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인지 피곤이 누적된 것인지, 우울의 연속. 자꾸만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멍 때리기만 하고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날아온 메일 속 시집 한 권, 마음을 확, 사로잡네. 구매 버튼 눌러버리고 시집 오기만 기다린다. 언젠가 친구가 이 시인의 시집이 좋다고 추천해주었던 것 같은데 그냥 지나쳐버렸더랬다. 우연히 시인의 낭독도 들어본 것 같은데 역시 시에 대해선 무지한지라 어느 순간 내 맘에 들어오지 않으면 관심이 없는 듯. 아무튼 메일 속에서 본 시집에 눈길이 갔다. 우울할 때는 시집을 읽어주는 센스. 그게 젤 좋은 방법 같다. 긴 글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소설 속 내용을 이해하려 해도 안 될 때는 역시 시집이 장땡.  

눈앞에 없는 사람》을 사면서 친구가 추천해준 《슬픔이 없는 십오 초》도 같이 샀다. 그러고 보니 둘다 '없는' 이 들어가는 제목. '슬픔' 도 없고 눈 앞에 '사람'도 없는... 움, 좀 쓸쓸한 것 같은데... 젠장, 이 시집 읽고 더 우울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우울을 없애기 위해 사서 읽고 더 우울해지면 곤란한데 말이다. 시집 소개를 보다가 누군가 밑줄 그은 눈에 들어온 시, 

(…) 그날 큰 눈이 그치고/쌓인 눈은 조금씩 얼음의 두께를 더했네/다음 번 내릴 눈에 대해/호수는 걱정을 덜었으나/그때 우리의 심약한 마음은/미래를 자주 떠올리며 쩡쩡 금이 갔네/그때 참 짦은 연애였는네/우리는 너무 많은 산책을 했네/그날 큰 눈이 내리다 그쳤네/그날 큰 개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네/우리의 마지막 산책이었네/그때는 알지 못했네 (_그날, 그때, 산책)

그리고 언젠가 계간지에서 봤던 그 시, 

(…)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어쩌다 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로 이어지는/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  (_인중을 긁적거리며)

이 정도로도 시집은 좋다고 혼자 생각함. 

음악 없이 종일 지내 보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할 수 없이 주변 분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귓속으로 노래가 들어오니 마음이 평안해진다. 점심 때 입맛이 없다며 밥을 남겼다. 아무래도 내 몸무게가 몇 킬로인지 재봐야겠다. 거의 대학 때 몸무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꺄~오!(그러나 슬픈 사실, 나이 땜에 오는 뱃살... 밥만 먹으면 다시-.-;)  

뒤표지 시인의 산문도 눈에 들어옴 

오늘 밤, 세찬 빗줄기를 뚫고 건너온, 물방울 속에 뭉쳐 있는 당신의 전언을 펼쳐 읽습니다.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의 말들은 죄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놓인 순수함을 보지 못하는군요. 세계의 단단한 철판 위에 이성의 흔적을 새기는 사람들. 물의 말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틈새에서 잠들고 자라나는 어린 영혼을 보고는, 아이, 불결해, 눈살을 찌푸리기만 하네요. 하지만 물방울로 이루어진 당신의 말은 그 영혼을 투명하게 비춰주는군요. 물방울로 오로지 물방울로 싸우는 당신. 물방울의 정의를 행사하는 당신. 판결과 집행이 아니라 고투와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 당신은 말하죠. 인간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발명했어요. 사랑을 제외하고요.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아아 시인들은 정말 말도 잘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오래오래 전에 시를 배울 것을 그랬나보다. 아니 지금도 늦지 않았겠지. 울 외숙모는 칠순이 다 된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시고 시집도 내셨는데... 못할 게 뭐람. 아, 근데 내 최대의 단점, 감수성만 너무 풍부하여 쓰다 보면 찌질해지고 만다는 사실. 에잇,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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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데드 Walking Dead 1~5 세트
로버트 커크먼 지음, 장성주 옮김, 찰리 아들라드 외 그림 / 황금가지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좀비 아포칼립스 소재의 그래픽노블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책이란다. 그래픽노블도 좋아하고 스릴과 약간의 공포도 싫어하진 않지만 좀비는, 그래 좀비는 좀 별로였다. 죽었으면 죽은 거지, 귀신의 모습도 아니고 냄새나고 살 뜯기고 내장 튀어나온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 것들이 미친듯이 달려드는 이야기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으니까. 그래서 읽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마니아 층들이 꽤 있어서 호기심이 일었다. 그들이 왜 이런 이야길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나. 

경찰이었던 릭, 근무 중 총격전을 벌이다 다쳐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가 깨어났을 때 병원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밖은 마치 폐허가 된 도시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던 릭은 간신히 집에 도착하고 옆집에 숨어살던 모건 부자를 통해 자신이 혼수상태였을 때 좀비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아내와 아이를 찾아 떠난다. 

사실 끔찍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랐다. 징그러운 좀비들의 모습을 어찌 보나 싶었는데 만화 속 좀비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뇌가 없는, 몸뚱이만 살아 움직이는 자들이기에 똑똑한 인간들이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물론 처음엔 당하고 죽고 힘들어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누구나 적응을 하기 마련이고 처음엔 헉,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끔찍한 몰골을 가지고 놀게 된다. 좀비는 그저 그림일 뿐이고 죽은 자들일 뿐이었다. 더구나 뒤로 갈수록 좀비들은 배경화면이 되고 만다. 그들은 아무 짓도 못한다. 자기들과 다른 존재가 옆에 있으면 먹어치우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들만 피하면 인간은 두려울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이 만화는 좀비를 소재로 만든 것이긴 하지만 결국엔 인간의 이야기다. 살아 있는 인간. 하지만 죽은 자들보다 못한 악한 존재들. 

도대체 작가는 뭘 보여주기 위해 이런 만화를 그린 걸까? 

책 속에서 인간들은 좀비를 피해 다니면서 끊임없이 논쟁을 하고 싸우고 심지어는 죽인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은 권력을 누리며 지배하고 싶어한다. 그게 안 되면 좀비보다 더한 짓도 서슴치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좀비가 무서운 게 아니라 인간이 훨씬 더 무서운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5권에 나오는 집단의 권력자(!)가 행하는 짓은 끔찍했다. 사람들은 그가 못마땅하면서도 그가 있음으로 해서 안전해지고 질서가 잡힌다는 것에 동의하고 살아간다. 나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랄까. 하지만 그의 본성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삶은 재미일 뿐이다. 모두 힘을 합쳐 좀비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솔직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6권이 아직 안 나와 내가 못 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긴장감과 공포가 적절히 섞여 몰입하게 만들었고 그다음이 궁금해지게 만든다. 

이미 미드로 공개가 된 드라마가 있고 10월엔 시즌2가 나온단다. 만화보다는 훨씬 끔찍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만화였기에 봤지. 드라마로는 절대로 못 볼 것 같다. 그리고 끝내 좀비 이야기를 왜 좋아하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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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그동안 가고 싶어 했던, 혹은 다시 가고 싶었던 사찰엘 가 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그동안 가 보았던 사찰 중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어디였지? 생각하니 한두 곳이 아니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몰라도 차 없이 그 모든 곳을 가본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 그럼 어떡하지? 가까이 있는 곳을 정해 한두 곳만 다녀올까, 역시 고민하다가 문득, 차라리 템플스테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고선 집에 있는 책들을 다 뒤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이 많다니. 도움이 되었다. 이 책들. 절집 여행을 가거나 템플스테이를 하기 전에 읽어보면 좋은 책들. 

 

땅끝, 해남, 미황사. 지난 번 섬 여행갈 때 이 시집을 가지고 온 친구 덕에 구한 시집이다. 시들이 좋아 한동안 열심히 읽었다. 한데 미황사를 눈여겨보진 않았다. 이번에 절에 관한 책들을 찾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그 시집! 바로 김태정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서울생활을 접고 해남 땅끝 마을에서 머물고 있는 시인이란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 중심을 거부하고 주변부의 삶을 선택한 자의 고독과 슬픔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항상 여행을 다닐 때면 시집 한 권씩은 꼭꼭 챙기는 편인데 이번엔 김태정의 시집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곳곳에 실린 미황사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시인의 감성과 어울려 마음을 울린다. 참, 좋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시집. 바로 이성복의 『남해 금산』, 작년에 다녀온 곳이다. 시 제목으로 나올 만큼, 그 제목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다녀갔을 그곳, 남해의 금산 보리암. 더운 여름이었고 사람들이 많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고생스러웠기에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좋은 기억이 아니었던 보리암. 생각해보니 가능하면 혼자 가는 것이 좋을 것이고 굳이 누군가와 같이 간다면 둘이면 딱 좋겠다. 꼭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여름보다는 겨울에 그 쓸쓸함을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남해 금산』은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여행길에 가지고 가면 좋을 시집. 물론 마음이 아릿아릿 할 테지.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들로 가득한 책이다. 처음 『곱게 늙은 절집』을 읽으면서 앞으로 이 책에 나온 절집을 다 찾아다녀보리라 마음먹었더랬다. 다른 책들과 달리 10여 년 간 곱게 늙어가는 절집을 찾아다니며 그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근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놓인 책이었다. 그래서 사찰 여행이나 템플스테이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읽어보면 좋을 책. 그곳이 어떤 곳이며 어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은 어딜 가더라도 알고 가면 좋기 때문이다. 책을 다시 읽고 나니 시간이 날 때마다 산사를 찾아 다녀 봐야지, 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혼자 또 한다.

 

시집처럼 얇은 책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선방 이야기. 좋은 책이라며 읽는 이들마다 나에게 얘길 한 책이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담백하다. 모두 2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종교를 초월하게 만든다. 『선방일기』는 저자가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동안거를 난 이야기다. 그 기간 동안 스님들의 일상을 살갑게 풀어냈다. 템플스테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울력이 뭔지, 안거는 또 무엇이고 결제니 해제니 하는 단어와 절에서의 생활을 겉핥기로라도 알고 가면 좋을 것이다. 선객은 고독하단다.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니까. 이 책에 나오는 절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삼십 리 길에 있는 상원사다. 오래 전 겨울, 동해에서 일출을 보고 상원사로 와서 오대산의 품속에 안겨 있는 절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다시 가고 싶은 사찰 중에 꼭 들어가는 곳.  

 

그리고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마음의 풍요와 치유의 공간을 줄 책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숲』이다. 우리가 절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단순하게 살고 있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에는 절집만큼 좋은 곳이 없다. 나무와 숲으로 가득한 고즈넉한 산사. 비록 그곳에서 모든 것을 비우고 오지는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편안해질 것이다. 절집의 숲들은 대체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절집의 숲들을 찾아다닌 산림학자인 저자가 들려주는 숲의 가치와 역사. 이 또한 알고 가면 절집 숲의 정취에 푹 빠지게 되지 않을까.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엔 제법 이름난 사찰이 있었다. 그곳은 그 도시 사람들에겐 피서지였다. 여름이면 수박과 먹을 것과 돗자리를 들고 절집 둘레에 있는 계곡으로 놀러를 갔다. 그래서 내게 절은 종교를 떠나서 편안한 휴향지와도 같은 곳이다. 세월이 흘러 계곡은 자연보호와 기타 등등으로 더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그 곳에 갈 때마다 찾게 되는 절은 여전히 마음을 내려 놓게 하는 편안한 곳이다. 유난히 절집을 좋아하는 이유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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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면 나도 꽤나 좋아라 하는 편. 즐기지는 않지만 관심이 가는 만화는 찾아보려고 한다. 장르를 굳이 따지는 편은 아니지만 SF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따뜻한 만화, 재미있는 만화 좋아한다. 한데 예외가 있다면 그건 바로 공포만화-.-;;   

언젠가 우연히 이토 준지의 《어둠의 목소리》를 사서 읽던 친구가 만화를 보고 나니 밤이 무섭다느니 해대기에 얼마나 무섭기에 그러나 싶어 빌려본 적이 있었다. 은근 기대를 하면서. 으~~근데 무섭기보다는 징그러웠다는 말이 더 맞겠다. 물론 오싹하리만큼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읽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강심장^^; 암튼 이 작가는 공포, 호러 만화가로 아주 유명한 작가란다. 공포만화를 이야기할 때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작가이기도. 한데 난 겨우 한 편으로 끝냈다. 공포도 너무 많이 느끼면 공포스럽지가 않다는;; 

공포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나에게 공포를 알려준 사람은 스티븐 킹이다. 어릴 때부터 공포영화를 좋아라 해서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면 다들 두 손으로 얼굴 가리며 꺄악~꺅! 소리 지를 때, 나 혼자 헐! 이런 게 왜 무섭지? 하며 끝까지 눈 감지 않고 보기도 했는데(그래서 남자랑 둘이 절대로 안 간다. 눈 똑바로 뜨고 영화보는 나를 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여자는 무서운 게 나오면 소리 지르며 그들의 품에 안겨주는 여자, 내가 그걸 못했다. 글쎄!) 나이가 드니까, 그런 게 그다지 재미가 없어졌다. 비현실적인 공포는 사실 공포도 아니라는 생각. 그럴 무렵에 나타난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 그는 한여름 나의 에어콘이었대나 뭐래나... 지금은 스티븐 킹도 시들해질만큼 다양한 공포물들이 나오고 있지만 예전엔 그랬다(아, 만화 얘기 하려다 삼천포로 빠지고 있네;).

스티븐 킹의 공포를 좋아하는 이유는 혼령이나 귀신이 등장한다거나(그런 것은 딱 질색), 혹은 누군가를 잔인하게 죽여서 보여주는 그런 공포가 아니라 전혀 무서울 것 같지 않은 일상에서의 공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공포. 그게 진짜 공포라는 걸 알게 해준 사람이 스티븐 킹인 셈이다. 한데 스티븐 킹도 늙어가면서 SF호러나 좀비가 나오는 소설로 넘어가긴 하더라. 그런 장치(!)가 없어도 충분히 무서운 이야길 들려주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스티븐 킹이 싫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사실 《워킹 데드》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난 좀비들이 싫거든, 아우 징그러워..). 징그러운 좀비들이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는 게 무섭기보다 징글맞았기 때문에. 한데 몇 년 전에 읽었던 스티븐 킹의 소설이 생각났다.  

셀1,2》, 스티븐 킹의 소설은 '죽은' 좀비들이 아니라 휴대폰의 전파로 인해 미치광이가 된 사람들이 나오는 '살아 있는' 좀비들이었다. 그 상황들과 묘사들이 어찌나 리얼하던지 영상으로 마구 떠올랐는데, 《워킹 데드》를 보다 보니 《셀》의 장면들이 마구 연상이 되었던 것. '그래, 좀비들이 나온다고 해서 다 나쁘진 않을 거야. 읽을 기회가 생겼으니 한번 읽어보자고!' 역시 읽길 잘했다. 다른 좀비 이야기하곤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글 작가인 로버트 커크먼은 《워킹 데드》는 공포만화가 아니라고 했다. 하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니 진짜, 좀비들이 창궐하는 세상이 생길 수도. 그렇담 그건 공포가 아니라 일상이 될 수도 있는 일-.-;;  

또 머릿속에 떠오른 책이 있었는데(아마도 첫 장면들 때문인 것 같다)더 로드》였다. 폐허가 된 도시, 음산한 분위기... 산 좀비도 아니고, 죽은 좀비도 아닌 대재앙 이후 살아남은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나오는 모습 때문이었다. 죽은 자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와 겁을 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묵시록적인 분위기에 미쳐버린 사람들에게서 좀비 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떠올랐을 것이다. 그동안 좀비들이 나오는 영화도 몇 편 보고 소설도 읽었지만 여전히 끔찍한 것은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좀비의 유래랄까, 포털(네이버)의 지식인을 검색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좀비란,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마약을 투여해 되살려낸 시체에서 유래한 단어라 한다. 영화에서는 1932년 벨라루고시의 <화이트좀비>가 좀비를 다룬 첫 작품이며 조지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을 기점으로 해서 <좀비오><바탈리언>과 같은 수많은 아류작들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시체에 마약을 투여해 되살아나서 시작된 것인가? 뜬금없이 어느날 좀비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 본론인 《워킹 데드》로 돌아가서^^;;(어제 집에 오니 무성의한 택배 아저씨가 문앞에 택배를 던져놓고 갔다. 연락도 없이. 뭐 이런, 욕이 나왔지만 택배가 무사한 관계로 참아주었다. 아, 쓰다 보니 또 쓸데 없이;;), 과연, 무서울까 싶어 걱정을 하며 책을 넘겼는데 로버트 커크먼의 말처럼 공포스럽지 않았다. 글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 끔찍한 장면들을 보는 데도 그런가보다 했다. 아직, 2권까지 밖에 안 읽어서 그런걸까. 근데 꽤나 흥미로웠다. 좀비 나오는 걸 싫어한다고 앞에서 말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과연, 어떤 결과가 날지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완역이 된 것이 아니란다. 또 로버트 커크먼이 말하길, 결코 끝나질 않을 좀비 만화가 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괜히 인기 좋았다는 미드는 보고 싶어지기도. 이 책이 나온다고 하자마자 열광하는 친구들을 보았으므로.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워킹 데드》는 내가 가입한 책카페에서 책수다로 여름 휴가갈 때 가져갈 책으로 추천 받은 책이기도 하다. 5권이나 되는 만화를 가져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오늘 출근하는 길에 버스에 두 권을 들고 타서 읽다 보니 휴가갈 때 가져가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집중력 짱. 긴 여행길이라면 지루하지 않을 듯. 

아 쓰고 보니 뭔 얘길 하려고 이렇게 길게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워킹 데드》재미있다고 적을려고 했던 것은 사실.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나의 특기. 아무튼 주말에 좀비들과 열심히 놀아줘야겠다는. 아니, 미드를 구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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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7177 2011-07-3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둠의 목소리>는 오싹해요. 읽고나서도 기분이 영...그래도 또 읽고 싶어지지만...ㅠㅜ

readersu 2011-08-01 11:49   좋아요 0 | URL
오싹보다 징글 ㅎㅎ
<워킹데드>강추!^^ 읽어보삼!
 
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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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조대리의 트렁크』다. 한동안 한국 문학을 읽지 않다가 그즈음 달라진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부터였다. 생긴 것하곤 다르게(이 말은 백가흠 작가의 작품을 추천해주던 동료작가의 말 : 그때 그의 모습은 정말 참한 ‘도련님’ 같은 모습이었다.) 엽기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집이 나왔다며, 꼭 읽어보라고 소개해주었기에 ‘엽기적? 오우, 정말? 기대가 되는 걸!’ 운운하며 꼭 읽어보리라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읽고서는 너무나 놀라워서(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단 말인가!) 백가흠 작가의 정체가 뭘까? 소설가인가, 기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한데 읽고 나니 그의 첫 책도 궁금해졌다.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을 안고 첫 작품인 『귀뚜라미가 온다』를 읽었다(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을 읽으면서 연방 입으론 욕(!)을 해대고-.-;; 읽다가 한숨 한번 쉬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 그러고선 다 읽은 후 책을 확, 집어던졌더랬다(책이 뭐 잘못했다고;).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중얼거리며. 그니까 『조대리의 트렁크』는 이 책에 비하면 약했다, 고 생각한다. 『귀뚜라미가 온다』에 나오는 광폭한 남자들, 그들이 말하는 사랑, 정말이지 세상에 그런 사랑만 존재한다면 사랑 따윈 모르고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읽은 후엔 백가흠 작가가 더, 정말 궁금해지고 말았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디서 이런 소재를 가져와 소설을 쓰는 걸까, 소설가는 어느 정도 자신의 경험이 들어 있는 소설을 쓴다는데 설마?=.=  

4년여 만에 나온 소설집이란다. 장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 번째 소설집이라 적이 실망을 하려고 했지만 기다리던 작가의 새 책이 나온 것만이라도 어딘가 싶어 바로 구매를 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지레 겁을 먹었고, 전작들을 떠올리며 불쾌해질 기분과 읽고 나면 또 나는 얼마나 이 세상의 삶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무서워하며 두려워할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책을 펼쳤더랬다. 한데, 어랏! 뭐지? 이것 백가흠 작가의 소설 맞아?  

그랬다. 조금 변한 것 같다. 내가 두려워하던 그의 소설이 아니었다. 전작들에 비하면 아주 ‘착한’ 사람들이 나왔다. 『귀뚜라미가 온다』에서 보여주었던 광기에 사로잡힌 남성들의 폭력이나 『조대리의 트렁크』에 나오던 정상적이지 않던 사람들이 『힌트는 도련님』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번 책에서 그는 두 권의 책으로 만든 ‘백가흠 표’ 이야기에서 벗어나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고민한 흔적을 많이 보여준다. 그래서 처음엔 낯설었다. 왜 이러지? 이건 백가흠 작가의 글이 아니잖아. 갑자기 멋진 작가가 되기로 한 거야? 헷갈릴 무렵 들려준 그의 변명 아닌 진심. 힌트는 도련님이었다. 

“소설 마감을 못하겠어. 뭐 쓸 만한 얘깃거리 없나? 나 완전 똥줄이 탄다. 지금. 
만날 하던 거. 그냥 하지 그려. 너 잘하는 거 있잖여. 
뭐? 내가 잘하는 거 뭐? 
나는 다급하게 그를 재촉한다. 잊고 있었던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몇 죽여. 그냥.“ 

그렇다고 그가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소외된 삶, 기구한 인간,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사건들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작가다운 면모를 보이며 인간의 삶과 죽음, 사회적 이슈에 대해 들려준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인 원덕 씨의 비참한 삶과 죽음, 그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통(痛 )」,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베트남 처녀를 결국 죽음으로 이끈 늙은 농촌 총각 형제의 지저분한 타협과 어이없는 결론을 보여준 충격적인 이야기 「쁘이거나 쯔이거나 (전작의 느낌을 제일 많이 가지게 했던 단편), 불우한 가정사로 인해 존재의 소멸이 되어 버린 인물들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와 「그런, 근원」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 고엽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통(痛 )」은 그동안 백가흠 작가가 보여주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윤리, 폭력, 생존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사라진 아버지, 그 비극적인 유전을 피해 월남전에 참전하지만 고엽제의 피해로 인해 그가 받을 정신적 고통은 가려움으로 인해 20여 년간 겪어야 했던 육체적 고통과 함께 고엽제 피해자로서 이용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폭력까지 보여준다. 또한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해 그가 겪는 환각 속에서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과거의 여러 순간은 어느 누구도 그를 고통 속의 삶으로 내 보내지 않았으나 결국은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비참한 인생사를 보여준다.  

벌써 등단 10년째라는 작가. 전작에서 보여준 그의 작품들이 너무나 강렬하여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품만 써낼 수는 없을 텐데,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백가흠 작가의 변화가 사실은 놀랍다. 그래서 등단 10년치고는 적은 수의 작품이지만 초기의 치기어린 광폭한 문장들과 이야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글쓰기로 도전하는 작가의 또 다른 문체의 색깔이 반갑기도 하다. 그래서 곧 나올지도 모를 장편을 기대해본다. 그 작품에선 그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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