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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장난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누구나 사춘기일 무렵 한번쯤은 문학소녀를 꿈꾸었을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책도 많이 읽지 않았고 문학적 소양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었음에도 뻑! 하면 글을 쓴답시고 설치고 다녔다. 그런 나의 글 솜씨는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이 연애편지 쓰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글 솜씨라는 것이 1%의 노력과 99%의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소설을 쓰는 데에 있어서는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어린 작가가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익히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그래봤자 스무 살 갓 넘어서 뭘 대단하게 잘 썼겠어? 했다. 하지만! 그녀의 문체엔 그녀만의 개성과 힘이 보인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긴 이십 대의 삶에서 전혀 나올 수 없는 소재들이 툭툭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내보이는 젊은 여자들의 해피한 청춘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박완서 선생이 노련한 문체가 보이기도 하고 백가흠 작가의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들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기성작가들의 작품에서 본듯한 내용들인데 뭘!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나이에 비한다면 어느 것 하나 험을 잡아 비틀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게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내림굿을 받은 무녀를 어머니로 둔 아들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면서도 그녀의 문체에서 새롭게 태어났고(강신무), 서적 외판원과 보험으로 먹고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한 여자의 삶은 도대체 엄마뻘 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어쩜 그렇게 겪어본 듯이 능청스럽게 풀어놓는지 기가 막힐 정도다(메리 크리스마스). 어디 그 뿐인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룬 「내 이름 말이야,」의 마지막 장면은 경악할 정도다. 이렇듯 10편의 이야기 모두 각각의 소리를 내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하고 말조차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
더구나 이 책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전아리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매체를 통해 응모하여 수상한 단편들이다. 즉, 그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춘문예나 유수의 출판사를 통해 등단한 작가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10편의 작품들은 그녀가 받은 기억도 할 수 없이 많은 수상작들 중에서 전아리가 좋아하는 작품들로 뽑은 것이라고 하는데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각 단편들마다 등장하는 직업이나 성별이나 연령이 제각각이며 각자의 소리를 내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글을 썼기에 이런 작품들을 쓸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더 이상 길게 말해봐야 끊임없이 칭찬만 늘어놓을 것만 같다. 그러니 이만하련다. 다만, 문학을 좋아한다면 정말!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전아리를 보면 문학이 죽었다는 말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대단하다. 이 말만 자꾸 되풀이 되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