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란 느낌]

 

참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오랜만이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오랜만이라는 것과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컴퓨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몇몇 만남들...

밥을 먹자마자 커피 물을 올리듯이

자연스럽게 일상의 한부분이 된 것 같다.


지난 달 두어 번 정도 컴퓨터를 쓸 수 없었던 기간들이 있었다.

이제껏 사는 동안...

사람과의 관계나 특정인으로 인한 목마름을 제외하고

어떤 금단 현상을 경험했던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금단 현상을 겪을 만큼 뭔가가 완전히 차단된 적도 없었으니..

영화를 못 본다거나 책을 읽을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과는 또 다른...

눈앞에 17인치 모니터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데...

그걸 통해서 늘 하던 일들을 할 수 없다는 것...


기간으로 따져보았을 때는 일주일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처음 며칠은 안절부절... 뭔가 중요한 편지가 와 있을 것 같고,

칼럼에 누군가가 내가 꼭 빨리 읽어야하는 글을 올렸을 것만 같고,

놓쳐서는 안 될 메시지가 있을 것만 같고...

정말 수습이 안 될 정도로 마음에 파장이 컸었던 것 같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자 어차피 안 되는 것... 할 수 없지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른 일로 포기를 한다거나 마음을 접는 것과는 좀 달랐던...

책이 눈에 들어왔고, 밀린 신문이 눈에 들어왔고,

해야만 했으나  미루었던 일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내가 컴퓨터에 앉아서 보낸 시간들 중에 거의 반 정도는

잘라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일상에 중요하게 자리 잡은 컴퓨터를 통한 만남들...

(일상의 만남과 중복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만남으로 가는 길을 나는 너무 돌아서 가곤 했던 것 같은 느낌...

사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에서 마음을 먹고 책을 펼친다거나

비디오를 틀어 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보니

언제든 낮에도 잠시 아이가 한눈을 팔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있는 그 잠깐의 시간을 이용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것이 컴퓨터였기에

자꾸 습관처럼 자리를 잡고 앉았던 것 같으니 말이다..


얘기가 중언부언.. 헤매기 시작하면서 길어진다.(적신호)

무언가를 만나 소통을 하는 시간으로 친다면

그 정도의 시간은 결코 오랜만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던 것이^^

그러니까 그 시간이라는 것도 결국은

내 마음이 정하는 것이란 얘기를 하려던 것이...

200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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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 보는 일]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겉모습은 물론이고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도 모조리...

하긴...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은 늘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예전과 다른 건... 참기가 싫다는 거다.

예전에는 그런 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었고 그런대로 지낼만은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것이 견딜 수가 없고, 다행이라면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불러일으켜졌다는 것.


한의원에 들렀었다.

얼마전 마침 티켓이 생겨 건강검진이란 걸 받아봤지만 수치상으로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몸이 좋지 않은 상태가 자꾸 마음까지 파먹어들어가는 것 같던 차에

왼쪽 발이 무슨 이유론가 아파서 겸사겸사 가게 된 거다.

뭐, 쉽게 말해 화병 내지는 우울증 어쩌구 저쩌구 얘기를 꺼내며 질문을 던지는 의사의 말에

나의 첫 마디는 “시간두 없구...”로 시작되었다.

그 때 의사의 말 “시간? 뭘 할 시간이요?”

순간 나는 좀 띵했다. 그러게... 내가 없다고 없다고 징징거리는 그 시간..

난 그 시간을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했던 것일까?

그 뒤로 마치 점쟁이처럼 의사가 했던 여러 가지 얘기들 보다 그 한마디에 일단은 충분했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노력이지만... 어쩌랴...

숨통을 조이는 것도, 그 숨통을 조금씩 트이게 하는 것도 모두 내 몫인 걸...

 

이것 저것 생각들을 해 보았다.

서두르지 않고 욕심내지 않는다면 방법이 있을 거라고...

쉽게 말해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 지도 모르면서 그 뭔지도 모르는 것을

아이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투덜대기만 했던 것 아닌가 말이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런 것들? 물론 하고 싶고 해야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은 어딘지 모를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은

내 마음의 상태를 고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가고 있는 이 봄날에

그게 무엇이건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건 정말 처음으로 먹어보는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취향이 아닌 비디오 한편이 될 수도 있겠다.

이 나이 먹도록 너무 가린 게 많다는 것도 나의 싫은 부분중 하나이고

한번쯤은 해 본 후에 이건 아니다.. 해도 되는 일들조차

너무 밀어내고 살아온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으므로...


아주 작은 것부터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일들을 해보며 봄날을 보내는 것...

제법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니지 않았던 길로 가보는 것, 아이와 놀이터에서 모래장난을 해 보는 것,

항상 바라만 보았던 남산도서관의 차량에서 책을 빌려 보는 것...

200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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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소망]

 

작년 이맘때의 나를 생각해본다.

그 당시 막 8개월로 접어든 딸아이와의 힘겨운 시간들..

스스로에게도 그다지 씩씩하지 못하던 성격의 엄마에게

자신을 온전히 다 맡긴 채 나의 스물네시간을 가득 채우던 아이...

그 존재감에 내 자신 너무나 짓눌려 어쩌지 못하고 보내던 시간들..

가끔씩 휘갈겨 쓴 그 때의 일기를 보면

내게는 단 30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것 같다.

매일 울지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으니까..

뭐가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그 불완전함을 내가 채워줘야한다는 책임감과 경외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아름다운 존재를

온전히 내 힘으로 지켜낼수 있을까하는 막막한 두려움...


지난 일년의 시간들을 돌아보니...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내 자신도 많은 부분 함께 자랐음을 느낀다.

조금씩 여유를 되찾으며 조금씩 아이를 따라 자라면서 앞으로도 시간은 그렇게 흐르겠지...

아직은 부족하지만 아이와 나 사이에 조금씩 일정한 규칙들이 생겨나고 있고

아이의 요구에 조금은 무심한 듯 행동하는 법도 익혔고,

또 아이의 돌발사고(?)에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지않고 넘기는 것도 익혔으니 말이다.

다시금 조금씩 찾아가는 여유속에서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되살아남을 느낀다..

아이가 없었던 때 , 뭐든지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을 지내면서도 못했던 많은 것들..

항상 시작만 해놓고 끝내지 못했던 많은 숙제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우선 할 일이겠지..

내가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까짓거(난 아줌마니까) 기운을 내서 하면 될 일이고

그게 아니라면 깨끗이 접어버리고 털어내야 하리라..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기까지는 아직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자신의 단계에 맞춰 아이는 나의 일상을 잠식하겠지.

그렇지만 그 틈 사이사이로 나는 조금씩 조금씩 꿈을 만들어 갈 것이다.

조금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이제는 알 것 같기에...

어느 소설에선 가 읽은 기억하나..

"목숨따위는 걸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이라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것은 걸 수 없다"

내가 당분간 보낼 아이와의 시간에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하루하루... 그 일상의 시간들을 아름답게 만들기...

그 시간들이 모아져 아이의 유년이 만들어지고..

바로 그 시간들이 곧 나의 생을 얘기해줄 것이기 때문에...


또 한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되려 한다.

이맘때.. 늘 마음에 품게되는 새로운 바램과 기대들.

상투적이지만 소중하고 또 그것이상은 없는 삶의 소박한 바램들...

가족들의 건강과 행운... 아이가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모든 꿈은 그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아주 착한 마음이 되어

그 바램들을 가슴에 하나하나 되새겨본다...


내가 한동안 뭔가를 끄적이고 있으니 남편이 들여다보며 묻는다.

새해의 소망에 대해 적어보고 있노라고 말하자 남편의 한마디.

"우리 지연이 제발좀 일찍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12시는 안 넘겼으면..

내 소원은 그거다."

참 단순하기도 해라.. 하지만 절대 동감이다.

그것이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으니... 그 불부터 꺼야겠지...

200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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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오랜만에 신문을 읽고 있었다.

정확히 5월 24일부터 차곡차곡 모아진 신문들..

난 요즘 그렇게 신문을 모았다가 읽는다.(휴...)

그것도 좀 제대로 읽어야 할 기사들은 가위로 오려가면서

조금, 조금 더 여유로운 시간에 읽기 위해서다.

정말 이상한 강박증인줄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일단 그렇게 신문들을 정리해야만

앞으로 또 아침마다 배달될 신문들이 놓일 자리가 확보가 되므로

그것만도 요즘 할 수 있는 대단한 일 중 하나다.


그러다 빗소리를 들었다.

빗소리.

비는 쏟아졌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나는 한 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고 있다보니 참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마음이 아리다거나 가슴이 아프다거나 하는 감정의 움직임이 아니라,

정말 가슴이, 육체가 아파오는 것이었다.

오랜동안 가슴이 쥐가 나는 것처럼 뻐근하게 아파오는 것이었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만큼이나 내 가슴도 그렇게 메말라 있었던 것일까?

빗소리를 들으며 젖어들기가 그토록 오랜만이고 힘이 들 정도로 어색했던 것일까?

외로움이 잘 안된다는 김용택님의 싯귀처럼 나는 메마르다 못해

타들어가고 있었던 걸까?


예전에 좋아했던(좋아했다는 표현조차 너무 작은)음악을 들을 때나 이렇게 비가 내릴 때

나는 왜 조율이 잘 안된 악기가 이상한 소리를 내듯이

무너질 듯 위태로워지는 걸까?

적당한 조절이 가능한 건강한 신경을 갖지 못해서일까?

너무 힘이 든다.

아름다운 노래 신윤식의 <빗소리>의 가사 한 귀절을 떠올리면

그나마 스스로에게 위로가 될까?


.......비야 이 여린 견딤을 용서하는 비야.......


200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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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기 보다는 비우는 일을]

 

억울한 느낌. 아니 그게 아니었다.

자꾸 초라해지는 느낌. 그것도 전부는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밑바닥에 쓸쓸하고 서글픈 것이

항상 자리하고 있는 느낌...

훌훌 털어버리고 먼지처럼 가벼워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들...


이제 여기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미 떠나간 것들에 대해.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지에 대해.

진정 마음 다해 사랑해야할 것들에 대해.

그리고 이쯤에서 그만 끝내야할 것들에 대해...


언제부턴가 채우기 보다는 비우는 일에 몰두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비워낸 자리에서 나를 더욱 선명하게 찾아보고 싶었다.

그 일이 나를 서게 할 수있을 것 같았다...

쉽지만은 않을 일이겠지만.


시를 쓰고 싶어했던.. 아니,

적어도 시를 열심히 읽었던 오래전의 나에게서, 그 시절의 꿈에서...

더 이상은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이 칼럼을 시작한다.


칼럼이라는 타이틀이 꽤나 어색하지만

시를 올리는 일이 내겐 아주 즐겁다.

200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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