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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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저 호기심과 즐거움에 신이 난 젊은 남녀, 그럼에도 왠지 불안한 요소들, 인적 없는 도로, 울창한 정글, 무표정한 마야인들, 숨겨져 있는 지름길, 그리고 수상한 꽃들,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 그림이 그려진다. 문득 SF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벨소리가 울리는 부분에서…(어디서 봤더라? 이 장면? 그래서 난 이미 그 정체를 알아버렸다)

 

너무 기대를 했나보다. 그게 아니면 내 간이 이젠 배 밖으로 나와 버렸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닫힌 공간, 조여오는 공포에 휘청거리는 사람들, 죽어나가는 친구들. 이런 플롯의 스릴러을 너무 많이 보았던 게지. 문득 스테이시의 말이 떠오른다. “공포란 머릿속에서 지어낸 상상일 뿐”이라고. 그렇다. 공포란 이제 내 머릿속에 있다. 내가 공포를 느끼면 공포는 튀어나오지만 에이~뻔하잖아 하게 되면 이미 공포가 아니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가이며 소설가인 작가의 솜씨답게 이야기는 치밀하고 빈틈이 없다. 그들과 함께 마야의 정글 속으로 들어간 독자를 수상한 폐허로 똑같이 끌어당겨서는 그곳에 가둬둔다. 그렇게 그들과 그곳에 갇힌 독자들은 어떻게든 탈출해보려 하지만 끝내 탈출하지 못한다. 결국 끝을 보고서야 풀려난다. 그러고서도 한동안은 그길 왜 가? 찝찝하면 가지 말아야지 바보들 아냐? 중얼중얼~

 

공포스럽든 아니든 작가의 역량은 독자를 얼마나 오래도록 잡아두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공포로서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독자를 만나  실망스러웠겠지만 하루 반을 꼬박 식음 전폐하게 만든 완벽하게 짜인 구성이 돋보였다.

 

공포 소설의 계절이 다가왔다. 머릿속의 지어낸 공포가 아닌 공포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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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꽃담
이종근 글, 유연준 사진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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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경복궁이니 덕수궁이니 들락거리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많다. 무심코 지나치듯 바라본 담벼락의 모습에도 그저 ‘특이하다’, ‘아름답구나!’ 하는 말뿐! 그곳에 서서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한번이라도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예술적 감각도 없거니와 무심한 탓이겠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고택들의 꽃담들은 그렇다치고 경복궁의 아미산 굴뚝이나 덕수궁의 유현문 같은 것은 어찌 그 아름다움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일까? 왜 한번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꽃담이 이루어진 역사나 만든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항상 그렇다. 이렇게 콕! 집어서 말해주는 책을 펼치고서야 그 아름다움의 실체를 확인하고 만다. 난 그동안 뭘 보고 다녔던가? 내가 보고 느낀 경복궁이나 사찰의 아름다움은 기껏 겉모습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생각의나무>에서 펴낸 『우리동네 꽃담』은 그렇게 내가 눈여겨보지 못한 우리 전통의 꽃담들을 찍어 그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한번쯤은 본 듯도 한 듯 기억은 나지만 세심하게 본 적이 없는 전국 곳곳의 꽃담들을 소개하고 “지극히 아름답고 또 더 이상 더할 것 없이 좋다“는 공자의 희열을 고스란히 담았다.

 

한곳의 사찰을 다니더라도 곳곳의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미적 감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눈 호사시키듯 보고나면 잊어버리는 그런 만남이 아니라 내보이지 않고 숨어 있는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하나쯤은 찾아내어 제대로 된 눈 호사를 누려봐야겠다.

 

아름다운 우리의 꽃담, 비행기를 타고 남의 나라 유적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가까운 곳, 우리의 숨결이 미치는 곳에 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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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독특한 낭독회였다. <2008년 서울 젊은 작가전>을 다녀온 후 알라딘과 문학동네가 같이 하는 김중혁 작가의 낭독회에 눈독을 들였다. 왜냐하면 그날 오디오?의 고장으로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만! 보여주었더라도 너무나 특별한 낭독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라도 재미없다고 다들 가버릴까 싶어 준비했다는 또 다른 낭독 영상과 엇박자 D를 연상시키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소절씩 부르는 'better together'의 짜깁기 , 그것도 모자랄까봐 두 곡의 노래를 기타 반주에 직접 불러주고 앙코르까지 받아 도합 3곡을 불러재끼더니 마지막엔 지금 작업 중인 장편소설의 도입부를  프린터하여 가지고 와서는 낭독을 해 주었다. 가제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제목을 듣는 순간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를 떠올렸고, 과연 이 장편엔 여자가 등장할까 싶었다. 나중에 물었더니 등장한단다!! 할머니 좀비께서!!(이 물론 그의 작업 성향에 따라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좀비에 관한 장편을 쓴다고 했을 때 좀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무조건 좀비들과 싸우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250매를 쓴 지금까지도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다며 언제쯤 좀비를 등장시킬지 본인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너스레,



 

김중혁 작가의 너스레는(농담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개그라고 하기엔 좀 실례되고 그래서) 이미 <2008년서울 젊은 작가전>에서 알아봤지만 거의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노래 부르고 낭독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대부분 자뻑! 이라고 하는 자아자찬의 연속이었지만 그마저도 유쾌하고 당당하게 보여주는 자신감이라니! 해서 아직 나오지도 않은 그의 장편소설에 갑자기 기대감이 생겼다.(이 부분은 친구인 김연수 작가가 지난달에 일산의 도서관에서 있은 낭독회에 미 발표 단편을 낭독하였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는 말을 듣고 그도 단편을 하나 써서 낭독을 할가 하다가 '뭐 그럴 것까지 있나?'하는 의문에 쓰고 있던 장편의 도입부를 그냥 프린터하여 왔다고 한다)


 

아무튼, 이 도저히 알 수 없는 그의 다재다능한 예술가적 기질에 사회를 맡았던 문동 마케팅 관계자가 즉석에서 "차세대 4번 타자"보다도 더 센 카피를 선 보였다. "장르를 넘나드는 천재 작가 탄생!"^^ 김중혁 작가는 이 카피로 홍보한다면 절대로 문학동네에서 책을 내지 않겠다며 받아쳤지만 그 카피가 정말 잘 어울렸다는 사실.

요즘은 작가도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작가가 김중혁 작가처럼 직접 제작 편집하는 성의를 보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작품에 자신감을 가지고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꽤 보기가 좋았다. 즐거움이란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해서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도 그에게 3일을 걸려 비디오를 찍고 편집하는데 하루를 잡고 후보정에 또 하루를 잡아먹는 일을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는 했다. 왜? 그 일을 하니 즐거우니까. 재미있으니까! 그 덕분에 우리 같은 독자들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비디오를 보고 어디에서도 다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낭독회를 보았으니 더 할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고 말이다.


 

그는 작품을 쓸 때 항상 70%의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100%를 쓰고 난 후 실패하면 그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데 그게 자신이 없단다. 그래서 늘 70%의 열의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낭독회는 어쩐지 100%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물었더니 아니란다. 이 역시 70%였단다. 70%의 열의로 100%를 감동을 선사하는 작가! 그렇다면 그는 3일 연속의 노력이 성공한 셈이다.

 

책을 골라 읽는 것도 각자의 취향이지만 작가들의 다양함도 각자의 취향인 것 같다. 그가 3일 밤낮을 고생했든 어쨌든 그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가진 독자로선 행복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낭독회 할 작가들은 무척이나 고민스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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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법칙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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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다. 『자살가게』를 아직 읽지 않았는데 얼른 읽어봐야겠다.
뒷부분에서 잠시 멈칫! 했다. 질 경관의 갑작스런 태도에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알 것 같다. 하지만.

하긴 죄의식에 빠져 사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 세상은 그보다 더한 죄를 짓고도 사는 사람들 투성인데 그저 자기합리화하여 잘 살면 될 것을.

생각을 주는 소설이었다.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소설이었다. 과연,
그것이 운명이었나? 운명의 작용이었나?

그렇다면
도대체 운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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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카니발
안 소피 브라슴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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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애버스는 금지된 세계에 매혹을 느끼고 인습을 무시한 존재들에게 매력을 느끼며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난장이, 왜소인, 바보, 장애인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기형적인 사람들의 사진을 찍음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고 '기형인들의 사진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다이앤 애버스, 안 소피 브라슴의 두 번째 소설 『몬스터 카니발』을 읽으면서 내내 그녀가 생각난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조아섕 켈레르망이 다이앤 애버스와 비슷하게 기형적이고 추해보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사진을 찍고 연구를 했다는 점이다. 물론 실존 인물인 다이앤 애버스와 소설 속 인물인 조아섕 켈레르망 사이의 간극은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긴 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하나도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 나 역시 나보다 예쁘거나 날씬한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그들의 반도 못 미치는 나를 보면서 한숨쉴 때도 많다. 하지만 거짓이든 아부든 그래도 너는 어딘가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을 믿으며 그 부러움을 잊을 때가 많다. 그러나 『몬스터 카니발』의 마리카는 빈 말이라도 너는 예뻐! 라고 말해주는 친구조차없다. 그래서 그녀는 그 자신의 추함에 치를 떤다. 스무 살이 넘도록 남자의 품에 단 한 번도 안겨보지 못했으며, 그 아무리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향기로운 크림 냄새를 풍겨도 티가 나지 않았다. 작고 합죽한 턱에 지나치게 큰 잇몸, 얄팍한 입술에 크고 엉성한 치아, 늘 헤벌어져 있는 입술. 어딘지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것들로 인해 마리카의 모습은 그야말로 '추녀'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다.

어느날 그녀는 신문광고에 난 모델을 구한다는 기사를 보고 조아섕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인간의 형상이랄 수 없는 끔찍한 형상들을 한 추하고 기괴한 모습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었다. 난장이, 거식증에 걸린 여자, 성기 제거수술에 실패한 성전환자, 팔이 없는 남자 등등 그들을 찾아 사진을 찍어 논문 작성을 위한 자료를 모으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신화는 집단적 불안의 표출 그 이상이라는 것을, 괴물들은 단지 눈에 띄지 않을 뿐 실제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그들을 빠짐없이 다 찾아내 세상 사람들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 마지막 수집품(?)으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마리카였다.

안 소피 브라슴은 첫 작품인 『숨쉬어』에서 그 또래들이 겪을 여자친구와의 지독한 우정에 대해 글을 써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던 작가였다. 그녀는 4년 만에 내 놓은 『몬스터 카니발』로 또 한 번 독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아름다움'과 '추함', 그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제 막 외모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모습에 아름다움을 불어 넣어야 할 세대임에도 그러지 못하고 사는 마리카를 통해 그리고 그 추한 얼굴에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신비에 매혹된 조아섕의 어긋난 욕망을 통해 브라슴 또래들의 고민을 드러냈다. 

브라슴은 이 책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마리카의 상처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토록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그 상처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또 마리카를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는 끝없이 혐오하지만 결코 내보이지 못하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욕망을 표출하는 조아섕의 태도에 분노가 일면서도 한 편으론 어쩌지 못하는 그의 불행한 욕망에 동정이 인다.

각자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독특한 구성으로 그 둘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본 후 독자인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프.다. 하지만 이 세상은 겉모습보다는 마음으로 '사랑'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높은 사람들이 더 많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믿기에 '눈부시게 진화 하고 있는 아직 스물넷인 안 소피 브라슴'의 놀랍고 '아름다운' 문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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