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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구판절판


나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왼팔을 앞으로 똑바로 뻗어봐."
나는 일단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팔을 뻗은 채로 몸을 한 바퀴 돌려봐."
"어?"
"그 자리에서 발을 움직이지 말고, 어느쪽이든 상관없으니가 돌아보라구. 컴파스처럼 말이야."
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주춤거리다가 왼팔을 쭉 뻗은 채 왼쪽으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내가 다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되자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너는 그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늙은이같아."
아버지는 싱긋 미소지은 후 말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배울 겁니다."
아버지는 또 싱긋 웃고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6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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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창해ABC북 1
알랭 스텔라 지음 / 창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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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밤에 마시는 커피는 가히 환상적이다. 향과 맛이 어디 한 곳으로도 흐트러지지 않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 주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물론 하루에 한잔만으로도 새하얗게 밤을 지새는 이들이라면 그 한잔이 고통이겠지만 말이다. 커피상식이 풍부해지는 얇지만 실속이 꽉 찬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쩜 커피에 대한 약간의 주관적이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분명 실망하겠으나 그렇지 않고 정말 백과사전식 지식을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충분한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커피의 생산지, 인류가 커피를 마시게 된 이유 그리고 현재 가장 사랑받는 음료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 커피를 좀더 커피답게 맛있게 마시는 방법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책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서도 읽을 수 있는 간편성까지 갖추었다. 틈나는 대로 커피를 홀짝이듯이 커피에 지식도 홀짝여 보는 것도 또다른 커피 마시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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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뜸의 거리
코노 후미요 지음, 홍성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2차세계대전의 피해국의 국민으로써 전범국 일본이 원자폭격으로 인한 피해나 폭격으로 인한 후유, 아픔들을 이야기할때마다 어이가 없고 심사가 불편하다. 왠지 가해국임에도 불구하고 피해국의 얼굴을 하는 일본이 괘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만화를 읽어본다면 이런 생각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히로시마 폭격으로 인해 거기에 살았던 많은 민간인들은 그 이유조차 모르면서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열심히 일하며 또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줄 만 알았던 그런 천진한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명분도 없이 죽어갔다. 고요함 속에서 특별한 바램과 기대를 바라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잔잔한 삶에 폭풍같이 불어닥친 폭격의 아픔은 한 세대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진행형태로 볼 수 있음을 잔잔하면서 감동적인 글로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히로시마 폭격의 아픔들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다. 우린 그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함을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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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1999년 6월
구판절판


내가 책을 통해 겪었던 여러 행복과 불행들을 만일 책이 아니라 실제로 겪었더라면, 그것이 제아무리 강렬하다 할지라도 책에서처럼 그렇게 짜릿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면면들은 너무나도 더디게 진행되어 제대로 분간해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책 속의 무대가 절반은 형태를 갖춘 채 내 앞에 펼쳐지는 때가 있었는데... 나는 콩브레 정원의 열기 속에서 연이어 두 해 여름이나 깊은 산 계곡에서 급류가 흐르는 장관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럴때면 시간은 몹시도 빨리 지나 방금 울렸돈 종소리가 지금 또다시 울리고 있는 착각이 들때도 있었다...
심지어,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한시간을 건너뛰어 두번이나 더 울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때도 있었는데, 실상 그때 나는 종소리를 한차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나에게는 있지 않았던 셈이다. 마치 깊은 잠과도 같은 독서의 마력은 내 귀를 멀게하여, 종소리를 못 듣게 한 것이다....-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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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케의 동물 이야기
악셀 하케 지음, 이영희 옮김, 미하엘 소바 그림 / 창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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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객관적인 동물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다. 하케의 동물 이야기는 다분히 주관적이며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동물들의 이야기이다. 소개된 동물들의 생김새나 생활방식에 대한 이유를 나름대로의 상상을 가미하여 아마도 이러하지 않았을까라는 것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간들의 편한 생각들에 의해서 오해를 받고 있는 동물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오해를 받고 있음을 절절히 호소하기도 하며 때론 인간들의 무지에 대해서 코웃음 치는 센스도 발휘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동물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른 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혹 이런 맘으로 이 책을 선택한다면 이 이야기들을 진짜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님 그냥 웃고 넘어가야 할지 망설이다 책을 덮을게 분명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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