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소망]
작년 이맘때의 나를 생각해본다.
그 당시 막 8개월로 접어든 딸아이와의 힘겨운 시간들..
스스로에게도 그다지 씩씩하지 못하던 성격의 엄마에게
자신을 온전히 다 맡긴 채 나의 스물네시간을 가득 채우던 아이...
그 존재감에 내 자신 너무나 짓눌려 어쩌지 못하고 보내던 시간들..
가끔씩 휘갈겨 쓴 그 때의 일기를 보면
내게는 단 30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것 같다.
매일 울지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으니까..
뭐가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그 불완전함을 내가 채워줘야한다는 책임감과 경외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아름다운 존재를
온전히 내 힘으로 지켜낼수 있을까하는 막막한 두려움...
지난 일년의 시간들을 돌아보니...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내 자신도 많은 부분 함께 자랐음을 느낀다.
조금씩 여유를 되찾으며 조금씩 아이를 따라 자라면서 앞으로도 시간은 그렇게 흐르겠지...
아직은 부족하지만 아이와 나 사이에 조금씩 일정한 규칙들이 생겨나고 있고
아이의 요구에 조금은 무심한 듯 행동하는 법도 익혔고,
또 아이의 돌발사고(?)에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지않고 넘기는 것도 익혔으니 말이다.
다시금 조금씩 찾아가는 여유속에서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되살아남을 느낀다..
아이가 없었던 때 , 뭐든지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을 지내면서도 못했던 많은 것들..
항상 시작만 해놓고 끝내지 못했던 많은 숙제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우선 할 일이겠지..
내가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까짓거(난 아줌마니까) 기운을 내서 하면 될 일이고
그게 아니라면 깨끗이 접어버리고 털어내야 하리라..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기까지는 아직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자신의 단계에 맞춰 아이는 나의 일상을 잠식하겠지.
그렇지만 그 틈 사이사이로 나는 조금씩 조금씩 꿈을 만들어 갈 것이다.
조금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이제는 알 것 같기에...
어느 소설에선 가 읽은 기억하나..
"목숨따위는 걸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이라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것은 걸 수 없다"
내가 당분간 보낼 아이와의 시간에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하루하루... 그 일상의 시간들을 아름답게 만들기...
그 시간들이 모아져 아이의 유년이 만들어지고..
바로 그 시간들이 곧 나의 생을 얘기해줄 것이기 때문에...
또 한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되려 한다.
이맘때.. 늘 마음에 품게되는 새로운 바램과 기대들.
상투적이지만 소중하고 또 그것이상은 없는 삶의 소박한 바램들...
가족들의 건강과 행운... 아이가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모든 꿈은 그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아주 착한 마음이 되어
그 바램들을 가슴에 하나하나 되새겨본다...
내가 한동안 뭔가를 끄적이고 있으니 남편이 들여다보며 묻는다.
새해의 소망에 대해 적어보고 있노라고 말하자 남편의 한마디.
"우리 지연이 제발좀 일찍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12시는 안 넘겼으면..
내 소원은 그거다."
참 단순하기도 해라.. 하지만 절대 동감이다.
그것이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으니... 그 불부터 꺼야겠지...
200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