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준것을 쉽게 잊을 수 있겠니.

다른 것도 아닌 마음인데...

 

김탁환 <나, 황진이>

 

 

 

 

 

 

 

 

 

 

 

 

 

 

모네, 양산을 든 부인,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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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그녀는 버스로 읍내에 가서 주치의로부터 장기 처방전을 받았고 그걸로 백 정 가량의 수면제를 샀다. 거기에다 그녀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예쁘고, 손잡이가 약간 굽은 빨간 우산을 샀다.

늦은 오후에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거의 텅 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두 사람이 아직 그녀를 목격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딸이 살고 있는 옆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았다. <우린 농담도 주고 받았어.>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막내와 함께 텔레비젼을 보았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란 연속극을 보았다.

그녀는 막내를 자러 보내고 텔레비젼을 켜놓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 전날 그녀는 미장원에 갔었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했다. 그녀는 텔레비젼을 끄고 침실로 가서 갈색 투피스를 옷장 속에 걸었다. 그녀는 진통제를 몽땅 입안에 털어놓고 거기에다 갖고 있는 신경안정제도 모두 먹어치웠다. 그녀는 생리대까지 끼운 위생 팬티에 팬티 두 개를 더 껴 입고, 머릿수건으로 턱을 단단히 묶고는 전기 담요도 켜지 않은 채 무릎까지 내려오는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몸을 주욱 뻗고 양손을 가슴 위에 포갰다. 장례식을 어떻게 지내달라는 것만 씌어 있는 편지의 마지막 대목에 가서야 그녀는 <드디어 평화롭게 잠들게 되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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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내가 읽은 중국 소설이란 <삼국지>와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고작 3편뿐이다. 나는 그 유명한 중국 소설가 루쉰의 작품조차도 읽지 못한 중국 소설 문외한이다. 이런 내가 중국 소설가 류진운의 작품을 읽은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실 난 류진운이 중국인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그저 단순하게도 <닭털같은 나날>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들었을 뿐이다.

<닭털같은 나날>에서 난 직감적으로 한정된 인생의 순간들임을 느꼈다. 그런데 왜 하필 '닭털'이란 말인가? 빳빳하고 더러울것만 같은 '닭털'이라니. 왠지 우리내 삶도 이렇다는 의미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우리말에 '새털같은 날들'이란 말에서의 '새털' 같이 보드랍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는데 말이다. 좀더 그럴싸한 새의 털에 비유를 했더라면 인간의 시간들이 이렇게 하찮게 느껴지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내 삶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가 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희망의 꽃길처럼 펼쳐져 있을 것 같지만 그 시간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하고 의미가 없는지. 그래서 작가는 인생을 '닭털 같은 나날'이라고 했나보다. 젊은시절에 가졌던 원대한 꿈은 나이먹음관 반비례로 점점 작아져 제식구 먹여살리기라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인생이라는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오늘도 한발한발 쉼없이 내딛는 것이 인간들의 운명인가보다.

평범하게 평범한 한 시민이 제도권 세상의 선상에 서기 위해선 단순한 노력의 땀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작가 류진운은 <관리들 만세>에서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어느 한쪽에선 제 식구 먹여살리기도 힘들어 바둥바둥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 눈물겨운 몸부림들을 나몰라하는 제도권 속의 관리들은 제 이권다툼에 여념이 없다.  어느새 세상엔 명분과 정의,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 자취를 감춰버린지 오래다. <관리들 만세>의 썩을대로 썩은 관리들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이웃에서 몇몇만 지나면 그들이 있으며 그들이 한없이 먼 곳에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내와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세 단편 <닭털같은 나날>, <관리들 만세>, <1942년을 돌아보다>에서 평범한 시민의 희망없는 삶과 부패한 관리,  무관심한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연결고리로 언뜻언뜻 연결시켜 각각 세 부류의 희망의 부재, 사회구조의 붕괴, 지도층 몰락 이라는 각각의 폐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차례차례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독립된 느낌의 세 단편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 세 단편이 한개의 장편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작가는 각각의 단편마다 절대적인 관찰자입장에서 주인공이 희망을 버렸어도 그것을 탓하지 않고 못 봐줄 정도로 관리들이 꼴불견이어도 그들을 대놓고 탓하지 않으며 몇천만의 국민이 굶어죽어 나가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지도자에게도 그만의 이유가 있을거라며 설득조의 말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이런 태도는 독자에게 좀 더 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우리가 희망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사회구조의 붕괴는 시간문제이며 이런 사회를 이끌어 가겠다는 지도자 또한 희망없는 국민들에게 무관심할 것은 아마도 뻔한 순서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느정도의 뻔한 순서의 세상에 살고 있을까... 작가 류진운의 날카로운 시선을 빌려 우리세상의 뻔한정도를 가늠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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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
체 게바라 / 이후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베레모를 쓰고 시가를 문 체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남들하고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쩜 신의 선택을 받은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올바른 길이라는 생각과 신념이 가득 차있어도 그 길을 한치의 비틀거림 없이 똑바로 걸어가기란 어려울 것이다. 체가 이런 삶을 살았기에 난 체를 존경한다.

이 책은 체가 아직 혁명가가 아니었을 때의 여행기이다.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져본 생각, 즉 배낭여행을 체도 생각했었고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오토바이를 수단으로 라틴대륙을 밟아보겠다는 생각은 사실 젊지 않으면 꿈이 없으면 실현시키기 쉽지않은 일일 것이다.

라틴대륙의 그리 넉넉치 않은 살림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같이 생활도 해보고 옛 잉카제국의 풍요로움도 느껴보고 그 속에서 침략자들의 무자비함에 치를 떨고 침략당한 사람들의 아픔에 눈물도 흘리고. 스릴 만점의 모험과 재미가 있는 그의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혁명기질이 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체에게 라틴 여행이 없었다면 후의 혁명가 체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내삶에 부족한 것이 없으면 없이 사는 사람들을 금방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사람 맘인가 보다. 내가 아쉬울 때에야 비로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보통 사람이라 하지만 누구나 맘 속으로 자신이 좀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보통 사람일 것이다. 보통 사람보단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체의 여행기에 동참하길 바란다. 체의 여행기를 통해서 라틴아메리카의 여행과 더불어 보통사람 이상인 따뜻한 청년이 친구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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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워하지마. 동지. 우리 같은 전차병들은 항상 시체더미 사이로 다니지. 우리 전차바퀴에는 시체에서 떨어져나온 살조각이 붙어다닐 정도야. 그 썩은 살덩이 냄새를 씻어내려면 전차를 통째로 강물에 넣어야 해. 그래서 그랬나 봐. 그놈이 여자시체를 내동이치고 함부로 하는 걸 보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놈을 죽였어야 하는데. 하지만 정말, 네가 아니었다면 난 살인을 저질렀겠지. 그래봐야 소용도 없는 일인데. 우리도 똑같지 뭐. 시체 바로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자니까. 누구든 다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변명할 뿐이지...... ."

"됐어요. 그만 하세요."

"아니, 난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야. 어쨌든 그놈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 준 셈이 됐지. 최소한의 휴머니즘 말야."

바오 닌 지음 <전쟁의 슬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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