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 보는 일]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겉모습은 물론이고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도 모조리...

하긴...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은 늘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예전과 다른 건... 참기가 싫다는 거다.

예전에는 그런 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었고 그런대로 지낼만은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것이 견딜 수가 없고, 다행이라면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불러일으켜졌다는 것.


한의원에 들렀었다.

얼마전 마침 티켓이 생겨 건강검진이란 걸 받아봤지만 수치상으로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몸이 좋지 않은 상태가 자꾸 마음까지 파먹어들어가는 것 같던 차에

왼쪽 발이 무슨 이유론가 아파서 겸사겸사 가게 된 거다.

뭐, 쉽게 말해 화병 내지는 우울증 어쩌구 저쩌구 얘기를 꺼내며 질문을 던지는 의사의 말에

나의 첫 마디는 “시간두 없구...”로 시작되었다.

그 때 의사의 말 “시간? 뭘 할 시간이요?”

순간 나는 좀 띵했다. 그러게... 내가 없다고 없다고 징징거리는 그 시간..

난 그 시간을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했던 것일까?

그 뒤로 마치 점쟁이처럼 의사가 했던 여러 가지 얘기들 보다 그 한마디에 일단은 충분했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노력이지만... 어쩌랴...

숨통을 조이는 것도, 그 숨통을 조금씩 트이게 하는 것도 모두 내 몫인 걸...

 

이것 저것 생각들을 해 보았다.

서두르지 않고 욕심내지 않는다면 방법이 있을 거라고...

쉽게 말해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 지도 모르면서 그 뭔지도 모르는 것을

아이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투덜대기만 했던 것 아닌가 말이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런 것들? 물론 하고 싶고 해야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은 어딘지 모를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은

내 마음의 상태를 고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가고 있는 이 봄날에

그게 무엇이건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건 정말 처음으로 먹어보는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취향이 아닌 비디오 한편이 될 수도 있겠다.

이 나이 먹도록 너무 가린 게 많다는 것도 나의 싫은 부분중 하나이고

한번쯤은 해 본 후에 이건 아니다.. 해도 되는 일들조차

너무 밀어내고 살아온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으므로...


아주 작은 것부터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일들을 해보며 봄날을 보내는 것...

제법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니지 않았던 길로 가보는 것, 아이와 놀이터에서 모래장난을 해 보는 것,

항상 바라만 보았던 남산도서관의 차량에서 책을 빌려 보는 것...

200204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