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상상 해본다..
지금 내 주변이 물구덩로 변해 버린다면..
하루를 나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컴퓨터와
아이와 함께 듣는 잠자리의 '유키구라모토'가 물에 잠겨 버린다면..
책들, 노트들, 카세트테잎, 고이고이 모셔둔 LP들...
이십년이 넘도록 버리지 못하고 간직한 것들이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면...
아이가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 수 없다면..
밤마다 꼭 읽어야하는 '노랑이불을 찾아서'를 아무리 아이가 보채도 읽어줄 수 없다면...
아이가 사랑하는 멍멍이 인형과 테디베어가 물에 잠겨 썩어간다면...
그 막막함...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조차... 미안한...
그 무기력함... 더구나... 아이를 기르는 부모라면...
난 정말 대선후보로 누가 '수해'만 확실히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찍을 거야...
어차피 그나물에 그밥...
속하게 되면 다 적절한 시스템이 작동되어 버리는 그 동네에서
그것 하나만 해결할 수 있어도...
해마다, 여름마다, 이렇게 가슴 치는 사람들이 줄어들 테니까...
난 그 사람을 찍을 거야..
이것만 해놓고 자야지 하면서 조금은 눅눅한 빨래들을 개키는데...
빨래가 뽀송뽀송, 까실까실 마르지 않아 죽겠다고... 혼잣말로 불평을 하려는데...
갑자기.. 어떤 사진 한 컷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앞에 놓고 있는 따듯한 커피한잔조차 미안해지는...
근데 더 화가 나는 건...
그 사진들... 매년 여름이면 보게 된다는 것...
넋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 주름이 깊게 패인...
우리들의 할머니...
200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