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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내가 읽은 중국 소설이란 <삼국지>와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고작 3편뿐이다. 나는 그 유명한 중국 소설가 루쉰의 작품조차도 읽지 못한 중국 소설 문외한이다. 이런 내가 중국 소설가 류진운의 작품을 읽은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실 난 류진운이 중국인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그저 단순하게도 <닭털같은 나날>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들었을 뿐이다.
<닭털같은 나날>에서 난 직감적으로 한정된 인생의 순간들임을 느꼈다. 그런데 왜 하필 '닭털'이란 말인가? 빳빳하고 더러울것만 같은 '닭털'이라니. 왠지 우리내 삶도 이렇다는 의미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우리말에 '새털같은 날들'이란 말에서의 '새털' 같이 보드랍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는데 말이다. 좀더 그럴싸한 새의 털에 비유를 했더라면 인간의 시간들이 이렇게 하찮게 느껴지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내 삶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가 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희망의 꽃길처럼 펼쳐져 있을 것 같지만 그 시간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하고 의미가 없는지. 그래서 작가는 인생을 '닭털 같은 나날'이라고 했나보다. 젊은시절에 가졌던 원대한 꿈은 나이먹음관 반비례로 점점 작아져 제식구 먹여살리기라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인생이라는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오늘도 한발한발 쉼없이 내딛는 것이 인간들의 운명인가보다.
평범하게 평범한 한 시민이 제도권 세상의 선상에 서기 위해선 단순한 노력의 땀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작가 류진운은 <관리들 만세>에서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어느 한쪽에선 제 식구 먹여살리기도 힘들어 바둥바둥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 눈물겨운 몸부림들을 나몰라하는 제도권 속의 관리들은 제 이권다툼에 여념이 없다. 어느새 세상엔 명분과 정의,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 자취를 감춰버린지 오래다. <관리들 만세>의 썩을대로 썩은 관리들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이웃에서 몇몇만 지나면 그들이 있으며 그들이 한없이 먼 곳에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내와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세 단편 <닭털같은 나날>, <관리들 만세>, <1942년을 돌아보다>에서 평범한 시민의 희망없는 삶과 부패한 관리, 무관심한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연결고리로 언뜻언뜻 연결시켜 각각 세 부류의 희망의 부재, 사회구조의 붕괴, 지도층 몰락 이라는 각각의 폐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차례차례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독립된 느낌의 세 단편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 세 단편이 한개의 장편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작가는 각각의 단편마다 절대적인 관찰자입장에서 주인공이 희망을 버렸어도 그것을 탓하지 않고 못 봐줄 정도로 관리들이 꼴불견이어도 그들을 대놓고 탓하지 않으며 몇천만의 국민이 굶어죽어 나가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지도자에게도 그만의 이유가 있을거라며 설득조의 말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이런 태도는 독자에게 좀 더 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우리가 희망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사회구조의 붕괴는 시간문제이며 이런 사회를 이끌어 가겠다는 지도자 또한 희망없는 국민들에게 무관심할 것은 아마도 뻔한 순서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느정도의 뻔한 순서의 세상에 살고 있을까... 작가 류진운의 날카로운 시선을 빌려 우리세상의 뻔한정도를 가늠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