릴 하나의 추억이었다.《두근두근 내 인생》, 멋지다!   

약하고 희미했지만 분명 거기 있는 소리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파동 안에 머물렀다. 그 자장 끝, 맨 나중에 그려지는 동심원이 토성 주위의 고리처럼 우릴 오목하게 감싸주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말한 방법이란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순간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아버지를 두 팔로 감싸안았다.
"누구하고라도요?"
"그럼, 누구라고라도."
그런 뒤 마치 아픈 아이를 다독이듯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며, 아버지의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이렇게, 이렇게."
그러자 아버지는, 누군가의 메아리를 들려주기 위해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산(山)인 양, 내 앞을 커다랗게 가로막은 채, 내 앞을 든든하게 둘러싼 채, 조금 전, 당신이 하고, 내가 한 말을, 나지막이 중얼댔다.
"이렇게." 

그리하여 한 번 더, 그리하여 여전히, 먼 곳에서 ----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에게로. 아버지에게로. 어머니에게로. 나는 그 바람이 좋아, 얼굴 위에 주름을 한껏 드러낸 채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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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포로 아크파크 세트 - 전5권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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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꿈을 자주 꾼다. 아니, 거의 매일 꿈을 꾼다.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 지경이다. 그래서 가끔은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보는 게 '꿈'이기도 하다. 하룻밤에 꾸는 대부분의 꿈은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끔은 뚜렷하게 남아 있기도 해서 과연, 내가 꿈을 꾼 것인지 진짜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꿈의 포로'라니, 도대체 아크파크라는 남자가 어떤 꿈의 세계에 빠져 있기에 포로씩이나 되었단 말인가. 혹시 나도 꿈의 포로는 아닐까? 이토록 꿈을 꾸어대니 포로인 셈이나 마찬가지?!  

얼마 전에야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 아마 중간에 읽다 말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랬기 때문에 이 책《꿈의 포로 아크파크》를 읽으면서 어, 이것 시작이 《1984》 같아.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것. 책소개를 보니 그렇댄다. 《1984》의 흐름을 색다르게 표현한 작품이란다.  또 '아크파크'라는 이름은 카프카를 패러디한 이름이란다. 카프카의 소설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듯한 만화 속 주인공. 그만큼 만화의 내용은 철학적이다. 뭘 의미하겠는지는 알겠는데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조금은 어렵고 그래서 만화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런 작품.

만화 속 배경은 《1984》처럼 근미래의 어느 나라다. 1권 〈기원〉에서는 《1984》에서 봤듯이 부조리한 권력과 억압적인 상황들이 비슷하게 패러디되어 보여준다. 유머부에 근무한다는 아크파크가 웃기는 유머를 승인하기 위해 회의에 들어가 그들이 논의하는 회의는 웃.긴.다. 기각된 유머

"연세 지긋한 영감이 한 아이를 만나서 물었다. "쥐방울만 한 녀석, 어딜 가냐?"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대꾸했다. "할아버지는 소방울이에요?"

푸핫-.-;; 그들에게 왜 유머부가 필요한지 깨닫게 되는 문장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간이다. 이 나라의 가장 문제점은 공간이 없다는 거다. 사람이 걸어다닐 만큼의 공간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꽉 차있다. 만화를 보는 것만으로 사실은 갑갑함이 밀려온다. 이런 미래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만화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하고 있는데 뒷통수를 치는 장면, 바로 엘리베이터 속 공간이다. 엘리베이터가 지나다닐 때마다 마루판을 걷어내고 피해야 한다. 하루에도 5~60번을. 그럼에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라도 공간 확보를 해야하니까. 이건 정말이지 만화가의 머릿속이 어떻게 생겼기에 이런 상상이 가능한지 들어가보고 싶어진다. 

2권에선 꿈을 꾸다가 깬 아크파크에게 들이닥친 생활공간 검사인들. 이 나라는 한치의 공간도 틈을 내서는 안 된다. 정해진 치수에 정확해야 하는데 아크파크는 서랍을 열어두고 말았다. 서랍을 열어두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 그는 체포된다. 뭔 이런 일이 있냐고? 만화니깐^^ 

사실 다음 권으로 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나를 힘들게 했다. 가위 눌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꿈 공장이 나타나고 잃어버린 꿈을 찾아 다니고 만화가가 그린 만화 속으로 들어가더니 꿈활동을 검사하기까지 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세상이 모두 평면으로 변해버려 하부세계로 잃어버린 두께을 찾으러 떠나기도 한다. 이제 그만 깨어나고 싶은데 이놈의 가위가 자꾸만 눌러버린다. 뭐야, 이거 꿈이야 현실이야. 정신이 없다. 달려도 달려도 그 자리. 헥헥.. 그래서? 

꾸어서는 안 될 꿈, 거지 같은 악몽이지.  

같이 읽은 친구가 말했다. 만화랄까, 삽화를 그리는 그 친구는 《꿈의 포로 아크파크》가 완전 멋지지 않냐고 했다. 동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만화를 볼 줄 모르는 나니깐, 만화를 볼 줄 아는 그 친구가 멋지다고 하는 그걸 찾고 싶었기 때문. 그래서 찾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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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레드북 - 100명의 솔직한 초경 이야기 '여자는 누구나 그날을 기억한다'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은 초경을 다룬 이야기다. 여자에게 초경은 황당한 일이거나, 기다렸던 일이거나 혹은 끔찍한 일이다. 요즘이야 성 교육이 나름대로 되어 있으니 다들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 더구나 외동딸로 선머슴처럼 자란 터라 초경이 나왔을 때 책 속 대부분의 무지한(!) 소녀들처럼 이제 난 죽는구나! 라는 생각보다 너무나 무심하게 이건 뭐야? 하고 지나쳐버렸는데(다시 생각해도 참 나다웠다는 생각;) 나중에 던져놓은 속옷을 본 엄마의 반응도 쿨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그냥 생리대만 던져주었던 것. 역시 책에 나오는 여느 소녀처럼 당연히 소변처럼 나오고 마는 구나, 생각하고 학교 갔다가 이번엔 진짜로 당황했던. 아, 정말 오래된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남자 아이들과 허구한날 동네 구석구석이나 뒷산으로 싸돌아다니길 좋아하던 건강했던 소녀였기에 이 빌어먹을 것은 정말 짜증이 날만큼 싫었다. 오죽하면 난 다시 태어나면 남자애로 태어날 것이라는 둥, 이런 것이나 할 것 같으면 군대를 가겠다는 둥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해댔었다지. 그런다고 한 번 시작한 것이 멈출 리는 없고. 그렇게 매달, 그것이 찾아올 때마다 저주를 퍼부었더랬다(결혼을 안 했고 아기를 가지는 신비로운 경험도 못한 탓에 나는 아직도 이 빌어먹을 것이 싫다-.-;). 

마이 리틀 레드북』을 읽어보니, 세상의 모든 소녀들은 정말 비슷한 것 같다. 하긴 우린 인간이니까 당연하겠지만도. 그 중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하는 소녀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나처럼 이게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였다. 

응급 맹장 수술을 하러 들어갔다가 카테타를 꽂는다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찰나 시작하게된 헬마, 뭔가 아래에서 줄줄 새는 듯한 느낌이 드니 간호사가 자길 죽이는구나! 했단다. 바클리 레이첼은 추수감사절날 크린베리 소스를 만드는 일이 집안 전통이었단다. 열심히 크린베리 소스를 만들다가 화장실에 갔더니 어랏, 왜 소스가 여기 묻어 있지? 하핫; 또 생리가 나오는 내내 속옷을 태워버리다 결국 엄마에게 들켜서 고백을 하고 만 수잔, 그녀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엄마에게 말했단다. 이런 미신도 있다. 초경을 시작하자 델마의 아빠가 말했단다. 식물에게 물을 주지 마라고, 왜? 생리 중인 여성이 식물을 죽이는 '메노톡신'인가 뭔가를 분비한대나 어쩐대나. 황당한 일이지만 여러 문화권에서 존재했던 이야기란다. 결론은 틀린 주장. 더 황당한 것은 행운을 몰고 온다고 엉덩이를 철썩 때리는 일도 있다 한다. 

이렇게 백 명에 가까운 다양한 여성들의 초경담은 놀랍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어이 없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니 가까운 친구들이랑 모여서 초경이야길 한번씩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어쩐지 배꼽 잡고 웃을 것 같은 예감이. 물론 나도 여기 다 못한 황당하고 웃긴 이야기가 있다. 암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니 이제 소녀는 아닌가 보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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