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를 보러 극장에 가서
<말죽거리 잔혹사>의 예고편을 보았다.
권상우..으 어설프게 느끼해.. 이정진..이쪽이 싫은 건 더 심해..
한가인.. 와.. 이쁘다.. 근데 인형같아..
거기다 “우리들의 학원액숀로망..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한가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으.. 자극적인 제목을 골라내느라 꽤나 애썼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는 거 없이 미워진다는 말처럼, 극장에서 볼일은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영화보기에서의 운명은 늘 그렇듯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극장에서 봐야지 했던 영화를
놓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이래저래 시간과 여건이 맞아떨어지면
볼 일 없겠다는 영화도 보게 되는 법..
그래서 나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러 갔다.
결과는 기대 이상..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성의 없게
영화를 본 것조차 미안해질 정도로..
군데군데 견딜 수 없게, 쪽팔리게 눈물이 핑 돌았고
“대한민국 학교 다 좆까!”라는 외침은 정말이지
학교란 곳을 다니는 내내 돌덩이처럼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외침 아니었을까..
그래 맞아.. 맞고 말고..
대한민국 학교는, 대한민국에서 청춘으로 산다는 것은..
이상한 속수무책 또라이가 되느냐,
어설픈 흉내쟁이가 되느냐의 양갈림길..
제3의 길은 아예 존재 자체가 없는 셈 쳐지는.. 이상한 나라..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 참을 수 없었던 억압과 일방적이었던 그 때 그 시절이
아직도 생생한 아픔으로, 악몽으로 남아있다니..
아직 덜 자란 탓이겠지..
아직도 사는데 연습이 부족한 탓이겠지..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역시 글이든, 영화든,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자기가 가장 하고픈 이야기만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젖어들게 하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군데도 어색하게 오버하지 않고,
그 시대의 자잘한 소품들을
의식적으로 꿰어다 짜맞춰 놓은 것도 아닌,
하고픈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솔직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 앞에서는
속수무책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권상우도 적역을 만나..
어설프고 요령없는 청춘의 모습을 잘 그려내었고,
이정진, 한가인도 나름 제 몫을 해 내었다 싶다..
떠올리기만 해도 어깨가 움츠려드는
그 선도부장도 무게감이 있었고..
제목은 정말이지.. 잔혹사 이지 않을 수 없었겠다..
청춘의 한 시절.. 단 한번도
잔혹한 시절을 거슬러 오르려 애쓴 적 없는 사람은..
여기서 놀고 있지 말고.. 나가라!
나도 그 시절 힘들게 겪었어..라고 말하며
섣불리 공감하는 척 하는 사람은 더 화난다...
유하의 시 중 한 편을 옮겨 놓으며 글을 끝맺음 하려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 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유하>
2004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