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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붉은 손가락』을 통해 자기의 잘못이 뭔지도 모른 채 부모에게 모든 것을 떠 안겨버리는 무책임한 아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아들을 무조건 감싸주려 하던 부모도. 갈수록 무서워지는 세상에서 이젠 자라는 아이들마저 무서워해야 할 판이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 더구나 '악'이 뭔지,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나쁜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어른들이나 자랄 때 정신적인 충격으로 생기는 사이코패스들의 범죄가 아니라 재미 삼아서, 혹은 심심해서와 같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미성년들의 범죄는 이미 현실에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소설 속의 이야기가 소설 같지 않다는 생각에 소름마저 돋는다.
이야기는 이렇다. 불꽃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소녀를 납치하여 짐승과도 같은 짓을 저지르고 마침내는 죽게 만든 두 남자.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고등학교 중퇴의 두 남학생이다. 미래는 이미 사라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 따위는 잊은 지 오래이며 오로지 재미와 잠깐의 쾌락을 위해 납치를 하고 강간을 한다. 그들은 그게 잘못된 일인지 조차 모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어른들과는 상대하기 싫고 부모라는 존재는 그저 용돈이나 주는 돈벌이에 불과하며 내 인생은 내 맘대로 살자 라는 막가파 수준이다. 그런 놈들에게 납치되어 강간당하고 주검이 되어 돌아온 딸, 우연한 계기로 딸이 폭행당하는 비디오를 보게 된 아버지는 그 분노로 인해 순간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다. 아주 철저하게 죽인다. 그럼에도 그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나는, 누구라도 그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또한 도망친 한 녀석을 죽이기 위해 찾아 나섰을 것이다.
이 소설엔 많은 사회적 문제가 나온다. 납치를 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기껏 3년이면 나올 수 있는 소년법의 병폐,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나쁜 일인지 알면서도 묵인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청소년, 피해자에서 갑자기 피의자로 바뀐 아버지에 대한 법적책임 공방 그리고 판매부수를 위해서라면 사람의 감정 따위는 길가에 널린 돌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출판사.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모든 사회적 문제를 던져주며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유도한다.
당신이라면 어쩔 것인가? 아버지인 '나가미네'를 이해하는가? 그렇다면 그를 용서해야 하는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죄를 범한 미성년들은 선도하여 가르쳐야 하는가? 그러면 그들은 죄를 뉘우치고 갱생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어른들과 같이 제대로 벌을 줘야 하는가? 등등 뭐가 옳은 것이고 뭘 이해해야하는지조차도 고민하게 만든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누구나 그 자신이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선 이해를 못한다. 부모에겐 잘났든 못났든 사랑하는 아들이고 그 아들이 밖에 나가서 그런 짓을 하며 돌아다닌다고는 생각조차 못한다.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설마? 하고 믿지 않는다.
악법도 법이라고 했다. 인간적으로 봐서는 죽여 버리고 싶지만 법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형사. 친구를 라이터로 지지고 잡혀 들어와서는 자기들의 잘못에 대해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그곳에 잡혀온 자기 자신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런 아들을 보면서 금방 꺼내줄게 라고 말하는 부모를 보며 치를 떨던 형사. 어디 그런 일이 소설 속에서만 있나.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하고선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남학생들, 오히려 그 여학생을 나무라는 몰염치한 부모, 엄연히 현실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법을 지켜야만 하는 형사들의 갈등은 백번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어느 시대든 그런 놈들은 존재했겠지만 지금보다야 낫지 않았을까 싶다. 클릭 한번이면 모든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가르침은 정보의 바다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가르침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그 모든 책임이 어른들의 잘못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