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통해 겪었던 여러 행복과 불행들을 만일 책이 아니라 실제로 겪었더라면, 그것이 제아무리 강렬하다 할지라도 책에서처럼 그렇게 짜릿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면면들은 너무나도 더디게 진행되어 제대로 분간해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책 속의 무대가 절반은 형태를 갖춘 채 내 앞에 펼쳐지는 때가 있었는데... 나는 콩브레 정원의 열기 속에서 연이어 두 해 여름이나 깊은 산 계곡에서 급류가 흐르는 장관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럴때면 시간은 몹시도 빨리 지나 방금 울렸돈 종소리가 지금 또다시 울리고 있는 착각이 들때도 있었다...
심지어,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한시간을 건너뛰어 두번이나 더 울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때도 있었는데, 실상 그때 나는 종소리를 한차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나에게는 있지 않았던 셈이다. 마치 깊은 잠과도 같은 독서의 마력은 내 귀를 멀게하여, 종소리를 못 듣게 한 것이다....-37쪽